-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5-10-01
- 214
- 0
- 0
#첫 번째 그림

젊을 때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다고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다 가질수는 없지만 이제 시작된 길이니 가다가도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당장은 갈 수 없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길은 다 선택해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시절입니다. 무엇이든지 해 볼 수 있으니 자유롭습니다.
#두 번째 그림
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길과 멀어집니다. 내가 걷는 길의 지분도 많아집니다. 이젠 되돌아가기엔 힘들고 다른 길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졌습니다. 나이도 먹었습니다. 잘 선택한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다른 길에는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 뒤처진 사람이 보입니다
#세 번째 그림
이젠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나이는 더 먹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 밖에는 더 이상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갈라진 길이 넓어져 다른 길에서 걸어가던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택한 길에서 얻어진 소출을 보니 많지도 않습니다. 우울해집니다.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할 수 없다면, 원하는 이성과 결혼할 수 없다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다면 사람은 우울해집니다. 주위에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면, 비숫하게 선택했지만 자신보다 더 많은 소출을 얻었다면 사람은 더 우울해집니다. 선택한 것에 대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누구보다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까요? 다양한 정보를 모아 합리적 분석이 필요할까요? 어떤 선택을 하든 남들과의 비교를 멈추는 혜안을 갖추면 될까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택은 자유인에게 부여된 선물입니다. 선택할 수 있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울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전제에 동의하신다면 또 다른 질문이 주어집니다. 선택할 것이 많을수록 자유롭고 행복한 것일까요? 선택한 것이 적어질 수록 자유도 역시 감소하고 우울할까요?
선택과 자유, 그리고 행복과 우울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위의 이야기를 달리 해석해 보아야 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에는 선택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다른 나머지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하여 자유를 얻겠지만 나머지는 포기하는 절제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절제는 곧 그만큼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택의 수는 자유와 상관관계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절제와 관계합니다. 절제할 것이 많다고 사람이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선택에서 갈등할 뿐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선택하였으니 자유롭습니다. 나머지 길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절제입니다. 선택과 절제를 통해 하나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제는 다른 길을 신경쓰임이 줄었습니다. 나의 길을 선택했으니 이제 한 곳만을 보며 정진합니다. 정진한다는 것은 다른 선택을 기꺼이 내려놓는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의 절제는 그만큼의 자유의 포기라고 설명드렸지만 이 절제를 통해 사람은 더 자유로와집니다. 절제할 것이 많아졌지만 사람은 우울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절제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선택한 하나의 길에 완전히 머뭅니다.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길을 포기한 것에 대해 절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첫 번째 그림보다 완전한 자유입니다. 더 이상 선택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사람은 더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도 포기해야 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길을 포기하는 절제가 아닌 자기 길을 걷기 위해 포기하는 절제입니다. 이 절제 역시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자유로와집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절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절제를 선택해야 하고 절제를 선택할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절제는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입니다. 선택의 선물이 자유가 아니라 절제의 선물이 바로 자유입니다. 사람이 우울한 이유는 선택할 것이 적거나 많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절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소출의 차이가 적으면 우울해집니다.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강요된 것이니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으면 사람은 우울해집니다.
안주꺼리가 많은 술집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양해서 좋을 것 같지만 수많은 안주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포기를 요구합니다. 선택한 안주를 먹으면서도 '다른 것을 주문할 걸 그랬나?' 라는 의문이 듭니다.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술집은 안주가 단품인 곳입니다. 제일 싫어하는 술집은 안주꺼리가 너무나 많은 곳입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가끔 들리는 곳이 을지로 골뱅이집입니다. 이 집의 안주는 골뱅이 무침 하나입니다. 이미 서울에 올가면서 골뱅이집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기 때문에 선택이 간단합니다. 다른 안주는 골뱅이만큼 맛갈나지 않기 때문에 안 먹어도 됩니다. 스스로 선택한 절제입니다. 골뱅이 집에 들어가는 순간 자유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골뱅이만 주문하면 되니까요. 아니 골뱅이 안주를 선택하는 순간 자유인입니다.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유로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절제는 모순같지만 사실 동일어입니다. 행복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절제에서 오는 자유에 있습니다. 우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강요된 포기에 있습니다. 강요되었기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지금 선택한 것에 대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절제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절제는 선택한 것에 더 깊이 몰입하는 것입니다. 더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고, 더 깊이 있게 아껴 주고 사랑하며, 더 깊이 들어가서 머물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인가를 위해 스스로 절제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절제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사람이 스스로 절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과 마주할 때 입니다. 젊은 시절에 수많은 선택지에 섰을 때, 나이를 먹어서 하나의 길에 놓여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절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과 마주했을 때입니다. 그 목적은 명확해야하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목적이 흐릿하면 여러 목표들이 파생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길들이 되어 선택을 강요합니다. 여럿 목표 간에 위계가 생기게 될 것이며, 목적은 사라지고 목표가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목적이 되어버린 상위 목표는 다른 하위 목표들에게 포기를 강요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우울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절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세워야겠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하나의 길에서 행복한 네 번째 그림이 되길 희망합니다.
#네 번째 그림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