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10-27
- 117
- 0
- 0
나눔에서 연대로: ‘나도 사회적 고립이 될 수 있다’를 힘들지만 받아들이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당장 주머니 속에 있는 볼펜 한 자루, 무심코 먹는 초콜릿 하나를 생각해보자. 그 물건이 내 손에 오기까지 과연 몇 사람의 손을 거쳤을까? 우리가 먹는 과자 한 봉지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나라의 노동과 자원이 얽혀있다. 사회는 고도로 ‘선진화’될수록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는 ‘약육강식’이라는 동물의 왕국 방식이 아닌, ‘약자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바탕으로 한 인간 사회 진화과정이다.
생존 본능으로서의 ‘나눔’
그렇다면 인류는 왜 나누기 시작했을까? 이는 단순히 착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나눔’은 수백만 년에 걸쳐 우리 안에 새겨진 강력한 ‘생존 본능’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종에 비해 육체적으로 결코 강한 종이 아니었다. 인류학자 피터 맥앨리스터(Peter McAllister)의 연구에 따르면, 뼈 화석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근력은 현대 세계 팔씨름 챔피언 남성 선수보다 더 강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 남성이라도 네안데르탈인 여성조차 이기기 어려울 만큼, 육체적으로는 훨씬 약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던 결정적 요인은 바로 '압도적인 힘'이 아닌, ‘협력과 나눔’이었다. 이는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공동체 전체의 생존력을 높인 진화적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세 가지 측면으로 나타났다.
첫째, 자원의 공유(호혜성)이다. 사냥꾼이 거대한 동물을 잡았을 때, 어차피 다 먹지 못하고 상할 고기를 나누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이는 ‘오늘 내가 나눈 고기가 미래에 내가 굶주릴 때 돌아올 것’이라는 ‘호혜성(Reciprocity)’에 기반한 무의식적 투자였다.
둘째, 안전망 구축(돌봄)이다. 인류는 병들거나 부상당한 개체를 버리지 않고 돌보았다. 고대 유골은 심각한 부상 후에도 오랫동안 생존한 흔적을 보여주는데, 이는 누군가의 지속적인 돌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나 역시 언젠가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미래의 나를 위한 ‘보험’을 드는 행위였다.
셋째, 기술과 지식의 전수(성장)이다. 불을 다루는 법, 도구를 만드는 법 등 생존 기술을 공동체에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며 집단 전체의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자선’을 넘어 ‘필란트로피’로
이러한 나눔의 본능은 현대 사회에서 종종 딜레마에 부딪힌다. 당장 배고픈 노숙인에게 ‘빵’을 계속 주어야 할까, 아니면 자립 상담을 위해 ‘빵’을 끊어야 할까? 이는 ‘자선(Charity)’과 ‘필란트로피(Philanthropy)’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자선’이 당장의 고통을 완화하는 일방적, 물질적 지원에 가깝다면, ‘필란트로피’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어원으로 하며, 재능, 시간, 경험 등 비물질적 자원을 포함하는 상호적 관계이다. 무엇보다 필란트로피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사회 구조의 긍정적 변화를 목표로 한다.
브라질의 엘데르 카마라 대주교는 이런 말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부른다. 그러나 가난한 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나눔은 도움이라는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왜’라는 질문과 함께 구조를 사유하고, 모색하는 ‘필란트로피’로 나아가야 한다.
나눔의 핵심: 존엄과 연대
그렇다면 나눔의 정신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나눔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한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발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례를 보면, 지원 금액(가령 18만 원, 33만 원, 43만 원)이 카드 표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정책의 효율성만 고려했을 뿐, 그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헤아리지 못한 정책적 오류다. 물건을 계산할 때마다 자신의 소득 수준이 의도치 않게 드러나면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수치심'이나 '낙인'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가 바로 구례 운조루의 쌀 뒤주이다. 이 뒤주에는 ‘他人能解(타인능해)’, 즉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뒤주가 사랑채가 아닌, 주인과 마주칠 가능성이 낮은 헛간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쌀을 가져가는 사람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한 깊은 배려였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이 뒤주 사용을 자제했다고 한다.
이 두 사례는 나눔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서로 회복시키는 과정이어야 함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이러한 존엄에 대한 감각은 ‘연대(連帶)’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나도 빈곤에 처할 수 있다”,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내 자녀가 계약직이 될 수 있다”, “나도 실업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나도 소수자/약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회피하는 ‘비공공적 시민의식’을 넘어, 그 가능성이 기분 나쁘고, 힘들지만 수용하는 ‘공공적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힘들지만 이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사적(私的) 보험이 아닌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이라는 공적(公的) 안전망을 만들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 합리적 자각이 바로 ‘연대’이다.
참여로 만드는 좋은 마을: 관계 빈곤을 넘어서
우리는 선진사회로 나아갈수록 거대한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분업화는 심해져, 개인이 직접 제작한 것을 소유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워진다. 즉, 우리는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는 점점 더 개인주의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적 상호의존’과 ‘개인주의 심화’의 충돌은 ‘사회적 빈곤’, 즉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나타난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통장에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들은, 이 문제가 단순한 ‘경제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빈곤’ 문제임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우리가 ‘경제적 빈곤’과 싸우는 것을 넘어, ‘관계의 빈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국이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하고 일본이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한 것 역시, 이것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국가가 방증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은 ‘약(藥) 처방’을 넘어선 ‘관계(關係) 처방’이다. 나눔의 목적은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깨어진 ‘관계의 회복’에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효과적인 사업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이 ‘관계 빈곤’의 해결을 위한 ‘관계 처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관계 처방을 위한 재료를 길어내는 사회복지 사업영역이 ‘평생학습(LLL, Long Life Learning)’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한 사람의 세계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라고 했다. 언어가 확장되어야 인식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고, 인식의 세계가 확장되어야 관계로 나아가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것이 ‘교양(Liberal Arts)’이다. 복지국가의 시작을 알린 윌리엄 베버리지는 "좋은 사회는 정부가 아닌 좋은 시민들에 의해 이룩된다"고 말했다. 좋은시민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풍성하고, 질높은 언어를 사용하여, 사유하고, 소통하는 자이다. 이러한 교양인 없이 복지국가는 이뤄질 수 없다.
진정한 나눔은 단순히 금전을 지원하는 '기부'를 넘어, 시간과 여력을 나누는 '자원봉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통해 개인은 언어와 세계를 확장하며 관계를 심화하고, ‘나 역시 언제든 취약해지고 고립될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른다. 이 자각을 통해 이웃의 존엄이 곧 나의 존엄임을 확장하는 '연대'의 정신이 싹튼다. 궁극적으로 이 연대는 사회적 안전망을 공고히 하고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공정한 '분배'로 발전한다.
결국 복지국가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눔, 자원봉사, 연대, 분배라는 각 단계에서 화학적 결합을 이루어내는 우리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헌신과 노고가 필요하다. 관계의 빈곤을 넘어서는 '관계 처방'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모두가 연결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선진사회로 들어가는 이 시점에서 사회복지 종사자가 가져야할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