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복지재단

아빠의 아빠가 됐다

20살 때부터 아버지 돌봄을 시작해서 15년차 보호자입니다.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을 운영하며 영케어러와 돌봄 관련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책 제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스빈다. 저서로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우리의 관계를 돌봄잉라 부를 떄>, <공저> 등 이 있습니다.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여러 나라에서 영케어러를 이렇게 부 른다. 숨은 집단 (hidden Army). 존재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만나기 힘들다는 의미로 붙여 진 명칭이다. 실제로 영케어러를 '발견'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지역사회에 진짜 영케어러가 있기는 한 건지, 혹은 영케어러가 과연 노인이나 장애인 단독가구 보다 더 지원이 필요한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영케어러들이 숨은 집단인 건, 영케어러들이 도움 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다. 어리거나 젊을지언정, 신체가 건 강할지언정, 돌봄으로 인해 겪는 피해, 즉 학업 부진, 또래 관계의 어려움, 시간 빈곤, 불안정한 미래, 경제적 빈곤 등 의 문제들은 분명하게 겪는다. 영케어러들이 세상에 도움 을 청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 부재 첫 번째로 '인식 부재'가 많이 꼽힌다. 스스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돌봄을 해왔다면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엄마가 아프면 아빠는 보호자 역할과 생계 부양자 역할을 병행한다. 아이는 처음에는 엄마의 병원을 동행하는 정도로 시작하다가 엄마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동 생을 챙기는 일까지 자신이 도맡는다. 설거지나 빨래, 화장 실 청소 등 비중이 높아지고, 아빠가 자리를 비울 때 엄마를 돌보는 부돌봄자 역할도 하게 된다. 엄마의 건강이 더욱 악 화된다면 몇 년 안에 간병도 하게 된다. 이렇게 돌봄이 서서히 '물 들 듯' 확장된다. 03 돌봄과 사회복지 - 지역사회에서 영케어러 만나기 이 아이가 어느 순간에 스스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어렵게 영케어러를 만났는데 '저는 엄마가 아프긴 한데 돌봄을 하진 않아 요' 혹은 '저는 딱히 도움이 필요 없어요.'라고 한다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선 안 된다. 특히 타인에 의해서, 혹은 행정데이터 속에서 '발견'된 영케어러일수록 이 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돌봄에 서서히 물 들어 스스로 어떤 역할들을 해왔고 어느 시점에 어떤 도움이 필요했는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이때는 돌봄이 단지 '간병' 뿐 아니라 병원이나 공공기관 동행, 가사, 동생 챙김, 문제 가 생길까봐 어디 나가지 못하고 곁에서 살피는 일 등 다양한 활동을 지칭한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또한 돌봄 시간이 줄어든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질문하며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적 지원으로 돌봄 시간을 줄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지원이 있다면 더 나은 삶 을 상상할 수 있다고, 그 삶을 함께 그려 나가보자는 지지의 말들이 필요하다. 2. 어느 날 갑자기 재난처럼 닥친 돌봄 서서히 '물들 듯'이 하는 돌봄과 상반된 돌봄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물 밀 듯' 닥치는 돌봄이다. 주로 건강 악화로 쓰러지거나 사고, 산재 등으로, 재난처럼 돌봄이 시작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돌봄의 한복판 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2021년 영 케어러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대구의 청년 간병살인 사건이 그랬다. 아버 지와 아들로 구성된 한부모가정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 8개월간 2천만원의 병원비와 간병비가 나왔다. 청년은 대부 분의 의료비를 친척에서 빌렸다. 이후 병원비가 없다는 이유로 집으로 퇴원했고, 약 보름 뒤 아버지는 죽음에 이르렀다. 만약 병원에서 치료 받는 8개월 동안, 혹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한 후 보름 간 사적 해결이 아닌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 땠을까? 청년이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 온 날, 주민센터에 연락했을 때 주민센터는 장애진단 서를 떼오라는 말 뿐이었다. 어쩌면 영케어러가 도움을 청할 인식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주변 어른들이 영케 어러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만약 영케어러가 살고 있는 동네의 통장이 나 집주인, 편의점 사장님 등이 영케어러를 인식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앞서 말한 대구의 청년은 아버지를 돌보는 와중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며 가을 부탁했고, 집주인에게 쌀을 사먹게 2만원만 달라고 말을 걸었다. 만약 그 순간 어른들이 이 청년 이 영케어러임을 알고 먼저 손을 잡아줄 수 있었다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 다. 3. 영케어러라는 사회적 낙인 두 번째로는 '사회적 낙인'이다. 부모나 형제가 아프거나 자신이 돌봄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약점이라고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지거나 자신이 부족하거나 못났기에 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때는 영케어러 스스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도 낙인감으 로 인해 자신의 필요를 드러내지 못한다. 조현병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던 한 영케어러는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가 조현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날 조회 시간 에 아이를 앞으로 불렀다. 친구들 앞에서 '효행상'을 전해주었다. 엄마가 조현병이 있 는데 잘 돌본다는 의미였다. 선생님은 화합이 되기를 바라며 준비했으리라. 하지만 아 이에게는 낙인으로 남았다.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환이라는 것과 아이들 앞에서 엄마 가 아프고 자신의 돌본다는 사실이 원치 않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었고 동기와 의 통화에서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동기가 전화를 걸어왔 다. 걱정하는 듯한 말이 오가다가 본론이 나왔다. 엄마가 아파서 이번 학기를 다니기 힘들면, 필수 과목 수강신청 취소해달라고. 자신이 꼭 들어야 하는 과목이라고. 그 말 에 청년은 깊은 박탈감을 느꼈다. 돌봄이 경쟁사회에서 탈락되는 약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경험들을 통과하며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거나 돌봄 상황을 말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적 도움을 요청했다가 부정적인 경험을 한 것도 낙인감을 겪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주민센터에 찾아갔다가 사지 멀쩡한 청년이니 어디든 가서 일하라고 하거나, 돌 봄이 힘들어서 갔는데 돌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무 뚝뚝한 표정으로 상황을 듣고는 신청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무미건 조하게 신청서류를 가져오라고 공지한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잡아줄 손을 기대하며 갔지만, 결국 자신이 겪는 위기는 자신 만의 위기일 뿐이라고 느끼게 된다. 다시는 공적 도움을 청할 마음을 먹지 않는다. 고 립을 자초하게 된다. 영케어러들에게는 믿을 만한 어른의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영케어러들에게 믿을 만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SEOUL WELFARE EDUCATION CENTER 공유복지플랫폼 기획칼럼 03 돌봄과 사회복지 - 지역사회에서 영케어러 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