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참견시점 By 허보연
-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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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의 일상은 수많은 복지대상자들이 제출한 각종 신청서와 서류를 접수하고 검토하는 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들이 제출한 문서 속 정보로만 대상자를 인지한다. 그러나 복지(福祉)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함께 부대끼는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행복e음에 기록된 상담 내역과 각종 서류는 그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지만, 막상 현장에서 마주하면 기록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질 때가 있다.
수년 전, OO주민센터에 근무할 때였다. 임대아파트에서 뇌병변 중증장애 딸과 함께 사는 한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가 찾아갔을 당시, 집 안에는 전날 마신 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베란다 한켠에는 빈 소주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피곤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대인 딸은 주간보호센터나 평생교육센터, 장애인복지관 등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지만, 어느 곳도 다니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와 함께 TV를 보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딸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지만 그 곁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치료를 위해 병원이나 전문시설 입소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병원에 가면 그 사이에 딸은 누가 보살피나요?” 그녀의 말에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혼재되어 있었다. 현재 이들이 받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제도 같은 복지서비스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는 도와주지만, 그 마음속 깊은 고립감과 절망까지는 닿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불균형 속에서, 그리고 누군가를 돌볼 힘조차 잃은 사람의 외로움 속에서 드러난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 마음 한 켠이 오래도록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돌덩이를 가슴에 품은 듯한 답답함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의 가정방문, 그리고 그 가정의 상황을 다시 회상하며, 사람의 삶은 숫자나 제도 안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복지서비스가 생계를 유지하게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 마음속의 고립과 상처까지는 치유할 수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민원인들이 찾아와 그동안 겪어온 힘든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대부분은 오랜 시간 가난과 병, 가족의 부양 부담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고단한 삶의 스토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느껴진다.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부족한지를 따지는 세상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점점 작게 만들며 살아왔다. 물론 인간이 이 땅에 처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예전 구석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지금처럼 서열을 따지지 않았다. 힘이 센 사람도 혼자 다 가지지 않고, 함께 나누며 살았다. 결국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문명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인위적인 결과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농경과 산업이 시작되면서 곡물을 저장하고 세금을 걷는 제도가 생기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서열을 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왔다.
복지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이 세상에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야기하곤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무시와 편견 속에서 살아온 경험은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 상처는 사람을 조용히 위축시키고, 스스로를 점점 작게 느끼게 만든다. 불평등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속에 스며들어, 사람의 존엄과 자존감을 서서히 약화시킨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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