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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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 대해 늑대 무리의 이동을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늑대 무리가 겨울 눈길을 이동하고 있습니다. 맨 앞의 집단은 가장 약하고 늙은 늑대들입니다. 이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집단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중간에서 행렬하는 집단은 젊고 힘센 늑대들입니다. 이들은 앞선 늑대들이 닦아 놓은 눈길을 밟으며 힘을 아끼고 유사시 주력부대가 됩니다. 무리 후미에 늑대 우두머리인 알파가 자리합니다. 알파는 집단의 이동을 전체적으로 살피면서 낙오된 늑대를 확인하고 무리의 안전을 책임집니다. 이러한 늑대 무리의 이동을 보고 진정한 리더란 조용히 전체를 살피면서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책임을 진다'라고 설명합니다.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2017년 영국의 BBC 다큐멘터리 '얼어붙은 지구(Frozen Planet)'의 한 장면으로 채든 헌터(Chadden Hunter)라는 캐나다의 생물학자가 늑대 무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에는 맨 앞에 선 늑대가 작아 보이고 뒤쪽에 선 늑대들의 몸집이 더 커보였습니다. 착시에 의해 만들어진 오류입니다. 사실 늑대무리의 이동은 이렇지 않습니다.
선두에는 설명과는 반대로 가장 힘이 세고 젊은 늑대들이 앞장을 섭니다. 이들이 앞서가면서 유사시에 집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이 눈을 밟아주기에 뒤에 오는 개체들은 힘을 아낄 수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새끼들과 어미 늑대들이 자리합니다. 어미 늑대들이 새끼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서 무리 전체의 체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합니다. 후미에는 늙고 약한 늑대들이 자리합니다. 알파 늑대는 무리의 중간이나 앞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이런 대형으로 무리 전체의 생존 가능성과 이동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와전된 늑대 이동의 이야기를 실제로 고증해보면 리더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늙은 늑대에게 관심이 갑니다. 후미에 있는 늙은 늑대는 집단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까요? 분명 늙은 늑대는 집단의 이동 속도를 더디게 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이들이 불필요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늑대 무리는 이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집단의 생존을 위해 그들이 어떠한 역할을 다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늑대 무리의 사냥은 매우 조직적입니다. 젊고 가장 힘이 센 늑대는 먹잇감을 찾아내고 추격합니다. 먹잇감을 젊은 숯컷과 암컷 늑대들이 포위합니다. 가장 강하고 힘이 센 늑대가 먹잇감을 제압하고 숨통을 끊습니다. 리더인 알파는 전체적인 사냥의 틀을 짜고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런데 사냥 중에 늙은 늑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늙은 늑대는 새끼 늑대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맏습니다. 새끼를 보호하다보면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습니다. 늙은 늑대가 이동 중에 무리의 맨 뒤에 서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포식자가 집단을 공격해 오면 빠르게 도망을 가야 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는 잡아먹혀야 합니다. 바로 늙은 늑대의 몫입니다.
고인류에게도 이런 흔적들이 보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나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보면 나이가 들고 병이 들었음에도 오랜 산 흔적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치아도 없고 골절이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살아 남은 흔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사회적 돌봄 덕분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 학설에다가 늙은 늑대의 역할을 보태어 하나의 가설을 더 만들었습니다. '고인류가 늙고 병든 개체들에게 사회적 돌봄을 한 이유 중에는 그들이 자녀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사냥을 나갔을 때 누군가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또한 유사시에는 아이들 대신 포식자에 잡아 먹히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늑대 무리의 늙은 늑대와 같은 역할인 것이죠.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야생과 고인류 시대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릴 적에는 잠이 들면 누가 데려가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깹니다. 질 좋은 수면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나이입니다. 사람의 생로병사와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니 깊이 자는 것이고 나이를 먹었으니 잠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 간단명료한 설명이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늑대 무리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그런 걸까?
아이들은 어른보다 '깊은 수면' 시간이 길어서 수면의 질이 좋습니다. 특히 수면 주기의 3~4단계에 해당하는 서파 수면(slow-wave sleep) 시간이 깁니다. 이 단계에서는 뇌 활동이 완전히 멈추고 느린 뇌파가 지배합니다. 때문에 깊은 수면이기에는 성장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를 쉬게 하여 뇌발달에도 좋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뇌파가 깨어있을 때와 유사한 상태가 되는 렘(REM) 수면 단계가 길어진다고 합니다. 덕분에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 어른들이 주변의 이상변화를 빠르게 감지하여 어린 개체를 지킬 수 있도록 민감하게 적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새벽에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이유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이고 자녀들이 큰 소리에도 잠을 자는 이유는 이런 어른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만약 자는 동안에 자신을 지켜줄 어른이 없다면 아이들은 깊은 수면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가 참 대견해 졌습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귀가 밝아서 잠에 깬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잠에서 깬 것이니까요! 제 덕분에 아이들이 깊은 수면에 들 수 있으니까요!
늙은 늑대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집단의 생존을 자신이 새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고 때에 따라서는 새끼들을 위해 잡아 먹히는 몫도 감수하는 것이죠. 더 깊이 숙고해 보면 늙은 늑대의 숭고한 목적이 보입니다. 늙은 늑대의 목적은 개체의 번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기꺼이 맡은 것입니다. 젊고 힘센 늑대도 개체의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늙은 늑대를 무리에 끼워줍니다. 집단이 커진 이유로 사냥도 자주해야해서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명확하니 서로를 위해 효율보다 절제를 선택한 것입니다.
목적이 명확하면 절제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 됩니다. 특히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호모종 중에서 유일하게 번성했습니다. 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조직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의 목적이 명확하다면, 그 목적이 가치로운 것이라면 사람은 기꺼이 절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조직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군대이죠. 목적을 다하기 위해 소방관들도 생명을 내어 놓습니다.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기업의 자산이나 맡겨진 고객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아 버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직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설명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의 목적을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죠. 존재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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