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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조직 현장에서 120% 활용가능한 기술, 마을 의제도출을 재밌게 증폭시키기 : 반대문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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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조직을 처음 담당하게 된 1.5년차 박소통 사회복지사 현장 이야기 (두 번째)

 

'인터뷰 소개하기'로 진행한 두 번째 모임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15명의 주민이 짝꿍에게 빙의(?)되어 서로를 소개하는 과정은 첫 모임의 레크리에이션과는 또 다른 차원의 웃음과 공감을 만들어냈다. 특히 4번 질문이었던 '우리 마을에서 변화시키고 싶은 문제와 활동'에 대한 답변은 자연스럽게 우리 모임이 다뤄야 할 주제들을 테이블 위로 꺼내 주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 번째 모임 계획안을 펼친 나는 다시금 막막해졌다.

 

'3회기: 지역 의제 도출 및 우선순위 선정

 

'의제 도출...' 말이 쉽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두 번째 모임에서 나온 '변화시키고 싶은 문제'들은 '골목이 어둡다', '재미있는 게 없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등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했다. 이걸 가지고 바로 토론을 붙이면 분명 '우리도 벽화 그리기 하자', '축제 한 번 하자'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만 나오다가 끝나버릴 게 뻔했다.

 

'인터뷰 소개하기'로 겨우 부드럽게 만든 분위기가 딱딱한 '회의'가 되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주민들이 지루해하던 동기의 모임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인터뷰 소개하기 비법 소개해 준 선배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의 문자를 보냈다. 선배는 바쁜 와중에서도 다른 팀인 나의 SOS에 기꺼이 응해주었고, 점심을 함께 먹고, 1층 카페에 앉았다.

 

"선배님... 바쁘신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 그 주민모임 때문에 요청드렸어요..." 내 시무룩한 표정을 보더니, 선배는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토'를 사주며 웃었다. "박소통 복지사님~ '인터뷰 소개하기' 좀 더 우려먹어도 되는데... 이번엔 또 뭐가 문젤까요?“

 

"선배님, 의제도출이요. 주민들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너무 막연해요. 이걸 어떻게 구체적인 '사업내용'으로 발전시키죠? 당장 '쓰레기 문제'만 해도... '분리수거함을 늘리자' 외에 무슨 답이 있겠어요...“

 

내 말을 듣던 선배가 갑자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박소통 복지사, 혹시 '정답'을 찾으려고 하니까 막막한 거 아닐까요? 이럴 땐, 정반대로 가보면 어떨까?"

"정반대요...?"

". '반대문제토론'이라는 방법이 있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하면 최악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거야."

"문제를...최악으로요? 아니, 지금도 심각한데 그걸 왜 더..."

"하하, 박소통 복지사. 생각안나? 저번에 우리 ●●시 종합사회복지관 연합 워크숍 갔을 때, '은빛마을' 사례 토론했었잖아. 그 때 박소통 복지사도 신나서 참여했잖아. 빌라촌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 시나리오로 역할극 했던 거

 

맞다. 그때 나는 '새로 이사 온 청년위원' 역할을 맡았었다. "~ 맞아요! 그때 우리가 그 때 좀 이상한 얘기를 막 던졌었죠... 엄청 웃고, 재밌었어요. 근데 왜요?“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때 우리가 한 게 바로 그거야. 그걸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거지. , 한번 복기해볼까?“

 

[●●시 종합사회복지관 연합 워크숍 회상 : '은빛마을' 쓰레기 문제 토론 워크숍]

 

'은빛마을'은 최근 빌라촌을 중심으로 쓰레기 무단 투기 및 분리배출 문제가 심각해져 주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위원회와 통장과 관심있는 주민들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대문제토론'을 시작합니다.

 

참가자


최 퍼실리테이터(선배): 지역문제 주민조직사업 담당복지사

김 위원장(장서윤 복지사) : 주민자치위원장 (다소 고지식함)

이 통장(이서진 복지사) : 1통 통장 (현실적, 쓴소리 담당)

박 상인(강다현 복지사): 빌라1층 편의점 사장 (매일 쓰레기와 씨름함)

윤 청년(1.5년차 나): 새로 이사 온 청년위원 (아이디어 뱅크)

 

[회의 시작: 사회복지관 회의실]

최 퍼실: "위원님, 통장님, 복지관 인근 거주하시는 주민분들 오늘 모이신 이유는 '빌라촌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 때문입니다.

 

1단계: 문제 정의

 

최 퍼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쓰레기 무단 투기를 줄이고 분리배출을 잘하게 할까?'입니다."

 

2단계: 문제 뒤집기

 

최 퍼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문제를 뒤집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동네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무단 투기를 '최대한' 장려할 수 있을까?'입니다. 다들 동네를 망가뜨릴 아이디어를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참가자들 잠시 웅성거린다. 김 위원장은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표정이다.)

 

3단계: 반대 문제 아이디어 도출

 

이 통장: (먼저 입을 연다) "에이, 망하게 하는 거야 쉽지! 일단 분리수거함을 싹 다 치워버리면 돼. 어디다 버릴지 모르게."

 

박 상인: (맞장구치며) "좋죠! 그리고 그나마 있는 수거함도 한 달에 한 번만 비우는 겁니다. 넘쳐서 길거리에 쌓이게."

 

윤 청년: (웃으며) "아예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세요!' 하고 예쁜 쓰레기통을 골목 구석에 숨겨두는 건 어때요? 투기 명소를 만들어 주는 거죠."

 

김 위원장: (점점 흥미를 느끼며) "그거 좋네. 그리고 '분리배출하면 바보!' 이런 캠페인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 아예 어둡게 가로등을 다 꺼버려요. 밤에 몰래 버리기 좋게."

 

이 통장: "외국인 주민들 많으니까, 안내문을 전부 어려운 한자나 영어로만 써서 붙여. 아무도 못 알아먹게.“

 

그렇게 우리는 신나고, 재밌게(?) '동네 망치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런데 진짜 마법은 그 다음이었다.

 

4단계: 해결책으로 다시 뒤집기

 

최 퍼실: (화이트보드에 '최악의 아이디어'를 적는다) ", 좋은 아이디어(?)들 감사합니다. 이제 이걸 또 다시 반대로 뒤집어보겠습니다."

 

1. (반대) 분리수거함 싹 치우기 (해결책) 눈에 잘 띄고 접근하기 쉬운 곳에 '디자인 분리수거함'을 설치한다. 박 상인: "맞아요. 지금 수거함은 너무 지저분하고 구석에 있어요. 차라리 편의점 앞처럼 환한 곳에 예쁘게 만들면 함부로 못 버릴 거예요."

 

2. (반대) 한 달에 한 번 비우기 (해결책) 수거 빈도를 높이고, 'IoT 센서'를 달아 쓰레기양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윤 청년: "요즘 쓰레기통에 센서 달아서 얼마나 찼는지 알려주는 거 있어요. 그거 도입하면 행정복지센터에서도 관리하기 편할 거예요."

 

3. (반대) 투기 명소 만들기 / 가로등 끄기 (해결책) 상습 투기 지역을 '주민 참여형 화단'이나 '갤러리'로 바꾼다. 가로등(보안등)을 더 밝게 설치한다. 김 위원장: ", 그거 좋네. 맨날 버리는 그 빌라 코너 있잖아. 거길 아예 우리 손주들 그림 걸어놓는 '한 뼘 갤러리'로 만듭시다. 누가 거기다 쓰레기를 버리겠어."

 

4. (반대) 어려운 안내문 (해결책) 그림(픽토그램) 중심의 안내문을 만들고,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다국어 안내'를 병기한다. 이 통장: "그림으로 딱! '페트병', '' 이렇게 그려 넣고, 외국어로도 써야지. 우리 동네 외국인들 많아."

 

5단계: 아이디어 평가 및 발견한 점 공유

 

최 퍼실: ", 오늘 반대로 생각해 보니 어떠셨나요?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으신가요?"

 

이 통장: "맨날 '하지 마라', '벌금 문다' 할 때는 답답했는데, '어떻게 망하게 할까' 하니까 우리가 뭘 안 하고 있었는지가 확 보이네. 결국 '버리기 어렵게' 만들고 '버릴 곳은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 아냐."

 

윤 청년: "저는 '어려운 안내문'이요.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처음 이사 온 사람이나 외국인들은 정말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친절함'이 무단 투기의 원인일 수 있겠네요."

 

김 위원장: (헛기침하며) "나는 그 '한 뼘 갤러리'가 마음에 들어. 맨날 CCTV만 달자고 했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었어. '사람들 눈길이 닿고 애정이 가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먼저였구먼. 우리가 너무 주민들을 탓하기만 했어."

 

최 퍼실: "맞습니다. '반대문제토론'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혹은 무의식적으로 방치했던 것들이 사실 문제의 핵심 원인이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 나온 '디자인 분리수거함', '한 뼘 갤러리', '다국어 안내문'은 위원회 안건으로 올려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볼까요?

 

[다시, 1층 카페]


"...!"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선배님! 맞아요! 그때 진짜 신기했어요. 우리가 그냥 장난처럼 던진 말들이 뒤집히니까 바로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 됐어요! '한 뼘 갤러리'는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배는 '아아'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 "사람들은 '해결책'을 물으면 머리가 굳어. 늘 하던 말, 어디서 들은 말만 반복하지. 'CCTV 달자', '벌금 매기자'처럼. 하지만 '어떻게 망칠까?'라고 물으면, 다들 창의력 베틀이 돼. 자기가 평소에 불편했던 것,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의 정확한 원인을 짚어내거든.“

 

선배는 말을 이었다. "박소통 복지사가 다음 주에 만날 주민들도 마찬가지야. '골목이 어둡다'는 문제를 두고 '어떻게 하면 우리 골목을 더 어둡고 무섭게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시길~ 그럼 '가로등을 다 깬다', '밤에 아무도 못 다니게 한다', '이상한 물건을 쌓아둔다' 같은 말이 나오겠지?“

 

"! 그럼 그걸 뒤집어서... '가로등 일제 점검 및 조도 높이기', '저녁 주민 순찰대 조직', '골목길 환경 정비' 같은 의제가 나올 수 있겠네요!" "바로 그거야. '반대문제토론'은 주민들이 가진 막연한 불만이나 문제를 아주 구체적인 행동(Action)으로 바꿔주는 강력한 도구야. 고정관념을 깨고, 토론을 재미있게 만들고, 무엇보다... 주민들 스스로가 '우리가 원인을 찾았고, 우리가 해결책을 만들었다'는 주도성을 느끼게 해주지.“

 

선배의 말을 듣고 나니, '의제 도출'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과 함께 '우리 동네를 얼마나 재미없고, 지저분하고, 무섭게 만들 수 있는지' 신나게 떠들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인터뷰 소개하기'로 서로의 마음을 열었다면, 이제 '반대문제토론'으로 우리 마을의 문제를 뒤집어 볼 차례다. 나의 세 번째 모임은 아마도, 우리 사회복지관 주민조직 사업 역사상 가장 시끄럽고 창의적인 '동네 망치기' 토론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은근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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