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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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기술: 주민 성장을 위한 '전략적 여백'의 지혜
우리는 현장에서 '빨리, 많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때로는 ‘열정적인 활동’보다 '잠시 멈춤'으로써 주민 주체의 회복력을 믿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이룬다'는 깊은 지혜가 복잡한 마을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에 적용될 수 있다.
1. '과잉 개입'을 인지하고, '주민 여백'을 확보하다
주민조직 현장에서 '하지 않음'은 '방치'나 '방임'이 아니다. 이는 '과도한 개입(Over-Intervention)'을 의도적으로 경계하고, 주민과 지역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생력'과 '주도성'을 키우는 촉진 방안이다.
우리가 성급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주민 간의 토론에 끼어들어 중재안을 내놓는 행위는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합의하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즉 지역 문제를 둘러싼 서비스 이용자, 마을복지 참여자 간 갈등조정에서도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해결사에서 성장 촉진자 또는 활동 조력자로, 정답 제시자에서 참여자의 성찰을 위한 '공간 제공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 전환은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2. '잠시 멈춤': 갈등 성찰을 위한 '쿨링 오프 타임'
마을 문제 이해관계자나 주민 간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잠시 멈춤'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이는 시간을 낭비하거나 지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정 과잉을 줄여 합리적으로 숙의할 수 있는 '중립 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갈등이 첨예할 때, 사회복지사와 지역활동가는 서둘러 중재하기보다 '쿨링 오프 타임'을 설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더 단단한 지역사회 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한 발 물러서기(Strategic Retreat)'의 의미를 가진다.
3. 현장 실천: '잠시 멈춤'을 통한 갈등 해소 사례
'잠시 멈춤'의 지혜가 성공적으로 발휘된 B마을 재활용 분리수거 갈등 조정 사례를 통해 전략적 효과성을 도출해보기로 하자.
[B마을 재활용 분리수거 갈등 조정]
B마을에서는 노년층("규정을 지켜라")과 청년층("간섭하지 마라") 사이에 분리수거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사회복지사 C는 회의 대신 '잠시 멈춤'을 제안했다.
사회복지사 C의 '잠시 멈춤' 제안 3가지:
- 공식 논의 잠정 중단: “당분간 분리수거 문제에 대한 공식 회의는 멈추겠습니다.”
- 감정 해소 대신 '상황 관찰 기간': “일주일 동안 상대방의 행동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장의 사실(Fact)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기간으로 보내보면 좋을 듯 합니다.”
- 미래 공동 목표 상기: “문제 해결보다, 우리가 '함께 할 행복한 마을'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가져보겠습니다.”
'멈춤'의 효과: 입장(Position)에서 욕구(Need)로의 전환
노년층
표면적 입장 : "분리수거 규정을 철저히 지켜라."
숨겨진 욕구 : 깨끗한 환경 유지, 노력에 대한 인정, 공동체 질서
청년층
표면적 입장 : "바쁜 퇴근 후 시간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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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욕구 : 시간 효율성 및 편의성, 개인 생활 방식의 자율성 |
'잠시 멈춤' 시간 동안 주민들은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며 감정적 비난을 멈추었다. 그 결과, 노년층의 '깨끗한 환경'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청년층의 '시간 효율성'을 반영하는 '청년층 퇴근 후 분리수거 요일 변경'과 '야간 조명 개선'이라는 주민 자발적 대안이 도출되었다. 사회복지사 C는 과도한 개입 없이 '전략적 여백'을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스스로 근원적 욕구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성장을 촉진한 것이다.
4. 많은 것을 이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
사회복지사가 듣는 조언 언어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열심히’, ‘성실히’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출근하면 늘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의 원리를 생각해보면서 지역조직 활동에 도움되는 역설의 지혜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때로는 열정적인 활동보다 '멈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조치이자 근원적인 해결책이 된다.
우리는 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수많은 복원 사업을 고민하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치유 방법은 '입산 금지'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훼손된 자연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얻었을 때 놀라운 자생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팬데믹 시기에도 명확히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경제 활동과 이동이 멈추자, 전 세계적으로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교육현장에서는 심지어 코로나 이전 우리가 가장 힘들고, 공포였던 미세먼지가 있었는지도 잊은 사람이 많다) 즉 인간의 활동이 멈추었을 때, 지구는 비로소 숨을 쉬고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갈등이 첨예한 상황일수록 개입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한 걸음 물러서서' 주민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그들의 자율적인 숙의 과정을 믿어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전문가적 용기'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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