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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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을 따라가는 복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신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게요."
누군가 말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당신이라고. 악보를 보는 사람이 음악인이다. 성경과 불경을 보면 종교인이고, 야구 경기를 보면 야구인이다. 시각의 힘은 강하다. 유튜브와 릴스를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시각의 강한 자극이 시간의 속도마저 바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곧 지금의 나를 정의하니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더 진실에 가깝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들, 동네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 회의로 만나는 다른 기관 동료들. 결국 우리는 사람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이 문서를 본다. 공문, 일지, 계획서, 결과보고서, 평가서 등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부터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할 때까지 모니터의 문서를 본다. 행정은 곧 문서로 말한다. 그래서 문서를 계속 보면 행정인이 된다. 그러니 사회복지사라고 쓰고 행정인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괴리가 생긴다. 나는 사회복지를 선택해서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는데 현실은 행정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행정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 괴리감에 있다. 괴리감은 불안과 불만족을 낳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저항을 한다. 하지만 괴리감이 오래되면 한쪽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을 타협이라고 하든, 선택이라고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문서를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더 길어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에는 더 이상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없다. 물론 수평적 위탁 관계가 아닌 수직적 위임 관계에 더 가까운 행정 중심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이 있다. 결과와 증빙 중심의 평가 제도와 우연하지 못한 보조금의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크게 원론적으로 말하면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변화는 언제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작은 틈새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인생을 크게 보면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삶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태어나서 나이 들고 죽는 것 사이에서 수많은 틈새를 만들고 오늘의 의미를 찾는다.
먼저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아서 없애야 한다. 관행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다. 왜 하는지, 이것이 필요한지 묻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왔으니,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문서가 있으니 채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문서 작성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이 정도로 활용하면 안 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더 많은 문서를 만든다면 그건 방향이 한참 잘못된 거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더 많은 문서를 만든다면 그건 방향이 한참 잘못된 거다. 프로세스를 변화시켜야 한다. 필요 없는 문서를 없애고 합쳐서 실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서 종류를 줄이고 문서 작성량을 줄여야 한다. 양으로 늘리는 시대가 아니다. 질적 사회로 대전환이 이뤄졌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 많이 쓰는 게 아니라 핵심 의미를 써야 한다.
눈빛은 눈과 빛이 합쳐진 말이다. 눈에서 레이저 빛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눈을 보면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도 틈새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눈이다. 문서가 아닌 사람을 보는 눈이다. 사람들의 필요와 변화에 시선을 고정하는 눈이다. 그런 눈에는 빛이 난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 했는데 그건 결국 시력이 아닌 마음의 문제다.
인공지능의 시대다, 초격차가 코앞이라고 한다. 문명의 대전환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복지 현장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실천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아닌 인공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더 많은 문서를 만든다면 그건 방향이 한참 잘못된 거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업무 향상 이전에 사람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잊는 기술은 사람을 삼키는 도구가 된다. 인공이 아닌 사람이다.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을 향하는 눈에 빛이 난다. 빛은 창조이니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눈빛을 향할 때 오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눈빛이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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