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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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경계: 사회복지 주민조직 현장의 '세 가지 관계'와 '공사 중'의 미학
나는 사회복지 주민조직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관계의 역동을 오랜 시간 경험하고 관찰해왔다. 주민조직 현장에서 '관계'는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임을 깨닫는다. 특히 주민조직 사업은 사회복지사, 주민 조직 활동가(자원봉사자), 공무원,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간의 복합적인 관계 위에서 구축된다.
나는 인간 관계를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이익과 손해적 관계', 둘째, '의미와 가치적 관계', 그리고 셋째, '그냥 좋아서 만나는 관계'이다. 과거에는 사명감이 넘쳤던 20~30대 활동가 시절에는 의미와 가치적 관계가 가장 고귀하다고 믿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생각이 달라졌다. 넘기 어려운 벽에 부딪히고 시행착오가 쌓일수록 정답이 없어지듯, 관계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떤 관계가 더 고귀한가?"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각 유형의 관계 방식은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는 영역이 아니라, 각 상황과 역할에 따른 '적합성'이 다를 뿐이다. 주민조직 담당자는 우선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가치적 관계'를 지향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주민의 봉사 참여(이익), 사명감(가치), 인간적 친밀감(좋아서) 등 이 세 가지 관계가 지속적으로 얽히며 작동한다. 문제는 특정 관계 방식에 대한 '기계적 편향성'을 고수할 때 관계가 깨지거나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이 편향성이 만들어내는 현장의 안타까운 사례를 종종 목격한다.
가령, 구도심 A복지관의 반찬 나눔 사업 담당자 B복지사가 주민들과 친밀한 '좋아서 관계'에 편향되어 업무의 공적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다. B복지사는 '항상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데 집중하여 행정 절차나 업무 분장을 명확히 요구하지 않았다. 이에 C주민 조직 활동가(자원봉사자)는 초기의 '가치' 동기에도 불구하고 B복지사의 사적 요청까지 수행하게 되면서 관계의 피로감을 호소하곤 했다. 또한, D이용자(어르신)는 이 관계를 '서비스 수혜'라는 '이익적 관계'로 우선 인식하여 C활동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결국, B복지사가 손익적 측면(업무 분장과 책임)과 가치적 측면(사업의 공적인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좋아서 관계'만 고수하자, C활동가는 이탈하고 사업의 질은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즉, 손익 관계를 잘 관리하려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는 듯 보여도 가치와 '좋아서 관계' 방식을 함께 활용해야 전략적으로 지속적인 이익(성과)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치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명확한 손익 계산(규칙)이 필요하고, '좋아서 관계'의 정서적 윤활유도 적절히 포함해야 한다.
이번에는 가상의 사례를 통해 관계 역동의 상황을 분석해보자. 한 지역의 지하철역 주변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한 마을 조사 사업에서 복잡한 관계 역동이 발생했다. 조사 사업 담당 사회복지사인 김 복지사는 장애인 이동권 향상이라는 대의에 몰두하여 '가치적 관계'에 편향되어 있었다. 조사 활동의 힘듦이나 현실적인 제약을 간과하기 쉬웠던 것이다. 이와 달리, 장애인 활동가인 정 활동가는 정당한 이동권 확보라는 가치와 함께 조사 참여로 발생하는 활동비 지급 및 개인 이동 보조의 손익이 첨예하게 교차했다. 복지정책과 담당 공무원인 박 공무원은 이 사업을 정책적 성과와 예산 집행 효율성이라는 명확한 '이익적 관계'로 바라봤으며, 이 조사활동에서 발생될 복잡한 민원과 행정 피로도를 손해로 인식했다. 마지막으로, 마을 자원봉사자인 이 봉사자는 정 활동가와의 인간적인 친밀감과 선한 의지로 참여한 '좋아서 관계'에 편향되어, 활동 지속성에 대한 가치 부여나 손익 계산(업무 강도)은 약했다.
사업 초기, 김 복지사의 열정(가치), 정 활동가의 사명감(가치), 이 봉사자의 헌신(좋아서)이 합쳐져 조사는 순조로웠고, 박 공무원도 예산 집행에 문제가 없어 '손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활동이 심화되자 갈등이 발생했다. 정 활동가가 "조사 과정에서 활동비 외에 추가적인 이동 지원(손익)이 필요하다"고 요구했고, 김 복지사는 예산의 한계(손익)에도 불구하고 대의(가치)를 위해 이 봉사자에게 "조금만 더 봉사해달라"며 요청했다. 이에 이 봉사자는 "마음이 좋아서 돕는 건데, 생각한 이상의 책임이 따르는 일까지 요청하니 피곤하다"며 이탈을 고민했다. 한편, 박 공무원은 보고서에 이상적 가치 대신 "예산 범위 내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손익)"만 반영하려 했고, 김 복지사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규정대로 하라"며 인간적인 공감(좋아서)이나 문제 해결 노력(가치)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김 복지사가 가치 관계에 편향되어 활동의 손익과 '좋아서 관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자, 활동가와 봉사자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으며, 박 공무원의 일방적인 손익 계산은 이 사업의 핵심 가치를 훼손시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동기마저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주민 조직 현장에서 관계의 역동을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사 중'의 미학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모두는 ‘미완성 상태’이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주민활동가, 이용자 모두 완벽한 존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공사 중'인 사람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만나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기대’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이 구절에 이어지는 메시지처럼, 나에게 오는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오기에 어마어마한 것이며, 이는 오히려 ‘기대를 낮추고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나는 사회복지 주민조직, 또는 비영리기관 활동가들이 사람을 조직하는 일을 할 때, 즉각적인 성과나 해결을 목표로 삼지 않기를 소망한다. 건강한 관계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상호의존적 관계에 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민 조직 현장의 리더십이란 서로가 '공사 중'임을 안전하게 인정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때로는 손익을 따지는 책임감, 때로는 의미를 공유하는 가치, 그리고 때로는 순수한 정을 나누는 정서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도록 돕는 유연성에 있다고 본다. 이것이 주민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고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관계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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