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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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종종 ‘주민조직화’의 성과를 논할 때, 눈에 보이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거나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들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곤 한다. 반면, 복지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 교실, 독서 동아리, 취미 학습 모임 등은 상대적으로 ‘약한 단계’의 조직화라거나, 혹은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복지가 지향해야 할 ‘생존에서 행복으로’의 전환점에서, 학습 중심의 주민 모임이 갖는 깊은 함의와 그 강력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언어의 획득: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
2007년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크랜포드>(Cranford)를 보면, 1840년대 시골 마을에서 한 신사가 하층민 소년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는 감동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그 신사는 일곱 알파벳을 통해 삶의 본질을 가르친다. L(Labour, 노동), I(Intelligence, 지능), B(Books, 책), E(Education, 교육), R(Read, 읽기), T(Transcend, 초월), 그리고 Y(You, 당신)이다. 이 일곱 철자가 모여 완성된 단어는 바로 ‘LIBERTY(자유)’다. 즉, 학습하는 일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주민들, 특히 빈곤과 소외 속에 있는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실행했던 ‘희망의 인문학’의 저저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인문학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고통과 상황을 타인에게 명료하게 설명할 언어를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사회적 요구도 단순한 비명으로 매몰되기 쉽다. 따라서 주민들이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한가한 여가 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한 기초 단계로서 ‘언어’라는 조각을 모으는 치열한 과정이며,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로 들어가는 열쇠를 획득하는 행위다.

갈라진 틈을 공감으로 채우는 관계 처방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

학습 조직이 지역 사회의 튼튼한 뿌리가 된다
지금 지역사회는 관계의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 빈곤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이미 일본의 경우 2022년 기준, 고독사 인구의 유산 상속인이 없어 국고로 귀속된 유산 총액이 768억 엔(약 7천억원)에 달했으며, 국내 역시 지난 10년간(2014~2023년) 고독사 인구의 국고 귀속 유산이 121억 원으로, 이러한 추세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관계의 빈곤은 실제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없더라도 심리적 빈곤을 야기하며, 주민의 삶을 위축시킨다. 이러한 고립을 해결하는 처방은 바로 ‘관계처방’이다. 학습 동아리는 주민들이 서로를 ‘고립이웃’, ‘수급자’, '독거노인'이라는 행정적 이름표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학인(學人)’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바로 관계 처방의 핵심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저자이자 교육운동가인 파커 팔머는 “교양(Liberal Art)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라고 했다. 이제 일선 사회복지관의 평생교육 및 학습 동아리 사업은 단순히 취미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넘어, 주민이 ‘자유로운 시민’으로 성장하는 훈련장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학습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찾고, 타인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은 주민들만이 비로소 “이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건강하게 답할 수 있다. 학습 모임이라는 단단한 뿌리가 내린 후에야, 지역 문제 해결이라는 줄기와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여러분들이 운영하는 그 작은 독서 모임, 글쓰기 교실, 인문학 강좌, 학습 동아리가 바로 주민조직화의 최전선이다. 주민들이 삶의 무늬(人文)를 스스로 그려 나갈 수 있도록, 펜과 책, 그리고 대화의 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지향해야 할, 생존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사회복지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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