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선 By 이세형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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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AI, 경쟁을 넘어 공생의 문법을 써야 할 때
2016년 3월, 전 세계의 시선이 서울 포시즌스 호텔 한 대국장에 쏠렸다.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마주 앉은 그 장면은, 단순한 바둑 대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지능과 정면으로 대결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때만해도
인류는 AI를 대결의 상대, 경쟁의 상대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때는 말이다.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로 규정했고, 세상은 그 싸움의 승패에 열광했다.
그러나 4대 1의 패배 앞에서 인류는 경악했고,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AI라는 존재를 새롭게 각인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의 언어는 바뀌었다. 일단 지금 '경쟁'은 '협업'
으로 대체되었다. AI는 의사의 진단을 돕고, 사회복지사의 사례 분석을 지원하며,
교사의 수업을 보완한다. 기업은 AI와 함께 일하는 인재를 원하고, 대학은 AI 리터러시를
필수 역량으로 가르친다. 이세돌 본인조차 훗날 "AI와 함께 바둑을 연구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위 '적'이었던 존재가 동료로 호명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춰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한다. '협업'이라는 언어조차
이미 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협업은 여전히 인간이 주체이고 AI가 도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스스로 논문을 쓰고, 스스로 코드를 수정하며,
스스로 감정을 모사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도구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지만,
오늘의 AI는 이미 명령 이전에 제안한다. 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우리는 협업이라는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관계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인간과 AI의 관계는
세 단계의 진화를 거쳐 왔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대결의 시대였다. 인간은 AI를 인류의 우월성을 시험하는 거울로 삼았고,
패배를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둘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협업의 시대다. 인간의 창의성과 AI의 처리능력이
결합되어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단계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셋째 단계는 공생(共生)의 시대다. 이 단계에서 AI는
단순한 도구도, 대등한 파트너도 아닌, 인간 사회의 생태계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하나의 존재 양식이 될 것이다.
공생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 의미에서 공생은 두 존재가 서로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AI의 공생은 단순한 상호 이익의
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AI를 통해 더 인간다워지는 구조여야 한다.
AI가 반복적 업무와 데이터 분석을 담당할 때, 인간은 비로소 윤리적 판단,
공감, 돌봄, 관계의 영역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의 언어로 말하자면, AI가 취약계층의 욕구를 정밀하게 탐지할 때,
사람인 사회복지사는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껴안는 관계적 지지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다. 이것이 공생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나 공생의 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 낙관주의다.
AI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맹신은 인간 스스로의 책임과 역량을
약화시킨다. 공생은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인간이 AI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설계해 나가는 성찰적 실천의 과정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AI 기술은 이미 사회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는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충분히 갖춘 계층은 AI를 통해 더 큰 기회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AI가 매개하는 서비스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배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생의 사회란, AI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닿는 사회다.
AI 공생의 문법은 기술의 언어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언어로 쓰여야 한다.
이세돌이 알파고 앞에 앉았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졌지만, 지지 않았다.
4번째 대국에서 인간 역사상 유일하게 알파고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그는 기계가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인간의 가치는 AI보다
더 많이 계산하는 데 있지 않다. 예측 불가능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의미를 묻는
존재로서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다.
공생의 시대에 인간이 AI에게 위임할 것과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 신의 한 수다. 경쟁의 언어로 AI를 바라보던 시대는 지났다.
협업의 언어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깊은 질문을 해야 한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일이야말로, 기술이 아닌 인간의 몫으로 남겨진 가장 본질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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