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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 접근법, '문제와 욕구'에 대한 혼동과 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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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 접근법, '문제와 욕구'에 대한 혼동과 오역'

 

1. ABCD 접근법, 사회복지 현장의 '욕구조사' 관성에 대한 균열

한국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욕구 조사(Needs Assessment)'는 기획의 시작이자 성패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으로 통용되어 왔습니다. 지역사회가 처한 문제, 당사자가 겪는 결핍, 해결해야 할 위기 요소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명하는 과정은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핵심 업무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이러한 결핍 중심의 욕구조사는 의도치 않게 지역 주민을 수동적인 서비스 수혜자로 고착화하고, 지역사회의 내부 역량을 전문 기관에 의존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자산기반 지역사회개발(Asset-Based Community Development, 이하 ABCD) 접근법은 사회복지계에 새로운 통찰과 실천적 접근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문제보다 자산에 집중하라"는 명제는 실무자들에게 실천의 전환점을 제공하는 듯했습니다. 반면 현장에서는 "그렇다면 당사자가 직면한 고통과 현실적인 욕구, 그리고 당면한 문제는 외면해도 좋다는 말인가?"라는 ABCD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ABCD 접근법을 현장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오해이자 실천적 걸림돌입니다


최근 자산기반 접근과 관련된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이러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자산기반 접근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내부자산 및 외부자원의 관계를 통해 패러다임의 본질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2. 근본적 원인: '문제(Problem)''욕구(Need)'의 개념적 혼동

ABCD 접근법에 대해 현장이 오해를 품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오랜 행정적 편의와 공급자 중심의 실천 관행으로 인해 '문제''욕구'라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개념을 동일시해 온 사회복지 현장의 관성에 있습니다. 이 두 개념의 정밀한 분리 없이는 자산기반 접근법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제(Problem)'는 인간의 안녕 상태를 저해하는 부정적인 조건이나 제거해야 할 결핍을 의미합니다. 빈곤, 질병, 사회적 고립,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은 명백히 해결하거나 제거해야 할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반면, '욕구(Need)'는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이자 삶의 지향점입니다. 욕구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자 목적적 성격을 지닙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이 두 개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사자가 '사회적 고립'이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의 욕구는 단순히 '고립의 해소'라는 문제 해결 상태로만 치환됩니다이처럼 문제와 욕구를 동일시할 때 사회복지 실천은 치명적인 오류에 직면합니다.

 

올바른 의미의 욕구 조사는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과 지향점을 파악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곧 욕구로 인식하게 되면, 조사의 목적은 당사자의 결핍을 나열하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극심한 고립 상태에 놓인 당사자가 있을 때, 진정한 욕구 관점에서는 '실패해도 비난받지 않을 안전한 관계망'이나 '상호호혜적 정서적 지지체계 구축'과 같이 당사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긍정적 지향점을 탐색합니다. 반면, 문제 중심 관점에서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일수''외출 횟수 부족' 등 부정적인 지표에만 주목하게 됩니다. 그 결과 당사자가 가진 잠재력, 강점, 일상의 맥락은 배제된 채, 조사지는 오직 당사자가 '무엇이 부족하고 왜 불행한지'만을 증명하는 결핍진단서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는 복지 서비스 공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정적 수단으로 기능할 뿐입니다.

 

복지 서비스의 수급 자격과 지원 규모가 오직 '문제의 심각성'에 의해서만 결정될 때, 당사자는 실천의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객체로 머물게 됩니다. 제한된 복지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당사자는 자신이 얼마나 취약하고 무능력한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고립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기관과 담당자에게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로 인해 당사자는 생존과 서비스 수급을 위해 자신의 불행과 결핍을 과장하거나 부각하는 '결핍의 자기 상품화' 전략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적 존재가 아닌, 시혜와 처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심리적 위축과 악순환이 발생합니다사회복지 실천에서 문제는 제거하거나 완화해야 할 '출발점'이며, 욕구는 당사자가 실현하고자 하는 삶의 목적인 '지향점'입니다.


당사자의 존엄성과 목적중심적 실천위해서는 두 개념을 엄격히 분리해야 합니다. 현장의 조사는 결핍의 크기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당사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과정으로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만 개입하는 사후 처방식 서비스가 주를 이루게 되면, 당사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예방적·개발적 실천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구분

문제 (Problem)

욕구 (Need)

개념적 정의

인간의 안녕을 저해하는 부정적 조건 및 제거해야 할 결핍

인간 존엄성 유지와 잠재력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 및 지향점

실천적 성격

사후 처방적, 병리주의적, 제거 중심

사전 예방적, 목적 중심, 실현 지향적

당사자 지위

문제를 증명해야 하는 수동적 수혜자 (고객)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역동적 주체 (시민)



3. 순서의 혁신: 자산사정 이후의 문제사정

자산기반 접근에 대해 현장 실천가들이 던지는 흔한 질문 중 하나는 "문제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사자의 현실적 고통을 방임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BCD 접근법은 문제를 배제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를 다루는 '순서(Sequence)'와 사정의 관점을 혁신할 뿐입니다.


기존 결핍 중심 접근은 문제를 가장 먼저 사정하여 지도를 그리고, 당사자를 결핍의 집합체로 규정합니다. 반면 ABCD 접근법은 자산사정(Asset Mapping)을 선행합니다. 주민 개개인의 은사와 지역의 자발적 소모임을 먼저 확인하여 공동체의 내적 능력을 비축하는 것입니다. 자산을 선행 파악하여 주민들이 주체성과 힘을 회복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문제사정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주민들은 지역의 고질적인 위기나 빈곤, 사회적 고립을 해결 불가능한 절망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산과 역량으로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로 인식하게 됩니다. , 문제사정은 자산사정 이후에 배치될 때 비로소 당사자를 무력화하지 않고 주체적 문제 해결을 독려하는 건강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4. 자원의 재정의: 내부자산과 외부자원의 대등한 결합

현장의 관성은 외부 자원의 크기가 곧 복지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ABCD는 내부자산과 외부자원을 명확히 구분하고 대등한 관계망을 형성을 제안합니다.


첫째, '내부자산(내부자원)'은 지역사회 내부와 당사자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실질적인 역량과 동력입니다. 주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은사(Gifts),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소모임이나 결사체(Associations), 그리고 지역 내 공식적 기관(Institutions)이 지닌 인적·물적 자원과 촘촘한 이웃 관계망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주민이 이 내부자산을 동력으로 삼아 주도적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의존적 원조 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둘째, '외부자원'은 지역사회 외부로부터 유입되거나 주입되는 재원과 전문가의 전달체계를 의미합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위탁금, 공공 및 민간 지원 시스템을 통해 배분되는 예산이나 사업비, 그리고 당사자의 주체적인 참여 기회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외부전문가의 진단과 처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ABCD 접근법은 외부자원의 투입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폐쇄적 고립주의가 아닙니다. 핵심은 결합의 메커니즘에 있습니다. 내부자산의 사정과 조직화가 선행되어 공동체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동원력을 갖춘 후에 외부자원을 결합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외부자원은 공동체를 지배하고 의존하게 만드는 독소가 아니라, 내부자산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을 보완해 주는 대등하고 효과적인 파트너십 도구로 전환됩니다.

 

5. 패러다임 전환 사례: 미국과 한국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각국 사회복지 현장에 준 충격의 맥락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대대적인 외부 재원 투입에도 불구하고 도시 빈민가가 지속적으로 슬럼화되는 정책적 위기 속에서 충격이 발생했습니다. 복지 대상자를 문제의 집합체로 취급하던 기존 정책이 오히려 주민들의 의존성을 심화시켰다는 성찰이 일어났고, 주민의 은사를 중심으로 상향식 발전을 도모하는 ABCD는 미국 복지계에 커다란 정책적 전환점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후반 이후 복지관과 마을공동체 사업을 중심으로 ABCD가 시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복지 현장은 정부의 위탁금과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당사자의 취약성을 증명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공급자 중심의 구조적 관성이 매우 강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당사자의 문제를 조사하기에 앞서 지역의 자산과 주민의 은사를 먼저 연결해 실천했던 사례는 기존 사업 기획 방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2026년에 서울복지재단에서 출간한 K-지역복지 사례집, 일선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이 ABCD 이론을 기반으로 한 실천 사례집을 출간하며 대안적 실천을 모색하는 것은, 이 패러다임 전환이 현장의 오래된 관성과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결론: 사회복지사 역할의 재정의와 '관계의 기획자'

문제와 욕구를 혼동해 온 현장의 오래된 관성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자산기반 접근은 당사자의 결핍된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본연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가진 은사와 가능성에 우선점을 두는 실천입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 정의를 다시 할 필요를 제기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당사자의 문제를 진단하여 외부 자원을 전달하는 '중재자''문제 해결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당사자의 삶의 지향(욕구)을 경청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은사를 찾아내며, 이를 이웃 및 지역사회 자산과 촘촘하게 엮어내는 '관계의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핍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자산의 집중하는 것은, 당사자를 문제의 집합체로 보지 않고 가능성의 주체로 환대하는 과정이 됩니다. 그리고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그들의 욕구를 주체적인 방식으로 충족해 나갈 때, 상호호혜성에 근거한 공존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지역사회 복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및 주석]

각주 (Footnotes)

1. Kretzmann, J. P., & McKnight, J. L. (1993). Building Communities from the Inside Out: A Path Toward Finding and Mobilizing a Community's Assets. Institute for Policy Research.

2. Mathie, A., & Cunningham, G. (2003). From clients to citizens: Asset-based Community Development as a strategy for community-driven development. Development in Practice, 13(5),

474-486.

3. Health Assets in a Global Context: Theory, Methods, Action. Springer.

 

미주 (Endnotes)

1.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초기 ABCD 운동은 전후 미국의 '빈곤과의 전쟁'이 가져온 제도적 한계와 주민 무력화를 비판하며 시작되었습니다.

2. 한국 현장에서의 ABCD 적용은 기관 주도의 일방적 서비스 전달체계를 탈피하고 주민주도의 상향식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실천적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3. 크레츠만과 맥나이트(1993)는 전통적 욕구 조사가 지역사회를 '문제가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여 주민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4. 매시와 커닝햄(2003)은 당사자가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서 권리와 책임을 행사하는 '시민'으로 전환될 때 진정한 역량 강화가 이루어짐을 강조했습니다.

5. 건강 생성적 모델(Salutogenesis)은 질병이나 취약성의 원인을 찾는 전통적 병인론에서벗어나,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촉진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긍정적 요인에 주목하는 이론입니다.

6. 지역사회 내부와 당사자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역량과 동력을 의미합니다. 자산기반 지역사회개발(ABCD) 접근법에서는 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주민 개개인의 은사(Gifts), 지역 내 자발적 소모임(Associations), 그리고 공식적 기관(Institutions)의 자원을 규정합니다. 또한 당사자를 둘러싼 이웃 관계망도 이에 포함됩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내부 자산을 동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외부 의존적 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7. 지역사회 외부에서 주입되거나 유입되는 재원 및 전문가의 전달 체계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위탁금, 공공 및 민간 지원 시스템을 통해 배분되는 예산이나 사업비가 이에 해당합니다. 당사자의 주체적인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외부 전문가의 진단, 전문가의 처분, 그리고 의존적 원조 방식도 외부자원의 범주에 속합니다.

8. 두 자원의 관계: 자산기반접근법은 외부자원의 투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 자산의 조직화와 동원력을 먼저 갖추어 주민이 변화의 주체가 된 후에, 외부자원을 대등하고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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