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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개입의 기술 ―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관계를 만들고, 구조를 세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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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상자중심
  • 신뢰관계형성

수급자는 아니었지만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무려 7번이나 발굴되었던 대상자가 있었다. 그의 삶을 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열 번도 더 됐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누군가의 소개로 가끔 하는 일용근로, 이혼하지 않은 채 별거하며 지낸지 너무 오래 되어 정리되지 않은 가족관계 문제 등이 걸림돌이었다. 공공부조의 제도권 안에 포함되거나 근로 생활을 유지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건강보험료나 임대료 등 대부분의 월단위로 납부 해야 하는 고지서 체납 상황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복지사각지대로 처음 발견되었을 때야 긴급복지 등 현금성 지원으로 단기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 상황이 5, 6, 그리고 7번 이상 반복되다 보면 만성적으로 문제의 본질이 변해간다.

 

처음 복지사각지대 대상자로 발굴 되었을 당시의 초기상담에서 그는 당장 내야 할 고시원비 등을 경제적지원만 조금 받으면 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본인은 건강하고 기회만 되면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잠깐 어려운 상황만 해결되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어 보였다. 다시 말하면 공공데이터에서 발굴된 어려움들 외에 그다지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와 관련한 추가적인 서비스연계나 사례관리 등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경우 대상자의 서비스 욕구나 정황 판단만 해 보면 단순 긴급복지 지원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은 사례였다. 현장은 늘 바쁘고 담당자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민원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표면적인 욕구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은 어떠신지, 요즘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 묻자 처음에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조금씩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본인을 고용해 주는 회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하던 경비일 까지 그만두게 된 이후 생활 리듬이 무너졌고,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이 많았으며, 사람들과의 연락도 거의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방에 더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날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생계 문제로 보였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경제적 어려움 뒤에 정신건강 문제와 사회적 고립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일회성 지원만 받으려고 했던 대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이러한 대상자의 심정 변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레 그 이후를 기약하고 지속적인 안부확인, 모니터링 등을 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갔고 추후 다양한 문제상황들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결국 사례관리 대상으로까지 선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부 사례회의를 진행했고, 단순한 서비스 연계를 넘어 지속적인 사례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주민들은 처음부터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로는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바로 안내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는 과정이 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 사례 역시 단순한 복지사각지대 발굴 상담에서 시작되었지만, 관계 형성을 통해 보다 깊은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케이스였다.


결국 대상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위기 상황이 복합적이고 여러 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례관리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문제나 위기 상황의 개수가 아니라 대상자들의 삶을 구성하는 어려움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경제적 위기가 건강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어려움이 일시적인 위기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개입이 필요한 상태인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대상자의 변화 의지와 서비스 수용성이다. 아무리 복합적인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대상자가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개입은 지속되기 어렵다. 실제로 복지사각지대 발굴 과정에서 처음 만나는 신규 대상자들은 사례관리처럼 자신의 삶을 깊이 드러내야 하는 서비스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 연계와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개입은 속도보다 순서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정신건강 상담이나 사례관리를 권유하기보다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초기 방문에서는 체납 문제나 공과금 정리, 필요한 복지서비스 안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살펴본다. 이후 생활환경이나 식사 상태,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이러한 대화를 통해 대상자의 삶의 맥락과 숨겨진 어려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담은 단순한 제도 안내를 넘어선다. 과거의 직장생활, 가족관계, 실직 경험, 사회적 관계 단절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현재의 어려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처음에는 부인하거나 회피하던 우울감, 불안, 음주 문제와 같은 어려움을 스스로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이때 비로소 정신건강 서비스나 전문기관 연계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현장에서 중요한 변화는 서비스가 연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거부하던 사람이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더 의미 있는 변화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 번의 상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차례의 방문과 대화, 그리고 작은 약속들이 쌓이면서 형성되는 신뢰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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