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WISH지기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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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F 서울시복지재단 SEOUL WELFARE FOUNDATION
돌봄과 사회복지 지역사회에서 영케어러 만나기
칼럼리스트 소개 조기현 (N인분 대표)
아빠의 아빠가 됐다
20살 때부터 아버지 돌봄을 시 작해서 15년차 보호자입니다.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을 운영하 며 영케어러와 돌봄 관련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책 제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우리의 관계 를 돌봄이라 부를 때>(공저) 등 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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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소개
지역사회에서 만난 영케어러,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지역사회에서 노인 가정이나 장애인 가정에 방문한다고 해 보자.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복지 욕구를 조사하고, 동거 가족을 확인하는데 같이 사는 아동이나 청소년, 혹은 청년 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 학교에 갔거나 일하고 있기에 집에 서 마주치진 못했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이 영케어러 (Young Carer)일지 모른다. 영케어러란 장애나 질병 혹은 여타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 혹은 친지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아동, 청소년, 청년을 부르는 말이다.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오며가며, 방문한 가 정에 영케어러의 흔적이 있다면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 까? 우선 영케어러를 바라보는 다양한 사각을 이해해보자. 1. 한국, 일본, 스웨덴의 영케어러에 대한 관점 한국의 법령과 조례에서는 영케어러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가족돌봄 등 위기 아동 • 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위기 아동청년법)에서는 '가족돌봄아동 • 청년'으로,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에서는 '가족돌봄청소년 • 청년'으로 정의한다. 영케어러는 돌봄 부담으로 생애 과업을 하지 못한다. 아동 기에 충분히 정서나 언어 발달을 하지 못하고, 청소년기 학업과 또래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며, 청년기에 대학진학이 나 취창업 등에 큰 장벽을 겪는다. 돌봄 부담으로 자격증 취득이나 취업 준비 등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도 힘드니, 빈곤이 생애주기 전반에 장기화된다.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한국의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이다. 돌봄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유복지플랫폼 기획칼럼 03 돌봄과 사회복지 - 지역사회에서 영케어러 만나기
일본도 우리가 비슷한 속도로 영케어러 지원이 발전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은 영케어러가 돌봄 부담 속에서도 발달과 성인이행기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아니다. 성인이 맡아도 힘든 돌봄을 아동과 청소년이 맡는 것을 '학대'라고 규정한 다. 과도한 돌봄으로 등교거부, 퇴학, 우울, 사회적 고립 등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돌봄 부담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원책이 논의된 맥락의 차이도 크다. 한국은 청년정책에서부터 영케어러 지원을 시작했고, 일본은 아동정책에서부터 영케어러 지원을 시작했다. 스웨덴은 영케어러라는 말조차 쓰지 않는다. '친족으로서의 아동'이라고 부른다. 이는 영케어러라는 표현이 '아동이 실제로 가족을 돌보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적 지원을 아동의 돌봄 여부로만 결정한다면, 아동이 성장 과 정에서 꼭 필요한 돌봄과 자원을 보장받을 권리가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스웨덴의 영케어러 지원은 돌봄 제공 여부가 아니라, 돌봄 상황에 놓여 있기에 겪을 수 있는 피해에 주목한다. 아이가 안정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감정이나 언어의 발달을 이루고, 학업과 또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즉 '성장권'의 관점이 지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영케어러라는 말조차 쓰지 않는다. '친족으로서의 아동'이라고 부른다. 이는 영케어러라는 표현이 '아동이 실제로 가족을 돌보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적 지원을 아동의 돌봄 여부로만 결정한다면, 아동이 성장 과 정에서 꼭 필요한 돌봄과 자원을 보장받을 권리가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스웨덴의 영케어러 지원은 돌봄 제공 여부가 아니라, 돌봄 상황에 놓여 있기에 겪을 수 있는 피 해에 주목한다. 아이가 안정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감정이나 언어의 발달을 이루고, 학업과 또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즉 '성장권'의 관점이 지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2. 효자나 효녀가 아닌, 영케어러 영케어러에 대한 나라별 시각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만났거나 만나게 되는 영케 어러 또한 하나의 입체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각처럼 돌봄을 하고 있음에도 생애과정 이행에 불이익을 겪지 않아야 한다 는 점만 바라본다면, 영케어러가 돌봄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목할 수 있을까? 일본의 과도한 돌봄을 학대라고 보는 시선은 한 걸음 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이들은 돌봄 그 자체에 대한 주관적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똑같은 가사, 간 병, 병원동행 등의 돌봄 활동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할 만한 일이다. 학대의 관점은 '과도한 돌봄'을 제한할 수 있지만, 돌봄 그 자체를 학대 나 폭력으로만 규정할 위험성이 있다. 스웨덴의 관점은 진일보한 것처럼 보인다. 한 사례를 보자. "영케어러인지 알고 지원하고 있었는데, 비행청소년이더라고요." 실제로 한 사회복지사 분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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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이랬다. 인지저하가 온 할머니를 두고 같이 살던 중학생 여성이 가출했다. 그는 집에 있을 때도 할머니를 잘 돌보지 못했다. 위생 상태는 늘 좋지 않았고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영케어러 지원을 받을 '자격' 이 있을까? 한 번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는 영케어러일까? 아닐까? 우리가 만약 영케어러를 돌봄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여부, 그리고 '얼마나 성실하게 하고 있는지' 여부로 본다면, 우리가 찾는 영케어러의 모습은 효자 혹은 효녀의 모습 일 것이다. 기특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의 영케어러. 만약 그런 이들에게만 지원의 자격 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들의 성장권을 온전하게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최소한 지역사회에서는 돌봄을 얼마나 하고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아픈 가 족이나 친지가 있기에 이들에게 박탈된 것은 무엇인지 먼저 고려해야 한다. 스웨덴의 관점이 주는 시사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3. 돌보는 사람과 돌봄 필요한 사람 통함적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에 있는 아동, 청소년, 청년을 만난다. 이들에게도 어떤 복지 욕 구가 있는지 같이 조사한다.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이고 진전이다. 이제까지 돌봄이 필 요한 사람만이 복지의 대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옆에서 돌봄에 대한 부담으 로 같이 무너지고 있을지 모를 사람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 모두 지원이 필요한 존재로 보고, 통합적인 욕구 조사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서비스나 식사, 참여 가능할 프로그램 지원이 이뤄지고. 돌보는 사람에게 교육 지원. 심리 지원. 직업 훈련의 계기를 마련한다면 어떨까?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토대가 만 들어지지 않을까? 이제 다양한 사례들을 만나볼 차례다. 영케어러들을 왜 만나기 힘들고, 소통할 때 주 의할 점은 무엇이며, 거부할 시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다음 칼럼에서 순차적 으로 함께 고민해보자.SEOUL WELFARE EDUC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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