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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공감과 신뢰를 만드는 대화


AI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습니다 


칼럼리스트 소개  

조에스더(엘컴퍼니 대표,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사람에게 닿는 말을 오래 연구하며, 단절된 사람과 사람, 말과 마음을 연결해 온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정치인, 기업 CEO 등 다양한 전문직과 성인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 감정관리를 주제로 강의와 컨설팅 진행. 

 

칼럼 소개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돕고 있습니다. 기록을 정리하고, 정보를 안내하고, 반복되는 업무를 덜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침묵 속 마음을 읽고, 신뢰감이 가득한 눈동자를 알아차리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칼럼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시선으로 복지 현장을 바라보려 합니다. AI 시대에도 왜 대면이 필요하고, 왜 공감은 자동화되지 않으며, 왜 설명과 경청의 힘이 더 중요해지는지, AI로 자동화된 기록에 다 담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삶의 장면과 언어로 차분히 풀어내고자 합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윌이 상담가 숀과 자신의 심리기록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윌은 파일 속 자신이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묻습니다. 자신이 애착의 문제를 가진 사람인지,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관계를 망치는 사람인지,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마저 밀어낸 것인지 더듬듯 확인합니다. 그러나 숀은 그 기록이 윌이라는 사람 전체를 말해 주지는 못한다고 응답합니다. 진단과 분석은 단서가 될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결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의 아픔은 기록될 수는 있어도, 기록만으로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복지 현장에서도 기록은 필수입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이미 남겨진 기록을 읽어야 하고, 지금 만난 사람의 상황도 다시 정확히 남겨야 합니다. 기록은 지원을 이어 주고, 놓치기 쉬운 정보를 붙잡아 두며, 다음 사람에게 상황을 건네는 다리가 되어 줍니다. 그러나 기록 속 단어와 숫자가 그 사람의 삶을 다 담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65세’라는 나이 안에는 요즘 따라 잦아진 한숨의 이유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축 처진 어깨 위에 오래 얹혀 있는 걱정의 무게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 쏟아지는 고통과 염려를, 떨리는 목소리와 길어진 침묵을, “무척 힘들어함”이라는 몇 글자로 다 옮겨 적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AI의 등장을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조심스럽게 반가운 변화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실제로 공공서비스와 사회보장 영역에서 AI는 문서 처리, 자료 분류, 자격 확인 지원, 소통 보조 같은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를 덜어 주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을 보조하는 기술이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대신하는 기술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더 잘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덜어 준 시간을 무엇에 다시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일지 모릅니다. 

 

만약 AI가 정리와 초안 작성의 일부를 더 빠르게 도와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기록을 놓칠까 봐 조급해하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천천히 눈을 맞추고, 더 조심스럽게 궁금해하고, 말로 다 나오지 않는 한숨의 의미를 묻고, 쉽게 메우지 말아야 할 침묵을 함께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이 앞당겨 준 시간은 결국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정리와 요약은 기술이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는 여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사람의 말은 언제나 문장으로만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은 한숨으로 오고, 어떤 사연은 머뭇거림으로 오며, 어떤 고통은 끝내 설명되지 못한 채 표정과 침묵 속에 남습니다. 그러니 복지 현장에서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록의 완성도만이 아닙니다. 눈을 마주하는 일,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일, 침묵을 견디는 일, 기록되지 않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AI 기록 너머에,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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