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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사회복지_느린폭력에도 아프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느린폭력에도 아프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칼럼리스트 소개 : 김난미(리을미음 대표)

저는 불평등한 기후위기 시대가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사람다운 삶, 소박한 삶, 협동하는 삶을 놓치지 않으려 끊임없이 앎을 쫓고, 그 앎으로 연결된 삶을 살아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제 시선과 운동, 앎과 삶의 연결이 생태복지를 궁리하는 사회복지 현장에 씨앗, 거름, 양분이 되길 바라며 공유합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무렵 도서 <코로나 사피엔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과 탐욕, 그리고 무너진 생태계의 결과로 우리에게 왔다고 말이다. 지금 당장 생태적 전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더 빠르고 치명적인 위협이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코로나로 많은 것이 달라진 삶의 질서에 지역복지 현장은 무엇을 붙잡고 나아가야 하나를 고민하던 중, 그렇게 기후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화학백신만으로는 이 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역의 필요를 들으러 나섰다. 기후위기를 우리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부터 여쭤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 질문에 주민들은 기후위기? 지금 기후위기가 문제야?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라고 응답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 당시 모두의 삶이 너무 버거웠으니 그 대답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공감을 넘어, 화가 났다. 우리 주민들의 삶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무절제한 욕망과 탐욕을 일으킬 만큼 풍요롭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구로부터, 어디서 온 것인가 말이다. 나는 우리 삶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이 위기를 그냥 지나쳐버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도서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에서 롭 닉슨은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폭력, 시공을 넘어 널리 확산하는 시간 자체적 파괴, 전혀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폭력을 느린 폭력이라고 했다. 폭력은 흔히 가해자가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폭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너무 느리고, 오래 지속되며, 불평등하게 스며들기 때문에 우리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배고픈 사람에게 당장의 빵도 필요하지만 낚시하는 법을 익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사회복지 시작할 즈음 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실천은 언제나 오늘의 현실에 발 딛고 서 있지만, 그 너머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관계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기후위기라는 느린 폭력이 우리 삶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는 지금, 당장의 빵과 낚시하는 법은 어떤 실천이어야 할까! 머리를 맞댄 궁리,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절실하다.

 

매년 갱신하고 있는 폭염에 무더위쉼터와 얼음생수를 나누는 것, 장마철이면 수해 복구를 지원하는 등 이미 벌어진 폭력에 밴드붙이기식 지원만으로는 어렵다. 기후불평등 당사자인 주민의 일상에 매일 반복되는 취약한 아픔에 더 깊은 관심과 민감한 대응, 적극적 예방과 지속가능한 회복력을 길러내야 한다.

 

날씨로 인한 기후재난에서도 가장 두렵다고 말하는 폭염으로부터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좀 살만하겠는지? 폭우나 한파로부터 나와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은 어떤 모습일지? 두렵고 막막한 삶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나의 안부가 너를 위한 궁리가 될 수 있다는 연결의 감각을 깨워보자. 관계, 공감, 돌봄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느린 폭력에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다운 삶의 기본은 아프면 아프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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