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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조직 리더십3. 자신부터 리드하기
비영리조직 리더십3. 자신부터 리드하기

리더는 이끄는 사람입니다. 이끄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서 본을 보여주거나 함께 걷거나 뒤에서 밀어주거나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이끌어야 합니다. 리더의 시선이 항상 다른 사람을 향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사람을 놓치게 됩니다. 바로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리드해야 합니다. 자신을 리드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리드하면 억지를 부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확신이 없는 제품을 파는 영업 사업은 곤혹스럽습니다. 물론 표정을 감추고 최선을 다해 홍보를 하지만 고객은 바로 압니다. 고객은 이유를 딱 끄집어내지는 못해도 영업 사원의 표정과 몸짓으로 확신이 없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제품을 살 리가 없습니다. 비영리조직 중간관리자 리더십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자신을 리드하지 못하면서 조직원을 리드해야 하고, 촉박한 시간에 과업만 늘어갑니다. 갈수록 어깨의 짐만 무거워집니다. 최고 관리자와 조직원 사이에 끼어서 힘겨운 것은 그래도 견디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을 리드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확신과 혼란은 견뎌서 될 일이 아닙니다.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합니다. 시작은 조직, 팀원이 아닙니다. 내 자신입니다. 조직의 성과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조직원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답해야 하는 근본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이룰 것인가? 내 자신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리더십에서 갑자기 인문학 과제로 바뀐 게 아닙니다. 질문은 똑같습니다. 주어만 달라졌습니다. 조직과 팀원의 자리에 ‘나’를 주어로 넣어서 답을 하면 다른 시선이 생깁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나는 무엇을 이룰 것인가?현실과 이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상을 하늘이라고 생각하면 이상이 높을수록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연료도 없으면서 높은 하늘을 생각하는 건 공상입니다. 공상을 이루기 위한 다짐은 의지도, 열심도 아닙니다. 헛된 에너지 소비일 뿐입니다. 적정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철저한 현실인식에서 참된 긍정이 나옵니다. 하루 겨우 버틸 체력으로 한 달짜리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지자체와 법인의 특성, 최고 관리자의 성향, 조직원의 역량, 내가 가진 자원과 힘을 철저하게 분석해 봅시다. 그래야 현실적인 적정 목표, 나는 무엇을 이룰 것인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나는 내 자신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아는 것과 실천은 다릅니다. 아니 아는 것과 실천은 똑같은 말입니다. 알아야 실천하고 실천해야 아는 것입니다. 다만 아는 것과 실천의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알았다고 바로 실천으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룰지 알았다고 해도 바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직관리에서는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전략에는 끝이 없습니다. 적을 만나서 죽도록 싸우는 것도 전략이고 피하는 것도 전략입니다. 한 번 생각하는 것보다 두 번 생각하는 것, 하루 생각하는 것보다 일주일 생각할 때 더 정교한 전략이 나옵니다. 자신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없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략이 나올 리 없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근근이 버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이룰지를 고심하고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고심까지는 흔들려도 결정했다면 밀고 나가야 합니다. 부모의 양육에 일관성이 없으면 자녀는 혼란스럽습니다. 똑같은 행동에 어떤 때는 칭찬을 하고 어떤 때는 혼이 난다면 아이는 어떨까요? 리더의 확신에서 나오는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확신이 있어야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왜 흔들리냐면 자신부터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확신은 완전한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조직에서 완전한 답을 찾는 건 오히려 위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기관은 진리를 찾는 조직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과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최선을,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하는 곳입니다.조직과 조직원을 위해 고심하는 리더에게 제안합니다. 자리만 차지한 리더에게 할 말은 없습니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테지만요.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타적인 여러분은 조금 이기적이어도 됩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초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이순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불굴의 의지는커녕 몸이 조금만 아파도 좋은 말이 나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절제를 나쁜 일에만 사용합니다. 좋은 일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가진 체력, 의지도 한도가 있습니다. 한도를 넘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누가 봐도 한계를 넘어섰는데 본인만 모르고 억지를 부립니다. 본인은 뛰어간다고 생각하지만 누가봐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조직을 위한 희생도, 조직원을 위한 사랑도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동안 남모르게 애쓰셨습니다.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지만 안 되면 안식월이라도 한번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월이 안 된다면 주말만이라도, 주말 반나절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20분이라도 혼자만의 산책이라도 해야 합니다. 비행기 산소마스크 안내문에는 보호자가 먼저 착용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이를 살리겠다고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아이도 죽고 자신도 죽습니다. 나를 희생해서 아이를 살리겠다는 위대한 사랑이 아이를 죽이는 최악의 선택이 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내가 살아야 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가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한 양육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사는 부모, 자신을 리드하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반려가족에게 또 다시 닥친 사회적 참사
반려가족에게 또 다시 닥친 사회적 참사

최근 전국적으로 원인불명의 고양이 질병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어 반려인과 수의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주의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 언론 보도를 소개합니다.   집에서 키우던 반려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과 신경·근육병증을 앓다 폐사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88건 확인됐다. 피해 고양이들은 특정 사료를 섭취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부실한 사료 검증 및 관리 체계가 반려인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지난 20일 기준 동물보호단체 라이프가 접수한 반려묘 피해 사례는 총 236마리로, 이 중 88마리가 죽었다. 이 고양이들은 모두 특정 제조원에서 올해 1~4월 만든 사료를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의 제조원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 사료는 약 20종으로 알려져 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고양이의 연령·품종과 무관한 피해가 나타났으며, 공통점은 사료 이외에는 없다”고 밝혔다.이번 사태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사 의뢰를 받은 사료 30여건 가운데 3건을 검사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의심을 받는 사료의 제조원과 사료회사 역시 “아직 문제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2024. 04.22. 경향신문 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91919?sid=102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사회적 참사’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참사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의미하는데, 그 중에서도 사회적 참사는 사건이나 피해가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시스템의 부재, 사회적 압력 등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을 지칭합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회적 참사로는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이 있으며, 2017년 12월 ‘사회적 참사 특별법(정식 명칭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습니다.   참사라는 단어에 ‘사회적’이라는 서술어를 붙인 이유는 어떤 사고나 재난의 원인이 개인의 잘못이나 불운에 있지 않다는 것은 물론 그 피해에 대한 회복 역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사회적 참사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들 수 있습니다. 국가기구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연구 결과, 신고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해 1994년부터 2011년 사이에 사망자 20,366명, 건강피해자 950,000명, 노출자 8,940,000명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사실 우리 사회에 널리 쓰이는 가정용 화학제품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점, 그리고 영유아와 산모, 노인들, 이를테면 생물학적 약자들에게 큰 피해를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바로 반려동물 피해 사례입니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당시 피해자 중심으로 구성된 인터넷 카페에는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는데 그중에는 여러 건의 반려동물 사망사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돼 건강 피해를 입은 사건’에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 그리고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독성 화학물질에 함께 노출돼 건강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반려동물의 피해신고 사례를 확인하고자, 2020년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행한 조사자료를 중심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 반려동물 피해 규모를 추산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 반려동물 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반려동물의 10.7%인 약 9만 3천마리로 추산하였습니다. 이 규모는 2020년 1월 기준 공식적으로 정부에 건강피해를 신고한 사람 수인 6,730명 규모보다 약 13.8배 상회하는 수치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사회적의미 중 중요한 부분 하나는 생존자, 특히 부모가 그 책임을 느끼게 되는 문제였다. 오랫동안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 죽거나 사라진 후 생기는 상실감과 고통, 슬픔,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장애를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이라고 일컫습니다. 당시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해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들은 자녀를 잃은 만큼의 고통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사별의 고통과 그에 따른 위기를 자연스럽게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문제가 숨어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사람도 구제받지 못한 마당에 반려동물 피해가 무슨 대수냐는 주변 시선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했었지요.   그런데, 이글에서 새롭게 알리고자 하는 제2의 반려가족 참사는 최근 발생한 고양이 폐사사건입니다. 앞서 소개한 고양이 폐사 관련 기사는 여러면에서 가습기 살균제 반려동물 피해사건과 유사합니다.   현재, 피해 고양이와 폐사 고양이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림설명: 고양이 질병 및 사망 통계 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008#home이에 더하여,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피해자 가족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십여년전에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단, 고양이 사료가 원인일 경우라도, 고양이 사료를 사람은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와는 달리, 사람의 건강상 위험 요소는 적어 보입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이 겪고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심리적, 정신적 충격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반려동물을 잃은 피해자들의 경험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원인규명은 조속히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피해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사건을 돌아보며 이 시점에서 다음 내용을 강조합니다. 첫째, 문제의 원인을 하루빨리 규정하여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합니다.둘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특히 심리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셋째,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이들의 이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해야 합니다.넷째, 그리고 향후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진정한 사과 없이는 온전한 피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더 이상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의(혹은 인수공통) 질병 감시체계 시스템을 확립하고 이를 통해, 이상 질병 발생 시 조기 경보 발생 등의 방법으로 초기 대응하여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AI와 ESG 경영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미래
AI와 ESG 경영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미래

(글의 모든 사진 출처 : 픽사베이)시작을 위해 저의 연구 경험 일부를 소개합니다.   저는 경영학 중에서도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이는 기업가가 마땅히 가져야 할 정신, 태도, 행동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여(creativity), 남과 다르게 만들어내고(innovation), 시장에서 가치로 창출(creating value)해 내는 역량(competence) 또는 능력(ability)’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저에게는 ‘기업가들이 어떻게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 내서 결국 시장에서의 가치로 만들어내는지’ 여부가 중요한 관심사이자 연구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의 일상 만남이나 관계의 상당수가 실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들입니다(일반 기업가, 사회적기업가 모두 포함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과의 만남 또는 대화를 유심히 관찰해서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미나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성공의 비결이나 실패의 원인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저의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관련해서 약 15년 전에 인공위성 운영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시는 A 대표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A 대표님 : “김 선생,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가진 인공위성 운영 소프트웨어나 무인 감시 프로그램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나 : “아뇨~, 어느 정도인데요?”   A 대표님 : “전방 철책선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조금 좋은 장비와 운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만 탑재해도, 한밤중에 철책선 근처를 지나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 찾아내서 공격할 수 있어.”   나 : “엥? 그러면 그걸 왜 안쓰죠? 군인들이 고생을 덜해도 되고, 훨씬 적은 사람이 훨씬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잖아요...?”   A 대표님 : “바로 그거야, 사람이 덜 필요하면 지휘관도 덜 필요해 지겠지... 결국,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 때문에 본격적인 적용을 못하는 것이지...”   나 : “.......???.........”----------------------------------------   다음은 약 10년쯤 전에 모 자동차 회사에 견학을 갔다가 자동차 전면부의 유리와 문짝을 로봇이 자동으로 조립하는 장면을 보고 난 뒤에 실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시는 B 대표님과의 대화입니다.    ------------------------------------------B 대표님 : “김 선생, 만약 자동차 회사가 생산 과정을 마음먹고 자동화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능할 것 같나?”   나 : “글쎄요....어느 정도까지 가능하죠?”   B 대표님 : “거의 100% 모든 과정이 가능하다네. 물론, 공장을 다시 짓거나 시설에 투자비용 들기는 하겠지만, 그건 일시적이고 장기적으로는 훨씬 이득이 될 수 있지.”   나 : “그러면 설비 투자를 해서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기업은 생산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들은 더 값싼 자동차를 탈 수 있지 않나요?”   B 대표님 : “물론 그렇지, 그래서 지금 자동차 회사들은 점진적으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네. 하지만, 비용 절감만 생각할 수는 없지, 당장 그렇게 한다면, 여기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는 어떻게 될까? 그들이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어지면, 자동차는 누구한테 팔 수 있을까? 게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도 있는데, 단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잃게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 : “.......???.........”----------------------------------   두 번의 대화를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제 저를 충격(?)에 빠뜨린 마지막 대화로 넘어가 보죠. 세 번째 C 대표님은 영유아들이 즐겨보는 영상, 컨텐츠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제작 과정에서 기획, 영상, 음악, 목소리 녹음, 편집 등의 과정을 수행하는 기업입니다.   ------------------------------C 대표님 : “교수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즈니스에 AI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겠습니다.”   나 :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적용하실 생각이신가요?”   C 대표님 : “우선, 영상제작 과정에 포함된 성우들의 목소리를 AI에게 훈련시켜서 사람 성우를 AI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다만....”   나 : “다만, 뭐죠?”   C 대표님 : “훈련에 필요한 목소리 사용을 성우들이 허락해 줄까 걱정입니다. 당장 그들의 수입이 줄거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반대가 강해도 추진할 생각입니다. 상당한 비용이 절감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나 : “.......???........(순간, AI에게 방송국 일자리를 뺏겼다는 어느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영상을 봤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   발견하셨나요? 제가 충격받은 포인트?   세 번의 대화를 순서대로 연결해 보면, 우선 15년 전에는 기술이 있어도, 사람들을 생각해서 본격적인 도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에는 완전한 기술 있지만, 사람들을 고려해서 점진적 도입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도입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성우는 오랜 시간동안 상당한 훈련을 거쳐야 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전문가 대접을 받으면서 꽤 높은 보수, 시간 등을 배려받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어제 저녁 TV에서 방영한 연예 프로그램처럼 사람들의 대화에 오가던 AI가 바로 그 전문가의 일자리를 뺏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바로 저를 충격에 빠뜨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5~6년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 이후, 저는 해당 개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너무 익숙해져서 상대방이 익숙하지 않아도, 마치 익숙하게 느낄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이 공부하고, 언급했던터라 오히려 최근에는 식상한 주제처럼 여겨졌었습니다. 미래에는 AI가 우리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조금은 먼 이야기처럼, 또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돌아보니, 동네 엄마들의 부수입 원천이었던 대형마트의 계산원이나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알바였던 패스트푸드 식당의 카운터 점원, 식당의 음식 서빙 등은 이미 무인 키오스크나 서빙 로봇으로 대체된지 오래입니다. 거리에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스티커사진 촬영관, 무인노래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드디어, 단순반복 일자리가 아닌, 전문가 중의 전문가에 해당되는 성우들의 영역을 침범하기에 이른 ‘AI’를 목도(目睹)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은 누구일까요? 어떤 직종, 어떤 직업 차례일까요?   앞서 저와 대화했던 세 번째 C 대표님은 자기 회사의 필수 업무 중에서 첫 번째 ‘성우’ 다음은 ‘그림’, 그 다음은 ‘음악’ 순으로 AI를 활용해서 사람을 대체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술만 확인되면, 최대한 빨리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포부(?)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머지않아 이 기업에는 대표와 AI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소수의 몇 사람만 남지 않을까요?   자, 이제 이야기를 ‘ESG 경영’과 ‘사회복지 현장’으로 가져와 볼까요?   성우들이 매번 목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우들과 잦은 통화를 해서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녹음을 할 수 있는 녹음실을 마련해야 하고, 냉난방 기기를 돌리고, 차와 다과를 대접하고, 공간과 물과 전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탄소’가 발생된다는 것은 자연히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제 C 대표님의 결정으로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비용도 현재 지출되는 수준에서 최소 30%에서 그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탄소 발생 측면에서도 이득이 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니 ‘ESG 경영’과 ‘기업 이익’ 모두에 도움이 되는 1석 2조 또는 3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할 이유가 없죠.   제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를 하던 초창기만 해도,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일’, ‘사람의 감성이 필요한 일’, 또는 ‘창작이나 대화를 통해 할 수 있는 일’ 등은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었습니다. 즉, 사회복지나 상담 등의 영역은 AI의 도입이나 적용이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아직도 그럴까요? 적어도 저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ESG는 이미 유럽에서부터 법제화의 길에 들어섰고, 일부 내용은 법으로 제정되어 시행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EU와 거래를 하는 대부분 기업을 비롯해, 수익이 필요한 다수의 기업들이 ESG를 도입 안할 수가 없게 되었죠. 이것은 지금부터 앞으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법의 영향도 없고, ESG에 대한 의무나 압박도 없는 영유아 컨텐츠 기업이 AI를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개선하려는 시도하는 모습을 바로 오늘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지금 현재의 이야기죠. 저는 이것이 경영계 전체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어떨꺼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복지는 여전히 AI 무풍지대일까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하니까 AI는 도입도 어렵고, 활용이나 적용도 불가능할까요?   저는 최근에 다양한 루트를 통해 사회복지분야에서도 ‘AI의 활용’과 ‘ESG 경영’의 도입에 관심을 가졌음을 감지하였습니다.   지난주 저는 AI 행동분석으로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인공지능으로 유형과 형태별로 수집하고, 빅데이터화 해서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후 이를 분석하여 적절한 행동 예방과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업무 분야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AI가 활용되거나, AI로 대체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세 번째 C 경영자처럼 비용 절감을 위해 또는 ESG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 AI를 비롯한 개발된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리더가 있다면...? 그 조직의 변화는 엄청날 것입니다.   이미, 자동차도 100% 로봇으로 만들 수 있고, 한밤중에 수풀 사이로 지나가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 발견해내는 소프트웨어 기술은 언제까지 묵혀둘까요? 훈련받은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대체하는 AI는 여전히 사회복지와는 상관없는 아주 먼 곳에서만 활용되고 있을까요?   AI와 ESG는 여전히 사회복지와 상관없이, 계속 일반 기업들에게만 적용되고 말까요?   강력한 변화가 이미 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만난 대표님과의 대화 이후 떠오른 지난 두 번의 대화, 그 세 번의 경험을 점이라고 치고, 그 셋을 선으로 연결해보니,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지가 보입니다.   ‘성우’의 자리에 ‘사회복지사’를 대입해 본다면, 어떤 ‘과정’과 ‘결과’가 예상되시는지요? 사회복지사의 미래는 어찌될까요?

ESG평가지표??_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복지관,  결국 복지관 정체성에서 시작
ESG평가지표??_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복지관, 결국 복지관 정체성에서 시작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복지관,

결국 복지관 정체성에서 시작

지난 4월 19일 서울시복지재단 서울복지교육센터에서 열린 ‘내일로 가는 클래서 ESG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천세화종합사회복지관 김용길 관장님과 ESG에 관하여

지금까지 공부하고 실천한 내용을 참석자 20여 명 앞에서 나눴습니다.

김용길 관장님 발표를 통해 현재 복지관들이 ESG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려고 하는지 알았고,

제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다시 한번 주장과 논리를 정리했습니다.

이번 일정은 여느 세미나와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발표자 두 사람이 각각 25분 정도 이야기한 뒤 청중에게 질문이나 소감을 들었습니다.

잠시 쉬었고 다시 다음 주제를 같은 방법으로 나눴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발표시간이 짧으면 이야기를 하다 마는 건 아닐지, 다소 산만해지면 어쩌나 했습니다.

여러 주제를 각각 짧게 나누니 핵심을 말하려 애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들을 때는 집중이 잘 되었고, 발표할 때는 부담이 없었으며,

수시로 청중의 생각을 말로 들으니 참석자 전체가 함께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세미나로 깨달은 게 있습니다.

ESG 가운데 특히 ‘E’, 기후환경과 같은 주제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에서

여느 복지관과 제 생각의 차이가 결국 ‘복지관 정체성’이나 ‘복지관 이상’, ‘복지관 지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를 조금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복지관마다 그 정체성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합의한 정체성이 없는 건 분명합니다. 이를 크게 두 모습으로 나눴습니다.

① 복지관은 더불어 살게 지원하는 기관

어느 복지관은 복지관을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나아가 더불어 살게 지원하는 기관(agency, community welfare center)’으로 정의합니다.

이런 복지관은 그 이상이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에 있습니다.

이웃을 만들고 인정이 생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동네나 마을을 이루려고 힘씁니다.

따라서 사람을 도울 때, 그가 어떤 사람이든 분명 사회 속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이를 찾아가는 ‘사회역할모델’을 선택합니다.

이런 복지관에서 ESG 가운데 ‘E(Environment)’를 요구받는다면,

더욱 더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일에 힘쓸 겁니다.

자연환경을 위한 일은 결국 우리의 ‘소비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 사이 관계가 생동하면 ‘함께 쓰고 나눠 쓸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울려 살아가면 왕래가 잦고 부탁하기 수월하니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를 줄일 것이라 기대합니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이를 증명합니다.

고립사의 전조가 쌓이는 쓰레기라고 합니다.

또한, 타인과 교류가 없어 애정과 인정, 나아가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뭇 생명을 아끼고 생각할 리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의 마음 씀이 지구환경까지 닿기란 불가능합니다.

② 복지관은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기관

반면, 어느 복지관은 복지관을 ‘당사자의 문제 상황에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연계하는

종합 관리 기관(welfare service center)’으로 설정합니다.

이런 복지관은 그 이상이 ‘복지서비스를 받거나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여느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있습니다.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지원하는 뜻은 귀하지만,

사회복지사의 판단과 주도로만 이뤄지는 서비스 진행 방식이 당사자를 자기 삶에서 소외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복지관은 사회복지사의 진단과 사정 능력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개입하는 ‘의료‧병리모델’을 선택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빛나는 만큼 당사자에게는 그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복지관에서 ‘E’를 요구받는다면,

복지관이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를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을 궁리할 겁니다.

혹은, 복지서비스는 그대로 둔 채 에너지 절약 운동, 쓰레기 버리지 않기나 줍기와 같은

자연환경을 위한 별도의 일을 벌일 겁니다.

근본적으로 ‘복지서비스’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임을 모른 채,

그래서 당사자가 이루고 지역사회가 함께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별도의 에너지를 더 사용해야 하는’ 복지서비스로 이루고자 합니다.

지구 환경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줄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급진적 실천으로 다가올 겁니다.

결국, 복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관이 만든 ESG 지표 가운데 E 지표는

‘쓰레기 배출을 줄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쓰레기를 줍자’고 하는 제안 정도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지역사회에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게 하는 데 마음 둔 복지관의 환경지표는 다를 겁니다.

‘한 달간 도시락을 지원하더라도 두세 번은 받은 도시락 함께 드시게 거들었고,

그 덕에 만들어진 식사 공동체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당신들끼리 모여 드시게 함으로써

도시락이 나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환경을 위한 복지관다운 적용과 근본 변화입니다.

이웃을 만들고 인정을 생동했으니 복지관답게 일한 것이며,

하루 이틀 도시락 배달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때 사용하는 물, 불, 전기, 자동차 기름, 도시락 용기, 포장 비닐 사용을 줄이는 환경 친화적으로 실천한 일이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쓰레기 줍는 ‘줍깅’을 하더라도 활동 평가를 위한 질문이

‘얼마나 많이 주웠는지’를 인증하는 방법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단체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복지관은 활동 뒤 묻는 질문이 다릅니다.

‘함께’ 활동 하니 얼마나 좋은지, 이 활동으로 ‘서로 알게 되거나 가까워졌는지’ 묻습니다.

줍깅은 ‘구실’이요, 목적은 ‘관계’입니다.

복지관은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는 곳이니 관계를 목적을 활동했지만,

지금 시대가 이러하니 이왕 벌이는 일을 ‘줍깅’으로 한 겁니다.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여 당사자 둘레 생태계를 생동하는 ‘복지생태’.

자연생태에 이로운 방식으로 복지서비스를 진행하나는 ‘생태복지’.

둘 다 귀한 일입니다. 지금은 뭐라도 해볼 때입니다.

그러나 근본을 생각한다면 복지관 정체성에서 이 고민을 시작합니다.

ESG 논의를 몇몇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로 이뤄간다면 이는 분명 또다시 유행에 편승하는 모습입니다.

복지관 평가 따위에 적절히 대응하며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는 소극적 자세입니다.

ESG는 복지관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주제입니다.

더 멀리 내다본다면 복지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분명 공동체에 닿을 겁니다.

더는 미루지 말고 변화를 시작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 서울복지교육센터 교육장 뒤에는 다회용컵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아가, 어떤 교육이든 교육 참석자에게 텀블러(개인컵) 지참을 적극 안내해주세요~

탑 뷰(Top view)와 업 뷰(Up view)_조직과 구성원의 마주보기 3rd
탑 뷰(Top view)와 업 뷰(Up view)_조직과 구성원의 마주보기 3rd

조직과 구성원들의 의견이 어디에서 마주하는가에 따라 일 잘하는 조직과 일 못하는 조직이 나뉘어 집니다. 마주보기란, 조직의 의견이 탑다운되어 내려가고 구성원들의 의견이 버텀업되어 올라가서 서로의 의견이 만나는 구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그 구간에서 일에 관련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집니다.조직에는 최소 두 가지의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직의 경영층에서 인식하는 문제, 즉 조직의 리더가 간절히 해결하였으면 하는 문제입니다. 이를 'top view'라 합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문제, 구성원들이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를 'up view'라 합니다. 조직은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관점인 'top view'와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관점인 'up view'가 서로 상이하게 서로를 바라봅니다. 서로의 관점은 당연히 다릅니다. 다른 두 관점들이 만나서 그 차이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일 잘하는 조직과 일 못하는 조직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먼저 일을 못하는 조직의 경우입니다. 1번의 화살표처럼 조직이 인식하는 문제가 구성원들의 책상까지 내려옵니다. 그 만큼 조직의 관점과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억압이기도 합니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의견은 올라갈 여지가 없게 됩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문제들과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들을 의식의 밖으로 꺼내지도 못합니다. 당연히 구성원들은 조직이 내려준 탑뷰를 이행하느라 바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2번의 화살표처럼 조직의 관점과 의지가 흐릿한 경우도 있습니다. 조직의 방향성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구성원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구성원들은 일을 하여야 하니 명확하지 않은 방향성을 찾아 어떻하든 탑뷰의 관점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올라가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업뷰의 관점을 가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조직이 생각하는 탑뷰의 관점을 유추해서 올라가려 하겠죠. 이렇게 어찌어찌하여 조직의 탑뷰까지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호한 방향성을 찾다보니 이리저리 헤매다가 올라가니 지쳐버립니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그런 구성원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언제 올라오나 하고 내려다보니 올라오지 않고 딴 짓을 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일은 하지 않고 노는 것 처럼 보입니다. 왜 이제야 올라왔느냐며 탓을 합니다. 왜 이렇게 했느냐며 핀잔을 합니다. 조직도 불만이고 구성원들도 불만입니다. 1번이나 2번이나 일을 잘 할 수 없습니다.일을 잘하는 조직은 적정한 구간에서 조직이 탑다운한 탑뷰의 관점과 구성원들이 업뷰한 버텀업의 관점이 만납니다. 바로 3번 화살표의 모습입니다. 이 구간은 매우 명확합니다. 명확함으로 조직은 어디까지 탑다운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고 구성원들도 버텀업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는 것, 예측할 수 있다는 것만큼 조직에게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정보와 예측은 두려움을 제거합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홍채를 둘러싸고 있는 공막과도 같은 것이죠. ​ 물론 마주한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명확한 곳에서 마주하게 됨으로 갈등도 역시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갈등이 명확하면 대안을 구하는 방법 역시도 명확해집니다. 명확하니 마주하면 됩니다. 마주하는 구간에서의 갈등은 일에 관한 것입니다. 일로 인해 발생되는 갈등과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사람은 그렇게 갈등을 해결하면서 성장합니다. 갈등은 곧 자극인 것이죠. 이 자극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관계에 대한 호응에 의해 성장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갈등이 명확하다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이 일과 관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쓰기는 쓰지만 헛되이 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대안이 마련되는 이유는 이미 갈등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예측되고 있었음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채널과 절차 등의 제도가 이미 구비되어 있습니다. 협의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있음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의견의 자유입니다. 서로가 동등하게 마주할 수 있으니 평등입니다. 자유롭고 평등하니 조직민주주의입니다.이렇게 조직과 구성원들이 마주하는 구간에서 조직민주주의가 이루어집니다. 조직은 미션과 비전이라는 방향성을 정확히 제시합니다. 그리고 탑다운 합니다. 사실 탑다운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조직의 탑뷰의 관점이 탑다운 되어야 구성원들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탑다운이 밑도 끝도 없이 구성원들이 책상앞까지 내려온다는 것이죠. 구성원들은 책상 앞에 놓여진 일을 처리하는 기계가 되어 버립니다. 본인의 의지나 관점을 내는 순간 조직과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이 늘어납니다. 이런 탑다운은 나쁜 것입니다. ​ 버텀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버텀업의 업뷰의 관점이 어디까지 올라가야 구성원들에게 위임을 한 것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조직일까요?' 버텀업도 역시 한계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모르니 눈치만 보게 됩니다. 일을 주도적이고 도전적으로 할 수 없게 되죠. 또한 한계를 모르니 조직의 권한을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조직의 목적은 뒷전이 되어버리고 자신들의 사적이익이 우선시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마주하는 구간이 흐릿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주하는 구간이 명확하다면 이러한 불필요한 갈등은 제거될 것입니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 이런 문제가 제기 될 수 있습니다. '미션과 비전만 탑뷰로 내려준다면 조직이 너무 방만하게 운영되는 것은 아닌가?' 또는 '구성원들이 성취목적까지 결정하게 되면 구성원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답변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 외에 또 다른 것들을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으로 조직이 해야할 일이기도 합니다. 구성원에게도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의 조직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날 및 미래의 구성원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그들이 주도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 때 조직에게 주어진 지역사회의 문제와 사람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해 오던대로 일한다면 이 사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요?' 조직은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조직의 존재목적입니다. 일을 잘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의 주도와 도전으로 일을 하는 조직이며 그런 조직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이제, 조직이 해야 하는 또 다른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구성원들이 도전과 주도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려면 성취목적과 도전과업, 그리고 주도행동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현장의 성과관리제도의 문제의식부터 먼저 공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과 구성원의 마주보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문제의식이자 배경설명입니다. ​ 다음 호의 '조직의 진화'에서 계속됩니다.

[청년 발현] 2030세대만 청년이여?
[청년 발현] 2030세대만 청년이여?

" 2030세대만 청년이여? "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종종 들어오는 문의이다. 2020년 8월 청년기본법 시행 이후, 민관 영역에서의 청년 대상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청년'을 연령으로 정의하다보니 이와 같은 문의 혹은 의도치 않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느 연령이 청년이며, 왜 해당 연령일까? 청년기본법 제1장 제3조(정의)에 따르면 '청년'이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다만, 다른 법령과 조례에서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를 수 있어 지자체별로 상이하며 보통 39세까지 늘리거나 45세, 49세로 확대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이는 지역 고령화에 따른 확대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간과되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왜 해당 연령을 청년으로 정의했는가' 이다.  청년기본법이 시행된 후 한동안 연령이 이슈였다. 특히 2022년 진행된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기와 맞물려 '청년' 자체가 뜨거운 감자였고 그만큼 이미지 소모도 많이 되었다. 이에 정작 사회에 축적되었어야할 청년기본법 제1장 제2조(기본이념)에 대한 숙의와 학습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청년정책 대상자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청년정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청년층이 사회 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가'이다.  생애주기상 청소년과 장년층 사이에 위치한 청년에게는 청년 개개인의 자질 향상과 능동적인 삶의 실현을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참여 촉진과 더불어 교육, 고용, 직업훈련 등에서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마련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청년 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야할 대상은 '교육 환경에서 노동 시장으로 진입하는 대상' 이다. 해당 대상들이 많이 분포한 연령층은 20대이며, 이들에게 안정적인 생애주기가 형성됨에 따라 이후 과정들이 순차적으로 연계된다. 즉 사회구성원 중 1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활동과 참여하는 사회활동의 규모가 커질 수록 결혼, 육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생애주기상 주요한 시기(취업, 결혼, 육아 등)를 가치에 따라 선택할 수 있기보다는 뒤로 밀리거나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사회 현실이 청년기본법의 배경인 만큼 오히려 연령을 세분화하여 20대초중반(초기 청년)에 집중되어야 기본이념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20대부터 청년활동을 하여 어느덧 30대 중반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도달하니 더욱이 연령 세분화 및 초기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정책 시행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에 관해 지역별 현황에 따라 연령 구간 자체는 상이할 수 있지만 교육 환경에서 노동 시장으로 진입하는 대상의 환경 개선이 최우선되어야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공동체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끝으로 청년기본법 내 주요 키워드인 '청년발전'은 제1장 제3조(정의)에서 청년의 권리보호 및 신장, 정책결정과정 참여확대, 고용촉진, 능력개발, 복지향상 등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청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청년을 복지의 대상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닌 사회발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해야한다. 물론 저소득층, 새터민, 장애인 등 세대 불문 복지의 대상인 청년층도 있고, 복지와 더불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해야한다.  앞으로의 [청년 발현]은 위 내용을 기조로, 전국의 청년조직 사례를 기반하여 다뤄질 예정이다. 

풀꽃시인 나태주님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로 봄을 즐기기를...
풀꽃시인 나태주님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로 봄을 즐기기를...

올해도 찾아온 봄입니다. 주변에 피어나는 꽃을 보니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생각납니다. 이 시집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풀꽃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풀꽃은 시리즈로 되어 있습니다. 풀꽃 외에도 행복, 선물 시들이 있어서 아동들에게 선물 같은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집을 감상하면서 창문을 통해 슬며시 다가온 봄 기운을 느끼며 몸도 마음도 기지개를 활짝 펼치길 바랍니다.<풀꽃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태주시인과 식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는 나태주시인이 초등학교 선생님 시절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 미운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가까이서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풀꽃2>"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아, 이것은 비밀."봄꽃이 활짝 피는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꽃의 이름도, 색깔도, 모양까지도 눈여겨보는 호사도 누려 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도 되짚어 보는 계절이면 좋겠습니다.<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봐/참 좋아."'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악한 가정 환경 때문에 꿈조차 접으려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저도 모르게 이 시를 되뇌입니다.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어쩌면 기죽지 않아도 될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네 꿈을 펼쳐봐' 라고 응원하는 비전메이커가 아닐까요? 평등이 아닌 공평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모든 사회복지사들에게 이 시를 드립니다.<행복>"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나태주시인의 <행복> 조건에 들지 않는 분은 드물지 않을까요? 더욱이 우리 사회복지사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기에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선물>"하늘 아래 내가 받은/가장 커다란 선물은/오늘입니다/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가장 아름다운 선물은/당신입니다/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웃는 얼굴, 콧 노래 한 구절이면/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가장 아름다운 선물' 같은 사회복지사들이 나태주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시상을 읊으며 환한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는 봄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