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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격차와 프로그램 아이디어 (상)
AI 격차와 프로그램 아이디어 (상)

📌 과거 이야기 2000년대 초반, 복지관에서 컴퓨터실이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복지사 혹은 컴퓨터 강사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주민들에게 "마우스는 이렇게 클릭하는 거예요~"를 반복하던 그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다루던 ‘디지털 격차’는 명확했다. 누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스마트폰을 쓸 줄 아는가. 정보는 곧 기회였고,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서비스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 격차는 단순히 기술의 유무 문제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는 노인은 손녀의 사진조차 받아볼 수 없었고, 인터넷이 익숙지 않은 청년은 대출 신청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사회복지사들은 이 디지털 소외가 경제적 빈곤과 정서적 고립을 동시에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챘고, 그래서 전국의 복지기관이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의 일선 전방이 되었다.   📌 새로운 디지털 격차, AI 활용 격차 늘 그렇듯 시대는 놀랍도록 빠르게 진화했다. 이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요즘은 “챗GPT 써봤어?”, “그건 AI로 해결 가능하지 않아?” 같은 말이 일상 대화에 등장한다. 기술이 한걸음 나아간 만큼, 격차도 한층 더 깊어졌다. 이른바 AI 활용 격차다.   AI 활용 격차는 단순히 '신기술을 모른다'는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슈가 숨어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 없는 삶’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AI 없는 삶’이 비효율적인 삶, 기회가 줄어드는 삶이 되어버렸다. 복지 정보를 AI 챗봇에게 묻지 못하면, 타이밍을 놓친다. 대학 졸업자는 AI 기반 채용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면, 서류에서 이미 탈락한다. 자녀가 AI로 숙제를 하는 세상에서, 부모가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육 격차는 세대를 뚫고 더 커진다.   즉,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기술 차이를 넘어 삶의 구조와 기회의 지형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 사회복지사는 AI 활용 역량을 ‘임파워먼트’로 바라보아야 한다 AI를 도구로 쓸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스마트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기 삶을 선택하고 계획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사회복지 실천에서 오랫동안 강조되어온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개념이 이제 AI를 매개로 새롭게 확장되고 있다. 예전에는 “복지 수급 신청서를 직접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임파워먼트였다면, 이제는 “AI를 이용해 수급 자격을 스스로 확인하고 질문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자립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스마트폰 사용법' 수업을 넘어서, AI 도구와 대화하는 법,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방식을 클라이언트에게 가르쳐야 한다. AI 활용 교육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정보에 접근하고, 자기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그러나 AI 종속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덫이 하나 있다. 우리가 클라이언트에게 AI를 활용하라고 가르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건 GPT한테 물어보면 돼요.” “앱이 알아서 해줘요.” “요즘은 챗봇이 상담도 다 해줘요.”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 언제부터 인간의 생각을 AI에게 간편히 위임해버리는 문제도 불가피하게 공존할 것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본질은 사람을 도구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통해 사람을 더 주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AI가 클라이언트의 사고를 대체하고, 자율성을 빼앗는 방향으로 작동된다면, 그것은 AI를 통한 진보가 아니라, 기계화된 복종일 뿐이다.   이 상황은 익숙하지 않은가? 과거 복지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한 일부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A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AI를 권한 부여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지, 자율성 파괴의 변명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 기술 중심 실천이 아니라, 인간 중심 실천으로 기술은 결국 수단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방향은 언제나 ‘기술을 잘 다루는 인간’이 아니라, ‘기술을 넘어서 삶을 잘 살아가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사회복지사의 진짜 임무는 클라이언트가 존엄을 유지하며, 성찰적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AI는 아주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도구를 통해 얻은 능력이, 한 사람의 삶을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본질을 놓친 것이다.   📌 마무리하며 디지털 격차는 정보의 불평등에서 시작해, 빈곤과 고립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번져왔다. 이제 새로운 디지털 격차인 AI 활용 격차는 ‘기술을 쓸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단지 도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도구를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실천가가 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AI 시대의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정의해줄 것이다.   

“아버지의 편지에서 다시 삶을 배웁니다” — 안소영, 《다산의 아버님께》
“아버지의 편지에서 다시 삶을 배웁니다” — 안소영, 《다산의 아버님께》

안소영 작가의 《다산의 아버님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과 그의 둘째아들 정학유가 주고받은 편지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사랑과 시대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입니다.   정약용은 조선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500권이 넘는 책을 남긴 학자였지만 40세에 억울한 죄로 유배를 떠나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외딴 강진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가 떠날 때 남겨진 두 아들, 19살의 정학연과 16살의 정학유는 갑작스레 몰락한 가문 안에서 고단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특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컥하는 둘째 정학유를 향한 아버지의 걱정과 애틋함은 유배지에서 써 내려간 편지 곳곳에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밤낮으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오직 학유가 열심히 독서하는 일뿐이다. 그리하여 선비다운 마음을 갖게 된다면, 내가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 부디 이 아비의 애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말거라.”   이 편지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16살의 정학유, 24살의 정학유, 그리고 61살이 되어 아버지 정약용을 떠올리는 노년의 정학유가 하나로 겹쳐지며, 그 마음속에 간직한 아버지 정약용에 향한 사랑과 존경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말합니다.   “학유야, 사나이라면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상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젊은 날에는 더구나 발아래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내 손으로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도 괜찮다. 한때 재앙(천주고 박해로 정씨 가문 멸족 위기)를 당했다 해서 그 같은 대범한 기상이 꺽여서는 안될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따뜻함과 동시에, 선비로서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문득 저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책 속의 정약용이 저에게 말을 건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정약용이 말하는 ‘결핍과 고난’의 의미였습니다. 겉보기에 평탄한 삶보다는, 한 번쯤은 넘어지고 부딪히며 살아본 사람이 세상을 더 깊이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폐족에서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세상과 사물의 진면목을 바르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아버님께》는 단순히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자,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편지입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러브 레터입니다.

ESG, 종이컵만 안쓰면 되는 건가요?
ESG, 종이컵만 안쓰면 되는 건가요?

1. 텀블러 만능주의?   최근 전세계적으로 ESG가 경영 환경에 주요 고려사항이 되면서, ESG 경영을 강조하는 곳마다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와 같은 다회용기의 사용을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는 "종이 한 장 아끼기" 포스터가 붙어 있거나 사무실 곳곳에 친환경 실천을 독려하는 캠페인의 결과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노력과 실천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텀블러만 사용하면, ESG의 실천은 끝인가요?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서울은 고층 건물이 밀집한 인구 천만의 대도시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놓쳐왔지만, 바로 그 건물들이야말로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또 하나의 오염원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7%가 건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앞서 이야기한 종이컵을 텀블러로 바꾸는 것과 건물을 바꾸는 것의 차이를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 덩치, 체급이 주는 차이   관련 데이터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건물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30%와 에너지 관련 배출량의 26%를 차지합니다. 미국의 경우 건물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4년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건물 부문이 21.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과연 나 한 사람이 종이컵 한 개 아낀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마천루들을 생각해보면, 수십 층짜리 오래된 건물 하나가 비효율적인 냉난방 시스템으로 소비하는 에너지는 그 건물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직장인들이 1년간 아끼는 종이컵의 환경 효과를 하루 만에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구요.   3. 건물, 사무실 환경을 바꿔야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행히 우리 정부도 인식을 한 듯 합니다. 정부는 2023년부터 공공건축물 신축 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의무대상을 연면적 500㎡ 이상, 공동주택 30세대 이상으로 확대하기 위한 ‘녹색 건축물 조성 지원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건축물의 5대 에너지(냉방, 난방, 급탕, 조명, 환기)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여, 건물 에너지 성능을 인증함으로써 건물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를 현재 연간 1%에서 5-10%로 대폭 늘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4. ESG, 무엇부터 바꿀까?   ESG 경영의 진정한 성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각 개인의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적, 구조적 변화 없이 괄목할만한 성과가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건물 부문에서의 대규모 투자와 개선이야말로 ESG의 주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ESG는 개인보다는 조직, 더 나아가 건물과 환경을 총체적으로 바꾸려는 의지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결국, 자원을 동원하고,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리더층의 각성과 생각의 변화가 없이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투자 효과의 관점에서 보면, 노후 건물 하나의 에너지 효율 개선은 수천 명의 개별적 실천보다 훨씬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비록, 초기 투자 비용은 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부동산 가치 상승이라는 경제적 이익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가 건물 부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정부 단위의 정책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움직임에 발맞추어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이루어지길 바라봅니다.   ESG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도 건물의 개선은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는 본사 건물을 제로에너지 건물로 전환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직원들이 종이컵을 덜 쓰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 보다,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개인의 실천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질적 효과와 효과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좀 더 크고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공간의 영향 아래서 살아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도 노후한 건물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종이컵을 텀블러로 바꾸는 것만 강조하기 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공간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 보다 큰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매년, 텀블러 구매나 종이컵 퇴출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쓰고 있나요?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얻고 싶으면, 좀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건물의 에너지 시스템 개선에 대한 투자가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임팩트를 증폭시킬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이야말로 ESG의 진짜 의미를 되돌아볼 때입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 좀 더 큰 구조적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청년발현 시즌 2, 10부작 1. 청년은 누구인가, 다시 묻다. 2. 청년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 3. 수도권 블랙홀과 지역 청년의 이탈 4.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5. 공간이 관계가 될 때 6. 청년 일의 재구성 7. 청년 커뮤니티는 정치다. 8. 청년이 만드는 복지 9. 협동조합, 청년을 묻다. 10. 청년발현, 다음의 서사를 위하여

“전에도, 지금도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요." 한 청년의 말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목소리를 대변한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해마다 늘어나지만, 이상하리만치 '해당이 안 된다'는 청년은 여전히 많다.

1. 사각지대를 만드는 청년 설계의 방식

정책은 대상을 설정하는 순간, 동시에 배제의 경계를 만든다. 특히 청년정책은 만 19세부터 34세까지라는 나이 기준에 따라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 속 청년들은 훨씬 더 복합적인 삶의 조건에 놓여 있다. 고졸로 일찍 사회에 진입한 청년, 자립준비청년, 느린학습자, 경계선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 돌봄을 맡고 있는 가족청년 등은 기존 정책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제도 설계는 선의로 시작되지만, 그 선의는 평균값을 기준으로 작동할 때 비가시화된 존재들을 지워버린다. '정책에서 소외된다는 감각'은 단순히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국가가 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며 청년의 자기효능감과 신회를 해친다.

2. 정책 접근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이들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청년도 많지만, 알더라도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보의 복잡성, 절차의 까다라움, 디지털 절차, 신분증명 요건 등은 특히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청년에게는 높은 장벽이다. 예를 들어 보호종료 청년은 주소지가 불안정해 공공임대나 금융 지원에서 배제되기 쉽고, 장애인 청년은 비장애인 중심의 일자리 정책에서 기회조차 받지 못한다.

청년센터가 지역마다 생기고 있지만, 그 이용률은 편차가 크다.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 어려운 청년일수록 공적 공간을 두려워하고, 신청이라는 절차 자체에 거리감을 느낀다. '누가 정책을 이용할 수 있는가'는 곧 '누가 사회적 언어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3. 경계를 넘는 정책, 언어를 바꾸는 접근

이제 청년정책은 경계를 나누는 정책이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첫째, 정책 설계 시 청년 당사자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 다층적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 행정이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문제를 진단하고 정의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경상남도는 은둔형 청년과 보호종료 청년을 별도 대상으로 식별하고 장학금/자립지원/심리상담 등을 결합한 맞춤형 지원을 시작했다. 창원시의 '청년 쾌유 프로젝트'는 골립된 청년을 찾아가 생활 동반자처럼 연결하고 활동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접근을 시도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 대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청년을 대하는 시선이다. 제도 밖의 청년은 실패한 청년이 아니라 제도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민이다.

제언: 사각지대 없는 정책을 위하여

    - 정책 설계 시 삶의 조건별 청년군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의 재구성을 필요합니다. - 기준을 행정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 정보접근권, 디지털리터러시, 절차의 접근성 등 정책 참여의 기술적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 '정책 이용'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맺기'로 접근할 수 있는 청년지원공간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 다음 화에서는 '공간이 관계가 될 때'를 주제로, 청년의 삶터와 커뮤니티가 어떻게 정책과 만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사회복지현장에 필요한 KPI에 대한 고찰
사회복지현장에 필요한 KPI에 대한 고찰

6월이다.  상반기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굳이 복지관 평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상반기를 정리하고,  하반기를 새롭게 준비해야한다.  사회복지현장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본고에서 필자는 KPI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과 중심 운영의 기반 사회복지 영역은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이 높은  분야이다. KPI는 조직이나 사업이 단순한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예를들어, "활동 중심 → 성과 중심"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예: “상담 100회 진행” → “우울감 개선된 이용자 비율 70%”] 2. 측정 가능성과 객관성 확보 복지서비스는 종종 정성적인 효과로 표현되기 쉽다. KPI를 통해 모호한 개념 (예: 자존감 향상, 관계 개선)을 수치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또한 실무자· 관리자·  지자체가 같은 기준으로 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게한다.  3. 예산 타당성과 행정책임성 강화 KPI는 예산 사용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핵심 도구이다. 정부나 지자체, 민간재단에  보고할 때, 정량적 지표는 신뢰를 높이고, 재정 지속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통해 “성과 있는 복지사업”을 증명하고, 지속적 재정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  4. 복지정책 및 사업의 전략적 방향 설정 KPI는 단기 결과뿐 아니라, 중장기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로직모델에 기반한 KPI는 정책 기획,  사업 설계, 평가,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와 증거기반 행정(Evidence-Based Policy) 실현이 가능하다.  5. 이용자 중심 서비스 실현 KPI는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이용자의 변화와 성장을 중심에 두도록 돕는다. 복지관, 사례관리, 프로그램 등에서 “이용자 삶의 질 향상”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는데,  “이용자 관점”의 평가가 가능해지고, 이용자 권리 중심의 복지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6. 지속적 개선과 학습 조직 형성 KPI는 단순한 평가 도구가 아니라, 내부 학습과 개선의 출발점이다. 잘 설계된 KPI는  직원의 업무 피드백, 서비스 질 향상, 팀 성과공유 등 조직문화 개선에도 기여한다. 평가가 끝이 아닌,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노인정신건강이야기7- 정신질환을 겪는 노인의 인권
노인정신건강이야기7- 정신질환을 겪는 노인의 인권

지금까지 노인 정신건강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인의 정신건강(우울, 불안 등)에 대한 내용, 노인을 만나는 전문인력들이 생각해야 봐야하는 정신건강 이슈,  시기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사항등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는 다루는 곳은 별로 없던 것 같습니다.   이에 이번 기회에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도래한 대한민국은 정신질환 노인이 겪는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노인은 '장애'와 '노화'라는 이중적인 어려움으로 인해서 복합적인 어려움에 놓이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지속적인 차별 경험과 낮아지는 만족도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가치들을 가지게 하고 사회적 관계와 참여들을 위축시켜  고립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의 악순환은 사회와의 관계들을 단절시키게 하고 고립되게 합니다.  또한 정신질환 노인이 입소하고 생활하고 있는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요양 및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폐쇄적인 공간의 특성으로 인해 외부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한편, 정신의료기관 및 시설등에서 노인이 부정적인 정서경험에 대한 표현이 과도할 경우, 격리, 강박, 안정제 투여방식등으로 대응하는 경우들도 있으며, 명확한  절차와 과정에 투명함이 갖춰지지 못하는 곳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 노인의 인권향상과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첫째, 노인학대와 폭력으로 부터 자유로운 서비스 환경 조성  - 정신질환 노인의 경우에도 65세 이상이 넘은 상황이라 노인복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노인학대에 대한 접근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 관계 및 참여 활성화  - 정신질환의 회복 및 사회적 지지나 자원의 감소가 정신질환 노인의 삶의 질을 낮출 수 있으므로 회복을 위한 자원망을 구체적으로 탐색해야 합니다.  셋째, 질환과 노화의 통합적 관점  -  그동안 정신건강 영역에서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하던 외래치료 지원제를 활성화 하여 치료적 개입과 지역사회 지원체계의 방향을 구체화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의 보호의무를 민법에 따른 후견인 또는 부양의무자로만 한정하여 가족의 책임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입하여 통합적 관점으로  지원하는 논의가 구체화될 시기가 도래 하였습니다. 이에 노인의 관점과 정신질환의 관점에서 경험하게 되는 인권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등을 고민하고 성장시키는 준비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러한 과정은 통합적으로 논의되고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초고령사회에 우리들은 정신질환 노인들을 위해 어떠한 준비들을 하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