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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안내

    book01
    [공무원교육]

    복지직 의무교육 3기

    모집기간 : 2021-05-09 ~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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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교육]

    복지시민양성교육(1기)

    모집기간 : 2021-04-01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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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교육]

    지식공유활동가와 함께하는 교육(1기)

    모집기간 : 2021-04-01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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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종사자교육]

    [대기 신청] 기능보강 계약실무 교육 마감

    모집기간 : 2021-04-14 ~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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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교육]

    [기본1]돌봄SOS 사업 추진배경의 이해

    모집기간 : 2021-02-15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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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교육]

    [기본2]돌봄SOS 운영매뉴얼의 이해

    모집기간 : 2021-02-15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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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교육]

    [기본3]돌봄SOS 전산활용의 이해

    모집기간 : 2021-02-08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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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종사자교육]

    2021년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사업 '이웃살피미' 실무자 기본교육

    모집기간 : 2021-04-21 ~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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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종사자교육]

    발달장애인의 이해와 일상지원방법 알기

    모집기간 : 2021-04-15 ~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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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의 힘_조직의 자기결정권_첫 번째
    계약의 힘_조직의 자기결정권_첫 번째

    조직이 자발적이고 스스로 변경 가능하고 자유와 평등을 그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힘의 중심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어야 건강하기 때문이다. 계약의 당사자는 조직과 구성원이어야 하나,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당사자는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러하니 조직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자유와 평등을 누리지 못하는 정의롭지 않은 조직은 전문가 주의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 주의(professionalism)란 전문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는 순기능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 반대의 이면에서는 부당하게 권력화되는 전문가들의 독점 권위를 말한다. 전문가들이란 인간의 욕구를 정의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 등의 자원을 배분하면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그것이 욕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마땅히 인정받아야겠지만, 전문가 집단의 생존을 위한 것만으로 사용된다면 이는 변질된 권력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욕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서 순종을 요구한다.   이제 아이들은 집에서 낳을 수 없다. 싫든 좋든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에 의한 출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죽음도 이제 집에서는 안 된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사망선고를 받아야 죽음이 인정된다. 원하지 않는 과목이라도 학교라는 집단에서 주어지는 과목을 배워야 하고 교사가 주는 지식을 받아야 한다. 만약 거부한다면 부적응자가 되고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고 저학력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사회계약에서의 법이란 무엇인가? 개인과 국가권력의 계약 안에서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법에서 규정된 서로의 약속이 지켜질 때 개인은 사회의 위험과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이 법이, 사회의 계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집단의 생존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변질된다면 이것이 바로 전문가 주의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관료화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주고, 그것을 채울 수 있도록 승인해주거나 조건을 요구하는 전문가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면서 전문성을 발휘한다.   관료들은 수많은 법과 지침의 해석과 적용, 그리고 재량권이라는 권력을 사용한다. 시민들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진단에 따라야 하고 요구조건을 채워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법한 행위가 될 수도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일례로 자신의 집에 조그마한 비닐하우스 정원을 짓는 다거나 창고나 원두막을 마련하는 것도 건축법에 따라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사회는 관료화되어 간다. 관료화란 해결이 늦어지거나 관행적이거나 하는 것이 아닌, 공권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권력이 커지는 이유는 법을 집행하기 때문이며 집행의 결정은 공권력의 해석에 따른다. 시민들이 사회계약의 법 아래서 자유롭고 평등하기 위해서는 관료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관료화가 만들어내는 자유와 평등의 억압이며 전문가 주의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은 전문가들에게 양도되고 만다. 자유와 평등의 억압도 풍족한 자본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본의 소유 정도에 따라 의사와 교사가 집에 갈 수도 있고 욕구에 따라 자신이 그들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병원이나 학교를 필요로 선택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없다. 우리의 소유 정도에 따라 자본에 선택당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차이에 의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채워주면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더는 조직이, 노무사 없이는 노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쳐져 있다. 변호사 없이는 조직 스스로를 변론하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면허 행위이다. 그러한 우리들의 자기변론 행위가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최소한 그들의 도장이라도 받아가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전문화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문가에 부당한 권력화인 전문가 주의에서는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기술권력을 사용한다. 의사, 교사, 변호사 등의 전문가집단은 어려운 단어와 한자, 전문용어 등으로 기술을 포장한다. 그리고 관련 법령 속에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기준을 규정하고 해석과 적용의 방법을 기술함으로써 개인이나 다른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술과 법에 적용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환자 또는 문맹자, 피의자로 규정함으로써 전문가집단과의 관계를 종속적 관계로 설정하여 버린다. 정치인들은 또 다른 전문가주의이다. 그들은 입법이라는 힘이 있는 집단이다. 그들은 다수의 논리 안에 민의를 수렴하여 법을 다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수의 뜻이라고 해서 그 힘은 정당한 것일까? 혹은 다수가 아니어도 그들을 움직이는 소수권력에 의해 법을 움직이는 것이 정당할까? 그들의 입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반이익이 아니다. 단지, 소수의 영향력이 있는 집단이나 다수의 힘에 의한 특수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권력의 연장이 중요한 그들의 선택은 표를 얻기 위함이지 결코 민의가 아니다. 그들이 결정한 특수이익은 오직 그들 집단 만을 위한 것이며 그렇게 공고히 다져진 권력에 의해 전문성을 발휘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정치가 민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들의 권력에 복종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시와 명령, 그리고 요구조건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법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은 오로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지배계급으로 전락한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개인은 자유와 평등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점점 더 전문가 주의에 의한 관료화는 조직의 힘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 의지하게 하여 버린다. 외부의 힘과 조직을 연결하는 지점이 조직의 사용주와 상층부의 소수 권력이다. 그가 내외부의 가교역할을 한다. 조직의 사용주는 법에 따라 서서히 지배 권력을 확보한다. 그 만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다. 새로운 신분제가 형성된다. 계약의 힘_조직의 자기결정권은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만드는 평가도구(7) : 단일문항척도(SIS)
    내가 만드는 평가도구(7) : 단일문항척도(SIS)

    도구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검사도구들은 수십 개의 복수문항으로 구성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런 도구는 인지나 정서적으로 제약에 놓은 사람들, 특히 유아,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 발달장애인, 노인에게 활용하는 데 한계가 많다. 단일문항척도는 이러한 클라이언트를 위해 개발된 척도로서 오직 한 문항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한 문항으로 구성된 척도이므로 개발할 때 다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문항에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문항의 내용이 프로그램 성과목표와 일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제 이렇게 한 문항으로 수집된 자료는 분석하는데 너무 빈약하지 않을까? 그렇다. 따라서 한 번의 측정으로 평가할 수 없고 여러 번 측정해서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마치 10문항으로 구성된 척도를 1번만 사용하듯이, 단일문항척도는 1개의 문항으로 10회 이상 측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점수의 총점이나 평균값으로 성과를 확인한다.   이 도구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간편하다.○ 인지적 제약이 있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클라이언트에게 적합하다.   이 도구를 사용할 때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최소 5회 이상(권장 10회 이상) 동일인에게 반복측정을 해야 한다.○ 한글을 모르는 유아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스마일 척도(웃는 얼굴, 우는 얼굴) 이미지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다음은 실제 어느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서 개발하신 단일문항척도(SIS)이다.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내가 만드는 평가도구(5) : 목표달성척도(GAS)
    내가 만드는 평가도구(5) : 목표달성척도(GAS)

    개인에게 최적화된 도구가 필요하다. 만족도 척도나 심리척도 등의 평가도구는 집단 프로그램 평가장면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이들 척도는 사례관리사업, 개별상담프로그램과 같이 개인에 대해 개입을 하는 장면에서는 활용하는데 제약이 많다. 집단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 수만큼 측정치를 확보해서 평균을 계산하면 되는데, 개별 프로그램에서는 한 개인에게 여러 번의 반복측정을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러나 1~2회 정도의 측정만으로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개인 맞춤형 도구가 있다. 바로 목표달성척도(GAS, Goal attainment scale)이다.   이 도구는 개인과 심층상담을 통해 개인별 변화 목표를 수립한 후 ? 2점, -1점, 0점, +1점, +2점의 척도 범위 안에서 변화내용을 정의한 후 개입 전후로 측정하는 것이다.   이 도구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 오직 한 명의 클라이언트에게 최적화된 도구이다.○ 사례관리사업 혹은 개별상담사업에 활용 가능한 양적 평가도구이다.○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개발과정 자체가 훌륭한 개입과정이 된다.   이 도구를 활용할 때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 점수별 척도 기준이 세심히 작성되어야 한다.○ 성과영역을 최대 5개까지 만들 수 있다.○ 개입 전과 개입 후의 평균 점수로 성과를 판단하면 된다.     다음은 실제 어느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개발하신 목표달성척도(GAS)이다.

    결과보고의 새로운 시도, 과정기록과 의미찾기 사례
    결과보고의 새로운 시도, 과정기록과 의미찾기 사례

    #. 글 설명- 계획서, 결과보고서, 사례집에 익숙한 복지관 실무자와 새로운 방식의 기록을 모색- 결과보다 과정, 숫자보다 의미, 성과보다 사람 중심의 글쓰기와 정리 방법을 고민- 처음 시도하여 시행착오가 많았던 청년 프로젝트를 사례로 실험- 실무자가 떠오르는 것을 기록하고 외부인이 의미를 찾는 방식으로 교차 글쓰기 실행- 실무자의 경험과 외부인의 분석을 합하여 과정기록과 의미 찾기의 새로운 시도#. 실무자(김은혜 사회복지사)의 기록 사업계획서에 있는 청년들과의 1박 2일 여행.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나들이 진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청년들에게 물었다. "우리 1박 2일 여행 어디로 뭐하러 갈까?" 그렇게 물어 시작된 여행의 계획은 개별적인 욕구와 성향에 따라 지역도 이동 방법도 내용도 모두 달랐다. 일정도 장소도 활동도 합의할 수가 없었다. 왜 1박 2일 여행을 가야 하는지 공유가 안 된 것이다. 같이 1박 2일의 여행 목적을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구분해보았다. 커뮤니티 단원들과의 관계와 일상 속 쉼으로 요약되었다. 이를 위한 여행을 계획하였다. 멀리 떠나는 여행지도 아니었고, 신기한 체험이나 활동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셀프스튜디오에서 함께 사진찍기, 맛있는 것 먹기, 예쁜 도자기 만들기, 걱정 인형 만들기, 예쁜 펜션에서 밤새 수다 떨기. 청년 커뮤니티 단원들은 6개월 이상 활동 함께 했던 시간보다 소소한 1박 2일의 여행 과정에서 서로에게  자신을 더 표현했고, 서로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사 없이도 이야기를 나눴다. 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지금도 생각난다. "열심히 산다 생각했는데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자극되었다. 사실 혼자 했으면 꾸준하게 하기 어려운 활동들에 쉽게 포기했겠지만 같은 고민을 나누며 실행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이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에 1박 2일 여행을 안 왔으면 못 들었을 마음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청년 커뮤니티를 지역사회복지관에서 하고자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각본 없이 이어진 정말 즐거운 토크쇼였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계획이 사업 및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생각이라 생각해보았다. 당사자의 생각에 따라 계획이 바뀌고 더 올바르고 효과적인 실천의 방법을 점검하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계획을 바꾸는 것, 당사자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은 복지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외부인의 의미 찾기 성공적인 기획의 점검요소가 있다. 얼마나 사람에 집중했는가? 사람의 필요에 민감했는가? 익숙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는가? 점검 질문은 이것 말고도 많다. 하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 질문이다. ‘나라면 하겠는가?’ 이전의 질문도 중요하지만 결국 주어는 사업이고 대상자이다. ‘나라면 하겠는가?’의 주어는 내가 된다.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고 간단한 이치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고,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은 법이다. 최고의 기획은 나부터 설레고 기분이 좋다. 그 에너지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 장애 요소도 돌파한다. 설레기 시작해도 난관을 만나면 쉽지 않은데, 시작 단계에 이런 마음조차 없다면 백전백패다.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1박 2일의 워크숍을 실행해야 했다. 계획서에 잡혀 있고 정해진 예산도 써야 하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음에도 해야 하는, 우리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딜레마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고 싶지 않음에도 하고 싶은 척하면서 계획대로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두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워크숍의 주체인 청년들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묻는 것은 단순히 워크숍의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에 그치지 않는다. 계획의 주체를 사회복지사에서 참여자에게로 위임하는 위대한 전환이다. ‘위대한’이란 표현에 주목하면 좋겠다. 과한 표현이 아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그렇게도 외치는 당사자성, 참여는 사회복지사의 교육, 내재화, 외부 수퍼비전이 아닌 당사자의 눈을 마주하고 던지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고 또한 그 질문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위대한 전환의 결과는 안타깝지만 혼란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건 공동체가 아니라 독재고 전체주의다. 그런 논리라면 히틀러의 독일은 완전한 공동체다. 우리는 그 공동체가 인류에 남긴 상처를 안다. 공동체는 하나가 되는 결과가 아니라 다양함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성숙한 공동체일수록 갈등이 많다. 반대로 아직 갈등을 경험하지 못한 공동체라면 겉 무늬만 공동체 형식을 갖춘 것일지도 모른다.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것처럼 공동체는 다름을 포용한다. 은혜의 질문에 청년들의 다른 생각이 오랫동안 가두었던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다른 생각과 말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포기하거나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생각하였고 ‘왜?’라는 질문으로 열 갈래로 흩어지는 물에 길을 내었다. 우리는 왜 워크숍을 가려고 하는가? 쉼인가? 친해지기 위함인가? 사람들의 다른 생각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획서와 프로포절의 맨 처음에 ‘목적’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확인하는 질문에 방향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은혜 사회복지사의 질문에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생각이 쏟아졌다. 셀프 스튜디오에서 함께 사진찍기, 맛있는 것 먹기, 예쁜 도자기 만들기, 걱정 인형 만들기, 예쁜 펜션에서 밤새 수다 떨기. 사회복지사 혼자서 워크숍 사업계획서 문서를 열어놓고 생각해 내기 어려운 아이디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참여자인 청년들이 계획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점이다. 남이 시킨 일을 즐겁게 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부터 참여한 워크숍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재미를 느낀다. 사회복지사의 진행 없이도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지고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진행된 이유다. 김은혜 사회복지의 표현대로 각본 없이 이어진 정말 즐거운 토크쇼였다. 각본이 없는 위험을 감내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결과다. 결과보고서의 기록만 보면 이번 워크숍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행되는 수많은 행사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사회복지사와 참여자 모두가 즐겁고, 성장했다. 즐거움이 되었고 성장했다. 행사 하나를 끝내면 사회복지사가 녹초가 되곤 한다. 그런데 이번 워크숍은 사회복지사 혼자서 녹초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질문을 통해서 워크숍의 수요자로 생각했던 청년이 공급자, 곧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평등하게 나뉘었다. 청년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받고, 전문 강사가 주지 못하는 배움을 얻었고, 레크리에이션 진행자가 주지 못하는 각본 없는 즐거움을 누렸다.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워크숍으로 즐겁고 배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성장을 하였다. ‘당사자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은 복지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혜는 진짜 두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힘이다. 우리는 두려운 대상에 굴복하거나 피하거나 싸워 이겨낸다. 결국, 산다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평가를 두려워하면 평가의 전쟁터에서 힘을 써야 한다. 관리자의 결재가 두려우면 결재문서에 힘을 쏟는다. 김은혜 사회복지사는 이번 일로 진짜 두려움의 대상을 알았다. 그건 하기 싫음에도 예전의 방식으로 억지로 웃으며, 선한 사회복지사와 일 잘하는 유능한 관리자의 가면을 쓰는 본인의 모습이다. 위탁제도, 평가제도, 기관의 리더십, 생계의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이유가 아닌 것이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언제나 환경은 우리 편이 아니었고, 우리의 뜻대로 환경을 바꿀 수도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지역사회, 기관, 주민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번 워크숍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 사회복지사의 마음에는 분명한 씨앗 하나가, 땅 밖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넘어서 싹을 틔울 씨앗이 심어졌다. 두렵지 않은 사회복지사, 진짜 두려워할 것을 아는 사회복지사. 깨닫는 사회복지사 한 명이 지역복지의 진짜 자산이다. 김은혜 사회복지사처럼.

    사회적고립 발견과 대응, 성산복지관 사례
    사회적고립 발견과 대응, 성산복지관 사례

    멀리 보면서 가까이 보기 어렵다. 섬세하면서도 무던하기, 활발하면서도 신중하기처럼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추기 힘들다. 지역복지 현장을 방문해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실천과 연구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천을 잘하는 곳은 결과물을 정리하여 전하는 작업에 약한 면이 있다. 반대로 문서 전달력이 높은 곳은 실천력이 그만치 못 미치는 경우를 본다. 성공사례로 알려진 현장을 방문하면 종종 경험한다. 오늘 소개할 기관은 드물게 실천력과 연구력을 겸비한 곳이다. 마포구 영구임대단지 내에 있는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지역복지팀이다. 성산복지관에서 주관한 마포구 사회적 고립 예방 프로젝트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다. 지난 3년의 이야기’의 내용을 공유하며 현장에서 느꼈던 몇 가지 생각을 덧붙인다.1. 주민이 주민을 발견 성산복지관은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사회적 고립 관련 활동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두 가지 질문에서 하나를 남겨야 한다면 단연 앞의 질문이다. 다른 사업은 발견이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다. 이미 발견된 사람이나 찾아온 사람을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을 맡게 된 실무자가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업의 대상이 없다. 찾는 것부터가 시작되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다. 모집으로 시작하는 다른 사업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또한,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동안은 명확한 문제의식과 대상 세분화로 사업을 계획했다.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맞벌이 부부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은 개념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논문과 자료를 찾아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개념 정의가 되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부담만 더해지고 시작은 자꾸만 미뤄진다. 성산복지관의 답은 ‘실행’이었다. 물론 고민의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민에 그치지 않고 실행하면서 답을 찾았다. 직원들이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물을 지역주민과 나눴다. 주민이 건넨 힌트를 가지고 다시 직원들이 고민했고 고민의 결과물을 다시 주민에게로 가져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단어가 ‘발견’이다. 보통 사회적 고립 가구 뒤에 나오는 익숙한 단어는 ‘발굴’이다. 사각지대 발굴처럼 말이다. 발견과 발굴이 무슨 큰 차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 ‘발견’의 사전적 의미는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내는 것이다. ‘발굴’은 유적발굴과 신인발굴처럼 뛰어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 ‘발견’이란 단어가 중요한지 사전적 정의만 봐도 알게 된다. 사회적 고립에 처한 사람은 발견의 대상이지 발굴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땅을 파서 찾는 게 아니라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던 것을 찾는 것이다. 또한, 발굴과 발견의 중요한 차이는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발굴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발견은 주민의 몫이다. 사회적 고립의 시작점을 ‘발견’으로 잡으니 주체가 외부전문가가 아닌 주민이 된다. 성산복지관이 발견을 주민과 함께, 주민 중심으로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성산복지관은 이것을 ‘당사자 주민조직’이 ‘더 당사자 주민’을 찾는 것으로 기술했다. 발견의 핵심을 요약한 표현이다. 아직도 시작점으로 고민이 된다면, 없는 것을 발굴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인 주민이 일상에서 더 당사자인 주민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성산복지관의 답이다.2. 작은 성공의 경험 성산복지관은 주민이 주민을 찾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홍보지를 만들어 주민이 직접 주민에게 전달했다. 복지관 실무자에게는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처음 시도하는 주민에게는 부담이다. 실제로 참여한 주민은 기대보다는 걱정과 염려의 마음으로 홍보와 발견에 나섰다. 그런데 주민들의 걱정과 달리 이웃들이 관심을 가졌고 취지를 이해해주었다. 이웃의 응원을 받은 주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유형의 자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형의 자원만큼 중요한 것이 무형의 자원이다. 주민들이 처음 시도하여 얻은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작은 성공을 경험한 주민은 이후의 활동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고립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높은 목표로만 시작한다면 쉽사리 지치고 오히려 실패의 경험만 쌓인다. 원대한 목표도 이렇게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야 닿을 수 있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고립을 해소하고 죽음의 문턱에 놓인 이웃을 구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하자. 그리고 그 일에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자. 주민과 실무자 모두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이다.3. 기존의 사업을 활용 성산복지관은 자치구에서 실시하는 사회적 고립가구 전수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복지 분야와 관련해서 꼭 언급되는 것이 사각지대와 중복수혜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분야 정부지출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아직 중복을 논할 단계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중복’의 문제가 나오는 것은 실질적인 자원의 중복보다는 대상의 중복과 칸막이 행정, 공유되지 않는 정보 때문이다. 특히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문제는 심각하다. 비단 공공과 민간의 정보 공유만이 아니라 민간과 민간의 정보도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유사한 사업, 유사한 대상, 유사한 기능이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실행된다. 성산복지관은 지역의 정보에 민감했다. 공공의 지역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공공과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또한, 성산복지관은 외부 협력만이 아니라 기존의 내부사업도 연계했다. ‘노노케어’ 사업이다. 노노케어의 어르신들은 누구보다 많은 지역사회 정보를 가지고 있다. 성산복지관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사업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참여 어르신을 활용하여 사회적 고립 발견에 나선 것이다. 사회적 고립은 기존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관점의 전환과 새로운 방식의 실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상복지관의 사례처럼 기존의 사업, 인력, 네트워크에서 시작할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되, 실행은 기존의 사업부터 적용해 나가는 방식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행하라는 격언처럼 말이다. 실제로 성산복지관은 ‘노노케어’를 매개로 2018년 10월에서 2019년 사이에 총 3회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188명 방문했고, 49명을 새롭게 연결하였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사회복지사가 가가호호를 방문해도 얻기 어려운 성과이다. 기존의 사업을 활용하여 주민이 주민을 만난 결과이다.4. 주민의 밭 위에 자원과 프로그램 더하기 밭이 없는데 씨앗과 물을 준비하고 있으면 어리석은 일이다. 밭이 먼저다. 외부자원을 획득하여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이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복지사의 머리에서 사업이 시작되고 프로포절을 통해 외부자원을 획득한다. 계획에 맞춰 그때부터 사람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계획된 시간과 자원만큼만 실행하고 평가와 결과 보고로 사업을 마무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아무리 주민 참여와 주체성을 말해도 한계가 있다. 사회복지사의 문제의식과 필요에서 출발하여 계획수립과 실행의 주체가 실무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좋은 표현을 써도 주민은 프로그램의 참석자가 되고, 심하면 계획 마무리를 위한 수단이 된다. 성산복지관도 외부 공모로 자원을 개발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서 필요한 자원을 공모의 방식으로 충당했다. 프로포절을 위해 사업을 계획하고 사람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주민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내용이 계획이 되었다. 홍보와 모집,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보조금이 제한적이고 후원문화도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프로포절을 통한 자원획득은 필요하다. 다만 성산복지관의 사례처럼 순서가 바뀌지는 않아야 하겠다. 프로포절로 자원을 확보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고 있는 사업에 프로포절로 자원을 추가하는 것이다.5. 실무자의 3가지 제안 발표를 마치고 자유발언 시간에 성산복지관의 조지혜 과장이 강조한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섬세한 전략의 수립이다. 섬세하다는 말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주체가 주민과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복지관의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전략이 아니다. 성공적인 사업성과를 얻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조지혜 과장은 주민과 지역사회를 한 번 더 치밀하게 고민하기를 제안했다. 둘째, 주민 모임과 프로그램부터 함부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한 주민과 지역사회 중심의 치밀한 전략 없이 우선 주민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돌려 보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사업의 주체를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고, 어쩌면 사업의 주체를 잃어버리는 위험한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셋째, 동 주민센터와의 관계 정립이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은 동 주민센터와 접점이 발생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이슈로 공공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과제이다. 동일한 과제로 고민하기 때문에 협력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협력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협력을 압도할 전문성은 기본이고, 주고받는 협력의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한다. 잘못하면 협력이 아닌 공공의 대행자 역할에 그친다.  성산복지관의 사회적 고립 공유회를 마치면서 ‘태도와 실력’이라는 역량의 두 가지 요소를 다시금 생각한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의료는 단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위험한 기술이 되기도 한다. 기술은 반드시 바른 태도의 밭에서 실행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사회적 고립도 마찬가지다. 자원과 방법에 앞서서 주민과 지역사회 중심의 바른 태도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좋은 밭 위에 잘 심고 가꾸는 실력이 더해져야 한다. 주민을 만나고, 주민의 의견을 끌어내고, 주민이 말하게 하고, 주민이 움직이게 하고, 주민이 주민을 찾게 하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성산복지관의 2019년 공유회에서 사업에 참가한 주민의 발표가 있었다. 주민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문구로 참여 소감을 말하며 발표를 이어갔다. '주민 000 님'이라는 자막이 없었다면, 사업 실무자의 발표로 알았을 정도로 참여 소감 정도만을 말하는 기존의 주민발표와는 차원이 달랐다. 주민 중심의 바른 태도 위에 주민이 중심이 되는 기술이 더해진 결과다. 주민의 말대로 사회적 고립의 실무자인 나는,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어느 정도 절감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사회적 고립 성과지표보다 더욱 중요한 점검 사항이다.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조지혜 과장의 조언대로 함부로 주민을 모아서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돌리기 전에 지역에 나가서 주민을 만나자. 그리고 주민과 지역사회에 대해 생각하자. 만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만나고, 주민과 지역 중심의 치밀한 전략이 세워질 때까지 되풀이해서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참여주민의 고백이 우리의 좌표가 될 것이다. 사회적 고립 대응의 흔들리지 않는 비전이다.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

    공유복지플랫폼(WISH)이 문을 열고, 그때부터 꾸준히 복지관 사회사업 이야기를 써왔습니다.주로 사례관리 업무, 지역복지 실천, 사회사업 글쓰기. 세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제안했습니다.이런 실천 제안이 여전히 '이상적'이라 여기기도 합니다.고맙게도 동료 사회사업가들의 여러 실천 사례가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좋은 증인과 증거가 있으니 말에 힘이 실립니다.세 주제 가운데, 적어도 복지관 현장에서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 세 가지가 있습니다.① 오래 맡아 일하지 못하는 상황복지관 현장에서는 어느 팀에서 일하든지 대체로 그 일을 3년 이상 맡기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업이든 3년 이상 지속하는 사업도 찾기 어렵습니다. 오래 이어진다고 해도 처음 의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어느 통계에서는 복지관 사회복지사의 근속 기간이 1년 반, 어디에서는 3년이라고 합니다. 길어야 3년 일하고 이직한다는 말입니다. (대체로 복지관은) 그만두는 이유가 보수는 아닙니다. 뜻있게 일하지 못하는 현장에서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어려워서,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더욱 공유복지플랫폼에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일하며 얻는 재미와 감동이 다른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그만두지 않아도 요즘은 기관 안에서, 혹은 법인 안에서 인사이동이 있어 한 가지 업무를 3년 이상 맡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건·명’ 따위 실적이 넉넉하고 평가를 잘 받는다고 해도 자꾸 사회복지사들이 떠나가고, 매번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과 또다시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입니다. 좋은 사업은 좋은 사람에게 나옵니다. 특히 사례관리 업무는 사람 사이 관계가 중요한 일인데, 관계를 맺을 시간도 없이 자꾸 사람이 들고 나는 현실이야말로 변화와 성장을 더디게 합니다.꾸준히 실천하며 경험이 쌓이지 않는 상황, 이것이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입니다.② 혼자 다하려는 어리석음복지관 외부 평가는 여전히 정량 평가입니다. 몇 건, 몇 회를 묻는 방식입니다. 새롭게 찾아 나선 가정 몇 건, 상담 몇 건, 사례회의 몇 건, 서비스 의뢰나 연계 몇 건… 이런 사업 진행 방식이 뜻있는 실천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이런 평가 방식이 문제일 수도 있으나, 이를 사회복지사 혼자 감당하려고 하니 어렵고 힘이 듭니다.사회복지사답게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면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이루니 수월합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니 ‘건·명’ 따위는 어렵지 않게 이룰뿐더러, 당사자가 사례관리 업무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묻는 외부 평가 기준에도 들어맞습니다. ‘외부 평가’는 대체로 우리 실천이 진정 당사자에게 유익했는지를 살피는 평가 기관 나름의 방법입니다. 복지관 현장에서는 평가 기관이 여럿입니다. 특정 기관의 평가 방식만을 쫓다가 또 다른 평가 기관이 무언가 요구하면, 그때는 허둥댑니다. 다른 기관도 역시 당사자를 잘 도왔는지 나름의 방식으로 묻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일 년 내내 평가에 끌려다니다 끝납니다. 평가 기관 요구에 맞추다 시간 다 보냅니다.사회사업가로서 마땅함을 좇아 일하면 편안합니다. 마땅한 사람살이에 뜻을 두고 일했으니, 평가 기관의 요구에 그때그때 적절하게 답하면 됩니다. 대체로 그 요구라는 게 사람 사는 이치를 벗어나지 않으니 마땅함을 좇아 일한 결과로 답하기 충분합니다.이런 방식이야말로 지금 우리 현실을 생각할 때 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현실 책’입니다. 또한, 상황을 바꾸는 ‘근본책’입니다. 실적을 사회복지사 혼자 다 채우려고 힘쓰는 어리석은 상황, 이것이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입니다.③ ‘사회복지사다움’의 상실실적과 평가의 압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생각처럼 큰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실적이 잘 나오고 평가를 잘 받아도 내가 사람을 뜻있게 도왔는지, 그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일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외부 평가’는 낮은 수준의 목표입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이렇게 이루는 게 마땅하니 이 길을 택할 뿐입니다.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를 중심에 두는 실천은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빛나게 합니다. 사회복지사 역시 이런 방식과 그로 인한 결과로 보람을 느낍니다. 그 힘으로 나아갑니다. ‘아, 이래야 사람이지! 이런 게 사람 사는 동네지!’ 하며 감동합니다. 그런 감동이 그다음 사람을 더 잘 만나려는 마음을 품게 합니다. 우리를 뜨겁게 하고 그 열정으로 당사자의 삶 터와 지역사회를 열심히 다니게 합니다. 이런 경험을 맛본 사회복지사는 쉽게 소진되지 않습니다. 정처 없고 난데없는 실천.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향하는지, 어떻게 돕는 게 잘 돕는 일인지, 이런 질문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는 상황, 이것이 사례관리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진짜 이유’입니다.

    Episode_13_링겔만효과는 불승인된다_두 번째
    Episode_13_링겔만효과는 불승인된다_두 번째

    100이 아니라 80!  말의 입장에서 봅시다. 누가 무임승차자일까요? 말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전의 100%에서 93%로 힘을 줄였기는 하지만 마차의 속도는 이전보다 186%로 증가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숨이 이전보다 가쁠 것입니다. 힘이 듭니다. 만약, 200%로 달린다면 말은 숨이 찰 것입니다. 말 스스로 합리적으로 조절한 것입니다.조직민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 참여자가 증가할수록 1인의 힘이 100%가 되지 않고 감소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어찌 되었던 1인은 93, 85, 43%의 힘을 줄이게 되지만 항시 총합은 100%를 넘기 때문입니다. 조직은 혼자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혼자서 100%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사람에게 참여자를 증가시켜 그 힘을 줄여주는 것이 호혜성입니다. 조직은 구성원들 간의 호혜성으로 움직입니다. 조직이 구성원을 더 많이 충원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구성원들을 경쟁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수학적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힘의 크기는 수학적 연산규칙인 곱(X)이 되지 않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호혜성에 의해 서로의 힘을 분배합니다. 그리고 네트워크 에너지를 형성합니다. 링겔만 실험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2인일 경우에는 93%(186%/2인=), 3인일 경우에는 85%(255%/3인=)...8인일 경우에는 무려 43%(392%/8인=)로 감소한다'   실험결과에서 8인이 줄을 잡아당겼을 경우 모두가 43%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추정치로 392%의 힘에 대해 8인으로 나누었을 뿐입니다. 즉, 392%의 힘 안에는 어떤 사람은 93%를, 어떤 사람은 85%를, 또 어떤 사람은 43% 이하로 힘을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힘의 양은 2인이나 3인이 잡아당겼을 경우보다 큰 392%입니다. 아마도 43% 이하로 쓴 사람이 있다면 이미 이전부터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43% 이상의 힘을 쓴 사람은 처음으로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실험에 계속 참가하느라 힘이 들 터이니 조금은 힘을 빼도 돼, 이번에 처음 참가한 내가 힘을 더 쓸게!' 이것이 조직의 호혜성입니다. 이러한 호혜성이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되며 조직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네트워크는 소속감을 공유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업을 줬을 때,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신뢰의 자본을 형성합니다. 그것이 구성원들이 느끼는 조직에서의 행복입니다. 이러한 호혜성을 간과하고 단순한 실험결과의 수치에 따라 사람을 도덕적 해이, 무임승차, 사회적 태만으로 단정하는 것은 사람을 동물(마차를 끄는 말)이나 기계(힘을 재는 측정도구)로 판단한 오류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링겔만의 효과에서 얻어야 하는 조직의 함의는 적절한 업무분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00%*참여자의 수='로 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사람이 100%의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할까요? 줄다리기가 그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참여자의 힘은 80%만 쏟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일에 투자하라! 조직에서도 구성원 1인의 공헌도는 80%면 적정합니다. 나머지 20%는 휴게 내지는 여가시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사람은 그 시간 속에서 노동의 재생산성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받은 월급의 120%를 쏟아 붓는 것이 직장인의 덕목이다.' 조직민주주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20%를 다 쏟아부으면 노동은 재생산되지 않습니다. 창의력도 촉진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집니다. 삶은 피폐해집니다. 그렇게 소진되어 갑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조직도 퇴화하여 갑니다. 이러한 조직에서 사람은 소모품일 뿐입니다. 사람과 조직은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관점으로, 그리고 비용투자 대비 효율보다는 효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단기적 관점이라면 모두 100% 이상의 힘을 내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내 버려질 것이며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장기적 관점이라면 힘을 조절하면서 힘을 분산시켜 성장을 지속하여야 할 것입니다. 비용투자대비 효율이라면 당연히 100% 이상의 생산성 증대이겠지만, 비용투자대비 효과라면 사람이 증가하면서 발견되는 조직의 유익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80%만 쏟아 부읍시다. 단! 그 시간만큼은 모든 열정과 헌신을 쏟아 부읍시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씁시다. 그것이 우리가 일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링겔만의 실험에서 참여자들이 힘을 뺀 이유, 그래서 사회적 태만이나 무임승차자로 기꺼이 손가락질 받으면서 까지 힘을 뺀 이유는 사람됨을 지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어르신 3분을 1명의 워커가 100%를 다해 케어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명의 워커가 추가됩니다. 이 둘은 자신의 힘을 100% 다 활용하여야 할까요? 아닙니다. 줄여도 됩니다. 이미 그 이상의 힘을 다 쓰고 있었으므로 줄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추가된 워커도 이전에 100%를 제공하고 있었으므로 100%에서 줄여서 힘을 써도 100% 이상이 됩니다. 이때 기존의 100%의 힘을 쓰던 워커가 힘을 감소시켰다고 해서 도덕적 해이일까요? 새로 참여한 워커가 100% 이하로 참여하였다고 해서 무임승차일까요? 과연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일을 하다 보면 자신 스스로 100%, 120% 이상의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집니다. 힘은 그때 쓰는 것입니다. 항시 100%를 사용하고 있으면 이런 상황에서 힘을 쏟아 붓지 못합니다. 이미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80%의 힘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언제 써야 할지에 대해 구성원들이 알아서 조절하여야 할까요? 아닙니다. 호혜성과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직의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 노동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광학렌즈로 유명한 독일의 자이스(Zeiss)광학연구소는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1908년에 1일 8시간 노동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들의 생산성 연구를 보면 평일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할 때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몸과 감성의 작동이 더뎌지게 되고 생각은 경직되며 수동적 태도, 문제해결능력이 저하되게 되는데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뇌의 활동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가 잠들어 있을 때는 최근의 기억과 경험을 검토하고 정리하고 강화하느라 분주하다고 합니다. 만약 수면이 부족하면 이러한 뇌의 활동이 저하되어 문제해결능력을 감소시키게 됩니다. 수면할 시간에 노동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피로가 쌓이게 되어 자아 강도는 극도로 약화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자유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아틀라시안(Atlassian), 포스트잇을 만든 3M, 그리고 구글(Goole)의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는 구성원들의 업무시간 중 15~20%를 자유시간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파생된 성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자유시간이 성공하는 이유는 조직의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유시간은 조직이 아닌,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은 본디 자율적 존재입니다. 그렇게 태어나고 길러지다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그 무렵부터 통제가 일상화됩니다. 통제된 일상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은 제도권에서 부여하는 고정화된 과업을 달성했다는 증명서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증명 속에서 언제나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성입니다. 쉬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욕구는 자율성 욕구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한 자유시간 속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도전이 꿈틀거릴 것입니다.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주면 구성원들이 나태해지지 않을까요? 놀러 갈 생각만 하지 않을까요? 땡! 또다시 사회적 태만, 도덕적 해이, 무임승차를 두려워하시는군요.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부터 링겔만이든 무엇이든 시작이 됩니다. 사람은 훌륭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구성원들도 훌륭한 존재입니다. 당신이 훌륭하듯이 당신의 동료들도 훌륭합니다. 당신이 사회에 기여하고 조직을 성장시키고자 하듯이 그들도 역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이스광학연구소, 아틀라시안, 3M, 구글이라는 회사가 훌륭한 것은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고 그 믿음에 기초하여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조직이 되고 싶다면 사람에 대한 믿음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 링겔만효과를 승인할 것인가? 불승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링겔만효과는 불승인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