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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지교육센터,
당신과 함께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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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지교육센터,,,
당신과 함께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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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안내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2021년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사업 '이웃살피미' 실무자 기본교육

    모집기간 : 2021-04-21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공공 교양 강좌] 복지국가와 복지공동체 이해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공공 실무교양 강좌]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이해 1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공공 실무교양 강좌] 좋은돌봄의 개념과 윤리 이해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교양 강좌] 복지국가와 복지공동체 이해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교양 강좌] 서울형 복지전달체계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실무교양 강좌] 사례관리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실무교양 강좌] 위기 사례관리 기초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실무교양 강좌] 위기 사례관리 심화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실무교양 강좌]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의 철학적 배경과 자립지원 원칙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실무교양 강좌] 좋은돌봄의 기본 개념과 윤리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국민을 보호하는 심리사회방역지침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사회복지 재무회계의 첫걸음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신설)돌봄SOS센터 전산활용의 이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 찾동 사례관리 과정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 찾동 자치구 교육(방문안전관리)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 찾동 자치구 교육(위기사례대응매뉴얼)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 찾동 자치구 교육(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 이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022 찾동 팀장(복지, 행정) 과정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2022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평가 전문위원 심화교육과정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공공 실무교양 강좌] 위기 사례관리 심화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서비스제공기관 대상]돌봄SOS센터 전산활용의 이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COVID-19극복프로젝트! 소중한 내 일상 다시찾기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노인건강관리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메리토크라시관점에서 본 복지와 철학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보건복지종사자를 위한 안전지킴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인권

    모집기간 : 2022-01-01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한국형 커뮤니티케어, 지역사회 통합돌봄 발전방향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연계과정] 해결중심 상담기법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돌봄SOS센터 사업추진배경의 이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돌봄SOS센터 운영매뉴얼의 이해(2021)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돌봄SOS센터에서 활용가능한 복지자원의 이해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찾동 신규직 과정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동장의 모든것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공공 실무교양 강좌] 위기 사례관리 기초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지역밀착형 사회복지관 기본 교육

    모집기간 : 2022-01-03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팬데믹 상황에서 돌봄 인력의 역할과 중요성

    모집기간 : 상시
    book01
    [시민교육]

    찾아가는 복지학교 2022 상반기

    모집기간 : 2022-04-01 ~ 2022-06-30
    book01
    [공무원교육]

    사회복지리더교육1기-사례관리기본과정

    모집기간 : 2022-04-04 ~ 2022-05-26
    book01
    [공무원교육]

    사회복지리더교육1기-사례관리실천과정

    모집기간 : 2022-04-04 ~ 2022-05-26
    book01
    [공무원교육]

    사회복지리더교육1기-사회복지기본과정

    모집기간 : 2022-04-04 ~ 2022-05-26
    book01
    [공무원교육]

    사회복지리더교육1기-해결중심상담과정

    모집기간 : 2022-04-04 ~ 2022-05-26
    book01
    [공무원교육]

    2022년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사업 기본교육

    모집기간 : 2022-04-26 ~ 2022-12-31
    book01
    [공무원교육]

    22년 돌봄SOS센터 돌봄매니저 1차 워크숍(공적돌봄제도편)

    모집기간 : 2022-05-16 ~ 2022-05-27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좋은돌봄 기관장교육(1기) A과정

    모집기간 : 2022-05-17 ~ 2022-05-26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2022년 기능보강사업 계약실무 교육_공사 계약 실무 과정

    모집기간 : 2022-05-03 ~ 2022-05-30
    book01
    [기관종사자교육]

    좋은돌봄 기관장교육(1기) B과정

    모집기간 : 2022-05-17 ~ 2022-05-30
    book01
    [공무원교육]

    [강동구]찾동 기초교육

    모집기간 : 2022-05-23 ~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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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 사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도 있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회복지사보다 지역사회를 더 잘 알 테니 일을 수월하게 할 거랍니다.

    어느 복지관은 입사 조건으로 복지관이 있는 동네로 이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복지관도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① 그렇다면 처음부터 신입직원 지원 조건을 그 지역 주민으로 한정한다고 했어야 합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이를 우리 지역을 위해 데리고 오는 모습입니다.

    저쪽 지역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을 내어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위해서라면 다른 지역의 인재를 아무렇지 않게 데리고 와도 된다는 말입니다.

    ② 그렇게 이야기한 그 복지관 선배들은 그 지역에 살지 않습니다. 모순입니다.

    당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요구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습니다.

    “노인이 노인의 마음을 제일 잘 안다.”

    그렇다면 노인복지관 관장은 노인이어야 합니다. 혹은 직원은 반드시 노인이어야 합니다.

    과연 노인이 노인의 마음을 제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인들은 노인복지관 직원이 모두 노인이기를 바랄까요?

    “이 동네 주민이 이 동네 사람 마음을 제일 잘 안다.”

    그렇다면 그 지역 복지관 관장이나 직원은 그 동네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역주민이 그 지역사회를 제일 잘 알고 있을까요?

    주민들은 복지관 직원이 모두 동네 사람이기를 바랄까요?

    같은 노인이기에 오히려 말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이기에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내가 그와 비슷한 처지이고 같은 지역에 살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신감 때문에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에서는

    복지관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을 매년 모집하여 지도해왔습니다.

    학생들과 가깝고 친해지려는 마음으로 유행어와 가벼운 농담으로 대하는 게 진정 유익일까요?

    그렇게 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어떤 광고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대하는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 만나는 선생님이 진정 아이들에게 유익일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행동하고 선생님답게 말했을 때,

    이로써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성장합니다.

    * 2014년 5월 15일 KBS에서 방영한 ‘나는 선생님입니다’

    중학교 교사 김정석 선생님은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친해진 아이들이 선생님 이야기를 더욱 듣지 않더랍니다. 지금은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되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그것이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역주민을 대할 때 지역주민의 눈으로만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진정 지역주민을 위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눈높이를 맞추는 게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눈높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주민이 누구이든,

    그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만날 뿐입니다.

    사회복지사답게 작은 일도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당신 일이게 할 뿐입니다.

    친해지기보다 인격적 관계이고 싶습니다.

    무엇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할까요?

    주민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여 지역사회를 위해 나서게 하는 마음이 어떻게 일어날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기술로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또 그런 특별한 기법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역 출신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인맥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지역사회에 사는 게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가까이 살며 지나치게 많이 알아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입니다.

    사회복지사의 진정함 마음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적어도 복지관 사회사업은 기술보다 태도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뜻을 좇아 바르게 일할 때,

    그 모습에 감동하며 함께하려 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주민과 인격적 만남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사자를 만나는 태도, 즉 말과 행동이 일의 성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사회사업가로서 말투와 표정, 시간과 자세…

    이런 몇 가지만 잘 붙잡아도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기술보다 품성이 많은 것을 좌우합니다.

    <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 (구슬꿰는실, 2021)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 위한 조건_감독은 강화하고 규제를 풀어라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 위한 조건_감독은 강화하고 규제를 풀어라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인원회(이하 인수위)의 국정과제 중, 사회복지 분야에는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서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경조직과 기업 및 종교단체의 사회공헌'을 통해 다변화와 규모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중앙 및 시도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혁신' 하여 혁신활동을 '진흥'하겠다고 했습니다.인수위의 복지분야의 방향은 마치 노무현 정부시절(2003~2008)을 떠 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현장을 혁신하고자 사회복지시장의 다변화와 시장화를 도입합니다. 그 예가 사회복지시설의 주체를 기존의 사회복지법인에서 민간과 사단법인에게 열었다는 것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입을 통한 민간화, 시장화 전략입니다.다변화, 시장화, 민간화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겠습니다. 다변화는 다양성으로써 사회복지법인만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민간 주체와 공공이 공급자로 균형을 이루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긍정적일 것입니다. 시장화 역시도 융통성이라고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보조금 지급방식보다는 창출한 수익을 탄력적으로 분배하는 민간 재원의 효율성이라는 이점이 있겠습니다. 민간화 역시도 공공이라는 단일 공급 주체보다는 지역과 시민, 그리고 기업이 복지수요에 공급자로 함께 함으로써 자원의 교류와 협업이라는 유익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기대했던 바도 이러한 사회적 효용성이었습니다.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사회서비스는 주체는 크게 다변화되지도 못했고 오히려 질적저하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장화와 민간화는 서비스질에 대한 의문과 사회서비스의 노동질 저하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문제를 밝히는 것이 차기 정부가 구상하는 복지국가 개혁방향에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지난 20여년의 현장의 역사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생태계란 생물입니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죠. 그럼으로 사회서비스의 혁신 생태계의 우선적 조건은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현장의 자율성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생태계와 현장의 생태계는 조금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이슈입니다. 자연의 생태계는 광대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균형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생태계는 시간을 맡겨 두고 볼 일이 아닙니다. 시간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속도에 대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죠.노무현 정부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패착은 바로 시간 조절이었습니다. 전국민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에 있어 공급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가 절대적이었습니다. 보험료를 징수하고 있는데 막상 서비스를 제공받을 기관이 없다면 국가보험에 대한 저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만간공급자 진입의 문턱을 낮추어 버립니다. 생태계에 다양한 생물들이 들어와 생태계가 빠르게 조성되었지만 유해한 생물들을 거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일단 생태계를 조성한 후에, 관리감독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군구의 공무원들은 태부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부족현상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관리감독도 역시 생태계입니다. 이렇게 사회서비스 생태계의 균형을 잃게 되니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는 하지만, 유해한 서비스 공급이 이루어지 생물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꺼낸 것이 '고시'라는 규제입니다. 현재의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고시라는 규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어떠한 혁신적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모두 고시라는 규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규제의 폐해가 여실히 증명됩니다. 현장은 코로나의 확산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시'로 인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직 '방역지침'만을 기다리고 그 지침을 준수하는 선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적응되어 버린 것이죠노인복지현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니 공급주체가 필요합니다. 공급주체를 늘려 생태계를 조성했지만 관리감독해야 하는 공무원은 태부족입니다. 결국 다양한 '규제'를 만들어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합니다. 이러한 경로는 모든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서비스는 그 규모가 커진 것 이상이나 너무나 규제적입니다. 규제가 있는 곳에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혁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혁신은 최종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조건은 '스스로'입니다. 외부의 에너지에 의한 변화는 혁신이 아니라 '변형'입니다. 사회서비스 현장은 정권이 바뀌는 5년에 1번씩, 또 평가가 시행되는 3년에 1번씩 주기적인 '변형'과 마주하게 됩니다.(현장은 3년 또는 5년 주기로 혁신을 당합니다) 인수위의 개혁 방향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똑 같은 경로를 밟는다면 혁신이 아니라 5년에 1번 찾아오는 외부에 의해 혁신을 당할 뿐입니다. 이것은 변형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숙고가 없다면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가 아닌 '사회서비스 변형 조작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생태계가 아닌 조작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대안을 제시하자면 이렇습니다.첫째, 관리감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관리감독에 대한 저항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생태계 안에 있는 유해생물은 반듯이 치료하거나 도태시켜야 합니다. 자연생태계는 그 스스로의 치유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균형을 찾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생태계는 스스로의 치유 본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쟁에 의한 자연적 도태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태되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다른 건강한 기관을 오염시킬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관리감독이라는 생물입니다.시군구의 관리감독 기능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리(인사비리와 회계비리)'와 '인권(구성원과 이용자에 대한 성,경제,신체적 폭력)'의 문제가 발생한 시설의 운영자 또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사와 처벌이 요구됩니다. 현재의 사회복지사업법의 행정명령을 보면 시설장 교체 또는 시설폐쇄가 최고 처분입니다. 시설장 교체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시설폐쇄는 구성원들과 이용자에게 피해를 줍니다. 운영주체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사회적 이슈의 해결도 위와 같겠습니다. 노인의 학대, 기관의 비리, 서비스노동자의 낙후된 처우는 공급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관리감독의 부재에 있습니다. 20년 전에 노인복지 담당자가 1명이면 지금도 1명인 곳이 많습니다. 관리를 받아야 할 기관은 몇 십배로 증가했는데도 말이죠. 원인이 관리감독인데 이것을 강화하지 않고 공공이 공급자가 되어 생태계를 구하겠다는 것은 역할을 상실한 것입니다.(관련된 저의 주장을 글의 마지막에 링크하겠으니 참조 바랍니다) 이러한 예는 모든 사회서비스 현장에 동일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두 번째, 관리감독이 강화되었다면 이제는 규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혁신이란 난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제란 자신이 정의한 문제입니다. 누가 해결하라고 시킨 것은 난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난제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혁신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자신이 정의한 난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회서비스 현장을 보면 모든 난제들이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학계가 지정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해결방법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각종 사업안내와 지침, 그리고 고시에 의해서 말이죠. 이것이 규제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만든 현장은 스스로의 내부 지침을 만들어 규제합니다. 2중 3중으로 둘러싼 지침 속에서 과연 창발성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의 사고력은 규제에 둘러 쌓여 있으면 생존에 대한 창발성만 자극합니다. '이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살아남으려면 지침을 잘 따라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규제는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이하 시설평가) 등 각 유형별로 주어지는 평가체계입니다. 3년 후에 예고된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를 그 틀에 가두어야 합니다. 결국 3년에 한 번씩 종이에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사람의 창발성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주어진 평가체계에 상응하는 업무를 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또 다른 일을 도모하여야 하는 창발성이 나오는 것은 생존의 욕구를 거스를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평가는 시설의 생존이고 그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을 거스르고 창발적 아이디어로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은 논리를 벗어난 행동입니다. 또 다른 규제는 5년 마다의 위수탁제도입니다. 이 역시 생존의 문제이고 종이에 인생을 걸아 넣어야 하고 사회복지시설평가의 결과가 위수탁여부에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이러니 주기적인 3년과 5년 그리고 지침이 개정되는 매 해마다 창발적 아이디어들이 죽어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사업안내와 지침을 맹신하는 구조가 만연합니다.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써만 작용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사회서비스 현장에서의 자율적 선택으로 유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설평가는 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가는 하되 그 결과의 현실적 의미가 무엇인지 동의가 되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보상과 처벌이 아닌 사회가 기대하는 서비스의 차이를 줄이는 평가제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위수탁제도는 준위탁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준위탁제도란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은 기존의 계약을 변경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시설에서 인권이나 비리의 문제가 없다면 5년 마다 심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 갱신되는 제도입니다. 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매뉴얼과 평가, 그리고 계약이라는 이 제도를 선행적으로 개선할 때 현장이 매력적일 수 있겠습니다.인수위는 사회복지 R&D확대, 스마트 사회복지시설 시범사업, 종사자 처우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감독과 규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이 3가지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창발성을 저해하고 있는 평가와 수탁제도로는 연구개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 사회복지시설 시범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매뉴얼과 지침을 완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종사자의 처우개선이란 것이 급여를 높이는 등의 복리증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사자들이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공감하고 정의하고 상상하여 문제를 해결해 감으로써 일의 의미와 자기를 실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처우개선일 것입니다.마지막으로 다룰 것은 사회서비스원의 '진흥'이라는 역할입니다. 인수위는 중앙 및 시도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혁신하여 민관협업과 혁신활동을 지원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인쉬위원장은 한마디로 '진흥' 역할이라로 하였습니다. 사회보장정보원의 사회복지시설평가 사무를 사회서비스원으로 이관하였습니다. 문제는 이관의 근거가 사회서비스원의 주요 목적사업이 아니라 정부가 위탁하는 사무라는 것입니다. 시설평가가 사회서비스원의 목적사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탁사무가 잘 될 일이 없습니다. 재정적 한계도 분명하고 사회서비스원의 주요 사업이 아니기에 후순위가 될 수 있습니다. 평가는 관리하기 위함입니다. 관리는 영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평가의 사무가 이리저리 유랑하는 사업이 아니라 책임을 가지고 지속하는 사업이 되었으면 합니다.(평가의 사무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보장정보원, 중앙사회서비스원으로 옮겨 다녔고 매번 위탁사업이었음)사회서비스원에 관리감독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언에서, 관리감독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밝혀지만 정부의 직제법상 지방정부에 사회복지시설을 관리감독하는 공무원을 증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리감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적인 제한으로 인해 중앙과 시도에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이 관리감독 기능을 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벌의 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것은 시군구에 남겨두고 조사의 기능을 부여하였으면 합니다. 사회서비스진흥원법(안)이라고 있었습니다. 물론 입안되지 못하고 상정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제가 주장하는 바와 같습니다. 중앙과 지방에 사회서비스진흥원을 설치하고 평가와 감독을 하는 것입니다. 부결된 이유는 현장의 사회복지법인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관리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제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하지만 생각해 볼까요? 관리감독의 부재로 도매급으로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사업자가 부정한 사업자의 비리와 인권 이슈로 인해 같은 부류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시각으로 볼 때 부정한 집단에 어떤 인재가 진입하려고 할까요? 부정한 집단에 누가 자원을 투입하고 사회적으로 전문가집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현장의 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관리감독을 싫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관리감독하여야 합니다. 시군구가 아니라면 제3의 관리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제 주장이 매우 모순적이라고 이해하실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규제를 풀으라는 것은 모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고 시민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이 주장은 사회자유주의 사상입니다. 또한 복지국가의 초석을 쌓는데 기여한 토마스 힐 그린(Thomas Hill Green)을 사상적 지주로 여기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이기도 합니다.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국가가 사회서비스의 공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유럽국가들이 그러하죠. 하지만 그 국가들에게 있는 것이 사회서비스의 관리감독기구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관리감독에 너무나 저항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변화되고 다양화된 현재의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관리감독의 강화와 제3의 기구가 필요한 것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겠습니다.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되, 민간에는 규제가 아닌 자유를 허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시민입니다.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업안내에 나와 있지 않는 대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 들어오지 않으면 사회서비스는 공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규제로 인한 폐해입니다. 규제에서 자유로우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회에서는 평등한, 그래서 모두가 연대할 수 있는 그런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바로 조직민주주의이자, 현장민주주의입니다.사회서비스원은 공급자가 되어서는 안된다https://blog.naver.com/connected-rdp/221607630761

    5월, 우리가 누군가의 기적이 되는 순간: 영화 <기적>
    5월, 우리가 누군가의 기적이 되는 순간: 영화 <기적>

    5월, 우리가 누군가의 기적이 되는 순간: 영화 <기적>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학부 안순태 교수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을 마주할 때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자주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는 기적을 무심코 지나치거나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누군가의 작은 기적이 되어 큰 기적이나 엄청난 기적을 낳을 수도 있다. 가정의 달 5월,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영화 <기적>은 외딴 시골 작은 마을, 외톨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알아보고, 그를 돌봐주고, 그와 긴 여정을 함께 한 사람들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크고 작은 순간 순간들이 연결되며 어린 소년이 커 나가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꿈을 보면서 기적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사람이 소중해지고, 그 소중한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기적>의 임윤아와 박정민사람이 사람에게서 힘을 얻고 성장의 터전이 되는 무형 자산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사회자본은 우리의 정신적 건강과 현실적 생활에 필요한 자산이다. 경제 자산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듯이 우리가 지닌 사회 자본은 우리 삶의 가치증대에 필수적이다. 외딴 시골 소년이 우주과학자의 꿈을 향해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사회 자본의 힘이고, 그 결과물을 영화 <기적>은 보여준다.   영화 <기적>은 1988년 경북 봉화군에 실제 세워진 최초의 민자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곡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땅을 파고 건물을 지어 민간자본으로 만든 간이역이다. 간이역 허가를 받기까지 한 소년의 포기하지 않는 땀과 노력, 그리고 그와 함께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물과 웃음으로 펼쳐진다.   원곡 마을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 가기 위해 터널만 세 개를 지나야 하고 철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운행시간이 불규칙한 화물열차를 만나게 되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준경(박정민 분)이 학교에서 큰 상을 받고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날도 철로 위를 걷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 <기적>의 철로 위 마을 사람들   어린 준경은 마을에 간이역을 세워달라는 청원을 올리며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청와대에 보내는 54번째 편지를 쓰고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라희(임윤아 분)는 준경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순수함에 반하며 간이역 청원을 도와주겠다며 다가온다. 라희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공세에 어느새 둘은 가까워지고 라희는 자신을 준경의 뮤즈라 칭한다. 웃음 없던 외톨이 소년의 얼굴이 밝아진다.   학교에선 말수 없는 준경의 옆에 라희가 늘 함께하고, 집에 오면 누나 보경이 챙겨주고 돌봐준다. 둘째 준경을 낳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경은 준경의 엄마와 다름없다. 준경을 돌보며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이다. 준경에게 여자친구 라희가 생겼음을 짓궂게 놀리면서도 커가는 준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라희와 보경은 준경을 햇빛 들지 않는 음지에서 푸근한 양지로 움직여주는 존재이다. 외톨이 소년이 어두운 구석에 박혀있지 않도록 손을 내밀고 끌어준다. 물리선생님 김용환(정문성 분)은 준경의 특별함을 알아본다. 수학천재인 준경이 자신의 터를 찾고 꿈을 꾸게 살펴봐준다. 도전적인 과제를 던져주며 준경이 스스로의 능력을 알아차리게 한다. ‘제가 할 수 있겠는겨?’라고 반문하는 경상도 시골 소년에게 우주과학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보게 한다.   준경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의 꿈을 함께 살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준경은 외톨이 시골 소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최초의 민자역을 세우게 되는 기적 보다 더 귀한 순간들은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다. 시골 소년을 성장시키고 꿈을 이루게 하는 터전이 된 무형자산이 준경의 사회자본이다.   금수저, 흙수저 등 눈에 보이는 경제적 잣대로 평가받기 쉬운 오늘날, 우리가 지닌 소중한 사회자본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자본은 단순한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아니다. 신뢰, 협력,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지켜진다. 믿음을 바탕으로 함께 나누는 시간들은 그 자체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고 그 성과는 무한하다.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수줍은 시골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소년을 알아보고, 소년의 손을 잡아주고, 소년의 등을 토닥여주는 기적 같은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경의 외로운 시간 속에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은 우리 모두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걸 짚어주는 스승을 만나고, 그 꿈을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를 만나고, 그 길이 외롭지 않게 보듬어 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일들을 해내기도 한다.   물론 영화처럼 우리의 일상이 늘 따뜻하고 푸근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관심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며, 기가 죽는 일상의 연속 일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를 알아봐주고 보듬어주며 함께 걸어가주는 우리 옆의 그들에게 더욱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옆에서 우리의 기적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기에 좋은 5월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지금 누군가의 기적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순간들로 우리는 충만해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기적이 쉽게 일어나고 우리가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영화 <기적>은 깨우치게 한다.                                                                              영화 <기적> 포스터

    슬기로운 자문 활용법
    슬기로운 자문 활용법

    먼저 자문의 뜻부터 분명히 밝히면 좋겠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자문처럼 많이 쓰면서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문은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묻는 것’으로 쓰였다(국립국어원). 윗사람에게 의견을 물을 때는 조언과 도움을 구했다는 표현을 쓴다. 윗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물론 외부 전문가가 아랫사람이고 복지기관이 윗사람은 아니지만, 자문의 주체성은 복지기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과 주민에 대한 정보량도 복지기관이 외부 전문가보다 많다. 복지기관이 더욱 적극적으로 자문을 활용하면 좋겠다. 자문받는 수동성에서 자문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겠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네 가지를 제안한다.첫째, 비판적으로 듣기다. 한국 교육의 폐단을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하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비판적 듣기 능력을 잃게 만든 것이다. 한국 교육에는 시험의 답을 맞히기 위한 일방적 듣기만 있다. 증거가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질문이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 쌓인 경험이 사회생활로도 이어졌다.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자신의 다른 생각을 더 하지 못한다. 현장의 자문도 다르지 않다. 자문 요청지의 형식적 질문을 빼면 좀처럼 질의응답이 이어지지 않는다. 외부 전문가의 말을 듣고 기록하는 것으로 끝난다. 전문가는 질문의 정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경험과 생각을 제시할 뿐이다. 그것을 무조건 수용할 필요도 없다. 지역과 기관의 특성에 맞춰서 필요한 것은 수용하면 된다. 맞지 않는 것은 전문가의 생각과 자기 생각을 저울에 올려놓고 판단하면 된다. 전문가의 생각이 맞으면 내 생각을 바꾸고, 내 생각이 맞으면 생각대로 실천하면 된다.둘째, 세밀한 질문이다. 공부는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양보해서 질문에 답하는 것도 공부라 해도 그것은 낮은 수준의 공부다. 선진국의 교육과 고등교육에 질문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부는 질문을 만드는 수준만큼 성장한다. 질문에 답하는 게 익숙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어색하다. 자문의 핵심 수단은 질문인데 질문이 어색하니 자문의 효과가 당연히 떨어진다. 질문도 알아야 한다. 단기간에 될 일은 아니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면 좋겠다. 질문은 세밀해야 한다. 큰 질문에 큰 대답이 돌아온다. ‘삶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면 대답도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그 무엇이다’라는 불친절한 답이 돌아온다. ‘지역복지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크다. ‘주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거점 공간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모두 너무 큰 질문이다. 한두 시간의 자문으로 끝날 질문이 아니다. 세밀해야 한다. 한두 시간 안에 대답이 가능한 질문을 만들어보자.셋째, 관계다. 똑같은 말도 관계가 좋은 사람이 말하면 더욱 수긍이 간다. 외부 전문가와 현장 실무자라는 표현을 쓰지만 결국 사람이다. 자문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외부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자문의 효과가 높은 이유는 신뢰로 인하여 긍정적인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평이 있는 외부 전문가의 의견은 수준 높은 자문 내용과 별개로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특히 복지 현장의 외부 전문가는 대부분 현장의 경험이 있거나 실무자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다.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아무리 관계 능력이 좋은 사람도 자문으로 처음 만나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사전에 전화 통화, 문자, 메일로 소소한 접촉을 한다면 한결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사람들로 생각하지 말고 조금은 더 편하게 생각해도 좋겠다.넷째, 자발성이다. 자문의 본래 의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문에는 자발성이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가 필요해서 물어야 자문이 된다. 원하지 않는 일정에 포함되어 있거나 누가 시켜서 하면 자문이 아니라 형식적 회의나 효과 없는 교육이 된다. 자발성은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사업에 대한 애정과 실행의 경험에서 나온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궁금해진다. 사랑의 대상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가까워질 수 있는지 질문이 생긴다. 사랑을 시작해도 질문은 계속된다. 사랑을 시작하면 생각과는 다른 결과를 만나고 도움이 필요한 갈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문도 마찬가지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아직 실행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아니면 사업의 대상인 지역과 주민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발성은 애정과 경험에서 나온다.자문의 주체인 복지기관의 역할에 대해 말했지만, 자문을 실행하는 관과 자문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실 복지 현장에서 자문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는 관과 자문기관의 책임이 더욱 크다. 자문을 모니터링의 한 과정으로 사용하거나 적합한 자문 인력을 배정하지 못했거나 자문을 강제하여 자발성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문하거나 받아야 한다면 위의 네 가지 대안을 활용하여 조금이라도 현장의 실천에 도움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 피할 수 없다면 최소화하거나 잘 활용하여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부디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외부 전문가에게 반복하여 듣거나 일방적으로 듣고 받아 적는 일은 없기를.

    무섭냐? 나도 무섭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   “코로나가 뭐야? 어머어머 하루가 무섭게 늘어나네. 이를 어째?”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서로를 견제하며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너무도 낯설어 하는 풍경들이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이제는 일상이라는 예전 모습이 가물가물... 평범이 결코 평범이 아닌 일상.그러나 그럼에도 그 어느 때의 지루하다 싶던 일상마저 그저 그립다.   전철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사람들에 소스라치고 어디선가 들리는 기침소리에 모두가 토끼눈을 하고 서로를 주시한다. 내 목을 통해 나오려는 기침을 꾹꾹 누르며 숨조차 일시정지 상태로 견뎌보려 하나 결국 터지는 기침에 주변의 눈치를 보며 혼자 얼굴이 벌게진다. “아휴 왜 기침이 나는 거야. 나 코로나19 아냐...”   마스크 대란... 이것이 진정 현실?출근부터 긴장의 강도가 높고 사무실로 들어서면 또 다른 긴장이다. 9시와 함께 시작되는 민원업무에 서로의 긴장감은 이미 벽을 치고 있다.“마스크 올리세요. 제대로 올려 쓰세요.” “마스크 있어요? 내가 잊고 나왔네. 마스크 하나만 주세요.” 너도 나도 마스크를 정해진 날에 정해진 가격으로 사야 하는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법정 대상자분들에게 지급되는 마스크에 사람들이 시선이 머문다. “저 마스크 뭐여요? 나 좀 살게요. 나한테 좀 파세요”“아녀요. 저거는 파는 거 아녀요. 대상자 분들에게 지급하는 거여요.”“아휴 그러지 말고 좀 팔아요. 돈 줄 테니... 요즘 마스크 사기 너무 어려워요.”   줄을 서시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시행)“줄을 서세요. 손소독 하세요. 간격 띄우시고요. 체온 측정하고 들어오세요.”“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 먼저 해요” “ 어휴 붙지 마시고 좀 떨어지세요”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아침 근무시간 전부터 웅성웅성 모여든 인파에 질서를 잡을 수 없다. 정문 밖으로 줄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아직은 쌀쌀한 날씨인데... 감기 걸리겠다. 어르신들에게 양보하면 좋을 텐데...이런 저런 맘들이 교차하면서 그저 질서를 지켜 달라고, 천천히 하셔도 다 신청 가능하시니 한 분씩 차례로 상담해드리겠노라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쉬어가고 있다.혼잡한 오전이 어찌 갔는지 점심시간이 지나간다. 다들 밥맛이 없다며 식사 생각이 없다 한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오후를 버텨야 하기에..그렇게 한번으로 끝이 날 거라 기대하며 코로나 상생지원금 처음의 지원 업무가 진행되었다. 일과가 끝나고 나면 영혼이 털린 듯 멍해진다. 유사 상황을 반복하며 몇 차례의 지원금 업무를 전쟁 치르듯 하고 나니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가고 있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어쩔 수 없이 식사를 위한 식당 출입이 배가 고프다는 느낌보다 무섭다.배가 고픈것도 힘들고 식당 가서 마스크 벗고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어쩌지? 무서워. 왜 이렇게 확진자가 많아. 식당에 가도 될까?”“나도 무서워, 우리 그냥 사다가 떨어져서 먹자. 당분간이라도...”그렇게 불안함과 불편함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오후 근무 준비를 한다. 코로나 19의 시작과 함께 부과된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간다.일요일이면 종교시설의 방역수칙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출근을 하고, 몇 차례의 관련 지원금 업무로 사람에 치이고 목이 쉬었으며, 코로나 임시 선별검사소와 생활지원센터에 파견근무를 돌아가며 해야 했고, 자가격리자 관리업무를 위한 보건소 파견근무, 백신접종 관련 업무, 일회용장갑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치러야 하는 선거업무의 부담감에 피곤함이 쌓이고, 확진자의 투표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추가된 절차까지..어쩌면 그 긴 기간 동안 본연의 업무보다는 코로나19 관련 업무가 주된 업무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다. 혹독하게 치러진 코로나 전쟁이다.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온 세계가 너무도 큰 풍파를 넘고 있는 것이리.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확진자 폭증의 새로운 시작)아직 우리에게는 코로나 생활지원금 신청처리 업무가 남았다. 확진자 발생의 추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피곤함이 파도를 탄다.확진자가 늘면서 민원실은 부산스럽고, 확진자가 다행히 줄어든 시기에는 민원실도 웬만큼 평화가 유지된다. 아~~ 이대로 끝나는 업무이면 좋겠다.누가 그랬지? 모든 일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조만간 끝일 거라는 기대로 버텨왔건만 확진자 급증의 반전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의 지침 변경과 함께 현재까지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일까? 그 끝은 어디일까?   다행히 끝이 보이는 듯하다.펜데믹이 엔데믹이 되고 1급 감염병에서 2급으로 낮아지고 마스크를 벗는 날이 머지 않았다.탈출구가 없어 보이던 이 긴 시간의 막막한 두려움과 피곤함은 오랫동안 이 시간들을 기억하는 한 함께 되살아나는 역사가 될 것이다.그렇게 혹독한 피곤함을 딛고서 열심히 일을 하는 우리를 보며 그래도 우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수고한다며 웃어주는 주민들이 있다.무섭냐? 나도 무섭다. 그러나 이제는 무섭지 않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치고 싶다.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진지문 93편] 다시 만난 시간의 흐름
    [사진지문 93편] 다시 만난 시간의 흐름

    # 처음 사진을 배울 때 흥미로운 게 두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흐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흐름이었습니다. 흐림은 초점입니다. 초점이 맞은 곳은 선명하고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표현되는 사진을 보며 신기해했죠. 배경흐림 혹은 아웃포커싱이라고 불리는 기법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웃포커싱은 콩글리시입니다. 영어권에서는 shallow depth of field라고 씁니다.# 흐름은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자동차나 별빛의 긴 궤적을 담아내고 성난 파도를 잔잔한 물결로 만들었습니다. 장노출이라는 촬영 기법입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두는 방식으로 빛의 흐름을 사진에 담는 방법이죠. # 두가지 촬영법을 알고 나서 얼마나 재밌게 촬영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눈으로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사진을 배우던 학생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알려주는 사람이 됐습니다.# 스마트폰 사진 수업을 위해 촬영한 샘플 사진입니다. 1초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그동안 DSLR 카메라에서만 찍던 장노출 사진을 처음으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봤습니다. ‘이게 될까’란 의구심은 ‘진짜 되네’라는 신기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감정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진 배울 때의 재미를 느낍니다. # 생각해보면 세상이 흥미로워진 건 아닙니다. 제 마음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겠지요. 오늘도 그저 그런 똑같은 하루였나요? 여러분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담아보세요. 아마도 조금은 흥미로운 하루가 시작될 겁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studiotent@naver.com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IRONY)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IRONY)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   ‘복지’를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일반 시민들도 말하고, 정치하는 이들도 말한다. 과거 선거철에만 꺼내놓고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본인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고 떠들어댄다. 사회복지를 공부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이 벌써 100만 명을 넘은 지가 몇 년 되었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복지를 얘기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사회복지학을 정식으로 전공하고 사회복지 실천방법을 전문적으로 배워 일하는 사회복지사마저도 복지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복지를 통해 남을 돕거나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복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인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기서 ‘복지’를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정의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복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답을 구해보고 성찰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관 자원 활동부터 따지면 벌써 30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온 생각을 실천적, 주관적으로 재해석해보았다. 여전히 고민과 성찰은 계속되고 있어서 최종적이고 완벽한 답을 구하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잠정적으로 몇 가지 지점에 이르렀다. ‘복지’는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복지’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 존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존엄’이다. 그것이 거시적인 의미의 복지제도나 복지정책이어도 그렇고, 미시적이고 직접적인 복지실천이어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 목격한 많은 복지가 사람을 존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서로 존엄해지기보다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모습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었다. ‘존엄’이 보장되지 못하는 복지실천이나 복지정책이 행해졌을 때 때로는 사람의 복지를 후퇴시키는 역설(逆說), 아이러니(irony)가 존재하기도 한다.   수년 전 복지관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푸드뱅크를 통해 잔여 음식을 후원받아 지역주민들에게 줄어 서서 나눠주는 일을 복지관 건물 외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지역 내 푸드뱅크가 진행하였지만, 복지관의 협조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라서 대부분 주민은 복지관이 나눠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마을 어르신이나 장애 주민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협조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해야 할 일인지 검토해야 할 협력사업으로 판단되었다. 자세히 지켜보니 서로 먼저 받으려고 줄 서면서 싸움도 나고 받은 후에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받아갔다며 크게 소리치고 욕하는 분들이 있었다. 노출된 노상에서 진행되다 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주민들도 시끄럽다고 불만이 많아졌고, 혀를 차며 손가락질도 많이 하였다. 이런 모습으로 계속 음식이 지원될 경우 받는 분들이 존중되지 못하고 오히려 낙인만 키우는 것으로 보였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 사업을 협력하기 어렵다고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공공 사례관리와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확대되던 시기에 관심을 끌었던 활동 중에 ‘쓰레기 집 치우기’가 한동안 유행하였다. 몇몇 어르신 가정에 방문해 보면 오랫동안 쌓아 둔 후원 물품이 집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바깥에 내어놓은 재활용품을 계속 집으로 가져다 두기도 하면서 비좁은 임대아파트 집은 더욱더 비좁아지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물건으로 꽉 찬 상태가 되었지만, 물건을 버리거나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복지사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치워주겠다고 의논하지만, 어르신이나 장애인 당사자는 치우는 것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쓰레기로 보이는 물건들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고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었다. 교회 집사님이 10년 전에 건강 회복하라고 준 효소, 복지관에서 15년 전에 받았던 고장 난 전기장판, 20년 전에 연락 끊긴 아들이 입던 옷가지들... 버리고 치우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닌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상황들이 많다. 마음의 정리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데 의지가 필요하지만, 이런 상황이 무시된 채 그냥 물건들을 쓰레기 취급하면서 정리하려고 할 때 자신의 몸 일부를 떼어내는 것처럼 상실감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들과 신뢰를 쌓으며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부터 조금씩 치워나가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당사자가 직접 물건을 버리거나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8년 동안의 복지관 관장으로 일하다가 위탁법인 변경으로 어쩔 수 없이 기관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가장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였던 주민 중 한 분은 알코올중독 문제를 가진 장애인 주민이었다. 그분과의 첫 만남은 아주 강렬하였다. 복지관에 술 취한 상태로 다짜고짜 휠체어 타고 와서 소리치며, “관장 나와! 어딨어?”였다. 첫 번째 만남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회피하였지만, 두 번째 만남부터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을 둔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다. 술을 완전히 끊으라는 이야기보다 건강이 걱정되니 술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권유와 마을을 위해 어떤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권고를 꾸준히 해왔다. 그간 복지관의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았고, 특히 어떤 활동을 권유한 적은 없었다. 계속되는 권유를 통해 중독예방을 위한 자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2년 후 어르신 가정에 도시락 배달 활동까지 자원하게 되었다. 어르신 가정에 점심 전에 방문할 때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그런 경험 속에서 단주의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3년 정도 활동을 하면서 완전히 술을 끊는 단주에 성공하는 경험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 무렵 위탁 변경으로 복지관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주민들에게 직접 서명을 받으며 구명 활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런 활동에 나서게 된 배경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참여할 수할 기회가 차단되는 것에 대한 반감과 걱정 때문이었다.   복지가 사람을 존중하지 않거나 관계의 존엄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복지를 실행한다는 것이 반복지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을 돕는 일이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감정을 다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니 일종의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선한 마음으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돕고 싶어 동사무소나 복지관에 그런 아이들을 추천해달라고 하고 후원금을 전달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기를 원하고 직접 만나 전달하기 위한 사진도 찍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라는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그 결과 그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은 민감한 시기에 자존심이 많이 상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나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후원을 받게 되지만, 이는 긍정적인 웃음보다 사회가 원하는 웃음인 ‘사회적 미소(social smile)’일 수 있다. 사람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존엄한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기관이 성과로 포장한다면, 이는 아이들의 진짜 복지에 역행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물론 모든 활동이 아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중에 우리는 모 방송국에서 진행되었던 “사랑의 OOOO” ARS 모금방송을 기억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하거나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지갑을 여는 모금은 한동안 크게 성공한 모금 아이템이 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금방식은 한동안 앞을 다투어 도입되면서 소위 ‘빈곤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빈곤 아동의 인권을 가장 강력하게 침해한 활동이 되었고, 이 또한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구체적 사례이다. 다행히 이런 방식의 모금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성찰 속에서 직접적인 ARS 방송모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한동안 줄었다 싶었던 자극적인 아동 노출 모금을 내용으로 한 TV 광고, 온라인광고 등이 최근 다시 부쩍 눈에 많이 띈다. 모금을 더 많이 해서 더 많이 돕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너무 자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ARS 모금방송 시대에서 딱히 개선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동의 인권을 옹호하는 기관이나 단체라면 아동의 비극적인 모습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모금하면 어떨까?   비단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자나 사회복지사만이 ‘반복지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만든 복지정책이나 제도도 ‘반복지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결식이 우려되는 빈곤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만든 아동 급식 전자카드를 발행해 결식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2011년 한 연구에 의하면, 이 카드를 통해 빈곤 아동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 편의점이고, 가장 많이 이용하는 품목은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와 같은 가공우유로 조사되었다. 그 외에도 햄버거나 즉석식품과 같은 품목이 대부분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가난한 아이들에게 결식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나쁜 음식(junk food)’ 또는 ‘불공평한 식품(unfair food)’이 제공되어 아동의 영양 불균형을 가져오게 하는 주범이 되어 ‘복지제도의 반복지 아이러니’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아동 급식 카드로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한 상품이 지자체별로 다르게 되어 있고, 관련 정보도 제대로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카드로 음식을 사는 시도를 하다 거절당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은 아이들에게 수치심과 낙인을 느낄 우려가 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그간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아동들의 결식이 늘어나는 등 저소득 가정의 돌봄 사각지대가 심화 되었다고 한다. 결식 우려 아동들이 학교 밖에서 식사할 수 있는 아동 급식 카드는 낮은 지급단가와 사용처 부족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비율의 사회복지 예산을 지출하는 나라인 우리나라는 정부의 복지비 지출 비중을 지속해서 높여야 한다. 추가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보편적인 복지제도를 더욱 많이 만들어 가난을 입증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오히려 최근 공공행정에서 민간의 복지기관이 수행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을 발굴해 돕는 사례관리 일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선별적 복지 비중을 높여가고 있고, 민간자원을 동원해 정부의 부족한 재원을 메꿔내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과정에서 시혜적인 복지 활동이 확대되고 있으며 비전문적인 나눔 활동이 빈곤계층 주민이나 약자로서 주민의 인권을 해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민간복지기관에서 이미 겪었던 수치심과 낙인을 다시 한번 공공복지 행정에서 경험해야 하는 ‘복지의 반복지 아이러니’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회복지기관과 사회복지사가 전문가를 자처하면서도 당사자인 이용자나 주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힘을 빼앗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랫글은 파울로 프레이리와 마일스 호튼의 대담 내용이 정리된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전문가인 사회복지사의 복지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방향을 주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한다.   “전문가의 지식을 이용하는 것과 그 전문가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직접 말해주는 것은 다릅니다. 제가 경계를 가르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전문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직접 지시하지 않은 한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경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문가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전문가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지요. 이것이 과연 민중들의 힘을 길러주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한 배움도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전문가를 활용할 때와 활용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문가에 맡겨서 문제해결을 처리한다면 문제해결에 대한 학습도 일어나지 않고 책임감도 생기지 않지요. 굳이 배우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를 전문가에게 떠넘기는 방법 정도였겠지요.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문제를 전문가에게 넘겨버릴 거라면 굳이 하이랜더를 찾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돌아가서 그 정보를 사용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지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며, 어떤 경험도 자신의 학습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전문가라며, 저의 전문성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전문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복지를 전문적으로 실천한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실천이 때로는 당사자의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 해야 한다. 제도화된 복지실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실천을 기획하거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잘 반영해야 한다는 시각과 함께 더 나아가서는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관점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