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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책쓰기 3 [사회복지사가 책을 꼭 써야하는 이유 ]
똑똑한 책쓰기 3 [사회복지사가 책을 꼭 써야하는 이유 ]

전안나의 똑똑한 책쓰기 3회기사회복지사가 왜 책을 써야 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권의 책을 쓸 이야기는 품고 살아갑니다.우리는 누구나, 일생에 한 권은 책을 써야 합니다.특히 사회복지사가 책을 써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짚어보았습니다.  1. 사회복지사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이라고?   사회복지사가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마흔 이후 2번째 직업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정말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60세까지 승진과 상관없이 일만 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우리나라 일반적인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년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관리자인 기관장이 되면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 현실인데, 과연 정년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회복지사는 대부분 정부 기관과 위탁 법인의 계약에 따라 운영이 됩니다. 그래서 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이 운영 법인에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신입 사회복지사가 부장까지는 승진할 수 있지만, 기관장은 법인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받는 경우가 많지요. 법인의 승인 없이는 승진을 통해 최고관리자가 되기는 힘듭니다. 다행히  승진을 통해 최고 관리자가 되었더라도 기관장은 운영 법인과 짧게는 1년부터 5년 내외 위탁 기간에 따른 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실질적으로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장까지는 정규직이었는데, 최고 관리자인 기관장이 되면 오히려 계약직으로 바뀌는 현실을 두고 사회복지사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겠죠? 물론 위탁 법인이 변경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직원의 고용 승계가 보장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운영 법인의 변경과 함께 기관장이 변경이 되면 퇴사하는 직원들이 많은데요,이런 현실에서 사회복지사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평생 직장이 없고, 평생 직업만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사회복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사회복지사처럼 이직이 잦고, 최고관리자가 되면 계약직으로 바뀌는 직종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사회복지사로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 직장인들은 직업인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 트렌드를 변화시켰습니다. 전통적으로 직장인 자기계발의 대표적인 2가지 방법은 대학원을 가서 학위를 취득하는 것과 영어 공인 시험 점수를 향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경쟁률이 매년 낮아지는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을 가지 않습니다.  영어 시험 점수 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장인 자기계발 트렌드가 변화되었습니다. 요즘 직장인 자기계발 트렌드는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한 기관에서 직장인으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한 분야의 이름난 전문가가 되는 것이 평생 직업을 가지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전환한 것이죠. 몇 년 전부터 N잡이 유행하는 것 아시죠? 대표적인 N잡이 바로 작가와 강사입니다. 책을 써서 직장인 작가가 되고, 온라인 강의나 오프라인 강좌를 개설해서 강의를 하는 직장인 강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직업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2.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인가?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전문가로 인식되지 않으면 우리는 전문가가 아닙니다.사회복지사 스스로 아무리 전문가라고 말해도, 일반 국민들의 인식 속에 전문가로 인식되지 않으면 사회복지사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남들이 아무리 전문가라고 말해도, 내가 나를 전문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인식하십니까?현재 저는 자신 있게 전안나는 사회복지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만 10년차 소진을 경험하면서 나를 전문가로 퍼스널 브랜딩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문가로 누군가의 머릿속에 인식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책을 쓰는 것입니다. 백수가 책을 쓰면 작가가 됩니다. 직장인, 일반인이 책을 쓰면 퍼스널 브랜딩이 됩니다. 전문가, 사업가가 책을 쓰면 PR이 됩니다. 박사가 책을 쓰면 저명인사, 돈을 버는 지식인이 됩니다.     저 역시 이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책을 내기 전 전안나는 책 읽기 좋아하는 아줌마였는데, 『1천권 독서법』 『기적을 만드는 엄마의 책공부』 책을 냈더니 ‘독서 전문가’라고 사람들이 불러줍니다. 책 읽기가 취미인 아줌마에서, 독서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독서 관련 학위가 없는데도 말이죠!   사회복지사로 19년을 근무했어도 책을 내기 전에는 사회복지 전문가라고 전안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쉽게 배워 바로 쓰는 사회복지 글쓰기』 책을 내자 ‘사회복지 행정 전문가’라고 불러줍니다. 경력직 사회복지사에서, 갑자기 사회복지 행정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책을 내기 전이나 낸 후나 전안나는 동일한 사회복지사인데 말이죠!   아이 2명을 학원을 보내지 않고 책 육아만 할 때는 그냥 혼자만의 교육관이었는데, 『초등 하루 한 권 책 밥 독서법』, 『초등 6년 읽기 쓰기가 공부다』책을 내니 자녀 교육 전문가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를 학원 안 보내고 키우는 엄마에서, 자녀교육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교사도 아니고, 일타 강사도 아닌데 말이죠!   실력과 내공을 입증하는 길이 예전에는 ‘고시’, ‘자격증’, ‘학위’ 였다면 이제는 책 쓰기입니다.여러분이 전문가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책을 써야 합니다.   3.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서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사회복지사는 정년이 보장된다는 오해와 함께 유망한 직업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2019 한국직업 전망]에서는 2018년부터 2027년까지 유망한 직업을 제시합니다. 유망한 직업에는 간호사, 네트워크 개발자, 변리사, 변호사, 의사, 컴퓨터보안 전문가, 조종사와 함께 ‘사회복지사’라는 직업도 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정말 사회복지사가 영원히 유망한 직업일까요? 아닙니다.   사회복지사도 전반적인 사회 흐름과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요즘 직업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고 수 많은 직장인들이 N잡러가 되어 동시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것이 직업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메인 직업과 퇴근 이후 직업으로 2JOB이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가지 직업을 갖는 N잡러가 유행입니다. 저 역시 사회복지사이면서 작가, 강사, 독서토론지도사, 칼럼니스트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N잡러는 ‘긱 경제’라는 사회현상과 함께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 ‘긱’ 은 초단시간, 본인이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는 직업 형태를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평소에 본인이 타고 다니던 차로 여유시간에만 택시 업을 하는 우버 기사, 퇴근 시간 이후 배달 몇 건만 하고 돈을 받는 배달의민족 라이더처럼 ‘긱 워커’ 이라는 직업 형태는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직업 트렌드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점차 모든 직종이 ‘계약직', '프리랜서','긱 워커'로 변화되어 갈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복지직은 이런 변화에서 자유로울까요? 아닙니다.   사회복지사의 인테이크는 지금처럼 가정방문해서 진행할까요?아니요. 3D 안경과 입체렌즈로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의 집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인테이크가 가능할 것입니다.도시락 배달을 지금처럼 사람이 직접 도시락을 들고 가서 배달할까요?아니요.드론이 도시락을 배달하고, 클라이언트의 얼굴을 확인하고 배달을 완료하고 올 것입니다.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지금처럼 사회복지 기관 내 강당이나 교육실에서 만나서 해야 할까요?아니요.코로나 시기 유행한 홈트처럼 어르신 가정에서 핸드폰이나 TV로 접속해서 비대면으로 만나서, 화면으로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쌍방향 의사소통을 하며 진행 가능합니다.클라이언트의 고독사 예방을 지금처럼 꼭 전화나 가정방문, 우유 배달로 해야 할까요? 아니요.사물 인터넷이 저렴해지고 보편화되면서 어르신의 수면이나 혈압 맥박 등이 사회복지사의 모니터 안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관리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사회복지사는 굳이 사회복지 시설로 출퇴근하지 않고 재택 근무로 클라이언트를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주40시간 정규직으로 출근하여 일하는 형태가 아닌,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프리랜서 전환이 될 것입니다. 단지 시기의 문제일뿐이죠.    이런 직업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서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전문가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여러분의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은 무엇입니까?여러분이 평생 직장 없이, 평생 직업만 있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여러분은 전문가가 되어야만 합니다.전문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책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책을 내는 것은 힘듭니다.책을 쓰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그래서 누구나 못하는 것입니다.누구나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4회기 칼럼 소개다음 칼럼에서는 책을 내는 3가지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을 들여 책을 내는 자비 출판이나 독립 출판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돈 받으면서 책 내는 상업 출판도 가능합니다. 책을 내는 3가지 방법을 알려드리니,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세요. 

무섭냐? 나도 무섭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   “코로나가 뭐야? 어머어머 하루가 무섭게 늘어나네. 이를 어째?”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서로를 견제하며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너무도 낯설어 하는 풍경들이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이제는 일상이라는 예전 모습이 가물가물... 평범이 결코 평범이 아닌 일상.그러나 그럼에도 그 어느 때의 지루하다 싶던 일상마저 그저 그립다.   전철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사람들에 소스라치고 어디선가 들리는 기침소리에 모두가 토끼눈을 하고 서로를 주시한다. 내 목을 통해 나오려는 기침을 꾹꾹 누르며 숨조차 일시정지 상태로 견뎌보려 하나 결국 터지는 기침에 주변의 눈치를 보며 혼자 얼굴이 벌게진다. “아휴 왜 기침이 나는 거야. 나 코로나19 아냐...”   마스크 대란... 이것이 진정 현실?출근부터 긴장의 강도가 높고 사무실로 들어서면 또 다른 긴장이다. 9시와 함께 시작되는 민원업무에 서로의 긴장감은 이미 벽을 치고 있다.“마스크 올리세요. 제대로 올려 쓰세요.” “마스크 있어요? 내가 잊고 나왔네. 마스크 하나만 주세요.” 너도 나도 마스크를 정해진 날에 정해진 가격으로 사야 하는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법정 대상자분들에게 지급되는 마스크에 사람들이 시선이 머문다. “저 마스크 뭐여요? 나 좀 살게요. 나한테 좀 파세요”“아녀요. 저거는 파는 거 아녀요. 대상자 분들에게 지급하는 거여요.”“아휴 그러지 말고 좀 팔아요. 돈 줄 테니... 요즘 마스크 사기 너무 어려워요.”   줄을 서시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시행)“줄을 서세요. 손소독 하세요. 간격 띄우시고요. 체온 측정하고 들어오세요.”“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 먼저 해요” “ 어휴 붙지 마시고 좀 떨어지세요”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아침 근무시간 전부터 웅성웅성 모여든 인파에 질서를 잡을 수 없다. 정문 밖으로 줄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아직은 쌀쌀한 날씨인데... 감기 걸리겠다. 어르신들에게 양보하면 좋을 텐데...이런 저런 맘들이 교차하면서 그저 질서를 지켜 달라고, 천천히 하셔도 다 신청 가능하시니 한 분씩 차례로 상담해드리겠노라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쉬어가고 있다.혼잡한 오전이 어찌 갔는지 점심시간이 지나간다. 다들 밥맛이 없다며 식사 생각이 없다 한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오후를 버텨야 하기에..그렇게 한번으로 끝이 날 거라 기대하며 코로나 상생지원금 처음의 지원 업무가 진행되었다. 일과가 끝나고 나면 영혼이 털린 듯 멍해진다. 유사 상황을 반복하며 몇 차례의 지원금 업무를 전쟁 치르듯 하고 나니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가고 있다.   무섭냐? 나도 무섭다.어쩔 수 없이 식사를 위한 식당 출입이 배가 고프다는 느낌보다 무섭다.배가 고픈것도 힘들고 식당 가서 마스크 벗고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어쩌지? 무서워. 왜 이렇게 확진자가 많아. 식당에 가도 될까?”“나도 무서워, 우리 그냥 사다가 떨어져서 먹자. 당분간이라도...”그렇게 불안함과 불편함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오후 근무 준비를 한다. 코로나 19의 시작과 함께 부과된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간다.일요일이면 종교시설의 방역수칙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출근을 하고, 몇 차례의 관련 지원금 업무로 사람에 치이고 목이 쉬었으며, 코로나 임시 선별검사소와 생활지원센터에 파견근무를 돌아가며 해야 했고, 자가격리자 관리업무를 위한 보건소 파견근무, 백신접종 관련 업무, 일회용장갑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치러야 하는 선거업무의 부담감에 피곤함이 쌓이고, 확진자의 투표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추가된 절차까지..어쩌면 그 긴 기간 동안 본연의 업무보다는 코로나19 관련 업무가 주된 업무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다. 혹독하게 치러진 코로나 전쟁이다.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온 세계가 너무도 큰 풍파를 넘고 있는 것이리.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확진자 폭증의 새로운 시작)아직 우리에게는 코로나 생활지원금 신청처리 업무가 남았다. 확진자 발생의 추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피곤함이 파도를 탄다.확진자가 늘면서 민원실은 부산스럽고, 확진자가 다행히 줄어든 시기에는 민원실도 웬만큼 평화가 유지된다. 아~~ 이대로 끝나는 업무이면 좋겠다.누가 그랬지? 모든 일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조만간 끝일 거라는 기대로 버텨왔건만 확진자 급증의 반전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의 지침 변경과 함께 현재까지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일까? 그 끝은 어디일까?   다행히 끝이 보이는 듯하다.펜데믹이 엔데믹이 되고 1급 감염병에서 2급으로 낮아지고 마스크를 벗는 날이 머지 않았다.탈출구가 없어 보이던 이 긴 시간의 막막한 두려움과 피곤함은 오랫동안 이 시간들을 기억하는 한 함께 되살아나는 역사가 될 것이다.그렇게 혹독한 피곤함을 딛고서 열심히 일을 하는 우리를 보며 그래도 우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수고한다며 웃어주는 주민들이 있다.무섭냐? 나도 무섭다. 그러나 이제는 무섭지 않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치고 싶다.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의 해방
나의 해방

나의 해방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대한민국은 1945년에 해방됐지만, 저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근데 왜 뭐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거야 뭐 해야 해?” “그것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죠. 뭐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는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도래할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이후는 불안정하고 비고정적이고 유동적인 시대가 될 것으로 예견하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생활 세계에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19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 시켰습니다. 액체 근대는 유동하는 사회입니다. 바우만이 고체 근대로 명명한, 기존의 견고한 사회적 관계와 제도는 형태가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본 역시 전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게 됨에 따라 대량생산의 토대 -거대한 공장과 기계, 그리고 많은 노동자가 이동하기 시작-가 바뀌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와 제도의 상부구조 또한 바뀌었습니다.   고체 근대의 시대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 ‘충성심’ ‘헌신’ 등이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덕목이었습니다. 액체 근대 시대에도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가치를 쫓는 것이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각자도생이 현실적 지배가치가 된 시대에 고체 근대 시대의 가치와 덕목은 부당한 대우와 비인간적 처우를 강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노동의 유연성은 사회적 책임도 유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체 근대가 ‘본질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액체 근대는 존재가 처해진 ‘실존’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고체 근대 시대에는 장기적 전망과 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프로젝트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유동성이 강화된 액체 근대는 장기적 전망을 갖는 것이 어렵습니다. 노마드(Nomad)는 어느덧 익숙한 사회적 풍경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노마드는 훨씬 앞당겨졌습니다. 직업적 선택에 있어서도 노마드는 실존적 삶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가항력(不可抗力)인 경쟁의 모습으로 생활 세계에 자리 잡았습니다. 경쟁 위주의 사회에선 단기적 성과로 평가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애당초 ‘실존’이라는 개념은 불안정성에 기반된 자기결정(결단)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액체 근대 시대의 실존은 단기적이고 반복적인, 끊임없는 성과에 기반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인생 프로젝트’는 고체 근대를 누렸던 세대의 ‘불가능한 충고’가 되었지요.   필자는 한국사회가 지시하고 통제하며 계몽하려는 고체 근대와 서류 가방을 들고 여행하듯 어느 정도 가벼움과 느슨함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액체 근대가 동시대에 충돌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시대이지만 삶에 대한 관점과 가치, 태도가 세대마다, 사람마다 다른 시대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는 이러한 충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세대의 모습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출처 : JTBC>“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대한민국은 1945년에 해방됐지만, 저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근데 왜 뭐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거야 뭐 해야 해?” “그것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죠. 뭐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   소외되고 지쳐가며, 분노의 정당함에 대해 토로하지만 정작 무엇이 우리를 지치고 어렵게 만드는지 실체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사유해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한 건 어떤 세대이든 자기 삶을 근거로 해방에 대한 구체적 사유를 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딴 거 없어. 해방되려면 퇴사하고 이혼하는 수밖에.” “전 그중에 하나는 했는데 그것도 딱히 해방은 아니더라구요.”   물적 관계적 사회적 조건이 바뀌면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해방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고 통찰합니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운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미정의 대사에서 해방에 대한 단초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진짜 관계를 잃은 시대,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조용히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적·역사적 언어인 ‘해방’이라는 말이  자기 삶의 언어로 귀결되었을 때 잃었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서로 연결되었을 때 언어와 담론에 갇혀 있던 진짜 ‘해방 세상’이 수많은 각자인 ‘나’에게 도래할 수 있는 건 아닐지요.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복지관 사회복지사, 그 지역에 살아야 할까?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 사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도 있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회복지사보다 지역사회를 더 잘 알 테니 일을 수월하게 할 거랍니다.

어느 복지관은 입사 조건으로 복지관이 있는 동네로 이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복지관도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① 그렇다면 처음부터 신입직원 지원 조건을 그 지역 주민으로 한정한다고 했어야 합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이를 우리 지역을 위해 데리고 오는 모습입니다.

저쪽 지역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을 내어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위해서라면 다른 지역의 인재를 아무렇지 않게 데리고 와도 된다는 말입니다.

② 그렇게 이야기한 그 복지관 선배들은 그 지역에 살지 않습니다. 모순입니다.

당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요구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습니다.

“노인이 노인의 마음을 제일 잘 안다.”

그렇다면 노인복지관 관장은 노인이어야 합니다. 혹은 직원은 반드시 노인이어야 합니다.

과연 노인이 노인의 마음을 제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인들은 노인복지관 직원이 모두 노인이기를 바랄까요?

“이 동네 주민이 이 동네 사람 마음을 제일 잘 안다.”

그렇다면 그 지역 복지관 관장이나 직원은 그 동네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역주민이 그 지역사회를 제일 잘 알고 있을까요?

주민들은 복지관 직원이 모두 동네 사람이기를 바랄까요?

같은 노인이기에 오히려 말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이기에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내가 그와 비슷한 처지이고 같은 지역에 살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신감 때문에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에서는

복지관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을 매년 모집하여 지도해왔습니다.

학생들과 가깝고 친해지려는 마음으로 유행어와 가벼운 농담으로 대하는 게 진정 유익일까요?

그렇게 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어떤 광고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대하는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 만나는 선생님이 진정 아이들에게 유익일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행동하고 선생님답게 말했을 때,

이로써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성장합니다.

* 2014년 5월 15일 KBS에서 방영한 ‘나는 선생님입니다’

중학교 교사 김정석 선생님은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친해진 아이들이 선생님 이야기를 더욱 듣지 않더랍니다. 지금은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되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그것이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역주민을 대할 때 지역주민의 눈으로만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진정 지역주민을 위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눈높이를 맞추는 게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눈높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주민이 누구이든,

그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만날 뿐입니다.

사회복지사답게 작은 일도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당신 일이게 할 뿐입니다.

친해지기보다 인격적 관계이고 싶습니다.

무엇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할까요?

주민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여 지역사회를 위해 나서게 하는 마음이 어떻게 일어날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기술로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또 그런 특별한 기법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역 출신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인맥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지역사회에 사는 게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가까이 살며 지나치게 많이 알아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입니다.

사회복지사의 진정함 마음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적어도 복지관 사회사업은 기술보다 태도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뜻을 좇아 바르게 일할 때,

그 모습에 감동하며 함께하려 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주민과 인격적 만남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사자를 만나는 태도, 즉 말과 행동이 일의 성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사회사업가로서 말투와 표정, 시간과 자세…

이런 몇 가지만 잘 붙잡아도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기술보다 품성이 많은 것을 좌우합니다.

<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 (구슬꿰는실, 2021)

사람이 모이는 힘3_조직은 ‘목표지’가 아니라 ‘목적지’가 있어야 출발한다
사람이 모이는 힘3_조직은 ‘목표지’가 아니라 ‘목적지’가 있어야 출발한다

나는 17년차 교육활동가이자 강사다. 기본 2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참여자들 앞에 서서 교육활동을 한다. 30대에는 단체활동과 강사를 병행하느라 몰랐으나, 40대부터 강의를 전업으로 하다보니 강의량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직업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츰 앉았다 일어나면 하반신이 불편해졌다. 운동부족이려니 해서 드문드문 운동을 했다. 하지만 허리, 무릎의 통증은 심해졌다. 4년전 가족과 교외로 나들이를 하다가 점심식사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에서 허리를 숙이는데 전신에 백만볼트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충격을 받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 몸이 떨리면서 일어설수 없었다. 허리디스크가 터졌다. 무릎으로 화장실을 기어나왔다. 가족들은 기어나오는 나를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나를 부축하라고 소리지를 힘도 없었다. 지독한 허리통증은 한 달 정도 되자 가라앉았다. 이렇게 낫는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하반신 뒤편(햄스트링)이 찢어질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서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우울한 일상을 보냈다. 지역의 인권위원이었던 나는 마을의 장애인 보행권 조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해당 구역을 걸어다니면서 인도상태, 시각장애인용 신호기, 경사로 등을 조사하였다. 백미터 마다 쉬면서 겨우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한 동료 인권위원께서 왜 이리 힘들어하냐고 물었다. 허리디스크로 고생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자신도 십여년을 고생했다고 하면서 치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한의원 등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신은 물속걷기와 수영으로 완치했다고 하며, 수영을 권유하였다. 그 분은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계신분이라서 조언에 권위를 느꼈다. 나는 당장 수영을 시작했고, 수영을 할 수 없는 날에는 목욕탕에서 물속걷기를 했다. 이 주일만에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한달 뒤에는 통증이 사라졌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그 뒤로 수영이 습관이 되었고, 수영도 늘었다. 차츰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50~60대 경력자의 유려한 접영이 부러워졌고, 옆 레인에서 수영하는 사람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같이 출발하는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접영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고, 멋진 포즈로 수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다 거울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허리디스크 치료를 목적으로 수영하던 내가 뭐하고 있는 것인가? 교육활동을 위해 건강해야 했고, 허리디스크를 치료해야 했고, 그래서 수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수영을 잘 하기 위해 수영을 하고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현타(?)를 맞고서 나는 다시 허리치료를 위해 입을 벌린 자세로, 물속을 걷고, 기립근력 향상을 위한 테라피 모드로 돌아갔다. 물 에너지를 충분히 흡입하고서 좋은 컨디션으로 교육참여자들에게 질 높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수단이다. 마을과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민조직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주민조직화를 하다보면 사업의 이해관계자들은 목적을 잊고, 주민조직화 사업 자체가 목적이 되기 시작한다. 그 시점부터 이해관계자 그룹내에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사업마다 목적이 있다. 목적은 사업이 구체화될수록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잊혀지기 시작한다. 노숙인을 위한 급식사업을 오래도록 했으나, 한 명도 자활하지 않았다면,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했으나, 마을주민들의 작은도서관 이용율이 향상되지 않았다면,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에게 한글문해교육 프로그램을 했으나, 통합 어린이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업은 했을지는 모르나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라는 회의(懷疑)에 빠지게 된다. 회의는 소진(燒盡)으로 이어진다.주민조직화 사업의 목적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과 같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가만히 두면 ‘미지근하게’ 되듯이, 처음의 온도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즉 주민조직화 사업을 둘러싼 사업목적의 명료성을 유지해야 한다.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급식뿐만 아니라, 인문학 교육, 마을네트워크, 일자리 조사, 직업능력 개발 등과 연결시켜야 한다. 작은 도서관 이용율 향상을 위해 독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마을활동가, 지역자원봉사자들을 연계하고, 마을공동체, 주민자치회의 문화사업을 공동운영 하며, 평생학습 동아리들과 네트워크해야 한다. 주민조직화 사업의 창조적 기획은 목적을 명료화하는데서 도출된다. 똑같은 사업을 하고 있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가? 사업목적을 소환하자.  사회복지사들은 주민조직의 구심력 확보를 위해 주민들의 갈등관리와 의사소통 역량향상이라는 처방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해와 의사소통 역량은 중요하지만 하지만 그보다 주요한 주민조직 동력의 저하 원인은 주민들이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가 불분명하거나, 주민마다 다른 목적으로 참여한 것에 기인한다. 목적의 명료화는 주민조직화 사업의 토대며, 주민조직화의 시작이다. 길 가다 보면 어둠도 오는데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는 등불도 목적이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사회복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사업의 목적을 잃지 않도록 목적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자가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오늘도 옆 트랙에서 멋진 영법으로 나보다 빠른 수영하는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속도내는 나, 정신차리자! 나는 허리를 치유하기 위해 수영을 한다. 좋은 컨디션으로 교육을 하고자 수영을 한다. 

[사진지문 93편] 다시 만난 시간의 흐름
[사진지문 93편] 다시 만난 시간의 흐름

# 처음 사진을 배울 때 흥미로운 게 두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흐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흐름이었습니다. 흐림은 초점입니다. 초점이 맞은 곳은 선명하고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표현되는 사진을 보며 신기해했죠. 배경흐림 혹은 아웃포커싱이라고 불리는 기법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웃포커싱은 콩글리시입니다. 영어권에서는 shallow depth of field라고 씁니다.# 흐름은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자동차나 별빛의 긴 궤적을 담아내고 성난 파도를 잔잔한 물결로 만들었습니다. 장노출이라는 촬영 기법입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두는 방식으로 빛의 흐름을 사진에 담는 방법이죠. # 두가지 촬영법을 알고 나서 얼마나 재밌게 촬영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눈으로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사진을 배우던 학생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알려주는 사람이 됐습니다.# 스마트폰 사진 수업을 위해 촬영한 샘플 사진입니다. 1초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그동안 DSLR 카메라에서만 찍던 장노출 사진을 처음으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봤습니다. ‘이게 될까’란 의구심은 ‘진짜 되네’라는 신기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감정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진 배울 때의 재미를 느낍니다. # 생각해보면 세상이 흥미로워진 건 아닙니다. 제 마음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겠지요. 오늘도 그저 그런 똑같은 하루였나요? 여러분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담아보세요. 아마도 조금은 흥미로운 하루가 시작될 겁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studiotent@naver.com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 위한 조건_감독은 강화하고 규제를 풀어라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 위한 조건_감독은 강화하고 규제를 풀어라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인원회(이하 인수위)의 국정과제 중, 사회복지 분야에는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서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경조직과 기업 및 종교단체의 사회공헌'을 통해 다변화와 규모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중앙 및 시도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혁신' 하여 혁신활동을 '진흥'하겠다고 했습니다.인수위의 복지분야의 방향은 마치 노무현 정부시절(2003~2008)을 떠 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현장을 혁신하고자 사회복지시장의 다변화와 시장화를 도입합니다. 그 예가 사회복지시설의 주체를 기존의 사회복지법인에서 민간과 사단법인에게 열었다는 것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입을 통한 민간화, 시장화 전략입니다.다변화, 시장화, 민간화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겠습니다. 다변화는 다양성으로써 사회복지법인만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민간 주체와 공공이 공급자로 균형을 이루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긍정적일 것입니다. 시장화 역시도 융통성이라고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보조금 지급방식보다는 창출한 수익을 탄력적으로 분배하는 민간 재원의 효율성이라는 이점이 있겠습니다. 민간화 역시도 공공이라는 단일 공급 주체보다는 지역과 시민, 그리고 기업이 복지수요에 공급자로 함께 함으로써 자원의 교류와 협업이라는 유익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기대했던 바도 이러한 사회적 효용성이었습니다.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사회서비스는 주체는 크게 다변화되지도 못했고 오히려 질적저하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장화와 민간화는 서비스질에 대한 의문과 사회서비스의 노동질 저하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문제를 밝히는 것이 차기 정부가 구상하는 복지국가 개혁방향에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지난 20여년의 현장의 역사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생태계란 생물입니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죠. 그럼으로 사회서비스의 혁신 생태계의 우선적 조건은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현장의 자율성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생태계와 현장의 생태계는 조금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이슈입니다. 자연의 생태계는 광대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균형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생태계는 시간을 맡겨 두고 볼 일이 아닙니다. 시간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속도에 대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죠.노무현 정부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패착은 바로 시간 조절이었습니다. 전국민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에 있어 공급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가 절대적이었습니다. 보험료를 징수하고 있는데 막상 서비스를 제공받을 기관이 없다면 국가보험에 대한 저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만간공급자 진입의 문턱을 낮추어 버립니다. 생태계에 다양한 생물들이 들어와 생태계가 빠르게 조성되었지만 유해한 생물들을 거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일단 생태계를 조성한 후에, 관리감독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군구의 공무원들은 태부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부족현상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관리감독도 역시 생태계입니다. 이렇게 사회서비스 생태계의 균형을 잃게 되니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는 하지만, 유해한 서비스 공급이 이루어지 생물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꺼낸 것이 '고시'라는 규제입니다. 현재의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고시라는 규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어떠한 혁신적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모두 고시라는 규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규제의 폐해가 여실히 증명됩니다. 현장은 코로나의 확산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시'로 인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직 '방역지침'만을 기다리고 그 지침을 준수하는 선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적응되어 버린 것이죠노인복지현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니 공급주체가 필요합니다. 공급주체를 늘려 생태계를 조성했지만 관리감독해야 하는 공무원은 태부족입니다. 결국 다양한 '규제'를 만들어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합니다. 이러한 경로는 모든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서비스는 그 규모가 커진 것 이상이나 너무나 규제적입니다. 규제가 있는 곳에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혁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혁신은 최종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조건은 '스스로'입니다. 외부의 에너지에 의한 변화는 혁신이 아니라 '변형'입니다. 사회서비스 현장은 정권이 바뀌는 5년에 1번씩, 또 평가가 시행되는 3년에 1번씩 주기적인 '변형'과 마주하게 됩니다.(현장은 3년 또는 5년 주기로 혁신을 당합니다) 인수위의 개혁 방향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똑 같은 경로를 밟는다면 혁신이 아니라 5년에 1번 찾아오는 외부에 의해 혁신을 당할 뿐입니다. 이것은 변형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숙고가 없다면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가 아닌 '사회서비스 변형 조작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생태계가 아닌 조작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대안을 제시하자면 이렇습니다.첫째, 관리감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관리감독에 대한 저항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생태계 안에 있는 유해생물은 반듯이 치료하거나 도태시켜야 합니다. 자연생태계는 그 스스로의 치유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균형을 찾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생태계는 스스로의 치유 본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쟁에 의한 자연적 도태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태되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다른 건강한 기관을 오염시킬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관리감독이라는 생물입니다.시군구의 관리감독 기능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리(인사비리와 회계비리)'와 '인권(구성원과 이용자에 대한 성,경제,신체적 폭력)'의 문제가 발생한 시설의 운영자 또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사와 처벌이 요구됩니다. 현재의 사회복지사업법의 행정명령을 보면 시설장 교체 또는 시설폐쇄가 최고 처분입니다. 시설장 교체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시설폐쇄는 구성원들과 이용자에게 피해를 줍니다. 운영주체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사회적 이슈의 해결도 위와 같겠습니다. 노인의 학대, 기관의 비리, 서비스노동자의 낙후된 처우는 공급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관리감독의 부재에 있습니다. 20년 전에 노인복지 담당자가 1명이면 지금도 1명인 곳이 많습니다. 관리를 받아야 할 기관은 몇 십배로 증가했는데도 말이죠. 원인이 관리감독인데 이것을 강화하지 않고 공공이 공급자가 되어 생태계를 구하겠다는 것은 역할을 상실한 것입니다.(관련된 저의 주장을 글의 마지막에 링크하겠으니 참조 바랍니다) 이러한 예는 모든 사회서비스 현장에 동일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두 번째, 관리감독이 강화되었다면 이제는 규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혁신이란 난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제란 자신이 정의한 문제입니다. 누가 해결하라고 시킨 것은 난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난제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혁신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자신이 정의한 난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회서비스 현장을 보면 모든 난제들이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학계가 지정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해결방법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각종 사업안내와 지침, 그리고 고시에 의해서 말이죠. 이것이 규제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만든 현장은 스스로의 내부 지침을 만들어 규제합니다. 2중 3중으로 둘러싼 지침 속에서 과연 창발성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의 사고력은 규제에 둘러 쌓여 있으면 생존에 대한 창발성만 자극합니다. '이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살아남으려면 지침을 잘 따라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규제는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이하 시설평가) 등 각 유형별로 주어지는 평가체계입니다. 3년 후에 예고된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를 그 틀에 가두어야 합니다. 결국 3년에 한 번씩 종이에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사람의 창발성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주어진 평가체계에 상응하는 업무를 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또 다른 일을 도모하여야 하는 창발성이 나오는 것은 생존의 욕구를 거스를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평가는 시설의 생존이고 그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을 거스르고 창발적 아이디어로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은 논리를 벗어난 행동입니다. 또 다른 규제는 5년 마다의 위수탁제도입니다. 이 역시 생존의 문제이고 종이에 인생을 걸아 넣어야 하고 사회복지시설평가의 결과가 위수탁여부에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이러니 주기적인 3년과 5년 그리고 지침이 개정되는 매 해마다 창발적 아이디어들이 죽어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사업안내와 지침을 맹신하는 구조가 만연합니다.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써만 작용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사회서비스 현장에서의 자율적 선택으로 유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설평가는 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가는 하되 그 결과의 현실적 의미가 무엇인지 동의가 되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보상과 처벌이 아닌 사회가 기대하는 서비스의 차이를 줄이는 평가제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위수탁제도는 준위탁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준위탁제도란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은 기존의 계약을 변경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시설에서 인권이나 비리의 문제가 없다면 5년 마다 심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 갱신되는 제도입니다. 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매뉴얼과 평가, 그리고 계약이라는 이 제도를 선행적으로 개선할 때 현장이 매력적일 수 있겠습니다.인수위는 사회복지 R&D확대, 스마트 사회복지시설 시범사업, 종사자 처우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감독과 규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이 3가지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창발성을 저해하고 있는 평가와 수탁제도로는 연구개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 사회복지시설 시범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매뉴얼과 지침을 완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종사자의 처우개선이란 것이 급여를 높이는 등의 복리증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사자들이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공감하고 정의하고 상상하여 문제를 해결해 감으로써 일의 의미와 자기를 실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처우개선일 것입니다.마지막으로 다룰 것은 사회서비스원의 '진흥'이라는 역할입니다. 인수위는 중앙 및 시도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혁신하여 민관협업과 혁신활동을 지원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인쉬위원장은 한마디로 '진흥' 역할이라로 하였습니다. 사회보장정보원의 사회복지시설평가 사무를 사회서비스원으로 이관하였습니다. 문제는 이관의 근거가 사회서비스원의 주요 목적사업이 아니라 정부가 위탁하는 사무라는 것입니다. 시설평가가 사회서비스원의 목적사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탁사무가 잘 될 일이 없습니다. 재정적 한계도 분명하고 사회서비스원의 주요 사업이 아니기에 후순위가 될 수 있습니다. 평가는 관리하기 위함입니다. 관리는 영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평가의 사무가 이리저리 유랑하는 사업이 아니라 책임을 가지고 지속하는 사업이 되었으면 합니다.(평가의 사무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보장정보원, 중앙사회서비스원으로 옮겨 다녔고 매번 위탁사업이었음)사회서비스원에 관리감독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언에서, 관리감독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밝혀지만 정부의 직제법상 지방정부에 사회복지시설을 관리감독하는 공무원을 증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리감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적인 제한으로 인해 중앙과 시도에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이 관리감독 기능을 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벌의 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것은 시군구에 남겨두고 조사의 기능을 부여하였으면 합니다. 사회서비스진흥원법(안)이라고 있었습니다. 물론 입안되지 못하고 상정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제가 주장하는 바와 같습니다. 중앙과 지방에 사회서비스진흥원을 설치하고 평가와 감독을 하는 것입니다. 부결된 이유는 현장의 사회복지법인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관리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제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하지만 생각해 볼까요? 관리감독의 부재로 도매급으로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사업자가 부정한 사업자의 비리와 인권 이슈로 인해 같은 부류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시각으로 볼 때 부정한 집단에 어떤 인재가 진입하려고 할까요? 부정한 집단에 누가 자원을 투입하고 사회적으로 전문가집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현장의 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관리감독을 싫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관리감독하여야 합니다. 시군구가 아니라면 제3의 관리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제 주장이 매우 모순적이라고 이해하실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규제를 풀으라는 것은 모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고 시민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이 주장은 사회자유주의 사상입니다. 또한 복지국가의 초석을 쌓는데 기여한 토마스 힐 그린(Thomas Hill Green)을 사상적 지주로 여기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이기도 합니다.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국가가 사회서비스의 공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유럽국가들이 그러하죠. 하지만 그 국가들에게 있는 것이 사회서비스의 관리감독기구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관리감독에 너무나 저항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변화되고 다양화된 현재의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관리감독의 강화와 제3의 기구가 필요한 것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겠습니다.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되, 민간에는 규제가 아닌 자유를 허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시민입니다.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업안내에 나와 있지 않는 대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 들어오지 않으면 사회서비스는 공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규제로 인한 폐해입니다. 규제에서 자유로우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회에서는 평등한, 그래서 모두가 연대할 수 있는 그런 매력적인 현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바로 조직민주주의이자, 현장민주주의입니다.사회서비스원은 공급자가 되어서는 안된다https://blog.naver.com/connected-rdp/221607630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