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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의 제2견인요소 - 우울과 음주(2)
고독사의 제2견인요소 - 우울과 음주(2)

깊은 마음의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김OO님은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 한 병, 두 병으로 시작된 술이 이제 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벗이 되었다. 그러나 술은 단순히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점차 그를 더 깊은 절망의 덫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매개체로 변질되었다. 김OO님이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은 거의 예외 없이 술독에 빠져있을 때였다. 이틀, 사흘씩 술을 쉬지 않고 마시며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이럴 때 김OO님과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사람은 그가 지내는 고시원의 사장님이었다. 사실 어떤 고시원 같은 경우 사장님이 실제로 고시원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정도만 밤에 와서 버리고 입실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매우 다행인건 김OO님이 거주하는 고시원은 사장님이 실제로 그 고시원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하시는 편이라 대상자 관리가 매우 잘 되고 있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사장님이신데 입실자들을 엄마처럼, 이모처럼 잔소리도 엄청 하시고 관심을 가져주신다.(이런 사장님께 나조차도 무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수급자들을 매우 잘관리해주시고 챙겨주셔서~ ^^;;). 고시원 사장님조차도 김OO님의 음주 문제로 인해 지속적으로 걱정하고 계신다. 사장님은 김OO님이 술만 마시면 방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며 본인의 어려움을 중년을 대상으로 사례관리를 하시는 사회복지사와 전담 공무원들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김OO님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다. 그가 술에 의존하게 된 것은 화재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고 난 이후부터였다. 화상의 통증과 함께 밀려오는 심리적 고통을 잊기 위해 그는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술은 잠깐의 위안을 제공하며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술에서 깨어날 때면 더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고, 이는 다시 술로 해결하려는 악순환을 낳았다. 술은 김OO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충동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는 종종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와 무가치함을 반복적으로 떠올렸고, 이런 부정적 감정은 점차 삶에 대한 희망을 사라지게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중년남성들이 직면한 현실과 위험요소들로부터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지인들의 관심과 지원이다.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어 사회적인 관계 회복이 아마도 가장 첫 걸음일 것이다. 이들 지인들과의 정서적 지지와 공감은 이들 중년 남성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분명 이들 고립된 1인 중년 남성들의 절망감과 우울감 그리고 문제음주를 통해 발생되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OO님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는 많은 이들에게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할 수도 있다. 건강과 직장을 동시에 잃고 고립 속에서 살아갔던 김OO님도 사실 여전히 회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주민센터와 다양한 복지 기관들이 이분의 어려움과 위기상황에 함께 귀기울이고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OO님의 사례는 우리가 중년 남성들이 직면하는 고통과 위험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사명의 시대와 개인 의미의 시대가 만나면
집단 사명의 시대와 개인 의미의 시대가 만나면

복지의 변화2. 집단 사명에서 개인 의미로사명의 시대 이전에 생존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생존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만 과거에는 다른 것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 과제였습니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된 한국에서 생존 말고 다른 가치는 없었습니다. 자아 성찰, 공동체, 민주주의 이런 단어가 나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윗세대는 그런 시간을 견뎌낸 분들입니다. 성실과 인내로 견뎌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단기간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나 더 잘살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했습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열악한 환경에서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인적 자원을 모아서 집단의 힘을 키웠습니다. 생존의 시대에서 집단 사명의 시대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구호가 필수적입니다. '잘 살아보세'로 상징되는 집단 구호가 넘쳤습니다.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회사에서는 비전과 사명선언문을 외웠습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 개인은 없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나라처럼 우리만 있습니다.집단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개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달, 가족 구성의 변화, 저출생고령화, 1인 가구 증가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개인은 사명이 아닌 의미를 찾습니다. 사명은 하나이지만 의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기질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통일된 사명으로 조직을 이끌기가 어렵습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집단에 억지로라도 맞췄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나를 희생해서 집단에 헌신하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사회복지 실천현장에도 집단 사명에서 개인 의미로의 전환을 실감합니다. 우리는 사회복지사라는 말로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의 복지 확대라는 구호로는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미션과 비전을 암기한다고 사명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팀워크는 곧 희생을 말했지만, 이제는 수평적 대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시대 변화가 옳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회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관리자는 집단 사명이 익숙합니다. 조직원은 개인 의미가 자연스럽습니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과제입니다. 다만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두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대안을 찾느냐가 관건입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 가치 중심의 조직은 물을 만난 고기와 같았습니다. 가치가 사명이 되고 그것이 곧 조직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때 득이 되었던 것이 지금은 약점이 됩니다.가치 중심의 조직이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잘 어울렸지만, 개인 의미 시대에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 지역 복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 않는데 내 것으로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낱말로 생각됩니다. 현실에는 없는 동화처럼요. 물론 관리자는 다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를 경험한 리더와 개인 의미의 시대를 사는 조직원 사이에 간극이 깊습니다.리더가 생각하기에 요즘 조직원들은 너무 이기적입니다. 반대로 조직원들이 생각하기에 리더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아름답고 멋진 말씀을 하시는데 정작 리더의 삶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도무지 의무 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두 세계의 불완전한 동거처럼 보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의 끝자락을 살짝 경험한 중간 관리자 정도만 버텨냅니다. 아니면 개인이 생각하는 의미를 찾아서 떠납니다.두 개의 대륙판이 만나면 땅이 심하게 뒤틀리면서 협곡이나 산맥이 만들어집니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 단절의 산맥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땅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막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냐고 서로를 비난하기 전에 땅의 변화를 함께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똑같은 선택도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장에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변화를 이해했다면 갈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과거에 방향은 하나였고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변화의 폭이 작은 시대에는 경험 많은 리더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리더의 결단과 조직원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리더의 결단과 조직원의 합의가 상충하여 보이지만 과정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리더가 결단해야 하지만 이전까지는 조직원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한 합의와 결단은 단일한 사명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인별로 사명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직이기 때문입니다.대안은 팀입니다. 팀별로 많은 것을 위임하고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와 개인 의미의 시대 사이에 팀이 있습니다. 팀 단위에서 조직의 사명과 개인의 의미를 찾고 합의해야 합니다. 물론 양쪽의 문제점을 모두 노출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집단 사명으로 이끌자니 조직원이 따르지 않습니다. 개인에 맞추자니 조직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직의 허리인 중간관리자를 얼마나 살리느냐에 조직의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적응은 모든 생명의 본능적 생존 기술입니다. 우리는 이 전환의 시대에 적응하면서 생존할 것입니다. 혼란은 변화의 과정입니다. 조직이 불안한 게 아니라 사회가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적은 외부에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입니다.

[사회복지사 책 추천] 노인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회 사업 실마리
[사회복지사 책 추천] 노인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회 사업 실마리

<노인과 바다>에서 건져올린 사회사업 실마리   # 사회사업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환경과 따로 보지 않습니다. 이를 ‘환경 속 인간(P.I.E. person in environment’이라 합니다. 이는 사회사업의 기본 관점입니다. 네모난 바퀴 자전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 네모 바퀴 자전거를 잘 굴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전거 바퀴를 둥글게 바꾸는 일도 있겠지만, 생태 관점으로 본다면 다음 그림처럼 자전거가 굴러가는 바닥이 달라지면 네모 바퀴 자전거는 바퀴를 바꾸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환경 속 인간’의 의미는 문제가 바퀴에만 있지 않고 네모 바퀴를 굴러가지 못하게 하는 환경, 즉 바닥에도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이 바닥을 자전거가 잘 굴러갈 수 있게 바꾸는 겁니다. 이처럼 사회복지사는 문제를 어느 한쪽에만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개인체계와 환경체계, 둘 사이 상호작용의 결과로 문제가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사는 이 두 체계 (바퀴와 바닥) 모두를 도우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개인이 환경에 잘 적응하게 돕고, 아울러 환경도 개인을 잘 품게 돕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누군가를 도울 때 당사자를 만나는 일도 있지만, 그의 둘레 사람을 만나 그들과 함께하는 일에 힘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보며 ‘환경 속 인간’을 떠올렸습니다. 육지에서 생활할 때는 동네 아이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바다로 나간 순간, 바람을 알고 별을 읽으며 물의 흐름을 알아챕니다. 결국 그 작은 배로 커다란 청새치를 잡아 올립니다. 하지만 육지에서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나약합니다. 동네 아이 마놀린의 도움 없이는 식사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노인도 당신이 평생 살아온 ‘바다’란 환경에 놓인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부로서 물고기를 잡는 일이 반드시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잘해왔던 일을 이어가는 게 삶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지금 우리 지역사회에서 만난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사회복지사가 도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추석에 선물 드리고, 겨울에 김치 드리고, 봄나들이 구경시켜 드렸다면 잘 도운 게 맞을까요? 정성껏 돌봄으로 산티아고 할아버지 삶에 생기가 돋고 그의 강점 매력 열망 가능성 따위가 드러났을까요? 어르신을 잘 돕는 일은, 아니 사회복지사로서 당사자를 잘 돕는 건, 당사자의 둘레 관계와 어울리게 하는 일입니다. 당사자를 환경 속 인간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더불어 살게 도왔을 때 사회복지사답게 잘 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거드는 아이는 ‘마놀린’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무시해도 마놀린을 어부로서 할아버지의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할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그렇게 나를 믿고 응원하는 한 사람의 존재가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 일도 그렇습니다. 그 누가 몰라주어도 괜찮습니다. 알아주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말 우리 둘레에 아무도 없다면 힘이 나지 않고, 다시 힘을 내기 어렵습니다. 나를 이해하며 응원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도전과 위로가 되듯, 당사자 또한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복지사의 일은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 곁에 그 한 사람 세우는 일일지 모릅니다. 청새치를 낚은 뒤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잠든 할아버지를 찾아온 마놀린. 수척해진 할아버지 모습에 엉엉 울고 맙니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도 바다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마놀린을 떠올리며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가난 고통 질병 아픔 따위가 있어도 그런 애정 인정 우정이 사람을 살아가게 합니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노인의 두 손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오려고 조용히 판잣집을 빠져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줄곧 엉엉 울었다.”   당사자의 모습과 삶이 어떠하든, 그를 조건 없이 응원하는 마놀린이 있고, 아침에 눈 뜨면 나갈 바다가 있고, 맞서 싸울 청새치가 있다면 삶을 활기차게 이어집니다. 사회사업가는 그 한 사람 세우고, 활약할 바다를 만나게 해주는 안내자입니다.   #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84일째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85일째 바다로 나선 날, 드디어 청새치를 만나고 투쟁 끝에 낚아 올립니다. 그날의 성공이었을까요? 지난 84일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85일째 청새치를 만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도 사회사업 현장에서 일하며 오늘 하루, 이번 달 일이 잘 안 되었다고 좌절하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장 무언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여 실망하며 돌아서지 않습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향하는 꾸준한 걸음 뒤에 드디어 그 일의 실마리를 만납니다. 그 순간 지난 84일은 오늘을 위한 준비와 훈련이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누구나 한 번을 읽어봤고, 적어도 들어는 봤을 책 <노인과 바다>. 사회복지사로 다시 읽으니 건져올릴 사회사업 실마리가 적지 않습니다. 아니, 사회복지사로서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란 두 주제를 붙잡고 이를 균형 있게 거드는 일이 틀리지 않았음을 산티아고 할아버지 이야기로 다시 확인했습니다.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 <복지의내일, 대화로만나다> 후기 공유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 <복지의내일, 대화로만나다> 후기 공유

안녕하세요 WISH지기입니다. 이번 2024년 공유복지컨퍼런스는 <복지의 내일, 대화로 만나다>라는 주제로 ‘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에서 진행됐습니다.  비록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셨더라도, 그날의 열기와 대화를 여러분께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왜 ‘대화’에 주목했을까요?   2023년은 생성형 AI, 특히 ChatGPT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기술 혁신의 중심에 섰던 해였습니다. 사회복지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죠.  저희 서울복지재단 서울복지교육센터 역시 AI 활용 교육에 대한 높은 수요를 실감하며, 작년에는 <미래사회와 사회복지>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해 AI와 복지의 접점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 GPT를 활용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회복지 실천가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AI를 주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크게 늘어났죠.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변화 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술만 쫓아가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   “복지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정작 그 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사람’과 ‘대화’입니다.   기술과 방법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묻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자리로 모이는 것입니다. 복지의 미래는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준비되었습니다.   ‘대화로 복지의 내일을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본질에 집중하며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많은 분들이 대화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이번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는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참가자들을 맞이하며 특별한 네트워킹 시간을 제공했습니다.  동료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요.  이 시간이 참석자 여러분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길 바랍니다. 컨퍼런스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울복지교육센터 임지영 센터장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순서로 모두가 주목한 깜짝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오신 분, 가장 먼저 컨퍼런스 접수를 완료하신 분, 가장 멀리서 오신 분 이 세 분께 스타벅스 상품권을 선물로 드렸는데요. 특히, 가장 멀리서 오신 분을 찾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강화도에서 오셨다는 분의 손이 올라왔을 때 모두 감탄했지만, 전라도 광주에서 오신 분이 계셔 현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해 주신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나은 자리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전합니다. 진수희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님의 환영사도 참석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대표님은 “우리 모두의 작은 생각들이 모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라며, 미래 복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기조 강연은 한지우 응용인문연구소 소장님의 시대, 누가 대체 불가능한가?>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소장님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력을 이야기하며, 그 답은‘인문학’에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도전이 가져올 미래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본질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연의 핵심이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본질을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두 번째 강연은 노수현 ㈜쿰 대표님의 <대화, 주고받는 복지>였습니다. 대표님은 강연에서 대표님은 ‘대화, 주고받는 복지’라는 주제로 복지의 본질과 방향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해주셨습니다.  노 대표님은 복지가 ‘주는 복지’, ‘잘 주는 복지’, ‘만드는 복지’를 넘어 이제는 ‘주고받는 복지’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 의존 속에서 서로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복지를 의미합니다. 현대사회는 이미 양에서 질로 전환을 이뤘으며, 복지 역시 대규모 행사나 물질적 지원보다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질적인 변화’가 중요하다고 짚어주셨습니다. 특히, ‘고립’이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형화된 매뉴얼이 아닌, 각자의 경험과 과정을 중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대화는 필수적이며,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이 주고받는 복지의 시작임을 강조했습니다. 노 대표님은 대화의 핵심은 ‘참여’라며, 참석자들에게 단순히 청중에 머무르지 말고 주체적인 참여자로 변화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대화는 복지의 본질이며, 우리의 관계와 삶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강연을 통해 전달하셨습니다. 두 강연 모두,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본질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의 미래를 다시 한번 조명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기조강연이 끝난 후 모든 참가자들이 준비된 대화방에서 함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각 대화별 후기는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 <소진과 슈퍼비전> 김세진 소장님 ‣ <관계와 실천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노수현 대표님 ‣ <우리가 조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승근배 원장님 ‣ <구속과 해방, 분깃점에서 바라본 사회복지 실천> 이두진 관장님 ‣ <프로그램 평가의 새로운 접근> 조성우 교수님 ‣ <외로운 죽음, 고독사! 어디까지 우리 책임일까?> 허보연 주무관님 조별 대화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다시 모여 지식공유 활동가분들의 소감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지식공유 활동가분들이 각 조에서 진행된 대화의 주요 내용을 나누는 동안, 화면을 통해 각 조의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ChatGPT가 요약한 5개의 키워드 문장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참석자들은 조별로 나눴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공유하며, 더욱 풍성한 대화의 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복지의 본질과 미래를 함께 탐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공유복지플랫폼은 이러한 대화와 협력의 장을 열어, 복지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될 우리의 대화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