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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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입니다. 공공조직이면 공공의 문제를(사회격차, 교육기회, 물과 전기의 분배 등), 비지니스 조직이면 소비자가 해결했으면 하는 문제를(생활상의 편리, 의식주의 욕구 등), 비영리조직이면 사회문제를(취약계층의 보호, 자원의 나눔 등) 해결할 때 조직의 목적이 실현됩니다. 조직의 목적(미션)이란 문제를 해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비전은 문제를 언제까지 어떻게 해결할 것이다라는 기준입니다.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은 전략을 만들죠.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전략들 안에 여러가지의 과업들이 수행됩니다.
일을 잘하는 조직의 특징은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의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모든 조직이 간절하게 원하는 바죠. 구성원들 역시도 자발성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합니다. 자발성이 문제해결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조직이 당면한 문제들은 그 자체가 피곤한 것이고 난해한 것이며 온갖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시킨다면, 주어지는 대로 일하게 한다면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문제에 다가가는 것을 꺼려하게 됩니다. 성과가 나지 않죠.
전략체계도의 모순
이러한 자발성이 문제해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함에도 실제 조직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오해하게 만들죠. '우리 직원들은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와 '우리 조직은 자꾸 시킨다'로 대립하고 맙니다. 나태와 강요의 대립이죠. 하지만 구성원들은 나태하지 않습니다. 조직 역시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립의 원인은 일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은 전략체계도를 디자인합니다. 대개의 경우 조직에서는 미션과 비전을 구성원들과 함께 만듭니다. 그리고 전략과 과업들을 만들어내죠. 전략체계도는 그림처럼,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상향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지만 사실 화살표의 방향은 정반대이죠. 미션과 비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집니다. 같이 일하던 구성원들도 바뀝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주도하게 됩니다. 조직의 리더이겠죠. 리더만큼이나 미션에 체화된 사람도 없을테니까요. 조직의 리더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미션을 하방향으로 내립니다. 처음에는 전략 부근까지만 내리다가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과업의 최하층부까지 도달해 버립니다. 사실 탑다운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느정도까지는요. 하지만 하층부까지 탑다운해 버리면 구성원들은 억압이라 느낍니다. 억압은 자발성을 저해합니다. 조직이 구성원들을 억압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죠.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성원들은 자발성을 잃게 됩니다.
미션과 비전의 무용론
자발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탑다운이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가?'입니다. 저는 미션까지라고 봅니다. 좀 더 내려가면 그림에서 설명되지 않았지만 조직의 핵심가치까지입니다. 저는 조직의 미션을 함께 만드는 것이 정석은 아니라고 봅니다. 조직의 미션을 끝까지 체화해 내는 사람은 조직의 리더입니다. 어차피 조직의 리더가 가진 사명이 조직의 사명이 됩니다. 조직과 리더는 하나입니다. 물론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유익한 이유는 리더의 사명에 구성원들의 동의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시간이 지날 수록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사명은 흐릿해집니다. 구성원들도 바뀌어서 함께 만들었던 구성원은 조직을 나간 상태입니다. 새로 들어온 구성원들은 탑다운되어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욱 많은 시간이 지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명을 변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흐름이 급변함으로 사명도 이전보다 더 자주 바뀝니다. 사명이 오래될 수록 시대상황을 반용할 수 없으므로 주기적으로 바뀔 필요가 더 요구됩니다. 또한, 조직의 리더가 바뀌면 이전에 있던 사명은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비용입니다. 그러하니 조직의 사명은 리더가 만드는 것이 실용적입니다. 한 마디로 모두가 함께 만드는 사명은 더 이상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실용성을 위해 사명은 조직의 리더가 만들고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으로 하고 전략과 사업에 더 많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합니다.
비전에 대해서 논해보겠습니다. 미션을 만들고 비전까지 만들다 보면 시간과 비용이 두배로 들죠. 비전은 미션보다도 변화의 주기가 빠릅니다. 그러니 더 자주 교체해야 하죠. 다 비용입니다. 또한 비전은 언제까지 어떻게 라는 조건의 기준임으로 구성원들에게 탑다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전은 어떠한 목표치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비영리조직의 경우에는 그 목표라는 것이 애매합니다. 영리조직이라면 수익률, 점유율, 매출액 등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영리조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터 드러커도 비영리조직은 양적으로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성적 기준이 필요하고,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판단이 필요하며 측정이 아니라 평가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비전을 제시하는 조직을 보면 두 가지의 특징을 보입니다. 첫째는 매우 정성적인 목표들이죠. 예를 들어 '행복 공동체 실현'. 마치 미션과도 같은 문장이 나열되니 사회복지시설의 미션과 비전은 서로가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까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는 비전이 두리뭉실하게 서술되니 비전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이런 비전은 차라리 안 만드는 것이 더 낫습니다. 둘째는 도전의식을 저하시키는 목표들이죠. 예를 들어 '사회복지시설 평가 최우수 달성'. 이러한 비전은 최소 3년 만 효력을 발생합니다. 평가를 받고 최우수를 달성했다면 그 이후의 목표는 사라지고 말죠. 다음 해에도 사회복지시설 평가 최우수 달성이라고 비전을 세웠다면 이전 비전을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표의식이 사라지게 하는 비전은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더 이상 도달할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방향을 잃겠죠. 목적의식까지도 함께 상실되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비영리조직은 굳이 비전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도전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 수 있다면 비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회복지시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략과 과업의 실용론
문제는 이러한 미션과 비전의 실용성이 상실되고 제대로 기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정작 일의 영역을 다루어야 하는 전략과 과업은 이전의 관행대로 만들어집니다. 즉 미션과 비전을 만들어 놨으니 전략과 과업은 여기에 정렬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탑다운입니다. 탑다운이 전략과 과업, 조직의 최하층부까지 도달하게 되니 구성원들은 자발성을 잃게 됩니다. 모순이죠.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미션과 비전이 오히려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잃게 만드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바는 '미션은 조직의 리더가 만들자, 비전은 조직에 따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시간과 비용을 전략과 과업을 디자인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미션과 비전은 실천이 아니죠, 실천을 이끌기 위한 인식차원의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 이루어지는 전략과 과업이고 여기에서 결과가 나와야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이제 일하는 방식을 변화하기 위한 제안을 드립니다. 전략체계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말씀드린 바대로 미션은 조직의 리더가 결정하고 비전은 선택사항입니다. 그리고 탑다운합니다. 조직의 탑다운은 여기까지 내려갑니다다.(핵심가치까지도 포함. 그림에는 생략됨)
이제 버텀업입니다. 전략은 이제 성취목적(achievement)으로 전환합니다. 성취목적이란 '문제를 해결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팀의 목적'을 말합니다. 네 맞습니다. 팀의 사명입니다. 팀의 사명은 조직의 사명과 연결됩니다. 팀의 사명을 정하되 팀이 해결하고 싶은 지역사회의 문제 또는 사람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사명을 기술하게 됩니다. 이때의 성취목적은 조직에서 개입하지 않습니다. 팀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팀장을 중심으로 논의하여 결정합니다. 여기까지는 몇 몇 조직에서 시도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의시적 차원인 슬로건 정도에 머물죠. 하지만 성취목적은 도전과업에 의해 실용적 실천이 됩니다.
도전과업(key result)은 성취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팀이 꼭 도전해야 되는 팀의 핵심과업을 말합니다. 다른 과업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이 과업만큼은 꼭 달성하여야 하는 그런 과업이죠. 이 과업은 기존의 과업보다 난이도가 높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도 과업의 달성률이 100%라면 120%이상으로 올려야 합니다. 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100%를 달성하는 과업은 제외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하던 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던 대로 일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도모하든가, 과업의 난이도를 높이든가 하는 도전을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취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과업을 설정했다면 이때의 달성률은 '70%만 달성해도 정말 잘했다'라고 볼 수 있는 난이도이어야 합니다. 그 정도는 해 주어야 문제가 조금씩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 사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성취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도전과업 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때문에 팀당 2~3개 정도의 도전과업을 설정합니다.
여기까지 실천한 조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한 바대로 잘 되지 않은 이유는 동력의 부족입니다. 성취목적을 설정하고 도전과업을 도출했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를 추동할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그것이 바로 주도행동입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들은 행동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행동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죠. 그리고 이전의 행동대로 그대로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도전과업의 수준이 바뀌었는데 행동이 이전과 같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도하는 행동을 'initiatives'라고 합니다. 주도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힘의 근원이 바로 자발성입니다. 각 팀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도전과업을 스스로 설정했다면 행동 역시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이전처럼 조직에서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라고 했다면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죠. 자발적이지 않으니 전략과 과업 역시도 추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각 팀의 팀원들이 모여 하나의 도전과업 당 2~3개의 주도행동을 결정합니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에 행동은 자발적입니다. 단, 주도행동 (initiatives)은 가설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면 도전과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도전과업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여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라는 가정이죠. 그런데 주도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과업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행동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럼 팀의 구성원들이 모여 주도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스스로 정한 것이기에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자발성이죠.
일반과업(task result)은 도전과업 외의 과업들입니다. 일상적인 과업들이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노력만 해도 이루어지는 과업들입니다. 달성도가 100%인 과업, 성취목적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과업들입니다. 현재의 일하는 방식은 모든 과업이 모두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래서 다 싸가지고 다니죠. 질이 아닌 양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hard work이 되고 소진이 발생합니다. 그에 반해 딱히 성취하는 결과물이 없습니다. 일만 열심히 한 것입니다. 일만 열심히 했다고 사회가 우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해결해 낸 문제가 가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인정됩니다. 그러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취목적과 도전과업, 그리고 주도행동과 일반과업을 버텀업합니다. 그리고 미션과 비전의 탑다운과 만납니다. 이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조직과 구성원이 마주하는 구간입니다. 버텀업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탑다운이 '어디까지 내려가는가'가 중요하듯이 버텀업도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내려가고 올라가는 그 중간지대에서 협의와 합의가 이루어지죠. 그런 조직이 일을 잘 합니다. 바로 조직민주주의입니다.
성취목적(Achievement), 도전과업(Key result), 주도행동(Initiatives). 어디서 본 듯 하신가요? 네 맞습니다. 구글을 혁신으로 이끈 OKR(Objectives Key result & initiaves)과 유사합니다. OKR을 사회복지현장에 적합하게 변형한 'AKR-it'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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