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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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지난 한 주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메리골드를 별칭으로 사용하는 00사회복지사가 지난주에 기억나는 근황을 전했습니다.
“지난주에 지역 방문을 나갔을 때의 일이에요.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한 아이를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어요. 근데 그 친구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메리골드의 말은 이후의 일들로 이어졌습니다. 복지관으로 돌아와서 사례관리 명단 중에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없었고 계속 걱정이 되어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주민센터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걱정만 쌓였는데 학교에서 알 수도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학교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학교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의 소재를 알았고 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란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주소를 알아내서 아이의 집으로 갔지만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만나지 못했고 두 번째 방문에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메리골드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는 구구를 별칭으로 사용하는 참석자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구구는 감격한 얼굴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자신은 사회복지를 잘 모르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라며 손을 모아서 말을 대신했습니다.
메리골드의 행동은 사회복지사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익숙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절대로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최정점 한국에서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미 특별합니다. 나 혼자 먹고 살기에도 벅찬 곳에서 타인을 위한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어떻게 당연한 일이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대가 없이 일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직업처럼 월급을 받습니다. 똑같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그런 뜻에서 사회복지를 사람을 위한 사람의 일로 정의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구구의 마음 담은 말과 행동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들만의 대화였다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사의 똑같은 일상으로 그러려니 하면서요. 자부심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에는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생각해 보니 사회복지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쌀을 주는 건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전문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전문성은 자부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자부심을 가져야 다른 사람도 그것을 가지도록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사회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사회복지사를 둘러싼 환경과 제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책임은 커지는 데 권한은 제자리입니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는 현장에서 감당해 내야만 합니다. 섬 입구의 방파제처럼 광활한 바다의 파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견디고 다시 힘이 나게 하는 건 월급이 아니라 자부심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자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일을 꼭 잘해야 얻는 자부심이 아닙니다. 방파제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습니다.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현장의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사회적 고립 당사자를 찾지 못해도, 사각지대를 발굴하지 못해도,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ESG를 온전히 실천하지 못해도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행위의 자부심이 아닌 존재의 자부심을 말입니다.
그날 메리골드는 구구의 반응이 처음에는 낯설었나 봅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건 잠시였습니다. 구구의 마음을 전달받은 메리골드는 급속 충전한 핸드폰의 화면처럼 더 밝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런 얼굴로 메리골드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잘하는 사회복지사보다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요. 메리골드 같은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그런 메리골드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구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사회가 안녕(복지)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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