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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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크는 것 보며 함께 성장합니다
산과 들과 바다로, 자연과 가까이 하고 싶다. 부족하지만 꾸준히 책 읽으며 생각을 깨우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사회사업가를 만나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가 있기를 감히 바란다.
「사회복지사이게 쓰기로 했다」 공동 저자, 「슈퍼비전 글쓰기」 공동 저자.
「사회사업가이기에, 글쓰기」 공동 저자.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 무엇이냐고」 저자.
사회사업가인 나
고등학교 때까지 사회복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야지’ 했던 게 아니라 어찌하다 보니 사회복지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2006년 4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입사하였고 첫 근무지는 가정위탁지원센터, 이후에 법인 인사발령으로 복지관에서 일했습니다. 다시 2021년 3월부터 지금까지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동안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고 소진되어 몸이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타성에 젖기도 했습니다. 그런 힘든 일만이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돌아보니 사회복지사로서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좋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과 그 가족과 함께하는 일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된 순간부터 이 삶이 저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당사자 한 분 한 분이 모두 소중합니다.
2006년부터 무수히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갓난아이부터 시작해 어르신까지 연령도 처지도 다양했지요.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모두 달랐고 그 고통과 슬픔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때론 같이 웃고 울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각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한다는 모습을 그들 곁에 있으며 배웠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는 것을요. 그러니 제가 돕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그들을 돕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저를 만나는 당사자의 인생에 제가 오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듯, 당사자의 삶 또한 당사자가 주인이길 바랐습니다. 긴 인생 가운데 잠시 나를 만났고, 나를 만나는 당사자가 각자의 인생을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해 왔습니다.
지금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아이를 가장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일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길, 어른과 같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길,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내가 아닌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길 바라며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 일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합니다.
아동은 가정에서 자라야 합니다
아동은 태어난 가정에서 자라야 하고 부모와 분리되지 않도록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부모와 따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양육시설이나 그룹홈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정위탁지원센터는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를 키우는 이런 위탁가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3년 전국에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2023년 18개 센터) 2023년에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사망, 연락두절, 수감, 질병, 학대 등) 시설보호가 아닌 아동복지법령이 정하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가정에서 아동을 일정기간 보호하게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보호받는 아동을 ‘위탁아동’, 보호자를 ‘위탁부모’라 하고, 이런 가정을 ‘위탁가정’이라고 합니다.
위탁아동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아이부터 20대 후반의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위탁아동이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면 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정기적으로 그 아동과 위탁부모를 만나러 갑니다. 위탁가정 안에서 아동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기 위해 보호자를 지지·응원하며 필요한 양육정보와 교육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또한, 위탁아동과도 정기적으로 만나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15세 이상 아동과는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위탁아동은 그 대상이 18세 미만이지만 2022년 아동복지법 개정에 따라 아동이 원한다면 25세까지 연장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센터에서는 신생아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위탁아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아이마다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는 사정이 다르고 상처가 다릅니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아이 옆에 든든하게 지켜보고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도록, 특히 위탁부모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힘씁니다.
위탁부모는 혈연관계인 친조부모, 외조부모뿐 아니라 증조부모, 삼촌, 고모 등 친인척이 될 수 있으며 아예 혈연관계가 아닌 분들도 위탁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가정위탁(친인척)의 경우 대부분 아동들이 이미 위탁부모(조부모, 친인척)와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분리되고 주위에 아이를 돌봐줄 친인척도 없을 때 아이를 돌봐줄 비혈연 위탁부모님을 찾아야 합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돌봐 줄 위탁부모님이 충분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센터에서는 위탁부모가 되어줄 분을 찾기 위해 적극 홍보합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있을 때 가정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위탁부모와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수와 연호 이야기
연수와 연호 남매는 친부의 학대와 친모의 방임으로 위탁가정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호는 한 살, 연수는 두 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 모두 친부의 신체학대로 병원치료가 긴급히 필요했습니다. 특히 연호의 경우 두개골 골절이 있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지자체와 경찰은 아동들을 부모로부터 즉각 분리하여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며 동시에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위탁가정을 찾아봐 주길 의뢰하였습니다.
가정위탁보호사업은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없을 때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아동이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지만, 부모와 분리가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이 된다고 볼 때는 부모와 아동의 동의하에 진행합니다. 그러나 아동학대와 같이 분리하지 않으면 아동 안전에 해가 될 때는 강제로 분리를 진행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해가 갈수록 이렇게 아동학대로 인한 가정위탁 의뢰 수가 증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형제나 남매의 위탁가정을 찾아달라고 의뢰되었을 때는 최대한 형제나 남매가 함께 갈 수 있는 가정을 찾습니다. 센터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낯선 위탁가정에서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큰 상처와 변화인지 알기에 위탁가정을 찾아 연계하는 데 매우 신중합니다. 때로는 아동과 위탁가정이 함께 지내며 적응하지 못해 위탁가정을 변경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일지라도 부모와 떨어져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위탁부모와 그 가족을 만나 낯선 가정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은 아이에게 우주를 통째로 바꾸는 것처럼 엄청난 사건임을 사회복지사는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아이를 민감하게 살피고 세심하게 지원합니다. 작은 일도 아동 중심으로 생각하며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매가 학대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학대 후유증 또한 어떨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두 아동 모두 영아로 24시간 주 양육자의 돌봄이 필요하기에 위탁가정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매가 한 가정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모든 상황을 알고도 남매를 돌보겠다고 흔쾌히 나서준 가정이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기에 무척 고마웠습니다.
연수와 연호가 위탁가정에 간 날부터 위탁부모님과 가족들은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학대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돌봐야 함은 물론이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은 기본입니다. 아이들이 울며 부를 때면 어디에서든 나타납니다. 등에 센서가 있는 것인지, 아이들은 바닥에 눕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위탁 어머니의 손목 팔 허리가 안 아플 날이 없었습니다. 같이 눈 맞추며 웃고 놀기도 하며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아이들이 앉고 서고 걸음마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 같은 말도 잘할 수 있게 세심히 보살펴 주셨습니다.
우리 센터에서는 이렇게 아이들이 초기에 위탁가정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양육보조금, 생계급여, 각종 수당이 제대로 지원될 수 있도록 신청을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원이 있어야 위탁가정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위탁가정을 방문하여 위탁부모와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살피기도 합니다. 위탁부모에게도 양육 관련 지원 외에 정서적 지지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우리 가정에 옴으로써 함께 찾아오는 긍정적 변화를 세워드리기도 합니다. 양육 가운데 힘든 상황을 함께 공감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눕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행동이 문제행동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행동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해드리기도 합니다. 아이를 향한 위탁부모의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아이 그 자체로 존중받고 이해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연수와 연호는 너무 어려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을 직접 만나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꾸준히 아이들을 만나며 담당 사회복지사를 낯설어하지 않게 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 연령에 따라 잘 자라는지, 학대로 인한 상처는 잘 아물고 있는지 살피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사가 이렇게 위탁아동과 위탁부모를 만나 한 가족으로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다지만, 많은 부분 위탁부모님께 의지합니다. 위탁부모님은 아이들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당신 가족으로 받아 주었지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적어도 이곳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게 힘써줍니다. 위탁아동들이 위탁가정에 오기까지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대부분 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때론 학대뿐 아니라 일관되지 못한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위탁가정에 와서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곳에서 느끼는 작은 평화가 아이들 성장에 큰 토대가 되어줍니다.
연수 연호 위탁 뒤 일 년, 학대로 인한 부모와 분리였지만 친모와는 만남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럴 때는 친가정 사례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 그리고 위탁가정과 함께 친가정 만남 일정을 조정합니다. 아이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일부터 아이들에게 친모를 만나는 일까지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편하게 놀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친가정과 아이들이 만날 수 있게 주선합니다. 처음에는 짧게 만나지만 조금씩 시간을 늘립니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친가정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점차 아이들과 부모가 적응할 수 있게 거듭니다. 친모에게도 아이들 양육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친가정 만남 동안 아이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입니다. 낯가림을 시작한 첫째는 위탁모와 떨어지기 싫고 친모를 알아보지 못해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다들 당황하고 친모는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아이에게는 당연할 수 있습니다. 처음 친모를 만나고 위탁가정에 돌아온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입니다. 나에게 ‘엄마’로 불러야 하는 사람이 또 있고, 위탁부모를 떠날 수도 있으며, 드디어 만난 친부모와 당장 살지 못하는 데에서 찾아오는 혼란스런 마음. 나를 버린 친부모가 미울 수도 그리울 수도 있고, 나를 키우고 있는 위탁부모님 때문에 어려움이 왔다고 오해하기도 하는 불안한 마음.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은 밤에 자다 깨어나 울며 위탁모를 찾기도 합니다. 그날 이후로 한시도 위탁모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마다 친가정 만남 뒤 모습은 다르지만 이런 마음을 위탁부모와 친부모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며 돕고 있습니다. 아이가 다시금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위탁부모가 끝까지 옆에 있어 주시기를, 그럼에도 친가정 만남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처음 친가정 만남 때, 학대로 인해 아이를 친가정에서 데리고 나와 병원을 함께 찾았던 공무원이 동행했습니다. 상처 하나 없이 무척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이 바로 기적이네요. 위탁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며 감동하셨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일 년 사이에 위탁가정에서 자라며 얼마나 많은 사랑과 돌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였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변화를 볼 때 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위탁부모가 된다는 것은 여느 가족처럼 아이들과 24시간 365일 부대끼며 부모와 자식으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친가정으로 돌아갈 아이들이지만 위탁가정에 있는 동안은 내 아이이며 우리 가족입니다. 그 속에서 연수와 연호는 건강도 회복하고 큰 상처가 있었던 것도 모르게 예쁘게 자라주었습니다. 2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연수와 연호는 사방을 뛰어다니며 위탁부모에게 재잘거리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함께한 시간동안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아이에 대한 책임과 역할, 양육 가운데 마주하는 온갖 어려움, 주위 불편한 시선까지 찾아옵니다. 하지만 위탁부모는 한결같이 그것보다 더 큰 행복과 기쁨이 아이들에게서 온다고 합니다. 위탁가정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로 인하여 위탁가정도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저 역시 사랑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복지사의 길로 나선 보람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아이들이 위탁가정에서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나 친가정에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오래도록 옆에서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진주 이야기
진주는 지적 약자인 엄마에게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미혼모 시설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엄마는 진주를 입양 보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진주를 키울 수도 없었기에 우리 센터에 위탁가정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위탁아동이 일정 기간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친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지만, 진주의 경우 친가정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18세까지 키워줄 수 있는 위탁가정을 찾아야 했습니다.
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매 순간 아동을 생각합니다. 진주의 경우에도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위탁가정에서 어느 정도 자라고 난 뒤 친가정으로 복귀할 방법은 없을지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엄마의 양육 및 복귀 의사를 떠나,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엄마가 홀로 아이를 양육하기 쉽지 않습니다. 옆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만한 지원을 받을 곳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사회복지사로서 한계를 느낍니다.
진주는 이름만큼이나 예쁜 아이입니다. 건강하며 성격도 순한 편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지적 약자이기에 진주에게도 어떤 영향이 있을지 염려되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내 아이로 키울 수 있는 분이 나타날지 걱정이 컸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진주 부모에게 장애가 있든 앞으로 진주에게 장애가 있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진주가 어른이 될 때까지 내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아이와 부모의 인연은 따로 있구나 싶었습니다. 장애가 있을지 모른다는 저의 판단과 걱정이 부끄러웠습니다. 위탁부모에게 진주는 그저 조금 느릴 뿐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위탁 부모님은 진주의 양육을 결정하고부터 진주와 이웃에게 위탁아동, 위탁가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였습니다. 모든 가정이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위탁가정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위탁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성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살다 보니 위탁아동임을 알릴 시기를 놓치기도 합니다. 혹은, 위탁아동임을 알림으로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어 주저하기도 합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위탁가정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때에도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쉽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위탁가정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차갑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위탁이 생소하기에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 가정위탁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도록 하는 역할 또한 우리 사회복지사가 힘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위탁부모님께 진주를 생모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부탁드렸습니다. 흔쾌히 친가정 만남을 지원하셨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친모를 만나는 것은 가정위탁보호제도 안에서 당연할 수 있지만, 진주처럼 친가정 복귀가 어려운 경우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합니다. 나를 엄마로 부르고 있는 아이에게 생모가 있음을 알려주고 만남을 지원하는 어려운 결정. 그러나 실제로 아이와 친모가 만나고 나면 위탁부모는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내 아이를 친모가 데려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하고, 친가정 만남을 계속 해야 할 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위탁부모의 이런 여러 마음을 이해합니다. 진주 위탁모 뿐 아니라 많은 위탁부모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아동을 중심에 둡니다. 그럼에도 지금뿐 아니라 먼 훗날을 생각했을 때 어떤 것이 진주에게 좋을지 위탁가정과 함께 고민하며 스스로 결정하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진주가 위탁가정에 온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 진주는 “엄마 아빠” 하고 말합니다. 걸음마도 시작했습니다. 진주가 온 이후 위탁가정의 모든 삶이 진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진주와 함께하며 때때로 새로운 어려움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겠지만, 그보다 진주와 함께하는 기쁨이 더 크기에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 나가리라 믿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앞선 두 이야기에서처럼 아이들이 위탁가정에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지내며 누가 보아도 사랑받고 있는 아이로 변해 있을 때입니다. 저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고 살펴주시는 위탁부모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고 계신 위탁가정을 더더욱 잘 돕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는 현장은 아동의 연령이 신생아부터 시작해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아동뿐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도 다양하며, 각 가정의 모습도 여러 가지입니다. 실제로 결혼하지 않은 고모 삼촌이 조카를 키우기도, 조부모님이 손자녀를 키우기하며, 혈연관계가 아닌 위탁부모가 친자녀와 위탁아동을 함께 키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신생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당사자를 만나고 어울려 사는 모습도 다양한 가족을 지원합니다.
사는 모습과 방식이 다양한 이들을 이해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사람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두고 관련 책과 논문 읽기를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모르면 오해하거나 편견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일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동 중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어린이라도 어떤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미숙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복지사는 아이들도 그저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존재, 우리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인정합니다. 나아가 우리뿐만 아니라 아이들 둘레 어른들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함께 봐주기를 제안합니다. 학습하면서 실천해야 우리부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바르게 도울 수 있는 민감성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니 어른이 되어가며 잊고 있었던 사람의 본성을 다시 깨닫습니다. 아이들을 돕는다고 했지만 일할수록 인간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어 지금 일하는 현장이 참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크는 것 보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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