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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과 정년이라는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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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은 이별이 참 많습니다. 첫 번째 이별은 어르신의 임종입니다. 저희 요양원은 요양필요도가 높으신 중환의 어르신들이 많으십니다. 예전에는 요양원에서 임종이 발생하는 것을 지양하고 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시게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게 되면 여러 절차들이 까다롭습니다. 고인께서 자연사인지 아니면 사고사인지를 판단받기 위해서 경찰의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슬퍼할 겨를이 없이 혹시나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임종 직전에 병원에 가게 되시면 여러 의료 행위들이 있어서 어르신이 힘드십니다. 응급병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마감한다는 것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보호자들에게 있어서도 병원에서의 임종은 힘겹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의료행위가 집중되므로 치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호자분들도 부담이고 국가적으로도 건강보험의 재정투입이 증가합니다.


근래에는 원내에서 임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합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병원에 가시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으시면 임종실로 모십니다. 보호자분들이 어르신과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임종실에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드립니다. 임종실은 노인복지법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 정하는 법적 설치기준은 아닙니다. 때문에 임종실을 마련하기 위해서 2인실인 요양실 한 곳을 비워두고 있습니다. 임종이 이루어지거나 상황에 따라 임종실 여건이 좋지 않으면 프로그램실로 모십니다. 가급적이면 어르신과 보호자분들께서 이별하시는 공간과 시간을 지켜드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좀 더 편안하고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임종에 관한 서비스에 변화를 주면서 보호자분들의 만족도는 좋습니다. 이리저리 다닐 필요 없이 어르신들께서 머무시던 공간에 오셔서 차분하게 임종을 준비하실 수 있으니까요.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도 좋으실 듯 합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하여 임종하시는 것보다는 평소 사시던 집은 아니어도 죽음을 맞기 위해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어르신을 모시던 사람들과 이별을 할 수 있으니까요. 재정적으로도 병원에서의 임종보다 요양원에서의 임종이 보호자분들의 부담이 적습니다. 건강보험 재정도 증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어려움이 있습니다. 임종을 목격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함에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노인인구비율이 증가하고 생산인구가 감소하면서 노인의 임종 시에 적정한 의료인력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이러저러한 면을 고려해 보았을 때,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 것은 모두를 위한 변화이지 않을까 합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의 시설급여 서비스에는 임종에 관한 서비스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중환이시기에 여러 의료 처치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의료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죠. 저희는 다행스럽게도 의료인력이 충분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임종 전에 어르신을 케어하는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들의 직무도 개발되어야 합니다. 마음챙김 프로그램이나 마음휴직도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조금씩 경험이 축적되어 가면서 임종에 관한 서비스가 궤도에 오르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합니다. 요양원은 병원이 아님으로 의료적인 서비스에 제한이 많습니다. 촉탁의 제도를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요양원과 병원이라는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의료인들의 직무 범위가 좀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촉탁의제도도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합니다. 요양보호사들의 직무 범위도 넓어져야 합니다. 임종실이나 의료처치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 의료소모품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한 대목입니다. 


요양원에서의 두 번째 이별은 직원들입니다. 이렇게 애써주시는 직원분들이 한 분 한 분 퇴사를 하시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개인적 사유에 의해 일반 퇴사를 하시는 분들의 사례는 이렇습니다. 자녀 케어(자녀나 손주), 반려자 케어(남편이나 아내), 동거가족의 이사 등입니다. 아무래도 직원의 연령 분포가 4~60대 분들이다보니, 특히 여성들이다보니 일을 더 하고 싶지만 가족들의 케어를 위해 그만두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저로써는 너무 안타깝죠. 어렵게 채용한 분들이고 숙련된 분들이고 정말 좋은 분들인데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일을 놓아야 하는 사정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이러한 가족케어의 경우에는 무급이 아닌 유급휴직으로 조속히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육아휴직 제도 만큼은 개선되어야 이러한 사회적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아이의 돌봄에서 오는 경력단절도 있지만 아이의 케어에 있어서 조부모들이 도울 수 없는 노동환경도 작용합니다. 돌봄에 관한 정책은 동거가족 중심이 아니라 전체 가족구성원 모두들 고려한 정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반 퇴사의 또 다른 이별은 정년입니다. 고령의 직원분들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많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젊어 보이시고 아직도 청춘 같으신 분이신데도 벌써 정년이 되었다 하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2019년에 정년을 60세에서 63세로 상향했습니다. 5년 정도를 이렇게 해보니 정년을 더 연장해야 할 듯 합니다. 경험해보니 63세도 충분히 일할 수 있으십니다.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직원들과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40세에서 50세 정도에 요양원에 입직한다고 가정한다면 10~20년 정도 일하는 것보다는 20~30년을 일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원장인 저의 정년이 65세 이듯이 직원들의 정년도 65세로 하고 싶습니다. 저의 정년은 이제 15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 15년 동안 지금 계시는 직원분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 다음 역할은 그 분들과 한 분 한 분 정년으로 이별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정년으로 퇴임하는 것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2024년 사회복지시설관리안내의 개정안 수렴에 있어서 직원의 정년이 65세가 되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시설장의 정년이 70세이든 65세이든 나중에 논의를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직원의 정년은 65세까지 하는 것으로 개정되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저희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취업규칙과 규정으로 개정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의 손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하고 계시는 분들과 좀 더 많이 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66세부터 70세까지는 촉탁직으로 하여 고용을 보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직원분들이 원하신다면요. 정년연장에 대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인구위기에 대한 데이터를 보시면 일할 사람은 갈 수록 부족해집니다. 더군다나 복지, 요양, 보건 직종은 일이 힘들고(장시간 노동, 감정노동) 여러 위험들(의료사고, 인권이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유입되는 인력이 더 감소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하는 일들은 아픈 몸을 돌보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삶에 대한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기계나 외국인 노동자에게서 얻는 것보다는 같은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기대수명이 90세에서 100세까지라고 본다면 70세까지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지입니다. 아픈 분들 옆에서 동반자가 되어주고 삶의 마지막 임종에서 함께 해 주었던 분들이십니다. 이러한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써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사회복지시설 관리안내의 정년에 관한 규정, 즉 보조금 지급연령의 상한선은 시설장과 직원 모두 70세까지 보장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것은 보조금 지급연령의 상한선입니다. 실제로 정년을 몇 년까지 할 것인지는 각 법인과 시설의 유형에 따라 정하게 한다면 정년연장에 대한 직급간, 세대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까 합니다. 큰 틀에서는 정년을 최대한 보장해 주되, 세부적인 정년은 법인과 시설의 자율성에 맡기자는 것이죠. 마지막 선택은 직원들의 몫입니다. 추후 정년연장을 논의할 기회가 있다면 소수가 이익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수의 이익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올해에도 임종으로 인한 몇 번의 이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주 케어와 남편의 케어로 인한 직원과의 이별도 있었습니다. 복지관이나 이용시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별들입니다. 그리고 몇 분의 직원과 촉탁직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임종이든 퇴직이든,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임종은 제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인간답게 삶을 마치실 수 있도록 저희 직원들이 함께 해 주고 계시니 너무나 고마운 마음입니다. 고마운 직원들과의 이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습니다. 저의 몫입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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