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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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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김승수(똑똑도서관 관장)



최근 방송을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상담(相談)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육아에서, 진로, 연예와 부부관계 심지어 주식까지 그 주제와 영역도 다양하다. 그 많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실제는 그러하지도 못하다. 


상담(相談)은 한자로 “相談” 서로라는 뜻의 상(相)자에, 이야기라는 뜻의 담(談)이 합해진 말이다. 한자를 직역하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 정도의 뜻이다. 의외로 치료적 느낌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는 것 그게 상담(相談)인 것이다. 


어릴적 읽었지만 나이들어 더 큰 영감을 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소설의 <모모>란 책이 있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동화책인데,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이 모모다. 마을 사람들은 모모와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고민이 해결되어 밝은 얼굴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모모는 마을사람들로 부터 상담가로 불릴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다. 물론 어린 모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전문 상담사를 인증하는 어떠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실제 친구들에게 전문적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모는 그저 자신을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내놓는 하소연이나 그들의 고민에 대해 공감하고, 질문하고,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는 게 전부였다. 문제해결을 위한 뾰족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내리는 것은 물론 아니었고, 그저 찾아오는 사람들과 말 그대로 상담(相談) 즉,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즉 대화를 나눈 것이다.  


우리에게도 함께 대화를 나눌 모모가 필요하고, 우리도 누군가에겐 모모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며 스스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대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잃어버렸던 일에 대한 동기와 새로운 자극을 만날 수도 있으며, 문제해결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사회복지사들과 스스로가 생각하는 고민의 실마리를 찾고, 풀어보자는 취지의 대화모임을 기획한 적이 있다. 기획의 의도와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먼저. 대화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직급, 나이, 성별, 지역에 관계없이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어떤 주제든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자유롭게 대화한다. 

둘째. 대화의 주제는 모임에서 참가자들과 대화를 통해 정하게 된다.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대화에 가장 자발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들이 전체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셋째. 느슨하게 대화를 하게 된다.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참여한 모든 구성은 현장에서 자유롭게 구성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넷째. 누구의 충고와 조언 따위는 허락하지 않는다. 참가자들 간 서로 자유로운 대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계기를 갖게 된다. 

다섯째.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고,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듣는다. 참가자 누구나 주인공이 되며 서로가 모인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대화한다. 그게 전부다. 

여섯째. N가지의 자기답을 찾아간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에게 답을 찾아주는 질문을 하고,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의 자기 답을 또는 단서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참여한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자 했다. 


사진을 남기는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아닌 집에서, 일상에서 그리고 조직에서도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합의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의견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인식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대화적 대화가 더 많이 확대되어야 한다. 회의가 아닌 대화가 관계와 일의 질을 높여갈 수 있게 된다. 효율성을 담보해 대화를 빨리하고, 결정을 빨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 하고 알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나서 하는 대화가 아닌 시간을 내서 하는 대화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삶에서 자유로운 대화,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사실 많지 않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멍석은 깔아 주지만 속시원히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한 경험 또한 많지 않다. 말을 잘하는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픈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면서 대화의 균등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의 장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과 이야기가 곧 존재를 만들어주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말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 토대를 만들어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만들어 주리라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당장 그런 대화의 긍정적 경험을 많이 쌓아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다양한 현장에서 좋은 대화의 경험과 문화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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