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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것, 이상하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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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딸 아이의 성격이나 생김새를 보면 마치 저를 보는 듯합니다. 물론 제 딸 아이는 강력히 부정합니다. 저와 많이 닮았기 때문에 걱정도 되지만 안심도 됩니다. 외모는 저를 닮았기에 살아가는 데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 어쩌면 너무 예쁜 것이 지장이 될 수도 있겠네요. 걱정되는 부문은 저와 닮은 것 같은 성향입니다.


저는 어려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향적인 성향은 유지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모습이 딸 아이에게서도 보입니다. 부모의 입장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의 내향적인 성향보다 더 심한 극내향의 성향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꺼려하고 혼자만 있으려 합니다. 저 처럼 친구도 많이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찐친도 없는 것 같네요. 이런 모습들을 보니 자꾸만 걱정이 앞섭니다. 


아마도 내향적인 성향은 오빠와의 비교에서도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위축이죠. 저의 아들은 성향이 완전히 저랑 다릅니다. 동생하고도 완전히 다르죠. 내향적일 것 같은데 외향적입니다. 친구들도 많고 리더십도 보입니다. 적극적이고 집단에 적응도 잘합니다. 공부도 잘합니다. 이런 오빠의 모습이 아마도 자신과 비교되었을 듯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저보다 월등한 형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더욱 딸 아이에게 공감이 가고 애틋합니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다가 IQ(Intelligence Quotient)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빠의 IQ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저는 옳다구나 했습니다. 저의 IQ는 121입니다. 그렇게 좋은 머리는 아니죠.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121이야.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아. 만약에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어떤 생각이 드니?"

"귀찮아요"

"맞아 아빠도 그때 귀찮았어. 하기 싫었거든. 별로 관심도 안가고 재미도 없었고. 그런 일을 하게 되면 121이 나오는 거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내가 스스로 하게 되면 150이 나올 수 있어. 그러니까 IQ는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있거나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야"


딸 아이는 내심 동의하는 듯 하여 보였습니다. 대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아이와 공감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젓가락질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잘 하고 못하고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젓가락을 어떻게 잡든 먹고 싶은 것을 잘 집어서 먹으면 되니까요. 저의 젓가락질은 꽤나 실용적이었습니다. 폼은 나지 않지만 일반적인 젓가락질보다는 더 많은 음식을 집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저의 젓가락질에 대해 무어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아들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잘 집어가면 될 일이지 다르게 한다고 해서 문제될 일은 없다고 보신 듯 합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가면서 젓가락질이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여 잘못하면 장가를 못 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말씀에 솔깃하여 젓가락질을 고쳤습니다. 더 빨리 고쳤다면 장가를 일찍 갈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니까요.


딸 아이를 보면 또래 아이들과 다름을 느낍니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죠.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이 시절에 다르지 않으면 언제 이렇게 자유롭게 다를 수 있을까요? 결국에는 사람은 커가면서 규범을 익히고 사회화되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관심있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아이가 그것을 찾기까지 옆에 있어주는 것,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부모의 존재 이유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 아이는 121정도 인듯합니다. 뭐 괜찮습니다. 저도 역시 30세 이전까지 121이었습니다. 지금은 150 근처에 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늦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 성향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딸 아이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언제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남들 앞에 당당하게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2010년 오스카 각색상에 이미테이션 게임을 쓴 그래이엄 무어가 수상했습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대전 당시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앨런튜링은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이자 인공지능의 선구자였습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선택했죠. 공교롭게도 무어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16살 때 자살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였었죠. 그러나 그는 당당히 오스카 상의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다르고 이상해요, 이상함으로 남으세요. 남 다르게 남으세요, 그리고 나서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저 처럼 이렇게 무대에 섰을 때, 이 똑 같은 말을 다음 이상한 사람이 올 때 전해주세요"


지금은 다르고 이상하지만, 언제가는 이 다르고 이상함이 특별함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다름과 이상함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들의 젓가락질을 고치려하지 않고 인정해주신 부모님들처럼 말이죠.


조직을 보면 구성원들의 역량치는 매우 다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같은 이유라고 봅니다. 자신이 재밌어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는 150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121이 최대일 수 있겠죠. 때문에 구성원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조직의 목표와 연관될 수 있도록, 그 일을 함에 있어 구성원들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채용에서부터 육성과 보상이라는 모든 조직의 행위는 이와 연관되어야 겠습니다. 설령 121을 하고 있는 구성원이라 하더라도 나태하거나 무지하다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50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겠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을 하더라도 모든 구성원들이 150을 할 수는 없습니다. 150을 할 수 있는 직무는 한정될 수 있으니까요. 차례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150 이상을 할 수 있지만 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장이 더디거나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무능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그리고 조건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과 이상을 펼칠 수 없는 때 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애써 동화되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차례가 올 것이고 저 처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때, 이렇게 말해 주세요.


"낯선 곳에 홀로 있으라" 


노무현 대통령 묘역과 박물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은 독특합니다. 그의 건축철학은 '빈자의 미학'입니다. 달동네에 갔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소유하기보다 공동의 공간을 함께 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다르고 이상한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치를 감상해도 사람들은 다 다른 풍경을 봅니다. 예술품이 아름다운 것도 똑 같은 작품이 아니고 다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며 기다려주는 사회, 낯선 곳에서 혼자있으면서도 생각을 틔워갈 수 있는 조직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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