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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구 신고 포상 제도', 말의 한계가 내 실천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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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구 신고 포상 제도', 말의 한계가 내 실천의 한계
 
 

"성동구, 위기가구 신고 포상금 제공, 복지사각지대 발굴" (아시아경제, 2021.10.19)
"도봉구, 복지사각지대 이웃 신고하면 건당 3만 원 포상" (연합뉴스, 2023.2.7.)
"성북구, 위기가구 발굴 신고자에 3만 원 포상 (연합뉴스, 2024. 8. 12.)
.....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여러 제도 가운데
최근 ‘위기가구 신고 포장제도’와 같은 이름으로 조례를 만든 자치구들을 보았습니다.
 
분명, 우리 지역사회에 소외되는 어려운 이웃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일 겁니다.
지역주민이 그런 일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을 겁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웃의 동행을 북돋으려는 노력을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 바람과 달리 조심스런 용어 때문에 제도의 본질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고'란 단어 때문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이 말을 조금 다듬는다면 그 뜻이 더욱 빛나고,

이로써 이런 고마운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겁니다.






 



 
상황 사안에 따라 알맞게 사용하는 말
 
‘신고申告’라는 말은 ‘국민이 법령의 규정에 따라 행정 관청에 일정한 사실을 진술이나 보고’하는 뜻으로,
사전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어울리는 말’이 있습니다.
꽃은 ‘피었다’고 하고, 바람은 ‘불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앞말에 적당한 뒷말이 따라옵니다.
범죄와 간첩은 ‘신고했다’ 하고, 쓰레기 무단 투기도 ‘신고했다’ 합니다. 불법주차도 ‘신고’하고, 이웃과 다툼도 ‘신고’합니다.
사회 문화적으로 ‘신고’란 말은 이처럼

우리 일상에 불편을 주거나 두렵고 힘든 일 따위를 행정 관청에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지역사회에 삶이 어려워 보이는 이웃을 알았을 때, 주민들이 취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직접 돕기도 하겠지만, 당장은 여러 이유로 쉽게 나서기 어려울 겁니다. 
그럴 때 관련 행정 기관에 연락하여 그 이웃을 찾아가 봐 달라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의뢰’라는 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대체로 공공 현장에서는 지역주민이 선한 일을 하였을 때 '미담사례'란 말로 표현하고,

이때도 '의뢰'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느 자치구 구의원은 '신고'란 표현은 행정 용어로 사용에 문제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정말 문제가 없을까요?

그 자치구 공무원이 지역 주민을 친절하게 응대했을 때, 우리는 그 공무원을 칭찬합니다. 

이런 일에 그 공무원을 신고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고 받은 공무원' 하면 칭찬이 아닌 비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사회 문화적으로 어울리는 말입니다.


해당 구청 홈페이지를 가보니 좋은 일은 '칭찬'해달라고 합니다.
의견은 '건의'하거나 '제인' 혹은 '신청'하라고 합니다. 
그 어디에도 '신고'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심스러운 말을 지역사회에 힘없는 사람에게만 사용한다는 건 문제 있어 보입니다.

공무원의 잘못은 '신고'합니다. 공무원의 선의는 '칭찬'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이웃을 관청에 알릴 때 신고해야 할까요 의뢰 혹은 제안해야 할까요?


이 일에 '신고'란 말을 쓰라고 한다면

그 말을 제안한 사람 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경멸 같은 부정적 의식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공 현장에서 '신고'란 말을 쓸 때도 있습니다.

'전입신고'. 하지만 이때 신고는 그 주체가 당사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어떤 행위를 관청에 알린다'는 뜻 정도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칭찬하다'와 '칭찬받다', '의뢰하다'와 '의뢰 받다'. 이런 말들은 이렇게 상대적으로 쓰는 반면,

'신고'는 '신고하다'와 '신고 당하다' 하고 씁니다.

'당하다'는 주로 '폭행 당하다', '사기 당하다'와 같은 부정적 일에 주로 사용하니, 

'신고'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상황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문제 있는 존재로 볼 위험이 있습니다


지역주민이 다른 주민의 삶의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어 관청에 알릴 때

'신고'란 표현으로 연락하는 데는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간첩이나 범죄에 '신고'란 말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삶이 어려운 이웃을 신고하는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이웃을 간첩이나 범죄처럼 

지역사회에 해를 끼치고 문제를 불러오는 대상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고'란 말 사용에 우려스러운 이유입니다.

말과 글은 의식을 만들어 냅니다. 

의식이 사회 문화를 형성하기에 지역사회에 영향이 큰 공공기관의 말과 글은 더욱 신중합니다.


‘신고’라는 말을 오래도록 사용한다면, 이는 단순히 바르지 못할 단어 사용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삶이 어려워 보이는 이웃을 신고하라고 행정 기관에서 안내하고 유도했으니,

이 말 때문에 이제 어려운 이웃은 우리 지역사회에

‘우리 일상을 불편하게 하거나 두렵고 힘든 존재’가 되어버릴 위험이 큽니다.

지금까지 ‘신고’를 그런 일에 사용했으니,

신고란 말로 만나는 이웃은 문제 있고 불편한 존재로 여길 겁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누구에게는 집과 차가 중요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것에서 가치를 찾습니다.
포용과 상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신고'함으로써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낸다니,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공생을 좇는 사회복지사로서는 더욱 경계하는 표현입니다.

 
사용하는 말이 의식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의식이 행동을 통제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 '신고'란 말을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회적 약자를 신고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주로 '신고'를 불법주차와 불법 쓰레기 투기나 범죄 따위에 사용해 왔으니,
사회적 약자도 같은 결로 느낄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 그런 의식이 만들어지면 동네에서 만나는 남루한 옷차림의 낯선 사람을 
수상히 여기거가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신고가 자리 잡는 순간,  사회적 약자를 만나면 돕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을 더욱 메마르게 할지도 모릅니다.

신고의 대상을 발견했고, 잘만 하면 용돈도 생기니 일단 공공기관에 신고하고 볼 겁니다.
그 덕에, 이제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은 동네도 마음 놓고 산책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고 당할 수 있는 사람은 둘레 사람을 계속 의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사는 방식을 문제 있다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에 마을 살이는 더욱 힘들어지도 모릅니다.
처음 이 조례의 선한 취지와는 달리 당사자는 더욱 숨어들려고 할지 모릅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인정욕구인데, 공동체에서 부정당하는 모욕인 '신고'를 당했으니,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고 신고 조례를 만든 덕에,

주민이 주민을 적극 신고하는 지역사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사회적 약자는 신고 당하지 않으려고 더욱 숨 죽이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가 정한 표준화된 삶에서 어긋나면 신고당할 테니까요.



 
신고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습니다
 
‘신고’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습니다
신고하는 일은 주민에게도 부담스러울 겁니다.

누군가를 신고하니, 신고 당한 사람이 따져 물을 수 있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누가 나를 신고했어요?" "집주인이 신고했어요."
"여기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있는데요, 신고할 게 있습니다." "신고 내용을 말씀해 보세요."


불편합니다. 이웃 서로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이 속에서 칭찬 감사가 오가기 어렵습니다.


‘의뢰’와 같은 말을 사용했다면 당사자는 고마울 수도 있는 여지가 생기지만,

‘신고’란 말을 사용하는 순간 당사자는 신고당한 사람이고, 의뢰자는 신고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신고하는 사람도 상대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신고자와 신고 당하는 자. 이 제도 때문에 지역주민이 서로 이런 위치로 나뉘어 집니다.

이런 말 사용 굳어지면 함께 어울려 사는 지역 공동체와는 점점 멀어집니다.


신고로써 내 일을 다 했다 여기고, 신고 이후 수습은 공공기관에서 맡아줄 거라 기대하기도 합니다.

신고로써 의무를 다했으니 그 일에 함께 나서기 주저할 겁니다.


*'포상'이란 말도 조심스럽습니다. 꾼들이 모이기 쉽습니다.

또한, 그 정도 포상할 일인가 싶습니다. 지역사회 이웃의 인정을 돈을 생동할 수 없을 겁니다.

선한 마음을 믿고, 진정성으로 나아갑시다.

아직까지 우리 지역 주민들이 그 정도로 각박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요?
 
‘신고’란 말 대신 ‘의뢰’ ‘상의’ '부탁' 정도가 적당하겠습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이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말이 있다면 적극 제안해 주십시오.

말을 다르게, 아니 바르게 사용하는 데에서 변화는 시작합니다.


"지역사회에 어려워 보이는 이웃이 있다면 주민센터에 의뢰해 주세요."

"지역사회에 어려워 보이는 이웃이 있다면 주민센터에 말씀해 주세요."


신고. 이런 언어가 방향을 잃게 하고 갈등을 빚어냅니다.
사회복지사라면, 언어와 표현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사회적 약자도 지역주민입니다. 신고하여 처리할 대상이 아닙니다.

지역주민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런 뜻을 담은 말을 사용합니다.


소득이나 자산, 거주 형태나 가족 구성 따위로 사람을 가르며
신고자나 신고대상자로 구분하기를 꺼립니다.
상황이나 사안에 따라 도움 주기도 하고 도움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이웃 관계가 되게 거들고 싶습니다.
그런 '살림'의 말로 기품 있게 지역사회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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