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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관련하여 겪을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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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부를 하고 십여 년간 일했던 미국의 사회복지는 주로 임상사회복지라고 해서 개인, 가족 집단의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문제를 평가하고 치료하는 분야입니다. 주로 정신건강이나 중독, 가족 관계 등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기법을 이용하여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클라이언트의 자아존중감과 회복력을 증진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HIV 양성이나 에이즈 환자, 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고, 2001911테러 발생 당시는 전 뉴욕시민을 대상으로 재난 심리지원과 관련된 일을 수행 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위기 개입이란 과목을 강의 했으며,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 관해 연구를 시작한 이후에는 동물과 관련하여 인간이 겪는 심리적 문제에 관해 관심을 두고 연구와 실천을 진행해 왔습니다.

 

동물과 관련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주로 동물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인간이 동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거나, 동물의 학대, 잔혹 행위 등을 목격하거나, 동물 관련 재난이나 사고를 겪을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물들이 겪는 피해는 동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들에게 깊은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트라우마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물론 이런 일을 겪지 않으면 좋겠지만) 위험하고 해로운 사건 자체에 의한 충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나 질병, 재난이나 재해, 귀중한 대상(사람, 반려동물, 혹은 물건)에 대한 상실, 폭력적인 상황을 직접 겪거나 목격한 후에 발생하는 심리적인 외상(증상)을 의미합니다. 개인별로 트라우마가 지속되는 기간과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많은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처음엔 증상이 없다가 한참 후에 발생하거나, 반복하여 나타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될 때에는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병으로 진단되어 치료가 필요합니다. 재난과 관련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은 재난 후 바로 시작되고 만성화되기 쉬우므로 조기에 개입하고 필요할 경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동물 관련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동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사고는 바로 물림 사고입니다. 주변에 지인 중 어렸을 때 개에게 물려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하는 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실 텐데요, 가깝게는 개나 고양이, 드물게는 뱀이나 멧돼지 등 야생 동물 등으로부터의 공격받았을 때 심각한 신체적 부상과 함께 정신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해 동물이 죽거나,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정신적 외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동물 학대 장면을 목격하거나, 학대가 자행되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동물 보호소 직원, 동물 구조대원, 동물보호 활동가 등은 반복적인 트라우마 경험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또는 동물 실험에 참여하거나, 윤리적 갈등을 겪는 직업군, 예를 들면 연구자, 수의사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대다수 반려인이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트라우마의 위험으로는 반려동물과의 사별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반려동물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한편 반려동물이 실종되어 찾을 수 없는 상황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반려동물과의 사별은 대개는 일반적인 애도의 단계를 거쳐 해결되기 마련인데, 실종된 경우는 애도의 과정을 거칠 수 없어서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과 관련하여 개인이 겪는 트라우마 이외에도 사회 구성원이 집단으로 겪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사례도 있습니다. 동물이 겪는 피해로 인해 인간이 집단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례는 주로 자연재해, 전쟁, 환경 파괴, 동물 학대, 그리고 전염병 등과 같은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상황들은 인간과 동물의 상호작용에서 깊은 감정적 충격을 유발하며, 많은 사람이 동시에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홍수, 지진, 산불 등으로 많은 동물이 상처를 입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동물 보호소나 구조대원, 또는 지역 주민들은 동물들의 죽음과 고통을 목격하고,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수많은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이 홍수로 인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구조 대원과 주민들은 동물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울진 산불 피해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자연재해를 겪으며 동물들이 본 피해에 대해 지역 주민과 구조 대원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마음 아파 했습니다.

 

동물과 관련하여 겪는 집단 트라우마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바로 전염병으로 인한 대규모 동물 살처분입니다. 동물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특히 가축에 대한 대규모 살처분은 지역 사회에 큰 심리적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2001년 영국에서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도살되었고, 많은 농부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동물 보호 활동가들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농부들은 자신의 생계를 잃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돌보던 동물들을 직접 도살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깊은 죄책감과 우울감, 심지어는 자살률의 증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년 많게는 1,0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살처분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수의사와 공무원 등 살처분 참여 인력, 축산 농가 등 관련자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겼고, 일반 국민 역시 미디어를 통해 슬픔과 분노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2010~2011년 구제역 사태는 국가 재난으로 선포되어 약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했는데 이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 등이 자살이나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고, 이에 살처분 작업 참여자가 겪는 트라우마의 심각성과 심리 지원의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후 재난심리회복지원단 운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설치 등 재난상황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심리 지원 강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축 살역적 관점이 우선시되고 참여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부족하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2017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외국 사례와 관련 연구 자료 등을 바탕으로 가축 살처분 작업참여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재해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 지원 등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제시한 바 있습니다. (첨부파일 참조)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축 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응답자의 76%가 기억회피, 부정적 감정, 분노 폭발,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을 보였고, 우울 점수도 평균 14.99(경우울증, 10~15)으로 높았는데, 23.1%는 중우울증(24~63)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유로 사고로 인해 사람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신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사회복지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사진설명: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심리 지원 강화 등을 위한 제도 개선 권고 표지


우선, 심리사회적 지원이 중요합니다. 동물로 인해 발생한 트라우마는 심리적 영향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심리 치료나 상담이 필수적입니다. 사회복지사는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전문 심리 치료사와 협력하여 개입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특히 사고나 사건 발생 직후에 적절한 위기 개입은 피해자가 동물과의 충돌로 겪는 즉각적인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또한, 교육과 예방 프로그램은 동물로 인한 사고나 트라우마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기여합니다. 사회복지사는 동물과의 안전한 상호작용, 동물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으며,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외에도 피해자가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법적 지원 또한 필수적입니다. 사회복지사는 피해자들이 법적 절차를 이해하고 지원이나 보상 신청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으며, 관련된 법적 규제나 제도의 개선을 촉구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물과의 관계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에도 다시 동물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다시 동물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재통합 및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피해자가 동물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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