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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잘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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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에 입사한 지 이제 만 7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에 많은 성과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성과에 의해 분명 좋아진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저의 결정에 의해 유익을 본 분들이 있는 반면, 손해를 본 분들도 있습니다. 리더의 결정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면 더 없이 좋을 것이나 소수가 피해를 보고 희생을 요구받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가감이 되어 성과를 이루는 것이죠. 때문에 성과라는 것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해 하고 미안해 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리더인 것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제가 내세울 수 있는 두 가지의 좋은 결정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결정은 분명 모두에게 유익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첫 번째는 출퇴근시간을 변경한 것입니다. 보통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에 출근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합니다. 모두가 이 시간대를 선택하다 보니 도로가 막힙니다. 이 시간대를 피한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고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출근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덕목은 구성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시간 안에, 무사하게 집에 보내드리는 것이죠.


그래서 출근 시간을 오전 8시 40분, 퇴근 시간을 오후 5시 40분으로 변경했습니다. 20분의 차이인데 놀라운 효과였습니다. 기대한 바대로 편안하게 출근하셨습니다. 조직 구성원의 연령대가 높으셔서 아침 잠이 없으십니다. 구성원들이 이미 일찍 오시고 계셨던 상황이었기에 20분을 당긴 만큼 유익이 있었습니다. 야간에 퇴근하시는 분들도 20분을 일찍 나가시니 좋은 일입니다. 퇴근 시간을 20분을 당기니 도로가 막히기 전에 도심을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집에 일찍 도착하시겠지요. 




출퇴근 시간 변경은 직원투표로 이루어졌습니다. 4분 정도가 반대하셨고 나머지 분들은 찬성을 하셨죠. 과반에 과반을 넘는 찬성이라서 이 안건은 바로 시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투표가 이루어진 그룹웨어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수가 찬성한다고 하여 출퇴근 시간을 변경하면 반대한 소수는 희생되는 것 아닌가요?'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댓글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맞는 의견이었는데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댓들 의견을 반영하여 출퇴근시간 변경은 유보가 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 변경이 개인의 일상에 심각한 변화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희생이 맞는 것이니까요. 반대한 분들의 자세한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좋은 제도가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반대하신 4분의 경우에는 새벽 수영강습이나 사소한 일신상의 리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출퇴근 시간 변경으로 인해 가족들이 영향을 받거나 개인이 큰 불편함을 겪는 사안이 아니라는 조사결과였습니다. 저희는 투표를 할 때 닉네임으로 하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닉네임을 파악하고 한 분씩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졌기 때문에 1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출퇴근 시간 변경은 논의의 시작, 투표, 사후조사까지 3개월 정도 소요된 듯 합니다. 


만약, 제가 직원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사결정을 해버렸으면, 만약에 어느 분의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면 이 제도는 바로 시행되었을 것입니다. 리더는 정말이지 많이 고민합니다. 최선을 선택을 내리려는 리더의 시간이죠. 그리고 심사숙고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 결정은 리더 만을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한 선의의 결정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내린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리더가 고민을 했어도 미처 알지 못했던 구성원들의 고충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리더의 노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은, 묻지 않은 것에 불만을 쏟아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리더가 혼자서 내린 결정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정착하는 데에 3개월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유익이 있는 사람은 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가게 되고 좋은 제도에 의해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비록 시행하기 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이 제도는 도입되자 마자 안착되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3개월을 필요로 한다면 저는 먼저 묻고 들어보는 데에 3개월을 쓰겠습니다.  




두 번째 제가 잘한 결정은 남자 화장실을 옮긴 것입니다. 저희 요양원의 1층에는 직원과 손님용 남녀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녀가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서로 마주 보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나올 때 종종 이성과 얼굴을 부딪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도 민망하고 마주친 분도 민망합니다. 나올 때 인기척이 있으면 기다리다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성 직원의 비율이 남성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좌변기는 남녀 동수입니다. 남자 직원들은 여유롭지만 여자 직원들은 불편합니다. 이런 고충들이 있었고 마침 저희 요양원의 증축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자투리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남자 화장실로 만드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투표가 없었습니다. 직원 모두의 의견을 물을 만한 사안이 아니었고 상황 상 빠른 결정을 요구했습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능사는 아니죠. 사안의 종류나 상황적 조건에 의해 때로는 관리자들과 협의할 것이 있고 리더가 혼자서 결정할 것들이 있습니다. 남자 화장실은 이전 되었고 지금은 편안하게 일을 봅니다. 서로 마주칠 일이 없으니 더 없이 좋습니다. 여자 화장실의 좌변기 수도 늘어났으니 선택의 폭도 늘었습니다. 이 선택의 주안점은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들도 불편하다'입니다. 반대로 내가 편하다면 남들도 편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6년이 넘게 리더로 일을 하면서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모두가 좋아하는 선택은 달랑 두 가지 뿐입니다. 그 외의 선택을 보면 유익을 본 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남녀 요양실의 위치를 바꾼 다거나, 인력배치의 직종 비율을 변경 한다거나, 증축을 하여 증원을 한다거나, 새로운 운영모델을 도입하는 선택에 있어서는 다수의 분들이 힘들어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 선택의 이유가 요양원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위한다는 결정이었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결정에 의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열거해 보니 너무나 많은 변화들이었고 평지풍파와도 같은 결정이었음에도 잘 감당해 낸 듯 합니다. 이러한 결정과 과정 속에서 조직을 망칠만한 갈등과 이슈들은 없었으니까요. 계속해서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고 설명을 하고 의견을 듣고 반영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칫 마음을 다칠 수 있는 어려움을 중화시킨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함에도 그 과정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시다가 이직을 하신 분들이 너무나 고맙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더 묵묵히 지금도 자리를 지키시고 역할을 다해주시는 구성원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출퇴근시간 변경이나 화장실 이전과 같이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결정들이 늘려가는 것이 앞으로의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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