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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인생 엿보기 - 이어령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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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
  • 죽음
  • 메멘토 모리

이어령 박사의 책은 항상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만, <마지막 수업>은 특히 여러 번 되새기게 만듭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울림의 키워드, '메멘토 모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메멘토 모리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라는 이어령 박사의 문구를 접하면서, 지성과 영성의 아이콘인 그도 죽음 앞에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인정하게 합니다.

 

내가 내 삶은 기프트라고 했었지?”,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하는 기가 막힌 글이 나올 것이다절실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그런데 안돼.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기도했지. ‘오 주여, 나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끝없이 내 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왜 용기가 필요한 줄 아나? 인간은 차마 맨정신으로는 자기의 몸뚱이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거야.”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죽음을 직면했을 때를 상상해 보게 됩니다. 유언으로 남기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만 두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령 박사의 다음 문장, "꿈 깨면 죽는 거야. 내가 왜 남은 시간을 이렇게 쓰고 있겠나? (연명 치료를 하지 않음)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을 접하면서,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유서를 꼭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박사는 "지식은 울림을 주지 못해. 생명이 부딪쳤을 때 나는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시학과 영혼, 그리고 성경 말씀에서 진리와 생명의 근원을 찾고자 했습니다. 2019인터스텔라김지수 기자와 나눈 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이자 유언과도 같은 문장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며, 이 가을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간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그렇지. 그건 실제로 유리컵 안의 공간의 문제라네." "빈 공간이 많을수록 영적인 공간이 커지는 거겠지요?"

"만원버스를 생각해보게. 사람이 꽉 차서 빈 데가 하나도 없는 게 바로 영혼 없는 육체라네. 유명한 일화가 있어. 스님을 찾아온 사람이 입으로는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하고는 한참을 제 얘기만 쏟아냈지. 듣고 있던 스님이 찻주전자를 들어 잔에 들이붓는 거야. 화들짝 놀라 '스님, 차가 넘칩니다' 했더니 스님이 그랬어. '맞네. 자네가 비우지 못하니 찻물이 넘치지. 나보고 인생을 가르쳐달라고? 비워야 가르쳐주지. 네가 차 있어서 말이 들어가질 못해.'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 메멘토 모리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내가 내 삶은 기프트라고 했었지? 내가 산 물건도 따져보면 다 글을 써서 산 거야. 글 쓰는 것을 기프트로 받았고, 글을 통해 또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나는 받았네. 그 은총을 나는 끝까지 완수하려 하네. 내가 암에 걸리고 마지막이 되고, 그러면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하는 기가 막힌 글이 나올 것이다... 절실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안돼.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기도했지. '오 주여, 나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끝없이 내 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왜 용기가 필요한 줄 아나? 인간은 차마 맨정신으로는 자기의 몸뚱이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거야.

· 꿈 깨면 죽는 거야!

꿈이라고 하는 것은 꿈 자체에 있는 거라네. 역설적이지만, 꿈이 이루어지면 꿈에서 깨어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아. 그래서 돈키호테는 미쳐서 살았고 깨어나서 죽었다고 하잖나. 상식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헛소리일 수도 있어. 하하. 이런 역설을 모르면 인생 헛산 거라니까.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내가 왜 남은 시간을 이렇게 쓰고 있겠나?(연명 치료를 하지 않음)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선생님은 지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시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미소 지으며) 보들레르 같은 사람은 죽기 전에 종탑이나 다락방이나 지상에서 한 치라도 높은 곳에 있고 싶다고 했네.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며, 찬란한 시 한 편을 남기고 싶다는 거지. 나도 다르지 않네. 지적인 것은 마음을 울리지 못해. 주변에 있는 사물, 바람, 햇빛, 신발, 단추, 머리카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쳐 나오는 진동이 파문을 일으킨다네. 지식은 울림을 주지 못해. 생명이 부딪쳤을 때 나는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

· 식욕:식구!

식욕은 인류의 가장 강한 욕망이야. 성경을 보면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네. 신과 같아지려는 그 욕망으로 금지된 열매를 따먹었어. 그게 죄의 시작이야. 불순종으로 '먹은' 그 죄를 끝낸 이가 바로 예수야.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제자들과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하잖아. 내 몸이 빵이고, 내 피가 포도주니, 나를 먹으라고. 그게 죄의 종말이네. 우리 삶도 그래. 사는 게 먹는 거지. '함께 먹는 공동체'는 끈끈해."

"맞습니다. 한국인들은 가족도 식구(食口)라고 하지요." "서양도 마찬가지야. 회사를 컴퍼니(company)라고 하는데, com이 함께고 pany가 빵이야. 회사라는 말도 결국 한솥밥을 먹는 공동체라는 뜻이지.

· 생각이 자랄 틈을 주자!

"질문 없는 사회에서 질문자로 사는 건 형벌이지요." "알아도 모른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된 사회는, 삐걱거리는 바퀴를 감당 못 해, 튕겨내고 말지. 나뿐이 아니네. 글을 쓰는 사람들,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돼 있어. 요즘엔 더하지 않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잖아.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나와. 이름 몰라도 사진 찍어서 올리면 다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시간이 걸려도요?" "그럼.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활짝 웃으며)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 나는 물독?두레박?돌멩이?

"정상에 머무르지 않는 진짜 이유가......" "갈증이 사라질까 두려워서야. 내겐 갈증이 필요하다네. 나는 그것을 두레박 같은 갈증이라고 불러. 두레박은 물을 푸면 비워야 해. 그래서 영원히 물을 풀 수 있어. 독은 차면 그만이잖나. 채우는 게 목적이니까. 반면 두레박은 물의 갈증을 만들지." 물독들은 제 인생을 남만큼 물로 채우겠다고 아웅다웅하며 살아. 반면 두레박들은 눈이 반짝반짝해. 원하는 거 줘도 금방 딴 거 할 사람들이야. 지적 보헤미안인 거라. 내가 늘 말하는 우물 파는 사람들이라네. 남 쫓아가는 욕망은 물독도 두레박도 아니고 돌멩이라네. 아름답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그 갈증을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지 못하면 돌멩이처럼 되는 거야.

· 인간은 지우개 달린 연필!?

나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눈물이 나. 정신이 이상하다고 교수 집단에서 쫓겨났던 존 내시가 마침내 그 고통을 이기고 노벨상을 받았잖아. 식당에서 교수들이 자기들 만년필을 존 내시의 테이블 위에 놓고 간다고. 동시대를 살아서 영광이었다는 뜻으로. 인간이 갖은 재앙을 겪고 코로나를 겪고 독재 밑에서 고생하고, 유대인을 수백만 명 죽였어도, 우리가 그런 한 사람 덕분에 인간이라는 말을 쓰는 거라네.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보면 정말 사표 쓰고 '나 인간 안 할래' 하고 싶지만, 아직도 내가 사람의 이름표를 달고 사는 건 비겁하고 잔인한 존재면서도 놀라울 만큼 경이로운 피조물이 또 인간이지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 인간은 어쩌면 지우개 달린 연필이야. 비참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고 망각과 추억이 함께 있으니 말일세.

· 지성에서 영성으로!

그날 선생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지력을 다해 신학과 시학을, 빵과 영혼을, 글씀과 말씀을 분별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자신은 신학이 아니라 시학을 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는 이 땅에 빵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러 왔으며, 문자로 된 율법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이 생명을 낳는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유언이 유서로 기록되는 이 책이 엄격한 문자가 아니라 독자들의 삶에 찰랑이는 비유의 말로 남기를 바란다고. 흔히 말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법으로, 아흔아홉 마리가 아닌 한 마리의 양인 채로 나와 당신의 삶이 교제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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