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사람 By 김승수
-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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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눌 빨래터가 필요하다.
김승수(똑똑도서관 관장)
어릴 적 기억이긴 한데, 빨래터에 가면 주로 엄마들이 수다를 떨며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기억나곤 한다. 분명 저녁에 식사 준비부터 식사 정리 그리고 설거지까지 귀찮은 일임에는 분명한데, 빨래터에 모인 엄마들은 서로의 일거리를 하면서 끊이지 않는 대화와 웃음으로 시간을 보내셨던 것 같다. 먼저 설거지를 마치신 분들은 그냥 갈만도 한데 다 못한 이웃을 기다리면서까지 수다를 떨고, 집이 같은 방향의 이웃은 빨래터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이 집으로 오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일상의 대화적 대화, 자기 삶의 작은 문제 뿐 아니라 마을의 작은 정보가 오고 가는 공론장이 아니었나 싶다.
특별한 진행자는 필요 없었으며, 누구나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고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그렇다. 공론장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을 잘 하는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픈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면서 공론장의 균등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말과 이야기가 곧 존재를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말과 이야기를 만들어낼 토대를 만들어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참여한 모두가 되어야 한다.
어떤 형태이건 공론장, 즉 대화의 장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생겨나는 고민꺼리, 생각꺼리, 답답함을 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앞서 말한 빨래터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 이웃이 함께 모여 빨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빨래터의 모습이 공론장의 모티브가 되었으면 한다. 빨래터에 모인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빨랫감을 들고와 빨래를 했었고 틈틈이 가족, 동네, 정치, 그리고 사사로워 보이는 자신의 고민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안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행운도 맞게 된다.
빨래터에 빨래를 하러 가는 것이 당연한 목적이지만 툭 튀어나온 누군가의 이야기가 빨래터에 예상치 못한 생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이 곳 저 곳에서 뚝딱거리는 빨래 방망이 소리가 이야기의 흥을 더하기도 했으며,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하러 간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곤 했다.
‘자연스럽게 하던 일도 멍석을 깔아주면 말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빨래터에서의 자연스러운 이웃 간 대화의 모습이 행정이 중심이 되는 공론장이라는 이름으로 옮겨가면 어느새 그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했다는 결과와 사진만 남게 되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대화의 장은 형식과 절차가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대화모임이 동네의 문화로 남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참여한 사람의 수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화의 즐거움, 비슷하거나 때론 다른 관점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의 공유와 자연스러운 연대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개인적 삶을 살면서, 때론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부딪치게 되거나 예상대로 되지 않은 일들은 부지기수다. 사람이 하는 일들이 예상대로, 실패 없이 되는 일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결국 마을 활동에서의 왕도는 없다. 무수한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 실패를 통해서 얻는 작은 성공의 경험이나 성찰이 다음에 오는 실천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화의 이야기꺼리는 참여한 분들의 몫이다. 살아가는 이야기 또는 공동체 활동을 하며 생겨나는 질문들,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실패의 경험, 협업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식의 차이, 갈등의 요소 등 다양하다.
서로가 가지고온 빨랫감을 펼쳐놓고,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다 보면 적합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도 있고, 공동체 활동을 하며 잊고 있었던 새로운 동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소설의 <모모>가 있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동화책인데,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이 모모다. 마을 사람들은 모모와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고민이 해결되어 밝은 얼굴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모모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상담가로 불리 운다. 물론 모모는 상담자격증이 있는 것도 그리고 실제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모모는 마을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기발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일상적인 대화의 장에서 나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누군가의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해 주진 못한다. 대신 질문하고, 생각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잃어버리고 있었던 새로운 동기와 자극을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뿐이다.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모모를 만날 수도 있다.
공동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주고, 정답을 찾아주는 건 참여자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서 해결해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할 공동체의 경험과 힘을 믿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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