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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동호회, 런닝크루, 주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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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일산에는 호수공원이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달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달리기 동호회라고 했는데 요즘은 런닝크루라고 부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발견한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레깅스처럼 몸에 달라붙는 운동복에 흰색 양말을 무릎 밑까지 올려 신으면 런닝크루입니다. 비단 눈에 띄는 모습만 다른 건 아닙니다. 모여서 달리는 건 똑같은데 운영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런닝크루는 모임이 유연합니다. 모임 장소와 시간, 코스, 거리는 있지만 누군가 강력하게 통제하지 않습니다. 출석 체크를 하고, 안 오면 연락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몇 명이 모였건 뛰기 시작합니다. 달리기가 끝나면 모임도 가벼운 인사로 끝납니다. 뒤풀이 모임이 있거나 다음을 기약하지 않습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크루가 생기면 삼삼오오 시간을 가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입니다. 좋다가도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면 그만입니다.


달리기 동호회는 다릅니다. 런닝크루와 비교하면 조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회장과 총무가 있고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간식과 음료가 준비되어 있고 인사 시간, 준비 체조, 일정 소개, 마무리로 이어지는 일정이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회비를 걷기도 합니다. 쿨하게 헤어지는 런닝크루와 달리 뒤풀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워지면 회원들의 경조사도 챙깁니다. 달리기로 시작했지만 달리기로 끝나지 않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그러면 복지현장의 주민모임은 어떨까요? 복지 현장의 주민모임은 달리기 동호회에 가깝습니다. 뜻이 맞아서 자유롭게 모인 모임은 아닙니다. 시작에는 사회복지사의 주도적 설계가 있었습니다. 연간 계획이 있고 회장, 총무로 조직도 갖추고 있습니다. 출석 체크는 기본이고 결석이 생기면 사회복지사의 관리가 시작됩니다. 전화를 드리고 방문합니다.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하고 모임을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주민모임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20년이 넘은 주민모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주민모임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도 맞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런닝크루가 나오니 말입니다. 공적예산이 투입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주민모임을 런닝크루처럼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모든 주민모임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신규 주민모임을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전체를 바꾸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작은 변화가 다음의 큰 변화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주민모임을 런닝크루처럼 운영할 수 있는 주민 동아리가 있습니다. 기관별로 정의를 달리 하지만 대략 주민의 자발성과 유연함을 강조하면 주민 동아리로, 관리와 체계를 강조하면 주민조직으로 분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민조직은 달리기 동호회, 주민 동아리는 런닝크루 정도로 이해해도 괜찮겠습니다. 주민 동아리는 충분히 런닝크루 방식이 가능합니다. 특정 주제로 하고 싶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모이면 됩니다. 사회복지사는 그런 주민 모임을 알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장소가 필요하다면 복지관 공간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홍보가 필요하면 복지관 소식지, 현수막, 포스터, 홈페이지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해주지 않고 요청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런닝크루와 달리 주민 동아리는 복지관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관리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자유로운 주민 모임이었다고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는 출석과 통제가 아닌 안전에 대한 사항과 갈등이 심할 때의 조정을 말합니다. 이 정도의 문제 관리만 사전에 교육하고 운영한다면 다른 통제는 최대한 줄이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주민 동아리가 운영된다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전의 역할이 계획과 관리였다면 이제는 조정과 관찰에 집중해야 합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관찰하는 일입니다. 관찰하면 변화가 보이고 모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이란 밭에서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씨앗인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모집하고 교육해도 잘되지 않던 지역의 일꾼들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찾게 된 지역일꾼 3명과 새로운 작당모의를 하는 게 다음 단계입니다. 주제를 정해서 사람을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사람을 모으고 주제를 찾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에는 역동이 있습니다. 확인된 역동적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자발적 모임을 운영하면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한 사람들의 모임은 다릅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심지어 가족 구성도 바꿉니다. 하물며 주민모임은 어떻겠습니까? 유연한 연대를 런닝크루에게서 배웁니다. 배웠으면 써 먹어야 합니다. 주민조직, 주민모임, 주민동아리 이름을 무엇으로 하든지 런닝크루의 장점을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런닝크루가 양말을 끌어 올리듯이 우리는 주민 모임의 유연함, 자발성, 참여와 재미를 끌어올리면 어떨까요? 의무감이 아닌 즐거움으로 지역을 달리는 주민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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