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4-11-17
- 308
- 0
- 0
자연 안에서 사람은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연환경도 두렵거니와 들짐승도 언제나 자신을 위협합니다. 자연에게 종속된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줄 무엇인가를 필요로 합니다. 부족을 만들고 집단을 지켜 줄 족장을 세웁니다. 그렇게 모인 집단은 자유롭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서로가 자유를 원하니 자유에 의해 갈등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관습을 만들어 서로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자신을 지켜줘야 할 족장이 관습을 들어가며 자유를 종속시킵니다. 사람들은 또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부족 간에 다툼이 있다보니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자기보존과 생존이 두렵다는 것은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는 또 법을 만들어 자유를 제한합니다. 국가를 지켜줄 왕은 자유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법을 만들고 자유를 종속시킵니다. 사회계약론자인 로크는 자기보존, 홉스는 생존권, 루소는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법과 절대권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고 보았습니다. 모두가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들이었지만 결국 자유가 훼손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조직에 왜 들어갈까요?' 조직에 들어가면 어려운 과업을 맡아야 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고 때론 싫은 일도 해야 합니다. 자유가 조직에 의해 종속됩니다. 그러함에도 조직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조직이라는 집단에 들어가면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혼자 일하면 자유롭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은 시간과 사회와 관계에 오히려 자유가 종속됩니다. 마치 자연 안에 홀로 남겨져 자연환경과 들짐승과 홀로 싸워야 하는 처지와도 같은 것이죠. 분명 자유는 모순적입니다. 자유를 위해 집단과 법, 권력을 승인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유가 침해당하고 집단에 종속됩니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나온다고 해서 자유로워 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조직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유는 자유로워야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 일을 잘 합니다. 자유롭지 않으면 시키는 일만 하므로 일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일을 잘 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정서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또 일을 잘 해야 승진도 합니다. 그럼 급여가 올라갑니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자유로워지면 사회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다양한 네트워크가 일어나고 또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더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조직에서의 자유란, 일을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유로울 수록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하게 되어 일을 더 잘하게 됩니다다. 문제는 모두가 그 자유를 원한다는 것이죠.
모두가 자유로우면 좋겠지만 항상 '일'을 사이에 두고 대립이 일어납니다. 일을 잘 하고 싶은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이고 또 그러려면 남보다 내가 더 자유로워야 합니다.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일을 사이에 두고 '자유의 대립'이 일어납니다. 이를 '조직갈등'이라고 하죠. 즉 갈등의 본질은 자유의 대립에 있습니다. 이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왜 일을 하는지(왜 조직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잘 하고 싶은 이유는 조직에 들어 온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의 목적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일의 대립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목적과 가치라는 두 가지의 대립에 직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 온 일의 목적과 가치가 다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목적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목적이든 간에 자신의 목적이 제일 소중합니다. 물론 남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적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목적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적, 일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을 사이에 두고 대립합니다. 일을 잘하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고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자유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자신의 목적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남에게 자유를 양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가 대립하는 또 하나의 배경입니다. 목적의 대립을 해결하는 방법은 더 상위의 목적에 정렬시키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나의 목적보다 위에 있는 상위의 목적, 다른 사람들의 목적을 뛰어넘는 상위의 목적은 바로 미션입니다. 조직의 목적인 것이죠. 그래서 미션이 중요합니다. 미션을 통해 각자의 목적을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시킵니다.
목적을 이렇게 정렬시키더라도 가치의 대립이 남아 있습니다. 가치는 의사결정의 기준입니다. 의사결정이 대립되면 아무리 목적을 하나로 정렬시켜도 대립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로 한 것이 조직의 핵심가치입니다. 사람마다 판단하고 행동하는 의사결정의 기준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혁신이 최고의 가치이고 또 어떤 사람은 헌신이 최고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건건마다 대립하게 되겠죠.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 협의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그 다음 과정으로는 규범이 필요합니다. 규범은 가치를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이죠. 아무리 가치들을 합의하였다고 하더라도 가치를 실현하는 행동들은 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이 헌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근무시간 내에 몰입하는 것이 헌신일 수 있습니다. 가치에 대한 행동의 기준이 다르니 또 갈등하겠죠. 이렇게 조직의 목적, 가치, 규범을 모두가 함께 정렬시켜서 서로가 협의하고 합의해 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의 대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션, 가치,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에게 절제를 요구합니다. 자유를 원해서 조직에 들어왔고 자유를 위해 미션과 가치, 규범을 만들어내자고 했는데 여기에 더해 절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자유의 훼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절제를 선택해야 할까요?' 조직의 원대한 목적인 미션에 정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적을 조금은 내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가치와 규범을 합의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그 전에 자유로웠던 행동을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유롭고 싶어하지만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하는 모순이 자연에서든, 부족과 집단에서든, 조직에서든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것이 모두가 자유를 원하면서도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조직의 목적, 가치와 규범을 위해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기에 자유의 종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만약 조직에 모인 사람들이 협의와 합의를 하지 않고 각자의 목적과 가치와 규범에 의해 일을 한다면 조직은 갈등할 것입니다. 갈등하면 일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조직이 개입을 하겠죠. 온갖 규제와 규정과 권력을 통해 자유를 억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협의와 합의를 통해 조직의 목적, 가치와 규범을 위해 절제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반합의 대립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야 말로 조직의 자유입니다. 결국 조직의 자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종속될 것인가? 절제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조직에서 자유롭지 않을 때 우리는 매우 힘들어합니다. 자유롭지 않으면 목적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합니다. 자유는 인정받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서로를 인정해야 목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은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자유와 절제의 관계인 것이죠. 오늘 날 조직의 자유는 너무나 많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조직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주의적 자유이죠. 이런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절제하지 않습니다. 절제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직에 모이면 끊임없는 대립에 의해 전쟁터가 되어버립니다. 진정한 조직의 자유란 '조직에게 주어진 목적, 그리고 함께 합의해 낸 가치와 규범 안에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즉 조직의 자유는 개인주의적 자유가 아닌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는 '공동체주의적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것은 집단주의 아닌가요? 개인인 사람이 집단을 위해 희생을 하라는 건가요?' 무조건 따르라 했다면 그것은 강요한 것이니 희생된 것이고 집단주의에 의해 자유가 종속된 것이겠죠. 그러나 조직의 목적에 스스로 동의하여 참여한 것이고 가치와 규범을 통해 함께 합의하고 협의한 것이니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절제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마침내는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고 싶어하죠. 의미는 스스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의미란 절대 남이 주는 것이 아니죠. 스스로 발견하는 것! 바로 자유입니다. 의미는 자유로울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유롭고 싶어하니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의미를 발견하여 자기를 실현하고자 하니 자기의 의미만 중요하고 자기실현이 절대가치가 되어버립니다. 조직이 싸움터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목적과 가치의 대립을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조직의 목적, 그리고 함께 합의한 가치와 규범입니다.
조직의 목적, 그리고 가치와 규범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제도들이 필요하죠.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 '복지의 내일, 대화로 만나다'에 ' '우리가 조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토론 주제를 개설하고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었고 '조직에서 자유를 위해, 대립의 해소를 위해 어떤 제도들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제도가 필요함에도 작동이 안 되는 것이 있는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참여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해주신 것이 상담, 노사협의회, 회의 등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제도들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합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죠. '그럼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낼 수 있게 할까요?'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채널을 많이 만드는 것, 수렴된 의견을 논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를 만드는 것, 그 과정에 참여하고 결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직에서의 자유의 시작입니다. 조직이라는 곳은 언제나 정반합의 투쟁의 장소입니다. 일을 가운데 두고 자유와 자유가 대립하고, 의미를 가운데 두고 목적과 가치들이 대립합니다. 이 대립은 끊임없는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대화를 통해 하나의 종합을 이루어내는 곳, 바로 조직입니다.
부족장이든, 왕이든, 조직의 리더이든 간에 그들의 역할은 같습니다.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을 위해 존재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각자의 목적, 가치와 의미가 대립적이기에 이를 해결해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자유를 절제하면서 권력을 선물했습니다. 권력은 편의를 맛봅니다. 더 편해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죠. 공동체를 위해 사용될 힘은 점점 더 개인의 편의를 위해 사용됩니다.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죠. 그럼 사람들은 자유를 더 많이 양보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자유는 권력의 자유를 위해 종속되어 갑니다. 분명 강력한 권력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권력의 편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다원주의입니다. 직원들도 여러 힘을 가진 집단들로 분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너무 많이 권력들로 분산되고 쪼개어져 있으면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힘을 못 씁니다. 반대로 분산된 권력들이 중앙집권을 넘어서면 또 전쟁터가 됩니다. 권력은 균형을 잡아야 하고 적정한 범위 안에서 중앙집권적인 권력과 다원주의 권력이 서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내고 들을 수 있는 채널들과 의사결정기구, 합의하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조직의 목적, 그리고 가치와 규범도 역시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듣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권력이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명확한 조직의 목적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권력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거나 여러 쪼개진 힘들에 의해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것을 해결하는 것은 조직의 핵심가치입니다. 관습에 의해 권력의 편의로 작동할 수 있는 조직의 관행들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합의한 조직의 규범입니다. 이런 제도들에 의해 권력과 다원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여러 선택지들이 많으니 자유롭습니다. 특정한 누군가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함께 합의한 가치와 규범에 의해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니 자유롭습니다. 그렇게 조직은 조금씩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얼마만큼 자유로워야 조직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 당신의 조직은 얼마나 민주적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답을 알려 드립니다. 당신과 당신의 조직이 이루어낸 만큼 자유로운 것이고 그 만큼이 민주주의입니다. 자유의 한도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조직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채널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얼마나 많이 듣고 수렴하고 얼마나 또 많이 치열하게 숙의하고 논의하고 결정하였는지에 따라 당신의 조직은 그만큼이나 자유롭고 그만큼 '민주적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4 공유복지컨퍼런스의 퍼실리테이터로서 저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14분의 참여자분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부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제 얘기를 하기보다는 참여자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듣는 것은 훈련의 영역이고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질문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본인의 말을 더하고 싶어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자유롭지요. 때문에 힘이 있는 사람들은 말을 하고 싶어하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누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런데 어쩌죠?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리더는 직원들에게 말하기보다는 기꺼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야 합니다. 대화의 시작은 질문입니다. 그것이 자유의 시작입니다.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