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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많이 주는 식당, 맛있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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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변화1. 양에서 질로

밥 많이 주는 식당, 맛있는 식당


과거에는 밥 많이 주는 식당을 정 많고 좋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양으로 승부하면 망합니다. 맛은 기본이고 깔끔하고 친절하고 인테리어도 중요해졌습니다. 시대가 양에서 질로 전환을 이뤄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대전환을 이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양보다 질을 고려하고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회는 이렇게 변했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전히 열심히만 살려고 하지는 않나요?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게 중요합니다. ‘열심히’는 양이고, ‘잘’은 질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깊이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많이’는 양이고, ‘깊이’는 질입니다. 프로그램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참석자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프로그램 횟수’는 양이고 ‘참석자의 변화’는 양입니다.


질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건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알기는 하니까요.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더욱이 양적 실천을 하면서 질적 실천을 한다고 착각하면 약도 없습니다. 병을 인정해야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자신의 문제를 알고 인정해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복지 현장의 실천이 양에 머무는 이유가 있습니다. 복지 현장의 주요 재원이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보조금이기 때문입니다. 공적 보조금은 혁신보다는 안정이 중요합니다. 공적 보조금은 투명한 관리가 중요합니다. 과하게 관리해서 욕먹지는 않지만, 관리를 못하면 근본이 흔들립니다. 관리한다는 건 통제한다는 말입니다. 계획과 실행, 평가의 절차가 명확하고 기준이 세밀합니다. 예산을 절감한 것도 잘한 게 아닙니다. 치밀한 계획으로 조금의 예산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방법은 계획에 맞춰서 실행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민들이 친해지는 목적으로 관계형성 프로그램 10회를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프로그램의 구성도 좋아서 7회 만에 친해졌습니다. 프로그램 목적이 7회 만에 달성된 기쁜 일이지만 담당자는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남은 3회는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예산이 절감되는데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프로그램을 평가할 때 3번의 양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산을 남기지 말고 계획대로 횟수를 채워야 합니다. 주민들은 아직 친해진 게 아니라고 주문을 걸어야 합니다. 주민들의 친해진 모습을 애써 외면해야 합니다.


반대로 10회를 했는데도 여전히 서먹서먹하고 주민들이 좀처럼 친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회를 마쳤기 때문에 더할 수가 없습니다. 친해졌다고 정신승리를 할 수 밖에요. 마지막 회에 맛있는 간식과 선물을 드리고, 관장님께서 졸업 수료증까지 주십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한마디씩 소감도 말합니다. 만족도 조사를 했더니 매우 만족이 78%, 만족이 21%, 보통이 1%로 나왔습니다. 만족 99%의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과장이 들어갔지만, 양적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사람과 변화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는 게 아니라 계획에 사람을 맞춥니다. 목적(질)보다 실적(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형평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적 재원을 사용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실천을 위해서 공적재원을 사용하지 않으면 복지 현장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후원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협동조합, 시민사회, 사회적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나라 여건에서 공적재원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적 재원을 사용하자니 양적 복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적 재원을 사용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렵고, 진퇴양난입니다. 과거와 달리 질적 복지, 변화의 요구와 역할은 나날이 늘어가는데 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고 말합니다. 자원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조적 문제와 기능적 문제, 사회 문제와 기관 문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장기적 문제와 단기적 문제, 본질적 문제와 현상적 문제, 함께 해결할 문제와 혼자 해결할 문제를 세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서 실행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 기능적, 개인적으로 해결 가능한 방법부터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당장에 제도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너무 먼 미래만 봐서도 곤란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나부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깊숙이 새겨진 양적 복지의 습관이 있습니다. 지구의 모든 물체에 적용되는 관성의 법칙처럼 사람의 행동에도 관성이 있습니다. 멈춰 있으면 계속 멈춰 있으려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면 계속 움직이려 합니다. 움직이거나 멈추게 하는 새로운 힘을 주기까지는 변화가 없습니다. 관성에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힘이 생각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양적 복지의 습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생각해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를 알아야 합니다. 지역사회를 알아야 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고민하는 순간이 생각하는 힘을 더하는 겁니다. 깊이 고민하는 만큼 생각하는 힘도 강해집니다. 생각하는 힘이 강해져야 익숙했던 양적 복지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습니다.


질적 복지를 가로막는 환경을 욕하기는 쉽습니다. 제도를 탓하고 기관과 리더십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몫도 있습니다. 내 몫까지 환경 탓으로 돌리면 속이 편해지고 정신 건강에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이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양적 복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실천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민도 없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하던 대로 익숙하게 실천하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복지 현장이 밥 많이 주는 식당에서 맛있는 식당으로 소문이 나면 좋겠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그런 작은 행동의 변화가 쌓이면 분명 미래는 달라집니다. 달라진 미래는 다시 역사가 되고요. 역사는 영웅을 기록하지만, 역사를 바꾸는 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실천이었습니다. 복지의 미래와 복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생각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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