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4-12-01
- 171
- 0
- 0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셨나요? 이에 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자신이 많이 울어서 선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선물을 받게 되면서 산타에 대해 처음 의심했다 합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산타는 없고 부모님이 산타라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듣고 산타의 존재를 더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4학년 때에 엄마의 카카오 스토리에서 크리스마스 때 엄마가 쓴 일기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6학년이었던 오빠에게 내용을 물어 봤다 합니다. 첫째는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었는데 동생이 보여준 엄마의 카카오 스토리를 보고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한날 한시에 산타가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둘 다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실 첫째도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기차 레고블럭을 받고 싶었었는데 머리 맡에 놓여진 것이 원목 기차였다고 합니다. 그 때의 심정은 날아다니는 기구를 선물받고 싶었는데 헬륨가스를 담은 풍선이 머리 맡에 놓여진 기분이었다고 하네요. 아예 다른 선물이었으면 의심을 하지 않았겠지만 비스무레하면서도 엉뚱한 선물이 와서 의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둘째의 말로는 다른 친구들도 산타가 없다는 것을 부모님의 사소한 실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숨박꼭질을 하며 벽장에 숨었는데 거기에 웬 선물이 있었다는 거죠.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 선물이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산타의 존재는 부모님들에 의해 믿게 되었지만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 사람도 부모님들인 것이 대다수인 듯 합니다.
첫 째가 묻더군요 '그럼 아빠는 언제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옆에 듣던 둘째가 대답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어렸을 때 집이 못살아서 산타 선물을 못받으셨겠지!' 네 맞습니다. 저는 산타에게서 선물을 받은 경험이 없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선물이 올까를 기대했지만 결국 산타는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산타를 믿었던 어릴 적에는 이사를 너무 자주 다녀서 '아마도 산타가 이사 온 우리집을 못찾았구나'하며 일말의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산타는 저희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산타가 제게 선물을 주지 않는 이유를 내가 나쁜 아이이거나 내가 울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둘째처럼 말이죠. 하지만 저는 나쁜 아이도 아니었고 많이 울지도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알게 된, 제가 선물을 못받은 이유는 가난하였기 때문이었지요. 저와 같이 가난한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산타는 나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산타는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고 잘 사는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차별적인 선택을 한 것이니까요.
산타의 존재와 그리고 착한 아이에 대한 보상을 연결시킨 것은 정말 기가 막힌 발상입니다. 사실 산타는 평가에 따라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자선을 베푸신 분입니다. 그런데 산타의 선물이 평가에 대한 보상으로 연결되면서 산타는 오명을 뒤짚어쓰게 되었습니다. 착하고 울지 않은 아이라고 하더라도 가난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아마도 크리스마스의 의미,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기 바라는 마음,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보니 그리 된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성과와 보상이라는 어른들의 문화적 영향도 큰 듯 합니다. 착한 아이이든 나쁜 아이이든, 울보이든, 개구쟁이든 간에 모두 선물을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산타와 선물에 관한 아이들과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화를 통해 산타의 선물이 받고 싶어졌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받았고, 그 선물을 준 분이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산타에 대한 동화는 그렇게 매듭지어진 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선물을 받은 적이 없으니 산타가 부모님이었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선물을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는 산타가 부모님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제게 있어 산타의 동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산타를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착한 아이였고 울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배송되지 않은 선물이 제 머리맡에 놓여질 날이 올 것 같습니다. 꼭 산타에게서 선물을 받아서 산타는 가난하더라도 착하고 울지 않은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분이라는 동화로 끝을 맺고 싶습니다. 동화는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합니다. 지금 끝낸다면 새드엔딩이 되기 때문에 저의 동화를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요양원은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한 구성원을 선발하여 보상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흔히 이를 인사평가와 보상이라는 말하지만 저희는 '우수서비스자 선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우수서비스자 선발을 통해 5분을 선정합니다. 선발에 대한 보상으로는 최고 우수서비스자에게는 퇴직연금 2개월치를 지급합니다. 해당 월의 퇴직연금까지 합하면 그달에는 총 3개월치의 퇴직급여가 지급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4분은 퇴직연금 1개월치를 지급하니 총 2개월치가 지급되는 것이죠. 현금보상이 아니라 퇴직연금으로 지급하는 이유는 현금지급에 의한 위화감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을 드려봐야 이 돈을 쏠지 말지 고민하기 때문이죠. 쏘게되면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내어야 할 것이고 안 쏘게 되면 혼자 먹고 입을 쓱 닦았다는 지탄을 받겠죠. 이렇게 3년 정도 우수서비스자를 선발하고 보상을 했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이 들어왔습니다.
'다 같이 열심히 하고 다 같이 고생했는데 왜 받는 사람만 매번 받느냐?'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사실 맞는 말이죠. 행동규범을 지표로 그 대상을 선발하기는 했지만 다 같이 함께 노력하고 고생한 것이 맞는 것이지요. 선발된 분들께서 행동규범을 잘 지켜 건강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것은 주관적인 판단인 것이며 각자가 모두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할 것이니 속상할 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매년 보상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매년 박수만 처야 하니 불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노력의 차이야 있겠지만 한분 한분이 계셔주시고 맡은 바 역할을 다 해 주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보상의 방법을 약간 바꿨습니다. 선발된 5분에게는 동일한 보상을 드리고 5분을 포함한 모든 분들에게 돼지고기 한돈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고생하고 수고한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기대했던 바대로 모두 만족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한돈 선물상자를 들도 댁으로 돌아가시는 구성원들의 뒷모습이 기억납니다.
내년에는 여기에 더해서 선물상자 하나 하나에다가 '우수서비스 수상'이라는 것을 표기하여 드리려고 합니다. 아마도 '기관에서 준 선물이야' 하며 가족분들에게 가져 가셨겠지요. 이번에는 이 표식이 있으니 우수서비스자로 선발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드리는 것으로 가족분들이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열심히 제 역할을 해 주시고 함께 주신 만큼으로도 우수한 직원인 것이 사실이니까요. 제가 아직도 산타에게서 선물받은 적이 없듯이 우리 구성원들도 한번도 우수직원으로 선물을 받으신 경험이 없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나쁜 아이어서나 많이 울어서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 직원분들도 일을 못해서 선물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시니까요. 그렇게해서 하루에도 이날 만큼은 모두가 격려하고 기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착한 원장에게 이제는 산타가 선물을 줘야하지 않을까요? 아참! 산타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하죠? 다 큰 어른에게 선물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착하고 울지 않았다면 미처 배송되지 못한 선물을 이제라도 받고 싶다는 얘기이죠. 제가 가난해서 못받은 것이 아니라면요. 이 기다림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금합니다. 이 동화가 해피엔딩이 되길 바라며 그때까지 저는 산타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나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나 동일한 마음이니까요.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