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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이래저래 미안한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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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양원원장

저희 요양원 입구에는 1평 남짓하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습니다. 개원 당시에는 사철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고사해버리고 돌들만 덩그러니 있던 그런 곳이었죠. 요양원의 일은 끝이 없습니다. 일할 사람도 부족하여 외부의 조경은 신경도 쓰지 못합니다. 가끔 제초제나 뿌려주는 정도이지 사람을 케어하는 곳에서 식물을 케어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 듯 합니다.

 

2022년에 증축을 통해 정원을 100분에서 110분을 증원하였습니다. 어르신을 더 모시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증원이 되면 직원을 더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증원할 수록 법정배치인력도 더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추가 채용한 직종 중에는 위생원도 있었습니다. 100분의 어르신 당 1명의 위생원을 채용하는 것이 법정요구여서 1분만 근무하고 계셨었죠. 110분이 되면서 1분의 위생원이 더 채용되셔서 2분이 되셨습니다. 어르신의 증원은 10분인데 위생원을 1분 더 채용하였으니 일손이 좀 수월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분이 합심을 하여 요양원 내에 있는 죽어가는 화분들을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들시들하던 요양실의 화분들이 내려와 줄기가 굵어지고 풍성한 잎들을 맺어주었습니다. 현관에 있던 행운목은 죽어갈 줄 알았는데 천장까지 뚫을 기세가 되었고 꽃까지 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 입구에 있던 황무지에 정말 예쁜 화단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평소 좋아하시던 원예를 틈틈히 하시면서 요양원의 변화를 이끌어 주신 것이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힘은 정말이지 위대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식물은 사람의 관심으로 이렇게 생기가 돋으면서 살아가 주는데, 우리가 모시는 어르신들은 그렇지가 않으십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꾸준하게 노력하려면 좋아지는 모습, 기대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어르신들은 세월에 의해 자꾸만 안 좋아지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고생이라고 말합니다. 생의 기쁨보다는 생의 슬픔이 더 많기 때문에 그 어떤 일들보다 힘이 듭니다. 그러함에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쁨들을 발견하면서 힘을 내시죠. 어르신들의 밝은 웃음, 알아봐 주시는 것, 고맙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눈길을 마주쳐 주시는 것, 누군가에게는 대단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저희에게는 식물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감정을 줍니다.

 

저희 요양원 근처에는 카페들이 많습니다. 제 바람은 더 많은 카페들이 주위에 생겼으면 합니다. 시골의 산 밑자락에 있기 때문에 풍경과 공기는 좋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원이라고 해봐야 조그맣고 맨날 보는 정원이니 재미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카페는 다르죠. 시골에 만들어진 카페이기에 풍경도 좋습니다. 봄과 가을이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카페를 찾아갑니다. 이런 곳에 처음 와 보았다는 어르신들이 많으십니다. 당연히 음료나 음식도 처음이시겠죠. 날이 좋은 날에 야외 카페에 앉아 계시면 그 모습이 참 좋습니다.

 



어르신들의 카페 나들이와 함께 직원들의 카페 나들이도 시작됩니다. 좋은 풍경과 함께 하는 것을 어르신들도 좋지만 직원들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그런데 누리는 시간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점심 휴게시간 1시간만 허용되다보니 오가는 시간,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는 시간을 빼면 정작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죠. 그래도 그게 어디냐면 기쁜 마음으로 다녀오시는 모습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 바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층의 직원분들이 올해는 나가지 않고 음료를 사오겠다고 하시네요.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하며 그러시라 말씀드렸지만 마음이 웬지 무겁습니다. 라운딩을 올라갔는데 마침 음료를 사오셔서 요양실 한켠에서 드시고 계시더군요. 스크린을 치고 그 뒤에서 조용하게 말이죠. 아마도 어르신들이 보면 서운해하실까봐 그러셨나봅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습니다.

 

직원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가정에서도 고생을 하셨을 텐데 직장에서도 고생하시니 말이죠. 드시는 것도 짬이 없어서 그렇게 드시고 좋아하시니 말이죠.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그 모습이 애틋하듯이 없는 요양원에 취직하셔서 고생하는 직원들을 보면 이렇게 가끔 눈물이 납니다. 원장은 이래저래 미안한 직업입니다. 위생원분들께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내서 변화를 주셨듯이 저도 역시 그런 책임을 느낍니다. 화단을 만들어주시고 행운목과 식물들을 살려내신 것처럼 저도 무엇인가를 살려내어야겠습니다. 뭐라도 살려내어야 직원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고생하는 것에 대한 보답을 드릴테니까요. 미안한 마음은 한 가득이지만 그런 마음에 무엇인가를 하다보면 저도 이 요양원을 '지역사회에 존경받는 직장, 일하고 싶은 요양원'으로 살려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마워요' 아내가 잠을 자러 가면서 던진 말입니다. 이말에 그날따라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서이겠지요. 항상 경제적으로 쫓깁니다. 채워지지 않는 통장입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집에 머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고마운 만큼이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가족입니다. 이러함에도 아내가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다고 해줘서 눈물이 나왔나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미안해하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듯이 조직이라는 공동체도 그렇겠지요. 충족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불만이 생기겠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며 채워가는 곳을 그래서 공동체라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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