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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_침묵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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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부제 : 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만든 오욕의 역사책)는

나치당원이었던 독일인 10명의 인터뷰 기록입니다.

히틀러 시대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에 동조한 이들은 분명 인간성이 없는 괴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 명씩 따로 만나 깊이 대화할수록 그들은 매우 평범함 사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열 명의 나치 친구들 가운데 ‘모든 면에서’ 우리와, 즉 나와 여러분과 똑같은 시각으로 나치즘을 바라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 다른 아홉 명은 버젓하고, 근면하고, 보통 정도의 지능을 가진 정직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33년 이전까지 이들은 나치즘이 사악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한때 우리가 알았고 지금도 우리가 아는 나치즘을 과거에도 알지 못했고 어쩌면 지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나치즘 치하에서 살았고, 나치즘에 봉사했으며, 사실상 나치즘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고 판단할 수 있었을 폭력의 징조를 평온한 일상을 이유로 무심하게 보냈던 겁니다.

그렇게 그들은 나치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차별과 폭력에 익숙해졌습니다.


저자 밀턴 마이어는 생각하지 않고 침묵한 죄를 묻습니다.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 선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게 죄목입니다.


<어느 독일인의 삶>은 나치의 나팔수 역할을 한 요제프 괴벨스의 타자수 겸 비서로 일한 브룬힐데 폼젤의 회고록입니다.

브룬힐데 폼젤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생계를 위해 시키는 대로 타자를 쳤을 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나치의 만행에 책임질 이유도 없다고 합니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누구나 그러했을 거라며 끝내 개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이 입장은 당연히 옛날이건 지금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결정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 결국 그녀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뿐이었다.

… 브룬힐데 폼젤은 백장미단이든 그 악명 높은 인민재판에 넘겨진 다른 사건들이든

자신에게 넘어온 소송 자료를 얼마든지 남들 모르게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금고 속에 넣으면서 상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그렇게 신임을 얻은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젊은 비서의 가슴에 충만했던 것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은 개인적인 욕구와

상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었다.

<어느 독일인의 삶>








어쩔 수 없다며 제도와 정책 아래에서 침묵하며 순응하는 게 방조죄가 된다면,

비인격적이고 반인간적인 사회복지 현장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별다른 저항 없이 침묵하며 따라갔을 때 우리도 평범한 악마, 순진한 악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공범이 되는 겁니다.


돌아보면 그 제도와 정책이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절대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평범한 이들의 침묵을 먹고 비극은 자라납니다.

정치권력 밖에서 어쩔 수 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던 재단사, 학생, 목수, 판매원, 하급 경찰, 빵집 주인, 수금원, 은행원….

평범한 이들은 당시 7천 만 독일 인구 가운데 6천 9백만이었습니다.

100만의 적극적 나치 가담자 뒤에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공감 결여와 연대 상실이 나치를 활개 치게 했습니다.

(따라서 일상 속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나야 이해하고, 그래야 공포와 혐오가 사라집니다.)


* 백장미단 : 나치에 저항한 대학생들과 교수들 모임.

반나치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다 체포 되어 모임 구성원 전체가 사형 당하였습니다.

영화 <백장미>(Weiße Rose, 1982) 참고.



누군가를 돕는 일조차 경쟁하고 평가 받는 환경 속에서 사람을 ‘건·명’ 따위로 취급하는 사회복지사의 항변,

“어쩔 수 없었다.”, “몰랐다.”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다른 길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몰랐던 게 아니라 자세히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 사회사업 현장, 이제 자연환경 문제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집니다.

자연생태를 생각하지 않고 일해도 될까요?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시민들은 아돌프 히틀러를 처음엔 괴짜 얼간이 정도로 무시하면서 침묵했다.

그러다 너무 늦어 버렸다.

브룬힐데 폼젤도 자신만의 행복과 성공, 경제적 안정을 쫓느라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 무심했다고 고백한다.

<어느 독일인의 삶>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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