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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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변화2. 집단 사명에서 개인 의미로
사명의 시대 이전에 생존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생존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만 과거에는 다른 것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 과제였습니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된 한국에서 생존 말고 다른 가치는 없었습니다. 자아 성찰, 공동체, 민주주의 이런 단어가 나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윗세대는 그런 시간을 견뎌낸 분들입니다. 성실과 인내로 견뎌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단기간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나 더 잘살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했습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열악한 환경에서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인적 자원을 모아서 집단의 힘을 키웠습니다. 생존의 시대에서 집단 사명의 시대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구호가 필수적입니다. '잘 살아보세'로 상징되는 집단 구호가 넘쳤습니다.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회사에서는 비전과 사명선언문을 외웠습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 개인은 없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나라처럼 우리만 있습니다.
집단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개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달, 가족 구성의 변화, 저출생고령화, 1인 가구 증가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개인은 사명이 아닌 의미를 찾습니다. 사명은 하나이지만 의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기질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통일된 사명으로 조직을 이끌기가 어렵습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집단에 억지로라도 맞췄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나를 희생해서 집단에 헌신하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에도 집단 사명에서 개인 의미로의 전환을 실감합니다. 우리는 사회복지사라는 말로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의 복지 확대라는 구호로는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미션과 비전을 암기한다고 사명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팀워크는 곧 희생을 말했지만, 이제는 수평적 대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시대 변화가 옳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회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관리자는 집단 사명이 익숙합니다. 조직원은 개인 의미가 자연스럽습니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과제입니다. 다만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두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대안을 찾느냐가 관건입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에 가치 중심의 조직은 물을 만난 고기와 같았습니다. 가치가 사명이 되고 그것이 곧 조직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때 득이 되었던 것이 지금은 약점이 됩니다.
가치 중심의 조직이 집단 사명의 시대에는 잘 어울렸지만, 개인 의미 시대에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 지역 복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 않는데 내 것으로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낱말로 생각됩니다. 현실에는 없는 동화처럼요. 물론 관리자는 다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를 경험한 리더와 개인 의미의 시대를 사는 조직원 사이에 간극이 깊습니다.
리더가 생각하기에 요즘 조직원들은 너무 이기적입니다. 반대로 조직원들이 생각하기에 리더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아름답고 멋진 말씀을 하시는데 정작 리더의 삶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도무지 의무 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두 세계의 불완전한 동거처럼 보입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의 끝자락을 살짝 경험한 중간 관리자 정도만 버텨냅니다. 아니면 개인이 생각하는 의미를 찾아서 떠납니다.
두 개의 대륙판이 만나면 땅이 심하게 뒤틀리면서 협곡이나 산맥이 만들어집니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 단절의 산맥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땅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막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냐고 서로를 비난하기 전에 땅의 변화를 함께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똑같은 선택도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장에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변화를 이해했다면 갈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과거에 방향은 하나였고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변화의 폭이 작은 시대에는 경험 많은 리더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리더의 결단과 조직원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리더의 결단과 조직원의 합의가 상충하여 보이지만 과정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리더가 결단해야 하지만 이전까지는 조직원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한 합의와 결단은 단일한 사명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인별로 사명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대안은 팀입니다. 팀별로 많은 것을 위임하고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와 개인 의미의 시대 사이에 팀이 있습니다. 팀 단위에서 조직의 사명과 개인의 의미를 찾고 합의해야 합니다. 물론 양쪽의 문제점을 모두 노출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집단 사명으로 이끌자니 조직원이 따르지 않습니다. 개인에 맞추자니 조직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직의 허리인 중간관리자를 얼마나 살리느냐에 조직의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응은 모든 생명의 본능적 생존 기술입니다. 우리는 이 전환의 시대에 적응하면서 생존할 것입니다. 혼란은 변화의 과정입니다. 조직이 불안한 게 아니라 사회가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적은 외부에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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