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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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를 내려놓는 성찰_인문학적 신학 고찰 2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_요한복음 8장 7~9절
논리의 완결성 보다 중요한 것은 주장하는 논리의 대상과 범주에 본인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대부분 현상 또는 문제를 분석하거나 구조를 파악하는 과정에 있어 스스로는 배제 시키는 경우가 많다. 적극적으로 해결 해야 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본인이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경우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의 범주 안에 스스로가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죄 없는자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말은 논리의 완결성에 힘이 있던 것이 아니다. 신성의 힘으로 사람들이 복종했던 것 또한 아니다. 예수의 말이 힘을 입었던 건 군중심리 안에 감춰져 있던 비난의 심리가 각 개인의 심중에서 성찰되고 돌아보았기에 가능했다. 예수는 말했고 군중 각자는 성찰했다. 오늘날의 대중은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그들처럼 오롯이 한 명의 개인으로서 성찰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걸까?
진보주의자인 것과 진보적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별개의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진보적 주장의 시작은 생태적 삶의 구체적 고민과 적용에서 시작된다. 냉장고를 버리라고 주장했던 한 철학자의 삶이 냉장고 없이 이루어졌을까? 냉장고의 생태파괴를 논하기에 앞서 냉장고가 주었던 무거운 가사 노동의 절감과 소비의 비용 절감은 왜 외면하는 것인가? 냉장고가 없었다면 음식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교육정책이 바뀌고 아이들이 경쟁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참교육이 실현될까? 보수적인 부모든 진보적인 부모든 입시에 있어 입장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인 유명 정치인의 자녀 입시에 대한 다수의 문제 제기는 ‘공정’에 대한 것이었다. 돌멩이를 던진 사람은 많았지만 공교육의 ‘평등’의 문제 제기로 전환되지는 못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교육 보다 입시가 중요한 학교 현장은 경쟁사회의 복사판이다. 공정과 평등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교실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아이들 때문일까?
완전한 복지국가가 건설되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질까? 우리 사회의 욕망이, 그 욕망 안에 편승한 ‘나도주의’에서 나는 예외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끝없이 치솟는 아파트 공화국은 정책의 실패였을까? 아니면 통제 불가능한 욕망의 실패였을까? 우리는 돌을 던질 수 있는 죄 없는 자인가?
여러 말이 있다. 여러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 주장들을 뒷받침하려는 여러 논리들이 있다. 수많은 말이 주장이 되고 주장은 논리적 근거를 찾거나 모방된다.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말을 수용하고 지배 담론의 문법을 재생산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보이지 않게 정당화한다.
이 시대는 혼란스럽다. 마이크를 쥔 사람이 많아졌고, 그들은 객관과 중립,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말한다. 냉정한 합리성으로 체제에 순응하면서 그 안에서 성장과 성공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체제에 파괴되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종종 표출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가끔씩 보이는 개인적 동정심에 가려 그들이 생산하고 기여하는 ’담론 구조‘에 대해서, 그 메세지의 진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아니라면 문제의 일부분일 뿐이다. 처지와 상황에 따라, 인식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다. 우선 돌멩이를 내려놓는 그 자리를 떠나는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취사 선택되고 대중의 입맛과 욕구에 편승하는 말과 주장과 논리의 홍수 속에서 휩쓸리지 않는 방법은 그 시작점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립적, 중도적이라는 기회주의적 사고와 자세를 버리고 그 범주의 중심에 자기를 대입하고 구체적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겠다. 공정의 돌멩이를 내려놓고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대한 질문을 위해 공정담론의 자리를 떠나는 성찰이 있어야겠다.
나에게 죄 없으면 돌을 던지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슬그머니 돌을 내려 놓을 것 같다. 성찰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들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상을 꿈꾸며 그것을 일상에서 현실화하는 노력보다는 그 이상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현실의 기대치에서 머뭇거리며 산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애써 보련다. 잎새 떨어진 그 자리에도, 앙상한 자존심이 살아있다면 언젠가 봄은 오기 마련이다.
*이미지출처 : https://cnts.godpeople.com/p/2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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