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
-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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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보다 공감을 잘하십니까?
T 또는 F
공감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사회복지 현장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공감의 필요성은 넘쳐난다. 방송에서도, 책에서도 강의와 글이 넘쳐난다. 공감의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부러 학습하고 적용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많다. 공감은 경쟁력이 되었다. 공감 능력이 대인 관계 능력이고, 사회적 지능의 지표로 간주 된다. 공감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강박이 되고 있다. MBTI가 유행하던 시기에 T냐 F냐로 관계를 평가하고 공감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일상적 대화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 생각에 반대하면 T가 되고 동의하면 F가 되는 상황에 일단 동의하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T라는 평가는 ‘욕’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헤어짐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금 시대에 공감은 또 하나의 지표화된 경쟁력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넘쳐나는 공감 능력, 사회적 몸에 내면화된 기계적 공감의 형식은 인간관계에서 T와 F로 규격화된다. 어쩌면 지금 시대의 공감은 일종의 사회적 습속(habitus)이라 볼 수 있겠다.
충조평판 금지
물론 공감과 경청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인류가 지속해 왔던 진화의 과정이었고 덕택에 오류투성이 인간은 생존하고 삶의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감과 경청이 경쟁력의 한 방편이 되는 순간 수많은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오늘날, 공감은 매뉴얼화 되고 있다. 학교 교사의 교육청 가이드 북에도, 회사의 HRM에서도, 사회복지사의 윤리강령과 행동규범에도 부모와 교사와 자녀의 관계에도 공감은 제시되고 있고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준다. 한 마디로 ‘판단이나 충고 없이 적극적으로 경청하라’로 요약되는 매뉴얼화된 공감은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나 공감 그 자체는 문제해결의 적극적 방편은 아니다. 공감을 무조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공감은 문제해결의 의지와 노력을 전제하는 '상호 신뢰'로 이어질 때 비로소 효용성이 생긴다.
밥 사줄께 힘내!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공감도 비슷한 문제를 가진다. 공감과 경청은 사회복지사의 기본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물론, 이는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공감이 사회복지의 전부인 것처럼 강조되는 현상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기계적 공감과 경청을 반복하는 사회복지사를 주민은 신뢰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회복지사가, 문제의 해결은 외면하고 힘내라고 밥 사주겠다는 기관장의 공감에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공감은 상호신뢰의 전제조건
공감은 상호 신뢰의 전제조건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상호 신뢰는 공감과 경청에서만 싹트지 않는다. 상호 신뢰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했을 때, 아동은 분명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아동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 상황을 해결하고, 그 가족을 지원하며, 아동에게 필요한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감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공감은 단지 감정적 지원에 불과하다.
가장 공감을 잘하는 사람 - AI 상담사 또는 사디스트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기계화된 공감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1) 공감은 흑백사고, 또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불러온다.
2) 갈등은 공감하지 않아 커지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있어서 커지는 것이다.
3) 사디스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기 위해 다른 사람과 공감하려 엄청나게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원하고 야기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가 일반 학생 그룹보다 공감 능력이 높다.)
4) '헬리콥터맘'은 다른 사람을 수단 삼아 자신의 체험을 넓히려는 부도덕한 공감의 예시다.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는 공감이 가져오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누구에게라도 공감만 해 주는 것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AI 상담사와 다를 바 없다. 가장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AI 상담사 또는 사디스트라 하는데 이는 신뢰없는 공감이 갖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둘의 공통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건너편 타자에게 궁극적으로는 해를 입힌다는 점이다.(https://v.daum.net/v/20241127060519301)
공감과 신뢰의 균형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공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공감할 때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는 공감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실제로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주민에게, 동료 사회복지사에게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고, 실질적인 지원을 모색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공감은 행동과 해결을 위한 시작일 뿐이다. 상호 신뢰는 행동과 해결의 과정에서 나온다.
기계적 공감의 위험
우리는 요즘 공감과 경청을 너무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감정을 이해해주고, 그에 맞춰 반응하는 것만이 유능한 사회복지사의 모습으로 비춰질 때가 많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공감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주민이 또는 동료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면,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을 넘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공감'이라는 태도에 갇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감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공감에서 벗어나자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공감과 신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공감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말 공감한다면 실천에 기반한 상호 신뢰가 뒤따라야 한다.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인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공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삶에 함께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우리는 규격화된 공감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가치인 '실천'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전문가라는 것을 주민이 믿을 수 있도록,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문헌
1.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4123108334085845&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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