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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의 거부_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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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쇼생크 탈출은 한번 쯤은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30살 정도에 한 번 본 듯 한데요, 50살이 되어 우연하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명작은 명작이더군요. 그리고 서른 살에는 느끼지 못했을 쉰 살의 감동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자유의 감동입니다. 


주인공 듀플레인(팀 로빈스)은 오랜 편지 민원으로 교도소에 도서관을 만들어 냅니다. 도서관을 꾸밀 서적들과 낡은 LP판들이 후원으로 들어옵니다. 듀플레인은 교도관이 화장실에 간 사이 교도관실의 문을 잠그고 모짜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을 꺼내어 음악을 틀죠. 그 때 나온 음악이 '편지의 이중창'이라 불리우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였습니다. 


듀플레인은 혼자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 옥외 스피커에 연결된 앰프를 켭니다. 고함과 싸이렌만 울려 퍼지던 죄수들의 일터에, 병동에, 그리고 넓은 교도소의 마당에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죄수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뜻하지 않는 선율에 넋을 잃습니다. 죄수 하나하나의 표정들이 평화롭습니다. 듀플레인도 교도관의 의자에 앉아 평화로운 표정을 짖습니다. 


이때 교도소장이 사색이 되어 잠긴 교도관실을 열려고 합니다. 고압적인 표정으로 문을 열라고 경고합니다. 교도소장의 말은 신의 명령과도 같습니다. 듀플레인은 교도소장의 눈치를 봅니다. 명령을 거부했을 때 교도소장의 징벌이 두렵습니다. 듀플레인은 몸을 일으켜 레코드판을 끄려 손을 가져갑니다. 그런데 그는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볼륨을 높입니다. 선율은 더 큰 울림이 되어 교도소에 메아리칩니다. 듀플레인은 이 사건으로 2주 동안의 독방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듀플레인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를 느끼고 싶어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교도소의 규율에 저항해야 했습니다. 그는 용감하게 자신의 자유를 위한 행동을 선택합니다. 그의 행동이 여기까지 였다면 명장면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듣고 싶어했던 음악을, 그가 만끽하는 자유를 동료들과 함께 했습니다. 듀플레인이 꿈꾸던 자유가 아름다운 것은 그 자신 만의 자유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자유들까지 꿈꾸었다는 것이죠. 혼자 만의 자유를 느끼기를 원한다면 굳이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충 교도관들의 비위를 맞추면 되니 징벌은 없겠죠. 원하는 대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자유까지 고려한다면 독방이라는 절제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만 음악을 듣는 행위도 역시 자유입니다. 이것을 개인주의적 자유라고 합니다. 나 외에 다른 이들과 음악을 함께 듣는 것도 역시 자유입니다. 이를 공동체주의적 자유라고 합니다. 두 자유의 차이는 개인주의적 자유는 절제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공동체주의적 자유는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집단에서, 사회에서 자유를 꿈꿉니다. 그 자유가 어떤 자유인지, 어떤 자유가 더 아름다울지 듀플레인의 모습에서 그려보았으면 합니다. 바람은 모두에게 불어줍니다. 서로에게 산들바람 처럼 불어주는 부드러운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설명드린 장면에 걸쳐서 듀플레인의 친구인 레드(모건 프리먼)의 독백이 나옵니다. 



"난 지금도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것이 나은 것도 있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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