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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경계선 위의 생명들: 재난 속 동물과 사회복지적 개입의 필요성

불타는 경계선 위의 생명들재난 속 동물과 사회복지적 개입의 필요성

 

2024년 봄, 우리 대한민국은 역대급 산불이라는 초유의 재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산림 수천 헥타르가 불타고 수많은 인명과 주거, 재산이 피해를 입었으며,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던 수많은 반려동물과 가축, 그리고 야생동물들도 희생되었습니다. 불길 속에서 피할 수 없었던 동물들, 대피 과정에서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반려동물들, 축사에 갇힌 채 탈출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들은 재난의 또 다른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요? 산불 진화를 위해 밤낮없이 투입된 소방대원과 공무원, 위험한 현장 속에서 동물을 구조하고 부상 동물을 치료한 동물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언론과 SNS를 통해 접하며 가슴 아파했던 수많은 시민들 역시 이 재난의 정서적 피해자들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삶은 이미 깊은 정서적 유대로 연결되어 있고, 동물의 죽음과 상실은 단순한 물적 피해가 아니라 슬픔과 죄책감, 무력감이라는 감정적 충격으로 확산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복지 실천에서 동물과 관련된 재난 대응, 그리고 그 상실에 대한 애도와 지지는 여전히 미비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공유복지 플랫폼에서 재난은 단지 인간만의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온 바 있었습니다. 이전 글에서는 자연재해와 재난 상황 속에서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복지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 반려인의 안전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재난 시 반려동물 보호는 인도적 차원뿐만 아니라 심리사회적 안정, 공공보건, 재난 대응 효율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기반과 사회복지적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특히 사람도 구하기 힘든데 무슨 동물타령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1) 대형 산불이나 재난 상황에서 사람도 구조하기 힘든 마당에 동물까지 챙길 여력이 있느냐는 반응은 종종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동물 구조가 단지 감정적 이유에서 비롯된 사치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실제로 반려동물 구조는 인명 구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기 때문에, 동물과 함께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 대피를 거부하거나 현장에 남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곧 반려인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2) 원헬스(One Health)의 관점에서 동물, 인간, 환경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재난 현장에서 남겨진 동물들은 공공보건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폐사한 동물 사체는 병원균의 온상이 될 수 있고, 남겨진 동물로 인해 위생, 감염병, 개물림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동물 구조와 보호는 단지 정서적 차원을 넘어, 공중보건과 생명 보호의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수 영역입니다.

(3)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규모 재난 이후 반려동물을 포함하는 재난 대응 체계를 법제화하고, 동물 동반 대피소와 대피 매뉴얼, 생존 키트 준비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준비는 동물의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인간의 안전과 심리적 안정, 공공보건의 안정성까지 함께 도모하는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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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산불을 피해 대피소로 떠나며 보호를 요청받은 반려견들을 동물보호단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모습(동물권시민행동 카라, 김영환 국장 제공)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산불과 같은 대형 재난을 계기로, 그 속에서 드러난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넘어, 동물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복지 실천이 가능해야 하는지를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1.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 재난 속 동물과 그 관계

재난 상황에서 동물은 종종 '부수적 피해'로 간주되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동물은 가족이자 정서적 지지의 대상입니다. 특히 산불처럼 대규모로 발생하는 재난에서는 반려동물과 가축, 야생동물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하거나 방치된 채 고통 속에 희생되곤 합니다. 이런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극심한 상실감과 죄책감을 경험합니다.

또한 재난 현장에서 동물 구조를 위해 몸을 던진 소방대원, 자원봉사자, 동물단체 활동가들 역시 신체적 위험뿐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겪습니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정서적 충격을 받은 일반 시민들 역시 간접적 피해자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고통과 회복의 과정에 함께해야 합니다.

 

2. 동물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

우리 사회에서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감정은 종종 과도하거나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이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감정의 억압이며, 슬픔을 감추게 하는 또 하나의 상처입니다.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감정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반응으로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이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상실의 고통을 치유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슬픔을 공감받고 나누는 환경은 심리적 회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3. 현장 속 공백: 구조, 보호, 애도 시스템의 부재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 체계는 아직도 인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동물 보호는 항상 후순위로 밀리고, 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인프라는 극히 부족합니다. 임시보호소나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는 거의 마련되지 않았으며, 구조된 동물에 대한 보호와 치료, 사후 돌봄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전무합니다.

뿐만 아니라 희생된 동물에 대한 애도 역시 공적 영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정서적 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에서 비롯된 한계입니다. 사회복지 실천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회복의 시작: 반려동물 상실에 대한 상담과 지지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이나 동물과의 관계를 상실한 이들은 단순히 생명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재난 자체의 충격과 맞물린 복합적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이는 특히 1인 가구, 독거노인, 정신적 지지체계가 약한 사람일수록 더욱 심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펫로스 전문 상담이나 애도 집단상담, 반려동물 추모 공간 운영, 지역사회 기반의 정서 회복 프로그램 등이 요구됩니다. 사회복지사는 피해자의 상황을 진단하고, 지역사회 내 자원과 연계해 치유적 돌봄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회복의 과정은 곧 삶의 기능 회복과 일상 복귀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5. 사회복지의 확장: 인간-동물 관계까지 돌보는 복지 실천

이번 산불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두 가지 위기를 상징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의 가속화, 또 하나는 대형 재난 발생과 대응에 대한 제도적 취약성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위기의 한복판에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제 사회복지는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 전체를 고려하는 복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One Welfare라는 개념은 인간, 동물, 환경이 하나의 복지 생태계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의 고통을 돌보는 일은 곧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며, 반대로 동물을 외면하는 복지는 인간 중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사회복지사는 재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 지지할 것인지 고민하며, 정책적 변화와 실천적 돌봄 사이에서 연결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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