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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밀착 복지관2. 한국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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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케이팝, 케이푸드... 케이 시리즈가 갈수록 증가합니다. 케이복지는 어떨까요? 한국형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제도도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형으로 달라집니다. 먼저 세계사를 살피며 세계 2차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니, 한국의 복지도 그때로 가보겠습니다. 한국은 나라를 빼앗기고 국가의 역할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으로 일본이 백기 투항하면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타력에 의한 해방은 나라를 이념전쟁의 이차적으로 내몰았고 한국전쟁으로 인류사에 없는 가장 작은 지역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뼈아픈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갈리고 황폐해진 국토에 복지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복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외국의 원조가 전부였습니다. 외국에서 받은 식량을 선교단체와 보육원을 통해 주는 게 복지였습니다. 저는 이때를 '주는복지'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쌀을 주고 옷을 주는 게 복지였습니다. 주는복지의 시대는 80년대까지로 이어집니다.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세계사에 없는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전쟁 폐허의 분단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세계 조선업의 선두 주자가 됩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합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더 이상 빵과 옷을 원조받는 가난한 나라는 아닙니다. 복지로 좁히면 1990년대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면서 복지의 제도적 도약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복지제도의 근간은 김대중 정부의 성과입니다. 이후로는 김대중 정부의 제도 위에 양적 확대가 이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주는복지'도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양적인 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도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 주는 복지'라고 부릅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복지 대상자를 선별하고 투입된 자원이 잘 쓰였는지 살피는 복지입니다. 생산적복지, 복지경영, 사례관리처럼 효율을 강조하는 용어가 많이 쓰이던 때입니다.


2000년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욕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복지대상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향상이 동시에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복지에 투입하기 위한 자원의 확대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과도한 정부부채를 경계합니다.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정부부채는 반대입니다. OECD 최하위 수준의 정부지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고 했던가요? 어떻게든 복지 자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시기를 '만드는 복지'라고 부릅니다. 지역조직, 주민조직, 민관협력, 마을공동체와 같은 단어가 주로 등장하는 때입니다. 물론, 이건 복지의 주체가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은 자원 확보라는 목표가 더 강했습니다. 자원의 관점에서 지역과 주민과 협력을 주로 말했습니다. 


지금은 주는복지, 잘주는복지, 만드는복지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혼합되어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은 주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경계가 분명합니다. 앵프라멘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미술을 예로 들면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미술작품으로 등장시킨 '샘'이 있습니다. 일상과 미술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영리와 비영리, 공공과 민간, 공급자와 수요자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복지에서는 '주고받는복지'라고 부릅니다. 지역밀착은 경계가 희미해지는 '주고받는복지'의 토대 위에서 나왔습니다. 


주는복지, 현물제공, 서비스제공

잘주는복지, 효율적 관리, 사례관리

만드는복지, 복지자원 확대, 지역조직

주고받는복지, 통합, 서비스제공+사례관리+지역조직


지역밀착을 알고 싶었는데 세계사와 한국사가 나오니 머리가 아프신가요? 이럴 때는 조금 더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현시대를 '피로사회'로 정의한 것처럼 말입니다. 세계사와 한국적 상황에서 살폈던 전쟁 이후의 시대는 한마디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생존의 시대'입니다. 언어에는 시대의 필요가 담겨 있습니다. 생존의 시대에 인사말은 '밥 먹었냐?'입니다. 밥이 곧 생명이니, 살아 있냐는 생존확인의 언어입니다.


생존의 위험이 지나니 더 잘살아보자는 의기투합이 이뤄집니다. 매슬로의 통찰을 따르면 생존의 위험을 탈피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이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 혼자 열심히 산다고 국가 산업이 발전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면 집단입니다. 집단은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보다는 공동의 목표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단 사명의 시대'입니다. 새마을운동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남발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정도에 붙일 수 있는 단어를 우리 회사, 우리 조직, 우리 지역, 우리나라로 확대합니다. 미래의 목표, 비전을 강조하는 시기입니다. 


지금은 집단 사명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집단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아예 해체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전체 가구의 30%가 넘게 1인 가구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출생률은 세계적 학자들의 연구 대상입니다. 개인이 주체가 되었습니다. 개인과 사명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인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을 뿐입니다. 그것을 개인은 의미라고 부릅니다. '개인 의미'의 시대입니다. 사명으로 모이지 않고 사명으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이란 단어로 모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재미든, 보람이든 내게 실질적인 의미가 되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습니다. 지역밀착은 개인 의미의 시대에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70대 어르신으로 집단화시킬 수 없습니다. 10명의 주민이 있다면 과거에는 10명 대상의 프로그램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10개의 실천방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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