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본문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소명비전보람
  • 복지이유
  • 그래도복지
  • 복지살롱후기
  • 일단포럼후기

비슷한 주제로 한 주 사이에 두 개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주제로 모였던 서울복지재단 주최의 복지 살롱과 '그래도 복지'를 주제로 모였던 복지관 일꾼들의 모임 일단 포럼입니다. 두 모임이 가르쳐준 깨달음을 나눕니다. 먼저 김세진 소장님, 김승수 관장님과 함께했던 복지 살롱의 배움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소장님의 대답에 '소명'이란 단어가, 김승수 관장님의 '비전'이란 말이 연결됩니다. 저는 '보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쉽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치 있는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월급은 보이지만 보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가 사주는 밥은 눈에 보이지만 우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환산해서 비교해야 하는 자본주의 최정점 한국에 살면서 보이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삶의 기초가 되고 풍요의 근원이 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당장에 눈에 보이고 확인되지는 않지만, 삶의 본질적 가치를 얻기 때문입니다.


둘째,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 생명의 다른 말은 변화입니다. 운동이라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고인 물이 썩습니다. 소명이 있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환경의 제약을 넘어서 움직입니다. 이순신의 소명은 12척의 배로도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 한복판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장애물이 너무 커서 멈출 수도 있지만 결국은 포기하지 않고 움직입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도 움직입니다. 발은 방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선을 따라서 움직일 뿐입니다. 보여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전은 보이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니 움직이게 됩니다. 보람을 경험한 사람도 움직입니다. 보람은 에너지와 같습니다. 보람은 힘을 채우고 채워진 힘은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소명과 비전과 보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나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에 연결됩니다. 지역의 소명이 아니라 내 소명입니다. 국가의 비전이 아니라 내 비전입니다. 기관의 보람이 아닌 내 보람입니다. 작은 시냇물이 강이 되는 법입니다.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도 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의 소명이 내 소명이 될 수 없습니다. 국가의 비전과 기관의 보람이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소명, 비전, 보람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옮겨집니다. 소명이 분명한 사람 곁에 다른 소명이 모입니다. 비전이 뚜렷한 사람 곁에 비전을 찾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보람을 경험한 사람 곁에 다른 보람들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의 소명, 비전, 보람이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가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김세진 소장님, 김승수 관장님과 함께한 '복지살롱'이 본질적인 Why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복지 일꾼들과 함께한 '일단 포럼'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How를 알려줬습니다. 일단 포럼은 복지관 팀장님들과 무엇인가 함께 해보자는 작당모의로 시작했습니다. 너무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방향성은 있되 부딪히며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일단 포럼'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일단 해보자는 뜻입니다. 첫 번째 주제 '그래도 복지'로 토요일 오전에 모였습니다. 일단 포럼은 답을 찾는 모임이 아니라 질문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전문가들의 포럼 대신 사회복지 일꾼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입니다.


일단 포럼으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복지를 하는 이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복지관에서 일을 하는 내 이야기를 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듭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뭔가 차오릅니다. 뭔가 차오르니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래 계속해 보자는 다짐이 생깁니다. 2시간 동안 한 건 대화가 전부인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방법, 살아가는 대부분을 대화로 얻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책은 저자와의 대화입니다. 친구, 동료, 선배와 대화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비밀이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대화입니다. 문명은 기록이고 기록은 대화입니다.


이직과 퇴직이 상수가 되었고 복지를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현장에 남은 사람들도 지치고 처음 복지를 선택한 이유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물론 제도와 조직, 리더십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외부 환경의 변화만을 막연히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지 살롱이 말한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대답하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방법을 찾지 말고, 대화를 합시다. 불만을 늘어놓고 문제만 지적하는 사람들은 잠시 멀리하고 소명, 비전, 보람의 사람을 만납시다. 가까운 곳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없다면 찾아 나섭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희망을 말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를 존재시킨 소망을 이야기합시다. 지금 나를 살맛 나게 하는 보람을 말하고 즐거운 미래를 담은 비전을 나눕시다.


삶은 해석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떤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달리 보입니다. 온전히 평화롭던 시절이 있었을까요? 역사는 말합니다. 그런 시대는 없었다고요. 가족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갈등이 생기는데 개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고 성장하도록 온전히 돕는 조직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 진보하는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소명을 가지고, 작은 보람으로 힘을 채우고, 비전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대화, 르네상스의 살롱 문화와 편지, 현대의 네트워크는 결국 대화입니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동료와 차 한잔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깊은 대화를 나눌 동료를 찾아 나서고 소명, 보람, 비전의 사람들과 마주합시다. 내가 복지를 하는 이유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내가 살아갈 방법이 그 사람들의 눈에 있습니다. 그들의 눈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에 해답이 있습니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