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본문

실험동물의 고통, 사회복지는 침묵할 것인가?


매년 4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입니다.

 

이 날은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실험에 사용되어 온 동물들의 삶을 돌아보고, 동물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상기하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동안 실험동물은 인류의 건강과 생명연장을 위한 연구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으나, 그 과정에서 감정과 고통을 지닌 생명체로서의 존엄은 종종 간과되어 왔습니다.

사회복지 영역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권익과 복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지만, 오늘날에는 생명과 존엄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여 비인간 존재의 복지까지 시야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실험동물과 같은 존재는 사회의 윤리적 성숙도를 반영하는 지표가 되며, 이들의 복지 역시 사회복지의 한 축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실험동물의 현실과 사회복지적 책임

대한민국에서 매년 약 50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실험 종료 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최신 통계인 2022년 기준 실험에 동원된 동물 수는 499만 마리를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실험동물 수는 2018년 약 370만 마리, 2020년 약 410만 마리 등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국내 실험동물의 절반인 약 250만 마리는 마취나 진통제 없이 실험이나 수술을 하는 '고통등급 E'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실험동물로 주로 사용되는 종은 생쥐, 토끼, , 원숭이 등으로, 의약품 개발, 화학물질 테스트, 질병 모델 연구 등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고, 공포를 경험하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사라지는 삶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동물의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윤리성과 책임을 묻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의 핵심 가치인 존엄성, 정의, 인간과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실험동물의 존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external_image

 

사진설명: 동물실험의 문제점을 다룬 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에니메이션. 다음 url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꼭 시청하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3tta73m6Vg


동물실험의 과학적 결점과 부작용 사례

동물실험의 가장 본질적인 결점은, 수많은 동물의 희생을 통해 얻은 실험 결과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과학적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인간과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동물들은 자연 발생적인 질병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질환을 유발시킨 모델로 사용되며, 이로 인해 실험의 시작부터 왜곡된 조건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실험의 결과는 동물의 종, 나이, 성별, 먹이, 사육환경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동일한 실험을 하더라도 연구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쥐에서 효과적이었던 약물이 사람에게는 독성이 있거나, 반대로 동물에게는 독성을 보였지만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진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동물실험에서 안전하다고 판단된 약물이 실제 사람에게서 심각한 부작용, 특히 임산부 복용 시 태아 기형을 유발한 사건입니다. 이 약물은 설치류 실험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 시판되었지만,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반대로 아스피린의 경우, 원숭이에게 선천적 장애를 일으키는 부작용이 관찰되었지만, 사람에게는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 진통·해열제입니다. 이처럼 동물실험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사진설명: 동물실험의 대표적 부작용 사례로 알려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기사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73536.html


3R 원칙: 과학과 윤리가 만나는 대체 방안

 

오늘날 세계는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과학적 한계와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하여 다양한 대체 시험법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기준이 바로 3R 원칙입니다. 3R은 대체(Replacement), 감소(Reduction), 개선(Refinement)을 의미하며, 실험동물의 희생을 줄이고 실험의 윤리적 기준을 높이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1. 대체(Replacement)

 

대체란 말 그대로 동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실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인공 피부, 장기 칩(organ-on-a-chip), 3D 세포 배양 모델, AI 기반 약물 예측 모델, 효소 반응 시스템 등이 있으며, 이러한 기술들은 실제로 다국적 제약사와 연구기관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동물실험에서 발생하는 오류 가능성을 줄이고, 사람 중심의 결과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 감소(Reduction)

감소는 동물의 수를 최소화하면서도 실험의 신뢰성과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험 설계를 정밀화하고 중복 실험을 방지하며, 통계적 분석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포함합니다. 특히 데이터 공유 플랫폼의 발달로 여러 기관이 기존 연구 결과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동물을 사용하는 빈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3. 개선(Refinement)

개선은 동물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함합니다. 실험 전··후에 적절한 마취와 진통을 제공하거나,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육환경을 조성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단지 동물을 위한 배려를 넘어, 실험의 정확도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접근입니다.

 

기업이 이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정부가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고통의 최소화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가치 실현으로 연결되며, 미래 사회복지가 필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와 시민 교육의 중요성

실험동물 문제는 단순히 연구실 안에만 머무는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 세제, 의약품 중 상당수가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일 수 있으며, 이러한 소비 행동이 곧 실험동물의 삶에 직결됩니다. 이에 따라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비건 인증' 제품을 선택하는 윤리적 소비가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실험을 줄이고 대체 기술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사회적 압력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과 대학생, 연구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동물복지 교육은 교육은 사회복지실천의 외연을 넓히고,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그림설명: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Cruelty-Free와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인증하는 주요 로고



동물실험 수행자들의 정신건강: 사회복지의 새로운 과제

동물 실험을 수행하는 연구자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복지의 주체입니다. 이들은 직업적 스트레스 외에도, 반복적인 희생과 고통을 마주하며 감정적 둔감화 또는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겪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 노동의 성격이 강한 작업 환경은 우울, 불안, 직무 스트레스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회복지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상담 서비스의 확대, 심리적 회복 프로그램 개발, 조직 차원의 정서 지원 등이 마련되어야 하며, 실험동물 관리 종사자를 위한 별도의 복지 기준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대형 제약회사의 동물실험윤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수년 전부터 실험동물 종사자들과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동물 위령제를 제안·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실험 과정에서 희생된 생명에 대해 숙연히 되새기고, 고통을 감수하며 실험에 참여한 동물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이 위령제는 직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실험에 임하는 자세와 동물에 대한 인식 전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반복되는 실험으로 인해 심리적 피로를 느끼던 종사자들이 감정을 환기하고, 윤리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실험동물의 문제는 이제 과학계나 동물권 단체만의 몫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실험 속에서 고통을 겪는 동물들의 현실은, 인간 중심의 사회가 간과해온 구조적 약자의 모습이며, 사회복지가 주목해야 할 윤리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사회복지기관을 비롯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모품을 크루얼티 프리 제품으로 전환하는 일, 청소년 대상 생명윤리 교육에서 동물실험의 윤리성을 함께 논의하는 일, 실험을 수행하는 연구자들의 정서적 부담과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 등은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 지금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제들입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