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讀)한 사람들! By 전광석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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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행복을 배우는 시간!
더없이 좋은 계절 5월이 찾아왔다. 가족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5월만큼은 그립고 만나고 싶고 감사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다가온 선물, 바로 김지수 작가의 인터뷰 작품이다. 《마지막 수업》으로 많은 독자에게 ‘메멘토 모리’를 전했던 김지수 작가가 이번에는 국민 시인 나태주를 인터뷰했다.
2024년 봄, 김지수 작가는 거의 매주 공주를 찾아 나태주 시인의 일상을 함께했다. 함께 거닐고 식사하며 야생초를 바라보고, 단골 카페에서 삶을 나누었다. 그 순간순간이 시가 되고, 잠언이 되고, 어록이 되어 《나태주의 행복 수업》으로 엮였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으로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쫓기듯 사는 삶을 잠시 내려놓는 여유를 선물한다. 나태주 시인의 소박한 일상과 따뜻한 시선이 독자들에게 작은 행복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
태주의 경험대로라면 내가 시를 쓰는 그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쓰는 것이니, 애초에 시는 '나의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었다는 이야기.
지수가 물었다. "선생님은 항상 너를 생각하세요? 너의 눈높이를?"
"그럼요. 너무 높이 올라가도 너무 깊이 내려가도 안 돼요. 접근할 수 있는 만큼만 표현해요. 그 눈높이를 가장 잘 맞춘 사람이 윤동주, 김소월입니다. 잘난 척 거룩한 척하면 큰일 나요. 다 도망가 버려. 허허"
'저런 것이 시가 되는 이유'는 바로 못나고 모난 '저런 것들'에 대한 태주의 애틋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찮은 '저런 것들' 중 하나인 나를 한없이 어여삐 보는 눈길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가장 심오한 마음인 '친절'이 그의 생활에 소금 간처럼 배어 있었다.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위로되고 공감되는 말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느긋함과 바지런함이 균형을 이루는’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하겠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독자 몫.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ㆍㆍㆍㆍㆍㆍ .'
누가 어떤 상황에 들어도 위로가 되는 말. 기사를 마감하느라 커피를 약물처럼 들이켜고 벽에 쿵쿵 머리를 박으며 자책하는 새벽마다 지수는 이 말을 떠올렸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무 괴로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너무 괴로우면, 돈도 시도 쓰면 안 된다고 태주는 말했다.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일지도 모른다. 느긋함과 바지런함이 균형을 이루는, 우리 모두 그런 날들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부모 노릇이 참 어렵다. 여든의 태주는 딸 같은 지수에게 떨어 놓는다. 딸은 자랑스러움이고 아들은 아픈 손가락이라고. 그러면서 부모 노릇을 딸에게 이야기하듯 편하게 풀어 놓는다.
낳아주고 길어주고 그리고도 남는 일은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어렵죠. 기다려주는 게 참 어렵습니다. 모든 건 다 때가 있고, 그때가 올 때까지 서로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해요. 기다려주는 마음이 아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아끼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보다 항상 더 커요.“
예뻐질 때까지 예쁘다고 말해주는 태주의 낙관을, 기한 없는 사랑을, 믿을 만한 엄포를 지수는 삼키고 또 삼켰다.
풀꽃시인으로 명성을 얻게 된 태주는 야생초를 만나면 신난다. 이름부터 시작하여 꽃말, 피는 시기, 약효 그리고 습성까지. 그런데 태주를 통해 나는 야생초가 역마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생초의 생존 전략이자 살아가는 지혜이다.
"나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배웠어요. 꽃도 그 자리에만 계속 심어 놓으면 꽃이 퇴화한다는 걸. 언덕 위에 구절초를 가득 심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많이 번식하더니 나중에는 다 없어져 버렸어요. 야생초는 옮겨 다녀요. 자기가 살고 싶은 그곳에 삽니다. 놀라운 진리예요. 애초에 붙박인 나무와는 다르죠."
미움은 죽음을, 다정함은 생명을 살린다는 ‘The Rabbit Effect!’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내가 지옥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가까이에 있는 식물부터 그리고 직장 동료,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가정을 끈끈하게 하는 날이 많은 이유가 있다, 멋진 척하지 말고 마음 담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여 살갑게 건네보자.
"일전에 다큐멘터리에서 식물의 주파수를 측정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걔네도 물을 안 주면 아우성을 쳐요. 조용한 아우성이지.
런던 광장에 예수 제자라고 심었던 나무 열두 그루 중에 마지막 나무인 유다 나무는 죽어서 다시 심었다잖아요. 나무도 미움을 받으면 죽어요."
1978년 《사이언스지》 토끼 실험 연구팀은 토끼들에게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했다. 모든 토끼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고 심장병 확률이 높아졌지만, 유독 한 무리의 토끼만 혈관에 쌓인 지방이 60%나 적었다. 변수를 확인한 결과 건강한 토끼들은 한 다정한 연구원이 먹이를 줄 때마다 말을 걸고,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준 토끼들이었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누는 그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애정'이었다. 일명 'The Rabbit Effect'다.
'래빗 이펙트'를 기반으로 2022년 《다정함의 과학》을 쓴 콜롬비아 의대 켈리 하딩 교수는 나아가 '부모의 다정함'이 아이의 생명을 살리거나 DNA 서사를 바꾼다고 주장한다.
태주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시 부문 태주만큼 잘 팔리는 시집은 드물다. 거절을 잘 못하는 태주는 출판사 한 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인지세로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부자다. 적어도 태주의 부자론에 의하면.
그런데 태주는 인지세로 번 돈을 모두 써 버리고 지금 공주에서 8천만 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예요. 많이 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부자의 삶은 생각날 때마다 바로바로 주는 삶이에요. 돈을 잘 쓰려면 버는 것 이상으로 머리도 부지런히 써야 돼요."
태주는 매년 1월이면 공주문학상,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신석초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에 줄 상금을 분배하느라 바쁘다. 지역의 글쟁이들을 불러 목적 없는 용돈도 준다. 자신의 계좌가 빨리 바닥을 드러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돈을 준 후엔 싹 잊어버린다.
지수는 2024년 봄 한때를 태주와 공주에서 주로 데이트했다. 그리고 지수가 살면서 들어본 가장 짧은 시라고 소개한 시가 ‘됐어!’
"최선을 다해 숨 쉬고 마지막 말은 딱 한 마디면 족해요. '됐어!'“
태주가 누리는 행복의 비결은 일상을 즐기는 소탈함과 세상 끝날 때까지 오롯이 지켜도 괜찮다고 한 ‘겸손과 정직과 검소’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어우러져 만들어 낸 선물이리라.
태주의 이러한 삶을 담은 <버킷 리스트>로 지수가 밝혀낸 태주의 행복 담론을 접는다.
나는 세상에 나와
해보지 못한 일은
스키 타기, 요트 운전하기, 우주선 타기,
바둑 두기, 그리고 자동차 운전하기
(그런 건 별로 해보고 싶지 않고)
내가 세상에 와서
제일 많이 해본 일은
책 읽기와 글쓰기,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 자전거 타기,
연필그림 그리기, 마누라 앞에서 주정하기,
그리고 실연당하기
(이런 일들은 이제 그만해도 좋을 듯하고)
내가 세상에 나와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사막에서 천막 치고 일주일 정도 지내며 잠을 자기,
전영애 교수 번역본 <말테의 수기> 끝까지 읽기,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
(그런 일들을 끝까지 나는 이룰 수 있을는지ㆍㆍㆍㆍㆍㆍ.)
석양이 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수는 태주의 말에 자신의 말을 겹쳐보았다.
"내가 세상에 나와 꼭 해야 할 일은 '억지로라도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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