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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는 반려견이 아닙니다” — 청각장애인 보조견을 향한 시선과 사회복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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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는 반려견이 아닙니다

청각장애인 보조견을 향한 시선과 사회복지의 과제


얼마 전, 한 청각장애인이 훈련된 보조견과 함께 식당을 방문했다가 출입을 거부당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업주는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아니고, 그냥 강아지처럼 보여서라는 이유로 출입을 막았고, 이를 지켜본 경찰 역시 정확한 법적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 채 상황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견 단순한 오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장애인의 일상적 권리에 대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 있습니다.

 

장애인 보조견, 안내견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많은 시민들이 장애인 보조견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보조견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둘째는 청각장애인 보조견, 일명 보청견으로, 초인종, 경적, 화재 경보, 전화벨 소리 등을 감지해 장애인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셋째는 지체장애인 보조견으로, 물건을 주워주거나 휠체어를 밀고, 문을 여는 등의 물리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넷째는 치료 도우미견으로, 불안, 우울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보조견들은 모두 특수훈련을 받은 장애인 보조 파트너로서, 단순한 반려견이 아닌 공식적인 권리 보장을 받는 동반자입니다. 특히 보청견은 몸집이 작고 조용히 행동하기 때문에 일반 반려견으로 오해되기 쉽고, 그로 인해 출입이 거부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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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청각장애인 보조견에 대한 홍보자료(청음복지관) http://www.chungeum.or.kr/ServiceNews/View/b


 

법은 있지만, 권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는 보조견이 공공장소, 대중교통, 음식점 등에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을 거부당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가 무섭다”, “가게가 좁다”,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식의 주관적 이유로 보조견 출입이 거부되곤 합니다. 이는 정당한 사유의 해석이 모호하고, 집행도 일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업주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법적 처벌이 아니라 비장애인 손님의 민원입니다. “불쾌하다”, “알레르기가 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반응이 이어지면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그 결과 장애인의 권리가 일상에서 무력화됩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보청견 출입 문제를 넘어, 장애인이 일상적인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보조견을 둘러싼 갈등, 법령 개정으로 달라질까?

이러한 반복되는 갈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24423일부터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하였습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인식개선 의무의 제도화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 보조견 관련 인식개선 홍보사업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하고, 그 내용에 보조견의 필요성’, ‘출입 거부 금지 사유’, ‘일상 동반 출입의 권리등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규정했습니다. SNS 스토리툰, 홍보 영상, 교육 자료 제작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2) 정당한 거부 사유의 명확화

기존에는 정당한 사유라는 표현이 너무 포괄적이었지만, 이번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무균실·수술실(의료기관) 및 조리장·식품창고 등 위생이 엄격히 필요한 공간만을 출입 거부 가능 공간으로 명확히 했습니다.

 

이제는 손님이 싫어한다는 이유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명확성이 높아졌고, 동시에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을 위한 공공 캠페인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조견은 단지 장애인의 곁을 지키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동과 안전, 자립과 권리 실현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따라서 시민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예절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 보조견을 함부로 만지거나 말을 걸지 마세요
  • 보조견은 근무 중입니다. 주인의 안전에 직결되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 간식이나 사진 촬영은 삼가주세요
  • 귀엽다고 다가가는 행동은 보조견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 장애가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질문하거나 의심하지 마세요

보조견이 동반되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정당한 사유가 있는 동행입니다.

 

이번 개정 시행령은 단순히 법 조항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 보조견을 둘러싼 갈등을 더 이상 단편적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고, 장애인의 일상 접근권 실현이라는 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일깨워줍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선, 보조견 출입이 거부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관련 법령과 개정된 내용을 근거로 장애인의 권리를 안내하고, 필요 시 적극적으로 대응을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기관이나 시설에서도 직원들이 보조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 교육을 마련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와 보조견의 일상이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가 현장 감시자이자, 제도 개선을 촉진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 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겠습니다. 보조견 역시 복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종종 보조견을 장애인을 돕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그들의 삶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조견은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사람을 돕는 역할을 수행해온 생명이며, 그 훈련 과정 자체가 높은 긴장과 통제를 수반하는 고된 여정입니다.

모든 훈련견이 보조견으로 최종 선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도 탈락하는 개들은 가정 분양이라는 명분 아래 일반 입양시장으로 이동되지만, 훈련과 낙인으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보조견으로 수년간 일한 후 은퇴한 개들의 삶 역시 대부분 보호자 개인의 책임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들이 복지 체계 내에서 존중받고 돌봄받는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보조견을 존중한다면, 그들의 노동과 헌신뿐 아니라 삶의 전 과정을 복지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인간의 권리뿐 아니라,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의 권리와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보조견의 훈련, 활동, 은퇴 이후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돌봄체계를 고민하는 일은 동물권과 복지의 교차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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