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사람 By 김승수
- 2025-05-31
- 60
- 0
- 0
우리는 여기에 왜 있는가?
김승수(똑똑도서관 관장)
보더콜리란 개를 참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 듯이 목양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지능이 좋은 견종으로 유명하고 그 명성에 걸맞게 학습 능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7살 정도의 지능이고 높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과도 잘 지냅니다. 너무 매력적인 개인지라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친구의 집에서 살고 있는 보더콜리를 보고 마음을 쿨하게 정리했습니다.
아파트인 친구 집에 사는 보더콜리에게는 높은 지능과 체력으로 양을 몰고 가는 그 매력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주인이 가볍게 놀아주는 정도에 대응하는 보더콜리를 볼 때 많은 양을 축사로 빠르게 몰고 가는 그 매력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원래 보더콜리는 양치기 개인지라 활발한 성격에 덩치가 크고 체력이 좋아서 정말 엄청난 운동량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도시는 양떼를 몰 때 처럼 신나게 뛸 곳도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보더콜리의 본능적 욕구를 해소 시키기에 많은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더콜리랑 살기를 정리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도시에 살고 있는 보더콜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타고난 본능대로 살 수 없기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에 미친 개’라 불리울 정도로 무한에 가까운 체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도시에서의 생활에서는 넓은 면적을 오가며 양떼를 모는 스스로 해야 할 과업을 수행할 이유도 없고, 그저 주인의 허락된 범주에서만 자신의 변형된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거보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더콜리는 나름 지금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저 반려견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이란 말이 있습니다.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감각이 인지(관념)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성된 인지(관념)도 행동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일하고 있는 곳에서의 역할 수행성 즉,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나의 존재보다 지금 처한 행위가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는 것입니다. 보더콜리에겐 “나는 누구인가?”, “내가 여기 왜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처한 상황에서 반려견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고, 반려견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은 보더콜리와는 달리 자유의지에 따라 하는 일에 대한 선택이 가능하기에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과 단단한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은 그 사람이 평상시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지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전에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소명(Calling)이 그래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회사업가에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와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의욕을 갖고,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서로가 끈질긴 노력을 통해 함께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회적 변화의 시작입니다. 일을 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예: 워라벨)은 없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확고한 정체성에 근간하여 주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일은 고될 수 있으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묵묵히 순수하게 하나하나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왜 있는가?”
스스로에게 꾸준히 해야할 질문입니다.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