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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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은 현대사회의 대표적 사회문제입니다. 사회에는 사람 수만큼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적 고립만 사회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사회적 고립을 말합니다. 강물의 끝에는 바다가 있는 것처럼 모든 사회 문제가 사회적 고립으로 모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어디부터 접근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적 고립의 모든 과제를 해결할 것처럼 과욕을 부리는 건 위험하지만 내가 맡은 사업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건 나태한 태도입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시대를 한 단어로 정의했습니다. 그의 진단이 책 제목입니다. 질병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는데 현시대는 과잉이 만들어낸 피로, 정신 질환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 0원으로 수렴되며 이제는 생산이 아닌 감정, 공감의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바우만은 '불안의 기원'에서 현대 사회의 근본적 감정을 파헤칩니다. 산업화로 촉발된 근대화가 인류의 근본적 불안을 없앨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두려움은 더 크고 다양하고 깊어졌다고 말합니다. 로리아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아예 현시대를 고립의 시대라고 정의했습니다.
한병철, 제레미 리프킨, 바우만, 로리나 허츠가 말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도화된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가 촉발한 새로운 사회문제의 등장입니다. 그것을 꼭 사회적 고립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회문제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빈곤과 같은 전통적 사회문제와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문제의 등장입니다. 그 맨 앞줄에 사회적 고립이 있습니다.
과거 사회문제의 대표적 사례는 빈곤입니다. 빈곤은 정의할 수 있습니다. 중위소득 80%처럼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합니다. 정의가 되면 이론과 전문가의 매뉴얼이 있습니다. 매뉴얼에 따라서 실천하고 결과를 평가하면 됩니다. 이런 실천을 여러 번 반복하면 실력이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문제의 대표적 사례인 고립은 다릅니다. 우선 정의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분명한 정의가 어려워서 이론과 전문가가 없습니다. 정해진 절차가 없으니 매뉴얼이 존재할 리가 없고 실천의 과정을 기록한 사례집과 에세이가 있을 뿐입니다. 굳이 전문가라면 새롭게 시도하고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라는 말보다 경험가가 적합한 표현입니다. 반복되지 않는 실천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하고 변화의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사회문제를 대응하는 출발점을 비교하면, 과거의 사회문제는 모집으로 시작하고, 새로운 사회문제는 찾으러 나가야 합니다.
비교에서도 알겠지만 새로운 사회문제는 복합적입니다. 과거의 반복적 실천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자문하고 참고할 사례도 많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답이 없습니다. 사회적 고립 담당자의 가장 큰 고난입니다. 답이 없는데 답을 찾아야 하고, 찾은 답을 얻기 위해 실천해야 하니 말입니다. 답이 없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랑을 학습하고 애인을 찾아 떠나는 건 이상합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감정을 나누면서 사랑을 알아가야 자연스럽습니다. 새로운 사회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고 부족해도 시도하는 게 최선입니다. 새롭게 시도하고 실패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도의 과정에서 변화를 찾아야 합니다. 찾은 변화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새로운 시도와 실패, 추궁과 실망만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 시작의 질문에 답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왜 사회적 고립에 주목해야 할까요? 새로운 사회문제의 대표적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고립에 관심을 두고 대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벽에 부딪히고 실천의 변화를 고민하게 됩니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은 나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변화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반복에서 변화는 생기지 않습니다. 변화는 어색합니다. 사회적 고립으로 어색함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기존의 실천 방법이 통하지 않는 당혹스러움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실천 방법을 고민하면서 한 걸음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분명 작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작은 변화의 경험을 해야 기관의 변화, 지역사회의 변화, 무엇보다 당사자의 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고립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고립이라 쓰고 실천의 변화라고 읽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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