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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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살피기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미리 그것의 본질 안에 놔둘 때,무언가의 본질을 특별히 회복시킬 때 이루어진다.
- 하이데거, 관조, 한병철 재인용
돌봄의 시대입니다. 돌봄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보살핌이 돌봄입니다. 보살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말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돕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똑같은 단어를 정반대로 해석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놔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보살피기는 본질을 회복할 때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살핀다는 게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집니다. 본질을 회복하다니요. 변화는 익숙할 때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화는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고 힘들어야 생깁니다. 머리가 아플 때 멈추지 말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조금 더 파고들어 봅시다.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이럴 때는 언어의 뜻과 어원을 찾으면 도움이 됩니다. 보살핌의 어원은 아름다움에서 왔습니다.
아름다움의 '아름'은 '나'를 뜻합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는 말입니다. 나답게 사는 게 아름다운 최선의 삶입니다. 그러면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의 본질을 회복시킨다는 말은, 그 사람답게 살도록 놔두는 일입니다. 그러면 놔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제 관심을 끊고 방치한다는 말일까요? 그건 보살피는 게 아니라 버려두는 것입니다. 놔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가 아무 데나 가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해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은 그냥 놔둡니다. 혼자서 걸을 수 있고 충분한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놔둔다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을 놔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먼저 함부로 판단하고 예측해서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식사나 이동할 때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분의 요청에 의한 부분적인 도움입니다. 이동이나 식사의 일부를 맡겼지 그분의 인생 전체와 모든 선택권까지 일임한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나의 보살핌이 보살핌을 받는 사람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본질을 벗어나게 합니다.
본질을 벗어나면 나답지 못하게 삽니다. 남이 정해준 기준으로 살고,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며 삽니다. 심지어 의존하게 합니다. 평균적인 삶이 목표가 되면 인간 고유의 개별성이 사라집니다. 죽지 않고 생존은 하되, 존귀한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돌봄은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특별한 행위입니다. 돌봄을 공부하기 위해 펼쳤던 책의 한 구절이 존귀한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게 합니다. 돌봄만이 아니라 그동안 무심코 썼던 많은 단어에 이렇게 숨은 뜻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하고, 깨달음에는 끝이 없다고 말하나 봅니다. 돌봄을 더 깊이 생각해야겠습니다. 돌봄에 삶과 복지의 본질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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